포트 베닝 시연회 - 4

“이런 무기야말로 우리 미군의 무기라고 할 수 있지.”
르메이가 매우 흡족해하며 말하자, 그라울러 중위와 톰슨 대위가 당황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채임즈 중령은 분위기가 변할라 얼른 웃으며 뒤를 이었다.
“콴티코에 남아있는 해병들도 이 총을 한 번 써보면 가지고 싶어서들 안달이 날 겁니다!”
“하, 하하······.”
“그,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라울러 중위와 톰슨 대위는 기세가 변하자, 어색하게 웃으며 맞장구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글쎄요. 제 눈에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하나 들어오는군요.”
잠자코 있던 프레더릭이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띄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뭐, 총 자체는 나름 괜찮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유진 스토너의 작품이니.”
스토너를 훑으며 지나간 프레더릭의 시선은, 에단에게서 멈추었다.
“하지만, 그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권리가 있는 특허를 베꼈다면, 그건 큰 문제겠지요. 안 그런가요? 에단 마틴 씨.”
프레더릭에게 지목당한 에단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뭐, 그렇게 나오시겠다면야.”
프레더릭은 비꼬듯이 말하더니, 이어서 전시된 총 중 하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참관인단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방금부터 유심히 전시된 총들을 보고 있었는데, 매우 익숙한 부품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바로 이 .223 레밍턴용 탄창입니다.”
프레더릭이 집어든 건, 스토너 63의 5.56mm형에 사용되는 탄창이었다.
프레더릭은 탄창에서 특징적인 부분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이 탄창, 콜트 AR-15용 탄창의 구조를 그대로 사용했더군요?”
콜트 AR-15, 추후 붙여질 제식명으로는 M16.
거기서 사용하는 20발 탄창과 스토너 63의 탄창은 완벽한 카피품 수준으로 구조가 똑같았다.
“이 자리에 변호사로 참석했던 건 아니지만, 콜트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중대한 권리침해를 못 본척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프레더릭은 속으로 승리를 확신했다.
법적인 문제가 얽힌 문제작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 성능이 아무리 좋던간에 그 총은 미군 등 기관에 납품하기가 어려워진다.
당연하게도, 법적인 문제로 향후에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 그거요?”
그런데, 에단은 매우 태연했다.
프레더릭은 뭔가 잘못된 걸 느꼈다.
에단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변호사님, 탄창의 베이스 플레이트를 잘 살펴보시겠어요?”
에단의 말에, 프레더릭은 황급히 탄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 이게 무슨?!’
그곳에는, 프레더릭에게 너무나 익숙한 각인이 새겨져있었다.
달려나가려는 야생마를 형상화한 로고 아래에, 익숙한 문구가 음각으로 새겨져있었다.
-COLT AR-15
-CAL. .223
당황한 프레더릭을 향해, 에단은 웃으며 말했다.
“변호사님이 보신 게 맞긴 해요. 이 탄창은 콜트의 탄창이랑 비슷하겠죠. 그야······ 콜트의 탄창이 맞으니까요.”
“이런, 이런 짓을 해서 대체, 무슨 의도로······?”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프레더릭을 제쳐두고, 에단은 참관인단을 향해서 말했다.
“이건 스토너 63의 시스템 모듈화의 많은 가능성 중 하나입니다. 이미 채용했던 M14의 탄창도, 지금 소량 채용된 AR-15의 탄창도, 스토너 63은 모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제서야, 프레더릭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설마, 처음부터 함정이었나?’
특허저작권에서 탄창을 포함한 부품을 도용해서 총기 전체가 돌아간다면, 그건 명백한 특허권 침해다.
그러나, 그저 다른 회사에서 만든 탄창을 사용할 수도 있는 총에 불과하다면?
‘침해 소지가 없다······!’
측면에 탄창멈치가 달린 AR-15와는 다르게, 스토너 63은 가운데 레버가 달린 방식이었다. 같은 탄창을 사용하더라도, 고정하는 구조마저도 다른 상태였다.
즉, 콜트는 이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프레더릭은 당장이라도 실실 웃고 있는 에단 마틴을 붙잡아, 어디까지 꾸민 것인지를 추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으셨던 모양이군요. 프레더릭 씨.”
르메이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한 때는 AR-15를 누구보다 지원해주었던 르메이가 보고 있었다.
‘에단 마틴 따위는 두렵지 않아······! 하지만, 르메이 장군의 앞에서 이 이상 추태를 보일 수는 없다······!’
프레더릭은 변호사 특유의 냉철한 판단력으로 감정을 다스린 뒤, 일부러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부끄럽게도, 제가 너무 넘겨짚었나봅니다. 하하······.”
프레더릭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지금은 우선 바보같이 웃으며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제길, 에단 마틴······!’
프레더릭은 겉으로는 웃으며, 옆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에단을 노려보았다.
에단은 그런 프레더릭에게 실실 웃으면서 답했다.
“에이 뭘, 그럴 수도 있죠.”
그러나, 에단도 속으로는 프레더릭을 향한 비웃음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꼴 좋다.’
프레더릭은 아마 멀리서만 보고서, 자신이 이 시연회를 망칠만한 거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에단이 총기 설계단계에서부터 파놓은 함정이었다.
‘조금만 더 자세히 봤다면 함정인 걸 눈치챘겠지. 괜히 뒤에 서서 폼이나 잡고 있으니 이런 함정도 못 피하는 거야.’
콜트는 유진 스토너를 영입하려다 실패하자, 스토너에게 거의 협박에 가깝게 AR-15나 다른 구작들과 겹치는 설계를 만들지 말라는 경고를 남겼었다.
그 때문에 스토너는 작동방식마저 다르고, 사소한 부품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제약을 걸고 총기 개발을 이어왔다.
그동안 스토너는 괜한 부스럼을 만들까봐 일부러 정면대결을 피했지만, 에단은 정면으로 맞붙어서, 그들을 깨부쉈다.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눈에는 콜트의 대표자인 프레더릭이 괜한 트집을 잡으려다가 실패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꼬시다. 그러길래 마음 좀 곱게 썼어야지.’
원래 에단도 이걸 이렇게까지 직접 콜트에게 되갚아줄 생각은 없었지만, 애초에 이런 자리에 굳이 낀 콜트의 잘못이었다.
에단이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생각하던 때였다.
“메, 멧돼지다!”
누군가가 비명처럼 외쳤다.
‘엥?’
너무 뜬금없는 외침에 에단이 그 쪽을 돌아보자, 그냥 지나가던 중인 병사 한 명이 놀란 표정으로 사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단이 그 시선을 따라서 사로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정말로 멧돼지가 있었다.
그것도, 거의 자동차만한 크기의 큰 멧돼지였다.
‘아니, 왜 군기지 안에 멧돼지가?’
에단은 다소 당황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사로 양옆도, 끝에도 총알의 도탄을 막기 위한 장벽이 있어서 갈 곳을 못 찾던 멧돼지가, 에단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튼 것이었다.
-꾸이이이이이이익!
흥분한 멧돼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자, 괴성과 함께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 이런!”
“모두 피해!”
“아이스크림 트럭 안으로!”
참관단에서 작은 소란이 일던 순간, 갑자기 채임즈 중령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총이 있는데 왜 도망을 쳐!”
채임즈 중령은 전시된 시제품 중 손에 잡히는대로 .223 레밍턴 소총 구성의 스토너 63을 하나 집어들고, 탄창을 찾았다.
“중령님! 여기요!”
채임즈 중령을 따라온 에단이 다른 테이블에 있던 탄창을 던져주자, 채임즈 중령은 그 탄창을 공중에서 잡았다.
“좋았어!”
채임즈 중령은 탄창을 꽂고, 장전손잡이를 당기고, 멧돼지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타타타탕! 타타탕! 타타타탕!
짧게씩 끊어쏘는 잘 통제된 연사와 함께, 멧돼지에게 .223 레밍턴의 탄두가 박혔다.
초음속으로 쏘아진 탄두가 멧돼지의 가죽에 부딪칠 때마다, 털과 먼지가 충격파와 함께 공중으로 흩어졌다.
-뀌이이이이이익!!
그러나, 아직도 멧돼지는 달려오고 있었다.
“제길!”
채임즈 중령은 다시 조준을 가다듬으며, 총열덮개를 꽉 움켜쥐어 반동에 대비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탕!
채임즈 중령은 남은 탄을 모조리 멧돼지에게 쏟아부었다.
비틀거리던 멧돼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몸을 옆으로 돌리려고 했다.
-뀌익······.
그러나 미처 몸을 돌리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쿵!
멧돼지의 뻣뻣하게 굳은 몸이 쓰러지며, 땅울림이 일었다.
‘진짜 큰일날 뻔했다······.’
에단은 고작 10m 정도를 남기고 쓰러진 멧돼지를 보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전 확보!”
-철컥!
채임즈 중령은 그렇게 외치고는, 만약을 대비하여 근처 탄통에서 탄창을 꺼내 다시 장전했다.
-쉬익······. 쉬익······.
멧돼지는 쓰러진 채로 아직도 숨을 몰아쉬며, 팔뚝만한 엄니를 들썩이고 있었다.
에단은 멧돼지의 몸에 부러진 나뭇가지 같은 것이 박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부상 때문에 아까처럼 흥분한 상태였던 건가?’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에단은 멧돼지가 내려온 걸로 추정되는 사로 끝 방향의 철조망과 숲 방향을 바라보았다.
혹여나 다른 멧돼지가 더 있을 수도 있으니 긴장해서 살피던 그때, 멧돼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사로 방향에서 나타났다.
“사격중지! 아군이다!”
한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로 끝에서 갑자기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무성한 수풀을 마치 아메리카 원주민의 깃털모자처럼 얹고, 근육이 역동적인 상반신에는 위장크림을 전체적으로 바른 상태였다.
더군다나, 일반적인 전투복과는 다르게 호랑이 같은 검은 무늬를 지닌 녹색 위장복을 입고 있었다.
‘응? 저 위장복은 설마······.’
모두가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이 정체불명의 병사는 멧돼지를 향해 뛰어들더니, 어느샌가 손에 쥐고 있었던 큰 칼로 그 목을 내리찍었다.
-뀌익!
단말마 같은 비명과 함께, 멧돼지는 곧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 뒤, 그 인물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날을 멧돼지의 가죽에 대충 비벼 닦으며 일어섰다.
“정지! 관등성명을 밝혀라!”
아직 소총을 손에 쥔 채임즈 중령이 경계하며 외치자, 근육질의 병사는 하얀 이가 드러나게 씩 웃으며 말했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베트남 군사원조사령부 연구관찰단 소속의 로버트 하워드 상사입니다!”
“연구관찰단?”
연구관찰단이라는 얌전한 이름에 비해서 너무나 야성적인 하워드 상사를 보며, 채임즈 중령은 미심쩍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 소속을 알아들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세 명 있었다.
“······총구를 내리게 중령. 저 자의 신원은 내가 보증하지.”
그중 한 명은 르메이 장군이었고,
“흠, 포트 브래그도 아니라 베닝에 그 부서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또 다른 한 명은 브라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에단이었다.
‘연구관찰단?’
언뜻 평화로운 연구부서 같은 그 이름이 가리고 있는 실체를, 에단은 알고 있었다.
‘SOG?!’
SOG, 뜻을 풀이하면 ‘Study and Observation Group’.
그러나 실제로 통하는 비공식적인 의미는, 특수전단을 뜻하는 ‘Special Operation Group’.
SOG는 베트남전기, 미군의 최정예 특수부대원을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그리고 CIA도 가리지 않고 모조리 모아 만든, 미군 역사상 최강의 태스크포스였다.
그들이 수행한 작전들은 21세기에도 민감한 사안이 많아 아직도 기밀해제되지 않았으며, SOG 출신의 인물들은 현대적인 미군 특수부대의 기초로 이어졌다.
“제가 사냥감을 놓친 것 때문에 의도치 않게 혼란이 있었던 것 같군요. 사과드립니다.”
별거 아니라는듯이 웃으며 말하는 하워드 상사를 보며, 에단은 긴장했다.
‘말 그대로, 람보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에단은 미소 지었다.
‘좋은 기회다.’
에단은 그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하워드 상사에게 다가가며,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아무도 안 다쳤으니 됐죠. 마틴 총기회사의 에단 마틴이라고 합니다. 상사님.”
하워드 상사가 자신을 살피는 눈을 마주보며, 에단은 웃으며 말했다.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드실래요?”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