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이 분탕을 잘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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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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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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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과 수군(4)

DUMMY

전라우수영에 소속된 정7품 무관 김한수는 판옥선의 옥(집처럼 생긴 망루)에 올라 주변을 멍하니 살피고 있었다.


“물고기 잡으러 다니는 대신에 대동미 나르는 게 돈이 더 되기는 한데, 이게 대체 뭐냐.”


양반 가문에서 엄한 교육을 받고 살아온 무관이라면, 부하들이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돈 이야기로 투덜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한수는 돈이 좀 있는 상인 가문에서 태어나서 무과를 준비했다가 정말 운 좋게 장원으로 급제하고 정식 무관이 된 사례였으니···.


이전 버릇을 다 버리지 못하고 종종 혼잣말로 돈 타령을 할 때가 있었다.


“나리, 이제 한 2시진 정도만 더 가면 진도가 보일 것 같습니다.”

“장 군교, 나는 싸울 줄이나 알지 배 몰 줄은 잘 모르네. 배를 몰 때는 자네 명령이 곧 내 명령이야. 그러니 자네 생각대로 하게.”

“예, 나리.”


김한수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면서 출항하기 전에 새로 내려온 어명을 떠올렸다.


청나라 혹은 왜국 어선이 발견되면 나포하거나 침몰시키고, 선원은 전부 노비로 팔아도 된다는 명령.


배에 타고 있던 이들은 무려 한 명당 쌀 10섬에 사들인다니···.


20명 정도 타고 있는 어선 한 척만 나포해도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었다.


그중 일부는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뜯어가겠지만, 남는 것만 해도 상당할 터.


마치 그가 어렸을 때 병법서 공부할 때, 공부하는 척 하면서 왜구를 토벌해서 이순신 같은 영웅이 되는 상상을 했듯이.


김한수는 경계하면서 머리를 비우고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한수도 자기가 용감하게 왜선이나 황당선을 나포해 적잖은 돈을 버는 상상을 했다.


‘딱 40명 정도만 타고 있는 어선이어도.’


선장인 자신에게는 최소한 쌀 10섬은 떨어질 터, 생각만 해도 황홀했다.


물론 현실에는 그런 일이 쉽게···.


“나리! 나리! 저기 앞에 수상한 배가 있습니다. 배가 어선치고는 쓸데없이 크고 날렵하게 생긴 게 왜국에서 온 어선 같습니다!”


저 말에 김한수를 비롯한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아직 왜선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배를 몰아 저들이 왜놈이 타고 있는 배인지, 청나라 놈들이 타고 있는 배인지 직접 확인하러 간다! 돛을 펴고 노를 저어라!”


말은 저렇게 했지만, 전라우수영에 소속된 판옥선 건투호를 타고 있는 이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배 크기를 보아하니 대포 몇 번 쏴서 기만 좀 죽여놓으면, 저기 있는 선원들을 모두 사로잡아서 좋은 값에 팔 수 있을 테니.


한몫 단단히 잡을 절호의 기회였다.


선장 노릇을 하는 김한수, 군교, 병사 할 것 없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전투를 준비했다.


훈련 때는 무언가 설렁설렁하는 느낌이 적잖게 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순신 장군님이 봐도 합격점을 줄 정도로 손발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전라우수영에 소속된 군관 김한수다! 지금 당장 배를 멈추고 문정에 응하라! 너희가 조선인이라면 우리는 그 어떤 해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맡은 임무가 단순히 연안 정찰 정도의 임무였다면, 조선 어선에서 낚은 물고기 일부를 자발적으로 기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기부 과정에서 병사들이 화포를 장전하는 척을 한다던가, 무기를 정돈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바람에 어부들이 위험을 느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직접 협박한 건 아니니 자발적 기부가 된다는 논리였지만.


제법 긴 거리를 항해하게 되면 물고기가 다 썩어서 물고기를 나눠 받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받을 필요조차 없다.


‘어선에서는 뭘 가져갈 수가 없지.’


그러나 김한수와 그 일행에게는 행운이게도 저 배는 문정에 응하는 대신 빠르게 도망가기 시작했다.


김한수와 그 일행에게는 천운이었다.


“나리! 놈들이 도망갑니다! 아무래도 왜놈인 것 같습니다!”

“왜놈이라고?! 아이고, 전하께서 왜놈들이 조선의 바다로 들어와서 어업을 하고 간혹 왜적질을 하는 일이 있어서 걱정이 크시지 않느냐! 우리가 충군애국하는 마음으로 놈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사로잡아 압송해 전하의 성심을 편하게 해드려야겠다.”


김한수의 마음속에는 숙종을 향한 충성 반, 저놈들을 잡아서 쌀로 바꿔 먹을 생각이 절반이었다.


이리 적극적으로 문정을 하고 배를 급히 몰게 된 행동 동기는 왜놈을 잡아서 쌀로 바꿔 먹고, 운 좋으면 승진할 생각뿐이었지만···.


어쨌든 그의 행동으로 인해 나타날 결과는 충군애국.


“전하의 성심에 누를 끼치는 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사로잡을 것이다! 어선의 갑판 하부를 노려라!”


화포장들은 저 왜놈들을 잡아서 한몫 단단히 챙길 생각에 평상시보다 더욱 빠르게 화포를 장전해 쏘았다.


그중 몇 발이 어선에 맞았고, 한 발이 기적적으로 하부 갑판을 뚫었다.


“놈들의 배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습니다! 속도가 느려집니다!”

“좋아! 이대로 추격해라! 격군들은 노를 더 힘세게 저어라! 화포는 화약이 아까우니 그만 쏘고, 모두 창을 들어라! 곧 접선한다!”


김한수는 과거에 붙은 지 얼마 안 된 파릇파릇한 무관이다.


그러니 실전 경험이 거의 없었지만, 걸어 다니는 쌀가마니나 마찬가지인 왜놈들을 생포해서 한몫 단단히 잡을 생각에 아주 빠릿빠릿해진 것이다.


숙종이 여기까지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목적한 바는 이뤄졌다.


조선 수군 병사들은 자기들보다 훨씬 더 약한 왜놈들이 모는 어선을 상대로 실전경험과 훈련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접선! 접선 준비!”


김한수는 어느새 두정갑으로 갈아입고서 병사들의 앞에 섰다.


“전하께서 왜놈들을 사로잡으라고 하셨으니 칼을 뽑고 저항하는 놈들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절대 망령되이 움직이지 마라!”

“예, 나리!”

“놈들은 낫이나 왜도로 무장하고 있을 뿐인 약해빠진 왜놈들이다! 여럿이 한 놈을 두드려 패서 생포해야 하니 몽둥이를···.”


몽둥이를 들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병사들 손에는 몽둥이나 편곤, 당파 같은 생포용 무기가 잔뜩 들려 있었다.


김한수는 이 모습을 보고 병사들에 관한 생각을 바꿨다.


눈앞에 쌀이 아른거리니까 이렇게 잘할 수 있는데, 훈련 때는 자기들은 순한 백성이라는 핑계를 대며 못하는 척을 했던 것이라고 말이다.


이 자리에 그의 상관이 있었다면 똑같은 평가를 내렸겠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도선하라!”


김한수를 비롯한 조선 병사들은 숫자로 왜놈들을 밀어붙였다.


만약 이 녀석들이 임진왜란이 막 끝난 시기 혹은 그 이전 전국시대의 평범한 왜국 어민이었다면 조선인 병사들보다 더 잘 싸웠겠으나.


이들도 지금 수십 년에 걸친 평화 때문에 전쟁이라는 걸 다 잊어버린 상태였으니.


군역을 살면서 몇 번의 훈련을 경험한 조선 수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타스케테 쿠다사이!(살려주세요!)”

“코우후쿠시마스!(항복하겠습니다!)”


저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간에 병사들은 저들을 뼈가 부러지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두드려 팼다.


왜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고급 인력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왜놈들은 임진왜란의 철천지원수.


어차피 노예가 되어 길고 긴 시간에 걸쳐 죗값을 치를 놈들이기는 하지만, 공노비로 만들기 전에 몇 대 두드려 패주어서 긴 원한을 갚아주는 것쯤은 별문제가 안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썩을 놈의 왜놈 같으니.”


김한수는 저들을 말리는 대신 오히려 부추겼다.


“왜놈들은 말로 해서 못 알아듣는 놈들이다. 사람과 짐승 언저리에 있는 놈들이니, 개를 길들이듯이 매로 흠씬 패서 가르쳐줘라. 그렇다고 죽이거나 크게 다치게 하면 부릴 수 없게 되니 적당히 하도록.”


적당히 패서 저항의 의지가 꺾이자 그제야 조선 병사들이 구타를 그만두고 저들을 포박했다.


“선창을 뒤져라. 왜도 같은 것들이 있으면 놈들이 왜구라는 뜻이고, 무기가 없다면 놈들은 그저 허접한 어부라는 것이 아니겠느냐.”


물론 왜구든, 허접한 왜국 어부든 간에 노비 신세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왜구면 군공을 따질 때 조금 더 높이 쳐주니.


김한수는 저들이 이왕이면 왜구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왜도가 나왔습니다! 왜도를 비롯해 쇠사슬이 달린 낫까지 나온 걸로 보아 왜구가 맞습니다! 큰 공을 세우셨습니다, 나리!”

“주상 전하 천세! 주상 전하 천세! 뭐하냐, 어서 놈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노획하지 않고.”


김한수를 비롯한 이들은 왜놈들을 다 판옥선 선창에 박고서 생각에 또 잠겼다.


방금까지는 지나가는 왜구 하나만 때려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왜구를 더 잡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지금 잡은 왜구만 해도 30명이 넘는데.


만약에 왜놈들이 자주 오고 가는 먼바다가 있다면, 거기에 매복했다가 왜구(이 경우에는 영해에 침입하지 않았으니 민간인이기는 하다)를 때려잡으면 얼마나 쏠쏠할까.


특히 청나라는 바다로 나서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니···.


‘우리 사돈의 사촌이 청나라로 잡혀가서 못 돌아온다는데.’


사돈의 사촌 복수도 해주고 청나라 어민들을 잡아서 노비로 쓰면 참으로 좋을 것 같았다.


“장계를 올려볼까.”

“무슨 장계를 올리실 생각이십니까, 나리.”

“알 바 없다.”


김한수는 자기 지금 한 생각을 아무래도 임금에게 올려보는 게 좋겠다 싶었다.


머나먼 바다로 나가서 청나라 근방, 왜국 근방에서 조선을 넘보려는 해적을 토벌하기 위한 수군을 편성한다면···.


‘노비를 잔뜩 잡아서 막대한 돈을 벌 수 있겠지.’


“우리는 좌수사 영감의 명에 따라 이대로 대동미를 싣고 한양으로 간다.”

“예, 나리.”


김한수는 곰곰이 생각해보고 다음 말을 덧붙였다.


“돌아오는 길에 황해 근처를 한 번 훈련 겸 시찰해 볼 것이다.”


오늘 갔던 것보다 조금 더 멀리 있는 바다를 시찰하고, 운이 좋으면 청나라 어선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었지만, 그의 선택은 조선 수군이 자발적으로 항해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첫 발걸음이 되었다.


* * *


어처구니가 없는 장계가 올라왔다.


정말 읽다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내용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청과 왜국에 있는 해적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더욱더 머나먼 바다로 나가, 저들이 조선으로 넘어오기 전에 일제히 소탕해야 한다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웃긴 건, 저 양반이 장계에 써놓은 이 부분이다.


[소신은 순전히 충심에서 사악한 왜구를 토벌하였으나, 병사들은 충심보다는 전하께서 하사하시는 쌀에 관심을 두고 왜적을 토벌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저들의 사기가 높다는 것은 곧 왜구를 토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오며, 더 큰 이문을 걸고 먼바다까지 나가서 왜적을 무찌르라 하면 수많은 병사가 자원할 것이옵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바다가 안전해지고, 팔도 백성들이 평온해질 것이니 해적을 토벌하는 일만을 맡는 부대를 따로 만드시옵소서.]


“해적 토벌도 하고 수군이 원양항해를 할 기술도 갖추게 하자는 것 같은데, 나쁜 생각은 아니네.”


당장 해봐야겠다.


그리고 지금 원양항해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유럽인들 혹은 청나라나 왜국 해적이지.


한 번 만나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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