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야

하늘이 6개로 분화되기 이전.
과거 세상이 혼탁할 때, 모든 생명들은 언제나 2가지 상황 중 하나에 직면해야 했다.
한없이 어둡고 추워지거나, 수많은 태양이 하늘에 떠올라 한없이 뜨겁거나.
하지만 분화되었다고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댜.
***
"이봐, 학자 양반. 혹시 알아서 북부라도 돌아갈 수 있나? 아니면 중부라도."
뜬금없이 켈리 아저씨가 말을 꺼냈다.
"지금 치안이 그 정도로 불안합니까? 초원 너머로는 잘 안 나와 지내다 보니, 이 정도면 나쁜 거 치곤 괜찮은 듯 한데..."
나쁜 것 치곤 괜찮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상황을 잘 설명했다.
불안하지만, 아직 폭력으로 소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수인 용병들에게 불만을 품긴 하지만, 그렇다고 용병들과 드잡이질을 하며 싸우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비단 파려 왔는데, 남부는 황폐화 되어 있어서 그리 많이 팔지 못 했다.
돈을 못 번 건 아닌데, 다들 생각한 것 이하였다.
"음...그래도 저는 아직 연구해야 할 게 있어서...이 쪽의 식물의 뿌리를 알아봐야 해서."
"그래도, 사람 사는 게 중요하지 않나. 도적 떼들 있을 때야 분위기가 혼자 다녀서는 위험할 것 같아서 우리가 그냥 데리고 다녔지. 지금은 아닌 말로 오히려 우리랑 같이 있으면 더 위험할 걸?"
꽤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다.
학자랑 같이 돌아다니기 싫은 것은 아니였다. 단지 돈을 받은 만큼 목숨은 그래도 부지해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니.
"음...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육체로는 약하지만, 식물 마법은 꽤 할 줄 알고 있습니다. 초원에서야 나무 심기에 바빴지만, 이 곳은 그냥 봐도 식물이 풍부한 곳."
"그래, 학자 양반. 알아서 몸이나 잘 간수하시오."
이윽고 아저씨들이 나를 불렀다.
"뭔데요?"
"너는 안 나가냐?"
"저가 어딜 가게요?"
"몰라, 너가 알아서 여친 만들었어야지. 여친 없냐?"
또 무슨 여자친구 이야기인가.
"없어요, 없어. 맨날 이런 아저씨들이랑 같이 다니는데 어떻게 여자 만날 시간이 있어요?"
"뭐...그렇지."
말을 하려다 말다가 하는 모습에 내가 먼저 선수쳤다.
"아저씨들, 어차피 저 한 몸 정도는 챙겨요."
"너가 그렇긴...하지. 그래. 다 컸네."
사람들이 용병에 학을 떼고 있다. 아무래도 전쟁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사람들이 너무 피폐해져서 그렇다.
그리고 원래 여기 사람들이 수인 싫어하기도 하고.
그래서 여기보다 더 남쪽에는 아예 우리도 갈 수 없었고.
그리고 우리는 늑대 수인들과 인간은 나 혼자로 이뤄진 용병단.
싫어할 사람들은 싫어할 조건은 이미 갖춰졌다.
내가 기사로 서임식을 해봤다고는 하나, 누가 보더라도 날 기사로 쳐주진 않는다.
북부에서는 그래도 자기들 영주가 해줬으니 기사 취급 할 순 있겠지만.
나는 아저씨들을 대신해 순찰...은 아니고, 그냥 바깥의 풍경을 보러 나왔다.
마을의 분위기는 어중간했다. 축제로 들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각되었기 떄문이다.
"너희들 아직 안 갔냐?"
"응! 근데 축제 더 못 해서 아까워..."
적당히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직은 안전한 듯 했다.
뭔가 이상하긴 하다.
원래 용병들이 이렇게 설칠 곳이 아니다.
적당히 돈을 받거나, 보급 받으면 떠나는 게 맞는데 여기에 쭉 있으려 한다.
아저씨들이야 여기 놈들이 헛짓거리 하면 말리러 대기하는 중이지만, 다른 놈들은 뭐하러?
왜지?
***
"이만 돌아가 줬으면 좋겠군."
용병들에게 이만 돌아가라고 말하지만, 그의 속내가 무슨 수인 혐오로 가득 찬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재정도 빠듯해지기 시작했고, 옆 영주와 적당히 타협을 해서 얻어낼 건 얻어낸 수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주님, 재고해주십시오."
수인 용병. 늑대를 닮은 듯한 이들의 꼬리가 고개를 푹 숙인 듯 늘어져 있고, 분위기도 평소의 껄렁함과 달리 사뭇 진지했기에, 그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싶어 질문했다.
"내가 이에 대해 재고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지?"
"아직, 영지전이, 영주전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 그런 이야기인가.
계속 싸워온 용병들 입장에서는 지금은 잠시 휴식기일 뿐,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곳을 떠나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 납득하고는, 그는 그들에게 설명했다.
"비록, 영지 전에서 영토를 얻진 못 했으나, 상대와 적당한 협상을 하였다네."
"어떤 걸 하신 겁니까?"
"그런 걸 무엇 하러 묻는 것인가...싶지만, 일단 알려주지. 각자 영지를 오갈 때, 거두는 세금을 줄이기로 했네."
"고작 그런 걸로 말입니까?"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건..."
"아니, 물어본 것은 아니네. 그래, 자네들은 아직 끝난 줄 몰라서 더 싸우려 한 것이었군?"
지레짐작으로 던진 영주는 말없이 이야기를 듣는 용병들의 태도에 자신의 생각이 맞았구나 생각했다.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네. 우리 영지민도 아님에도 영지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결심을 해준 건 고맙군. 하지만 이미 끝난 싸움이니 더는 신경 쓸 필요 없다네."
"......"
"보수금에 대해서는 시종에게 이야기 할 것이니 받아 가게나."
축객령을 듣고, 용병들은 떠났다.
그래서 영주는 용병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 했다.
***
"와, 보름달 크다..."
"근데 어제도 보름달 아니었어?"
"그저께도 보름달이었어!"
어느새 또 여러 마리 모여서 자기들끼리 떠드는 돌고래들.
아직은 영지인 마을이 안전하다는 증거이다.
보름달이 계속 뜬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매일 저녁 먹고서 잠시 운동을 위해 달려가곤 하는데, 그 때 보는 달이 언제나 보름달이었다.
"...왜 이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 한 거지?"
보름달이 축제 하는 동안 7일 내내 뜬다는 것은 이상한 현상이었다. 보통 달은 차오르면 기울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오늘도 또 보름달이 떴다.
"아저씨들, 뭐 아는 거 없어요?"
"글쎄다...그나마, 수인들이 보름달이 뜰 때엔 강해지는데, 그때 헛짓거리 할 지도 모른다는 점?"
늑대가 하울링 하는 소리가 들리는 밤이었다.
***
수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왜 우리는 다시 쫓겨나야 하는 것인가?
그냥 용병 계약이 끝났기에 나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간단히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애초에 정착을 할 수 없기에 정주하기 보다는 여기저기 움직이는 직업을 택한 것이다.
상인이라도 보부상과 매점상이 다르듯이.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수인들은 그 능력을 살리기 위해서 용병을 한다고 보는 것보다, 강제로 직업인 용병이나 여기저기 떠도는 상인 정도가 아닌 이상, 이 곳 서방의 남부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그들는 생각했다.
정말 우리가 왜 여기서 물러나야 하는 것이지?
그들은 평소보다 강해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에 대한 근거도 있었다.
어째서 인지 지난 축제동안 보름달만 떴다.
보름달이 뜨는 밤.
그것은 늑대가 강해지는 날이다.
물론, 아예 안 뜨는 것도 좋지만, 보름달이 뜨는 날씨도 눈에 띄게 강해지는 시기였다.
본래는 그래봐야 2,3일 정도기에 무언가를 꾸밀 생각도 못 하지만....
지금은 벌써 8일임에도 보름달이 뜨고 있었다.
"차라리..."
다들 뒷말을 삼켰다.
이윽고 할 말은 알고 있었다.
'이대로 엎을까.'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이들이 여기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저 힘이 강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냥 영주들이 적당한 선에서 그들의 사실상의 약탈을 허용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 누군가 찾아왔다
세계수의 이파리를 단 수상쩍은 인물들이었다.
***
"아저씨들, 아저씨들은 왜 여기서 싸우려는 거야?"
우리 용병단은 본래 이런 쓸데없는 싸움에 먼저 나서지 않았다.
호문쿨루스 검사. 그 사람 때가 나 때문에 좀 예외적이었지.
쿠든 족 노인때는 그 사람이 거래처이고, 중부에서 수상쩍은 것과 싸운 것도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번엔 이들이 순수한 의지로 싸우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도대체 왜....?
"우리들이 막 너희들을 주웠을 때에는 그냥 놔두고 가려고 했다."
"허, 그건 좀 충격이네."
"물론, 아무 곳이나 놔두고 갈 생각은 아니었지만...내가 용병의 기술을 알려주마."
"오, 드디어? 이제 와서?"
그리고는 켈리 아저씨가 일어서서는 자세를 잡았다.
"용병의 기술은...치사하다."
그렇다. 용병의 기술은 치사했다.
다른 검술들도 모래를 뿌린다든가 그러한 것을 상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용병은 상당수가 그런 꼼수로 이뤄졌다.
나는 목검을 들까 망설이다가 지축 검을 들었다.
언제나 진지하게 싸울 때는 이 검을 사용했다.
용병의 기술은 치사하다.
하지만, 내게는 치열하게 보일 뿐.
용병의 인생은 불꽃과 같다.
켈리, 수므나, 토마스 아저씨를 제외하고 내가 왜 다른 용병 아저씨들의 이름을 꺼내지 않는가.
벤,타티우스,드라놈, 아델린 등등....수많은 이름이 있는데도?
내가 합류했을 당시에는 출발 했을 때 70명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까지 합쳐야 50명인 용병단이다.
이것만으로 꽤 크나, 우리 용병단은 끈끈하지만 사람이 죽는 것만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용병단은 점점 상단에 가까워졌다.
'그렇기에'? 이들은 지금 '그렇기에'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는 우리가 왜 싸우는 결정을 하는 지 모르겠지."
단순히 기사도적인 이유는 아닐 것 같았다.
"우리는 기회를 주고 싶다."
"기회요?"
"그놈들, 죄다 애송이야. 그리고 자기들 처지를...굉장히 비관하고 있지. 무슨 사고를 칠 지 몰라."
"...그렇죠."
"미래엔 잘 될 것이다...라고 말 할 수 없지. 우리가 겪어본 일도 아닌 걸. 그렇기에 바꿀 수 없다."
"그럼 어떻게 기회를 줄 건데요?"
"주민과 수인. 두 세력들의 싸움을 말려서 기회를 주는 게 아니다. 아예 용병단 모두에게 맞서서 기회를 주는 거다."
"맞서서?"
"용병들은 항상 비겁한 자로 불리지. 하지만, 비겁한 자는 언제나 싸움이 무서워 뒤로 물러가는 이들 아닌가?"
'그런가...?'
"그런 발상 자체가 틀렸어. 질 싸움이면 계약도 어기고 뒤로 물러가고, 보급을 명분으로 적들보다 더 할 정도로 약탈을 하지. 고작 몇 사람보다 더 강하다는 이유로. 허락 받았다는 핑계로. 그런 것이 비겁한 것이다."
늑대의 하울링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이대로면 우리 수인들은 모두 신의가 없는 자로 영원히 남는다. 황폐해진 영지를 무력으로 쳐들어가서 약탈하다가 언젠가 종족 자체가 역사상에서 사라질..."
그는 단검을 쥐고는, 다리 근육에 힘을 주며 달려들었다.
팅ㅡ!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 자리에서 마구 찔러대는 공격.
단검의 장점을 이용한 전술.
용병들은 단검을 쓴다.
이들의 특징 때문이다.
죽도록 달려든다. 서로 뭉치며 싸운다.
가깝기에 오히려 장검이 불리하다. 뭉치기에 움직이기 불편해서 장검이 불편하다.
긴박한 순간, 공기마저 조여드는 듯한 압박감 속에서 단검의 날이 눈앞에서 번뜩였다. 상대의 얼굴에 서린 냉정함이 그만큼 날카롭게 느껴졌다.
눈 깜짝할 사이, 상대의 손목에서 나온 단검이 나의 가슴 쪽으로 찔러 들어갔다.
"무슨 실전처럼...!"
나는 숨을 삼킨 뒤, 순간적으로 모든 감각이 예리하게 빛내며 튕겨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켜쥐었다. 머리 속에서 여러 가지가 스쳐 지나갔다.
상대가 단검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거의 동시에, 나는 폼멜을 꽉 쥐고 상대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가드는 상대의 검을 차단하며 날카롭게 부딪혔고, 폼멜은 단검을 움켜 잡으려는 상대의 손목을 밀어내는 듯한 충격을 주었다.
상대의 공격이 한순간 멈췄다. 지축! 무거운 검이 이뤄낸 정지. 찰나의 침묵이 흐르자, 나는 반격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나 자신의 칼날을 상대의 심장 부위로 휘둘렀다.
이러한 용병의 기술은 창의적이고 유연한 방어 및 반격이 특징이므로, 그 기술의 이름을 은빛 그림자 방패(Silver Shadow Shield)라고 부른다.
상대의 공격을 직면한 후, 칼날이나 단검으로 방어하면서도 방어의 기회를 반격으로 이어가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공격이 자신에게 다가올 때, 순간적으로 반응하여 방어를 하고, 그 방어 자체를 공격의 전환점으로 삼아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거나 불리한 상황을 반격으로 바꾼다.
그리고 나는 이것은 배웠다. `
곁눈질로.
"아저씨, 실망이야."
그러자 아저씨가 살짝 웃었다.
그리고 다시 달려든다.
또 같은 전개가 흘러나왔다. 검날은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 찔러오지만, 나는 다시금 폼멜이나 가드로 막아낸다.
...그럻게 생각했다.
여태 그저 내 반격을 막아오는 것 같은 자세였다. 거기서 갑자기 카운터를 치며 검날이 내 목젖까지 올라왔다.
"이겼지?"
"...그러네요."
방어 자세에서 허점처럼 보이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만들고, 그것을 유인하여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반대로, 상대가 그 '허점'을 공격하려는 순간, 빠르게 반격하여 상대의 자만이나 실수를 노리는 기술.
내 분석에 의하면 그렇다.
"너가 배우는 기술은 항상 강하다. 빠르게 몰아치는 기술, 상대에게 방어할 자리마저 헷갈리게 하는 검술. 모두 난이도가 높다. 하지만, 적을 속이는 법은 배우지 못 했어.
항상 실전 싸움을 해왔다고, 상대를 이길 역량이 된다고, 언제나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어떻게 이기는데요?"
"운이지."
하늘은 보름달마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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