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 드라이어드의 계곡(2)

D 게이트를 넘자 드라이어드의 계곡을 담당하고 있는 ‘거목 길드’의 검문소가 보였다.
그리고 그 크기는 <일반던전 - 고블린의 언덕>보다 2배는 더 커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검문검색 과정이 엄청나게 길고 고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거목 길드 인원들은 ‘혹시 소지하고 계신 아티팩트가 있습니까?’ 정도의 질문 후 가방을 슬쩍 열어보더니 바로 통과를 시켜줬다.
“아마 나갈 때는 이렇게 허술하게 넘기지는 않겠죠.”
“아, 그러겠네요.”
보통 이렇게 길드들이 담당하고 있는 던전들은 그 안에서 나오는 마석이나 부산물 등에 수수료를 챙겨가고 했다.
그리고 그 수수료의 책정은 길드의 자율이었다.
하지만 보통 15% 내외로 정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리고 아티팩트은 예외로 치곤 했다. 이것까지 챙기면 헌터들의 반발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보통 나갈 때의 검문검색을 더 철저하게 하고는 했다.
“그리고 여기는 나오는 마물들도 순하고 각종 약재로 쓰이는 희귀 식물도 많다 보니 뭐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겠죠.”
경수는 그들의 앞에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땀 배출에 용이한 스포츠 웨어, 등산 스틱, 등산화, 너무 크지 않은 배낭까지.
그들은 헌터라기 보다는 등산객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래도 희귀식물을 전문적으로 채취하여 판매하는 전문 심마니들 같아 보였다.
“하긴, 저희도 이거저거 많이 챙겼으니까요.”
지금 안현도만 보더라도 어깨에는 낚시가방이 메어져 있었다. 그리고 경수도 텐트와 침낭을 비롯한 각종 캠핑장비를 가지고 왔다.
“그럼 우리도 이제 갑시다.”
경수는 그렇게 말하고 거대한 게이트 너머의 포탈로 들어섰다. 안현도도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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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진짜 좋네요 -”
안현도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의 눈앞에는 끝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경수와 안현도는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마주한 거대한 호수를 빙 둘러 이동했다.
그렇게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텐트를 친 후 캠핑용 의자에 앉아 경치를 감상하는 중이었다.
“와 바다를 직접 보면 이런 기분이겠죠?”
안현도가 경수를 보며 물었다.
“글쎄요. 저도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봐서.”
바다가 인간의 영역이 아니게 된 후 대다수의 내륙지방 사람들은 굳이 직접 바다를 보러 가지 않았다.
게다가 일단 해안가는 모두 ‘위험 구역’으로 지정되어 특정한 목적을 가지지 않는 이상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안현도처럼 세울 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은 바다를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경수도 마찬가지였다.
아르발레스에서 바다를 본 적은 있지만, 이곳 해을반도에서는 한 번도 없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이제 뭐 하실 겁니까? 혹시 저랑 같이 낚시나···”
“아뇨. 저는 이 근처를 좀 더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경치가 참 좋네요.”
안현도가 가방에서 낚싯대를 꺼내 들며 물었지만, 경수는 단칼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안현도가 호수를 보며 놀든 퍼질러 자든 상관없었지만, 경수는 그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 여기 입장료가 얼마인데.’
대형길드들은 당연하게도 입장료를 받았다. 수수료를 받는다고 할인해주거나 그런 거 없이 오직 정가로만 말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곳 ‘드라이어드의 계곡’은 체류비도 나갈 때 따로 결제해야만 했다.
역시 인기 좋은 관광지들은 다 더럽게 비싼 것이었다.
“입장료만 12만 원에 하루 체류비가 6만 원. 무조건 18만 원 어치의 값은 뽑아내야 한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있었고 해야 할 일은 많았다. 경수는 그렇게 전의를 다지며 안현도를 뒤로한 채 산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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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읍, 후우 -”
경수는 숲 안의 한적한 공터에 누워 가만히 숨을 쉬고 있었다.
누가보면 등산하다가 좋은 공기에 취해 깜빡 잠이 들었다고 오해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경수의 내부는 지금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잡혀라, 좀 잡혀.’
경수는 호흡을 통해 몸 안으로 받아들인 기운을 신체에 자리 잡게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어느새 중천에 떠올랐던 해는 한쪽으로 기울어 숲 안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스읍, 후우 -”
다시금 호흡이 시작됐다.
5초 동안 코로 숨을 들이마신다.
5초 동안 숨을 참는다.
5초 동안 입으로 숨을 내뱉는다.
5초 동안 숨을 참는다.
그리고 이 패턴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5-5-5-5 마나 호흡법이었다. 하지만 그게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마나는 쉽게 느낄 수 있는데 말이야.’
지금 경수는 마나를 몸에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마나, 마나란 대자연에 흐르는 기운 자체를 의미했다.
그리고 마법사와 각성자는 각자 마나를 자신에게 맞게 다듬어 마력과 기력의 형태로 심장 근처에 머무르게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마나를 다듬지 않고 그저 전신에 축적해 사용하곤 했다.
그리고 이곳은 정말로 숲의 정령이 살아 숨 쉬는 땅.
당연하게도 대자연의 기운이 풍부했고 마나를 익히기 위한 곳으로는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 몸 안에 들어왔던 마나는 좀처럼 자리 잡지 못하고 다시금 호흡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음, 어쩔 수 없다. 이건 포기.”
경수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정신이 마나에 익숙하더라도 몸이 마나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보통의 기사들도 마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짧게는 1년에서 많으면 3년 정도가 걸리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경수는 미련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벌써 시간은 늦은 오후가 다 되어 있었다. 이제는 산에서 내려갈 시간이었다.
“내려가서 저녁 먹고 움직이려면 좀 서둘러야겠다.”
하지만 경수는 아직 마나를 쌓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정석적인 방법이 안 되면 약간의 꼼수를 사용하면 그뿐!
다만, 그것을 위해서는 약간의 준비가 필요했다. 또 안현도의 도움도 말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배불리 먹일 필요가 있었다.
‘돼지도 잡기 전엔 일단 잘 먹이는 법이니까.’
경수는 빠르게 산길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각 아무것도 모르는 안현도는 호수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유유자적 세월을 낚고 있었다.
“그래, 이게 제대로 된 휴식이지.”
오후의 햇살이 반사된 호수를 보고 있으니 마음의 아픔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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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물럭, 주물럭 -
경수는 가져온 소고기를 장갑을 낀 손으로 만져봤다. 아주 부드러운 게 어제 미리 밑간 한 보람이 있었다.
허브와 올리브유의 향기가 은은히 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건 됐고.”
그는 다음을 무쇠 프라이팬을 휴대용 버너 위에 올려두고 가열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기름을 살짝 발라두는 것도 있지 않았다.
“화력이 충분하려나?”
원래 소고기는 자고로 숯불에 구워먹어야 제맛이었지만 숯과 그릴, 화로까지 들고오기에는 짐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숯불을 피우고 정리하는 뒤처리도 번거로웠고 말이다.
그래서 일단은 아쉬운 대로 캠핑용 버너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야 이거 진짜 제대론 데요?”
안현도가 씻은 채소를 가져오며 말했다.
“이건 시작도 아니죠. 좀 있다 삼겹살도 먹고 라면도 먹어야 진짭니다.”
“오! 그럼 술도 같이 한잔할까요? 제가 위스키를 좀 가져와 봤는데. 그게 별로면 전통주도 조금 갔고···”
“술은 안 됩니다.”
“아, 혹시 술 별로 안 좋아···”
“술 좋아합니다. 없어서 못 먹죠. 하지만 그건 밤을 위해서 조금만 미뤄둡시다.”
경수는 그렇게 말하며 턱 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요즘 유행하는 달빛 조명이 놓여있었다.
이름과 같이 달빛과 아주 유사한 빛을 내는 매직 아이템이었다.
‘이런 것까지!’
안현도는 속으로 감탄했다.
요즘에 ‘드라이어드의 계곡’에 와서 달빛 조명을 켜놓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달빛을 좋아하는 ‘페어리’들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먼저 공격하지만 않으면 무해한 9 위계의 생명체는 달빛을 받으면 빛을 발하며 춤을 췄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작은 별들이 떠다니는 것만 같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이것은 팀원을 잃은 자신을 위로해주기 위한 배려가 분명했다. 안현도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 동생도 나를 버리는데. 이 분은 그렇지 않구나!’
“아, 이거 요즘 유행하는 그거구나! 역시 술은 분위기죠. 근데 저걸 왜 5개씩이나?”
안현도는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더 밝게 소리쳤다.
“나중에 보면 알 겁니다. 다 필요해서 산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렇군요.”
안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감히 경수를 의심하지 않았다.
‘오크의 군락지’에서 부터 부트캠프까지 그는 늘 궂은 일에 가장 먼저 나섰고 타인을 구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현도 본인이 살아있는 증거가 아니던가. 게다가 주변을 신경 쓰는 세심함까지 그야말로 참된 사람의 표본이었다.
‘저는 감히 의심하지 않습니다!’
안현도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물론 경수가 그의 생각을 들었다면 소름 끼친다며 뺨따귀를 올려붙였을 것이 분명했다.
“자 그럼 이제 테이블에 그릇 좀 세팅해주세요. 소고기는 금방 익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안현도가 각 잡힌 자세로 소리쳤다. 그후 빠르게 접시와 채소를 테이블 위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먹는 동선을 고려한 최적의 위치였다.
“이정도면 충분한 거 같은데.”
경수는 무쇠 프라이팬이 잘 달궈졌는지 물을 뿌려 확인한 후 준비된 소고기를 올렸다.
곧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고는 불을 줄이지 않고 앞 뒷면이 갈색이 될 때까지 충분히 익힌 후 마지막으로 버터를 조금 잘라 넣어 풍미를 더했다.
“고기는 미디엄으로 익혔는데 괜찮나요?”
“그럼요! 저 육회도 잘 먹습니다!”
안현도가 소리쳤다.
“그럼 다 됐습니다.”
겉면이 마이야르 반응으로 노릇노릇해진 소고기를 가져나가며 경수가 말했다.
“일단 먹은 다음에 다시 굽겠습니다. 식으면 맛이 없어지니까.”
“그럼 삼겹살은 제가 굽겠습니다! 저 이래 봬도 고기 좀 굽거든요.”
“음. 아닙니다. 저는 뭘 하면 끝까지 해야 하는 성격이라서요.”
“아닙니다! 제가, 제가 하게 해주십쇼!”
“아니요. 정말로 괜찮습니다.”
“제가 정말로 제가 하겠습니다. 제발 이것만은 제가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급기야 안현도는 머리를 푹 숙여왔다.
‘뭐지? 반응이 왜 이래?’
하지만 안현도의 마음을 모르는 경수에게 이런 반응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경수는 안현도를 배려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앞으로 해줄 일이 아주 많았다.
결코, 쓸데없는 곳에 힘을 낭비하게 할 수는 없었다.
“진짜 제가 하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챙겨가고 절실한 목소리를 듣자 마침내 경수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더 말하기에는 그의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고작 고기 굽는 걸로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게 맞나?’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죠.”
마음같아서는 입 닥치고 먹으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경수는 꾹 눌러 참았다.
오늘 이곳, 드라이어드의 숲에 온 것이 누구 덕분인지 잘 알고 있어서였다.
안현도는 쓸모가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수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인간이 아니었다.
‘김치현, 이은성, 박재현, 신현준, 최휘진’
경수는 다시금 자신의 도움을 받고 먹튀한 5명의 이름을 떠올렸다.
만약 이 자식들을 가만히 두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경수의 분노는 애꿎은 5명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와구와구 -
안현도는 허겁지겁 고기를 입에 넣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사람과 함께 먹으니 왠지 음식이 더 맛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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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억 -
“아, 죄송합니다.”
안현도는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산을 오르며 연신 트림을 해댔다. 지금 그들은 낮에 경수가 찾아낸 ‘스팟’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경수가 몸에 마나를 쌓기 위한 꼼수, 일명 ‘세례식’ 위한 장소였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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