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화

살이 터지고 피가 나오는 고통을 맛본 기병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비명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두 여자는 쓰러진 기병들에게 정지마법을 걸었다.
잠시 후 폭풍이 가라앉았고 두 여자는 놀란 눈으로 이 믿지 못할 광경을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던 여정인을 부축해 일으켰다.
“부인! 놀라셨지요? 괜찮으신가요?”
“두 분! 고마워요. 굉장하군요.
보고도 믿지 못하겠어요.
두 분이 아니었으면 오늘 죽음보다 더 한 치욕을 당할 뻔 했어요.
정말 고마워요.”
여정인은 이렇게 말하여 두 여자를 보았다.
세상에 태어나 이처럼 아름다운 여자들은 본 적이 없었다.
여자이면서도 그녀들에게 매료되어 한 동안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부인! 왜 그러세요?”
“아, 아니에요. 두 분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만...”
“그 말을 들으니 너무 황송하군요.
참, 부인은 어디로 가시던 길이었나요?”
“그 보다 구해주신 분들의 성함을 알고 싶군요.
저는 여정인이라고 합니다.”
“저는 한청요라고 해요.”
“저는 은여울이에요.”
한청요와 은여울은 진양령 정령계의 계절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진수령을 떠났다.
북으로 가면서 혹시나 한하령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여 여유를 가지고 떠나다 이곳 석파정에 이르러 날이 저물자 우뚝 솟은 커다란 나무 위에 누워 이 밤을 보낼 심산이었다.
그리고 밑에서 들려오는 소란한 소리에 잠을 깨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 한청요님, 은여울님이시군요.
저는 진수령 정령계로 가던 중이었어요.”
“진수령 정령계라 하셨나요? ”
“예, 그래요. 두 분은 그곳을 아시나요?”
“진수령 정령계는 하늘을 나는 새 이외에는 들어가지 못해요.
가셔도 헛걸음만 하실 거예요.”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가야해요.
운만 따라 준다면 정령계에 들어가진 못해도 요정을 만날 수 있다고 해요.”
“무슨 일로 만나려고 해요?”
“요정을 만나 물어 볼 말이 있어요.”
“요정도 만나기 힘들답니다.”
“두 분 어찌 그렇게 정령계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지요?”
이 물음에 한청요는 잠시 머뭇하다가 대답했다.
“우리는 그 근처에 살아요.
살면서 한 번도 정령계에서 요정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요정은 1년에 네 번 계절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령계를 나온다고 들었어요.
이 계절회의가 음, 그러니까 스무날 후에 북쪽 진양령 정령계에서 열린다고 해요.
따라서 아주 운이 좋다면 회의참석차 나오는 요정을 만날 수 있어요.
그러기를 바라고 무작정 가는 거에요.”
한청요와 은여울은 부인의 말을 듣고 적지않이 놀랐다.
인간세계에서 그 누구도 모르는 요정의 계절회의를 알고 있는 이 부인은 누굴까?
“요정의 계절회의를 어찌 아시는지요?”
“저를 구해주신 두 분께 무슨 말인들 못하겠어요.
저는 중앙중장기병대 대장군 서린의 아내에요.
그리고 그 말은 황성 예안 천문학사의 수석천녀에게 들었고요.”
한청요와 은여울은 여정인한테서 대장군 서린의 아내라는 말을 듣자 또 한 번 놀랐다.
대장군 서린의 아내가 도대체 무슨 일로 정령계에 가는 것인가?
“그러셨군요.
그런데 좀 전에 말씀하신 요정에게 물어볼 말이 무엇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혹시나 우리가 도움을 드릴지 모르잖아요?”
“그건... 좀 말씀드리기가 곤란하군요.”
여정인은 망설였다.
아직 두 여자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았기에 섣불리 마법사 한하령에 대해 말해야 할지를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은여울이 말했다.
“말씀하시기 난처하다면 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며 한청요를 쳐다보았다.
한청요가 고개를 끄떡끄떡하자 은여울이 입을 열었다.
“실은 우리는 계절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진수령 정령계를 떠난 요정들이에요.
청요언니는 물의 요정, 저는 꽃의 요정이에요.”
은여울의 말에 여정인은 얼굴이 환해지며 눈을 번쩍 뜨고 물었다.
“정말이에요?
그래서 좀 전의 멋진 마법을 사용하신 거였군요.
정말 저는 운이 좋군요.
더구나 제 목숨보다 더한 정절을 지켜주신 분들이 바로 요정이었다니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씀에 저희들 몸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제 물어 보고 싶은 것을 말씀해 보세요.”
“그럴게요.
혹시 한하령이라는 마법사가 진수령 정령계에서 자랐나요?”
여정인의 물음에 둘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대장군 서린의 부인이 한하령을 알고 있는지 의아해 하면서 되물었다.
“분명 한하령이라고 하셨나요?”
“그래요.”
“그건 왜 물어보시나요?”
한청요가 물었다.
여정인은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입을 떼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효국의 장군 서린과 그 부인 여정인 사이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어요.
천사장은 이 아기가 마법사로 태어났으므로 인간세계에서 키워진다면 얼마 못가 죽을 운명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곤 진수령 정령계에 보내 자라게 하는 것만이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하여 장군부부는 그들의 아들과 단지 몇 시간만 대면하고 생이별을 했어요.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어느 날...”
여정인은 황궁에서 일어난 일들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하여 한하령이 진수령 정령계에서 자란 아이인지 알아보기 위해 가던 길이었어요.
한하령이라는 마법사가 진수령 정령계에서 자랐나요?“
제발 맞기를 바라면서 여정인은 간절한 눈빛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한청요와 은여울은 여정인의 긴 말을 듣고 이런 기막힌 우연이 있음에 몸을 떨었다.
아니 어쩌면 이곳에서 하령이의 어머니를 만난 것은 필연이었는지도 몰랐다.
낳아준 어머니와 키워준 어머니의 만남이 이렇게 극적으로 이루어졌음에 하늘에 감사를 드렸다.
은여울은 아직도 말을 못하고 서있는 한청요를 바라보다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이 분이 하령이의 어머니에요.“
여정인은 은여울의 말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하령이가 자기 아들임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여정인의 가슴은 기쁨에 벅차올랐다.
수많은 인고의 세월 끝에 찾아온 환희에 겨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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