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처음이자 마지막 안락사

누리동물병원 내과 진료실이 경건한 슬픔으로 뒤덮였다.
진료대 위에는 한 마리의 골든 리트리버,
‘루이’가 누워 있었다.
루이는 몇 년 동안
내과 우시영 과장의 항암 치료를 받아왔지만,
골육종(뼈암)이 이미 전이되어 있었고,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제되지 않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보호자는 눈물을 흘리며 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생님··· 루이 더 이상 안 아프게...
편히 갈 수 있죠?”
우시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는 정말 오랫동안 잘 버텼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루이도 섭섭해 하지 않을 거에요···.”
마지막 인사는 너무나 아프고
미루고 싶은 순간이었다.
.
“루이, 먼저 가서 언니 기다려야 해.
흑흑~ 루이야 사랑해,
언니한테 와줘서 고마웠어”
보호자가 루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며
눈물의 인사를 했다.
맑은 눈의 광인 우시영은 이 순간,
반려견과의 이별을 앞 둔 보호자의 감정에
누구보다 깊게 이입되었다.
우시영이 깊은 숨을 내쉬고,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우선 우리 루이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충분한 진정제를 투여할 거예요.
그러면 아주 깊은 잠에 빠질 거고요.
그 후, 심장을 멈추는 약을 주입하면 루이는
아무런 고통 없이 편안히 떠날 거예요.”
보호자는 눈물을 훔치며
이제는 준비되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시영은 마지막으로
루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고생 많았어, 루이.
너 정말 용감한 멍멍이였어.”
유찬은 옆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시영의 손길은 한없이 따뜻했고,
보호자의 손을 잡아주며 천천히 설명하는 태도는
배려로 가득 차 있었다.
우시영이 차분하게 루이의 다리에 주사기를 꽂았다.
루이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루이의 이별을 목도한 유찬이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시우의 진료실로 들어왔다.
“김진심, 오늘은 진심을 담은 슬픔이 테마냐?”
“방금 전 우시영 과장님이 육골종 리트리버
보내주셨거든요....
수의사는 참 여러모로 극한 직업 같아요.
내가 치료하던 아이를
내 손으로 보내야 하다니...”
“김진심씨는 안락사 반대주의자인가?”
“아니요, 모든 안락사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진실은, 우리가 아픈 애들의 마음을
정확히, 진짜 정확히는 모르는 거잖아요!
보호자는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서
결정한 거지만, 그게 보호자의 결정이지,
반려동물의 결정은 아니잖아요.
고통에 진통제를 달고라도 더 살고 싶은
개나 고양이들 마음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진심씨는 환축의 의사를 확인 한 후
안락사를 하더라도 해야 한다. 이거네?”
“아픈 애들 의사를 정말 알 수만 있다면...
죄책감이 덜할 거 같아요.”
“내가 영국에 잠깐 있을 때,
타고난 분리불안이 너무 심한
라브라도 한 마리가 있었어.
젊은 남성이 보호자였는데
보호자가 출근을 하면 그 라브라도는
극심한 불안증세를 보여서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해봤지.
약물, 행동인지, 어떤 것도 효과가 없었지.
그렇다고 보호자 부재 시 걔를 돌봐줄 사람을
따로 구할 수도 없는 처지였고.
내가 있던 연구팀에서는 그 라브라도의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했지
라브라도의 스트레스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쓴 거 같았어.
코르티솔(Cortisol),
카테콜아민(Catecholamines: 에피네프린,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은 기본이고
Salivary Cortisol 검사에,
UCCR(Urinary Cortisol-to-Creatinine Ratio,
소변 내 코르티솔 농도를
크레아티닌(Creatinine) 수치와 비교하는 방법)랑
Hair Cortisol Analysis(털을 채취해
코르티솔 농도를 분석하여
장기적 스트레스 수준을 평가)까지
할 수 있는 전부 했어.
그 모든 검사 결과가 어땠을 거 같아?
아주 테러블(terrible)했어,
스트레스 지수를 10으로 본다면
그 라브라도가 주인이 떠나고
혼자 남아 느끼는 고통은 9.8이상이라고
모든 검사 수치가 말해 줬지.
근데 이 결과를 가지고
영국 애들은 토의를 하더라고.
10에 가까운 고통을 느끼며 살게 하는 게
animal welfare(동물복지)냐,
아니면 안락사로 고통을 종식시켜 주는 게
animal welfare냐.
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해서
그 라브라도의 결말은 모르지만,
걔들 토론하는 거 보고 사실 놀랐지.
난 원래 놀라는 일이 별로, 아니 거의 없는데,
안락사에 대한 접근 방식이 좀 놀랍더라.
김진심씨가 그렇게나 알고 싶어 하는
리트리버의 마음을 설사 알게 되었더라도
animal welfare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까?”
“적어도 ‘얘도 이렇게 고통스럽게 사는니
죽는 걸 원한다’라는 확신이 들면
죄책감이 덜하잖아요. 보호자나 수의사 모두에게요.“
“그 죄책감의 무게를 지는 게 보호자의 숙명이라고는
생각 안 해 봤어?
그 때 그 밤비라는 심장병으로 청력 떨어진 강아지도
내가 영국에서 본 라브라도 만큼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면,
박혜미씨가 밤비한테 한 행동을
김진심씨가 그렇게 인간 이하의 짓거리로
욕했던 거, 그 게 더
인간 같지 않은 짓거리가 되는 거 아냐?”
시우의 전에 없던 긴 설명을
집중해서 들은 유찬이 입술을 한번 꾹 다문 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렇게까지 생각을 못한 거 같습니다.”
“김진심씨는 진심은 그만 만들고
실력을 좀 만드는 게 어때?”
“네.... 노력, 아니 잘 하겠습니다.
근데 과장님은 안락사 경험...
많으셔요?”
“안락사라...딱 한번 해봤지...”
“미국에선 응급으로 온 애들도 안락사 많이 하나요?”
“미국에서 했다고 말한 적 없는데...?”
시우는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안락사 기억을 소환했다.
시골 읍내, 옹색한 한울동물병원에 늦은 밤까지
희미한 불이 켜져 있었다.
차경수의 진료대 위에는 뼈가 들어나도록 앙상한
믹스견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심장사상충 치료비가 비싸다며 한 동안 한울동물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던 과수원 집 박씨는 겨우 숨만 붙어있는
개를 데리고 나타나 큰 인심이나 쓰듯 안락사를 해 달라고 했다.
안락사로 죽은 사체는 다음날 찾으러 온다고 했다.
본인은 마음이 단단하지가 못해서 손수 자기 과수원에
개를 묻어줄 거라며 거들먹거렸다.
마음이 단단치 못한 박씨가 왔다간 날 늦은 저녁,
차경수는 익숙한 손길로
진료대 위 앙상한 개에게 주사를 놨다.
주사액이 다 들어가자,
믹스견은 처음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몇 초 후,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을 크게 뜨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커어엉··· 컥···.”
혀를 내밀고 헐떡이던 개의 온몸이
경련으로 흔들리다 굳어지면서
눈동자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고통의 극한으로 죽어가는 개와는 달리
차경수의 얼굴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저 피곤한 표정으로 개의 몸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몇 분이 지나자 개는 몸을 경직시킨 채 숨을 거뒀다.
차경수는 천천히 장갑을 벗고 개의 눈을 감겨주었다.
마치 익숙한 루틴처럼,
시체를 정리하고 약병을 치웠다.
그 모습을 커튼으로 가려진 진료대 뒤편에서 지켜보던
소년 차시우는 자신의 몸이
차갑게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중학생 시우에겐 ‘안락사’라는 단어가
‘고문’이란 단어와 동의어로 느껴졌다.
그 때부터 소년 시우는 수의학 관련 원서와 논문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학원도 과외도 전혀 경험한 적 없는 소년 시우였지만
한 번 집중해서 본 것은 사진을 찍어 보관하듯
기억했고, 마을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으면서
그의 천재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학교 공부를 따로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지만
중학교 내내 평균 100점의 1등이었고
원어민 한 번 만난 적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CNN같은 영미권 뉴스는 동시통역이 가능한
소년 시우가 수의학을 파고들었다.
또 다른 한울동물병원의 안락사의 밤이 찾아왔다.
“아빠.”
곧 죽게 될 축 처진 고양이 앞에서
주사액을 준비하던 차경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아들 시우가 차가운 눈빛으로 서 있었다.
그가 끼고 있던 묵직한 종이에는
선명한 영어 문구가 적혀 있었다.
“Guidelines for Humane Euthanasia of
Companion Animals”
(반려동물 인도적 안락사 가이드라인)
집게로 모아놓은 종이 모서리는
낡고 헤어져 있었다.
“과망간칼륨은 안 돼요.”
“시우야......너 또 인터넷에서 뭐 보고 온 거니?”
“이건 동물을 불태워 죽이는 거나 다름없어요.”
차경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펜토바르비탈을 쓰면 되요.”
아들의 말에 차경수는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건...여기서 쓰기엔...너무 비싼 사치란다.”
힘없는 말을 끝내고 차경수는 주사를 놓았다.
끔찍한 죽음이 또 있었고, 무력한 아빠는
아들의 시선을 피했다.
차경수도 과망간칼륨이
고통을 준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습관처럼 비싸다란 말을
달고 들어오는 동네 사람들의 흥정과
아내의 재발한 암 치료 병수발로
너무나 지쳐버린 그는
눈 앞 동물의 고통에
무뎌지고 외면하는 방법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삶은 치열했고 병원 운영은 빠듯했다.
이곳에서 수의학적 윤리는 사치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트럭에 치어 살아날 희망이 없는 황구가
한올동물병원으로 실려 온 날,
차경수는 진통제를 강하게 투여하고
황구 주인 쌀집 진씨와 전화로
황구의 안락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날 오후, 차경수는
극심한 통증으로 의식이 희미해진 아내를 데리고
응급실이 있는 인근 도시로 급하게 차를 몰았다.
굳게 닫힌 한울동물병원 문 너머 소년 차시우가
홀로 입원 철장에서 신음하는 황구 앞에 서 있었다.
“많이 아프지? 내가 도와줄게”
시우의 다정한 소리에
황구의 꼬리가 미세히 흔들렸다.
소년 시우는 닳도록 본 인도적 안락사 방법 절차를
찬찬히 다시 떠올리며 황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먼저 진정제 주사를 줄 거야,
그럼 넌 잠이 들거구,
니가 잠자면서 편히 갈 수 있도록
난 또 한 번 니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게
주사를 놓을 거야.
무서워 하지마,
끝까지 내가 같이 있을 거니까.”
소년 시우는 차분하게 약을 준비했다.
미리 여러번 연습한대로 주사기를 손에 쥐고,
황구의 앞다리를 어루만졌다.
“괜찮아.”
부드러운 목소리에 황구가
시우의 손을 힘없이 핥았다.
소년 시우는 흔들리지 않고 주사를 놓았다.
천천히, 아주 조용히, 황구의 숨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황구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엄마와 돌아온 차경수는
황구의 사후경직 된 사체를 만져 보았지만
시우에게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해가 뜨자, 쌀집 진씨에게 전화로 황구가
편히 갔다고만 말했다.
차시우의 첫 번째 안락사는 그렇게
소년 차시우에 의해 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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