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세계 맛집 기행

6화) 세계 맛집 기행
며칠 전.
율리오스 대륙 시내 중심의 어느 대형 출판사 안.
브루스타는 자신의 산만한 배를 두들기며 편집장실로 들어왔다.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크게 흥얼거리는 채로.
“편집장님, 이번 <율리오스 맛집 기행> 7권도 역시나 베스트셀러겠죠? 저 같은 미식가 흔치 않습니다. 이제 인세 협상을 한 번 해볼······”
“야! 지금 나랑 장난해?!!”
회색머리의 미중년 엘프 편집장이 소리를 크게 지르며, 브루스타를 향해 두꺼운 책을 집어던졌다.
브루스타의 이마를 맞고 바닥의 떨어진 책은 바로 빳빳한 <율리오스 맛집 기행> 7권이었다.
책을 펼쳐볼 새도 없이 편집장의 호통이 이어졌다.
“네가 이번에 마지막으로 소개한 맛집 때문에 독자들이 난리야 지금!”
“설마 민트 초코 식초 치킨집이요?”
“그래! 이 책만 믿고 먹으러 간 독자들이 맛 없다고 아우성이야. 세상에서 제일 맛 없댄다. 못 믿겠어서 나도 가봤더니, 위생도 엉망이고 맛은 고블린 자식들 귓밥 뽑아먹는게 더 맛있을 지경이야. 맛의 혁명같은 소리하네. 혁신적으로 맛없기만 하더라. 너 지금까지 잘 하다가 갑자기 왜 그래? 혹시 너 그 가게 사장한테 약점이라도 잡혔냐?”
브루스타는 흠칫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표정을 잘 유지했다.
포동포동한 볼살 때문에 미세한 표정변화가 잘 보이지 않기도 했지만, 들키지 않으려 과장되게 자신의 뱃살을 두들겼다.
“야, 약점이라뇨. 이 거대한 배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구요. 지금까지 제가 소개한 맛집 중에 맛없는 곳이 단 한군데라도 있었나요?!”
“아니. 없었지.”
“보세요! 편집장님, 저 잘 아시잖아요. 늘 맛에 있어선 엄격하고 진지하고 근엄한 거. 그리고 수많은 홍보 제의도 전부 거절한 것도요. 이래도 절 의심하시는 겁니까?!”
“음, 뭐, 그건 그렇지.”
주도권이 자신에게 넘어왔음을 확신한 브루스타는 혁대에 손을 올린 후 건방지게 짝다리를 짚었다.
“분명 뭔가 착오가 있었을 거예요. 갑자기 레시피를 바꿨다던가, 주인이 바뀌었다든가 말이죠.”
“흐음, 뭐, 그런 일이 아예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쨌든, 이번 일은 저랑은 전혀 상관없다구요. 아깝지만, 이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제가 다음 8권에선 아껴놨던 맛집들을 전부 공개할게요.”
“호오~ 정말인가?!”
브루스타의 호언장담에, 돈맛을 맡은 편집장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만약 8권에서 지금까지 소개한 맛집들을 뛰어넘는 최고의 맛집을 소개하면 인세를 올려주마.”
“편집장님, 정말이죠?!”
“당연하지. 나 줄 땐 주는 엘프야.”
“구두계약도 지키셔야 합니다. 꼭이에요!”
편집장이 조용히 엄지를 치켜 올렸다.
그 모습에 브루스타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편집장을 쳐다본 뒤 자신도 엄지를 굳세게 치켜 올렸다.
“기대하시고, 미리 책 복사할 마법사들이나 잔뜩 고용해 놓으시죠.”
“역시 자신감이 넘치는구만! 대륙의 마법사들을 전부 긁어모아야겠어. 핫핫핫!”
호쾌하게 웃는 편집장을 뒤로 하고, 브루스타는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편집실을 나섰다.
그러나 편집실을 나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만다.
‘어떡하지? 이제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는 맛집이 없단 말이야. 그렇다고 민트 초코 식초 치킨집 사장이 내 친구라고 절대 말 못해! 그 새끼가 5만년 묵은 집안의 가보로 대출받아서 사정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머리를 쥐어뜯던 브루스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먹을 꽉 쥔 채 벌떡 일어났다.
“여기서 무너질 순 없어! 율리오스 대륙 유일한 비만 엘프의 자존심을 걸고 숨겨진 맛집을 찾아내고 말겠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던전까지 통과하는 브루스타.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몇 주가 지났고, 브루스타는 한 던전 앞에서 난생 처음 보는 도시락 가게를 발견한다.
* * *
“후욱··· 후욱··· 우선 무, 물 좀 주실 수 있나요?”
브루스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자, 알파볼트가 차가운 물을 떠 가져다주었다.
“오! 감사합니다! 라이칸과 인간의 동업이라니. 처음 보는 신기한 식당이군요.”
“흥! 동업은 무슨. 뾰족귀 뚱보, 잘 들어라. 여기 사장은 이 알파볼트 님이시다. 저기 요리하는 인간은 이 몸의 직원이라고.”
알파볼트의 거친 언행에, 혹시라도 싸움이 날까 싶어 태용은 급하게 뛰어왔다.
“알파볼트 씨, 아무리 그래도 손님한테 삿대질은 아니죠. 그 커다란 이빨도 그만 좀 내밀고요.”
“너가 아직 어린 인간이라 뭘 몰라서 그런다. 뾰족귀 녀석들은 자기 종족을 제외하고는 늘 깔보기 때문에 초장부터 납작하게 눌러줘야 하는 법이다.”
“적어도 가게 안에서는 안 돼요. 아무리 돈이 목적이 아니긴 하지만, 적어도 손님 한 명 한 명에겐 잘하자고요.”
태용은 해맑게 웃으며 브루스타에게 다가가 메뉴판을 건넸다.
“메뉴는 이 두 개중에서 고르시면 됩니다. 물론 둘 다 맛있어요. 드시고 가시나요?”
그러나 브루스타는 처음 보는 반응에 벙찐 모습이다.
“저··· 사장님? 아까 제 소개를 제대로 못 들으셨나요? <율리오스 맛집 기행>을 쓴 작가가 바로 저 브루스타 라니까요.”
“네? 그게 뭔데요? 뭐 미슐랭 모음집 같은 건가. 알파볼트 씨는 알아요?”
“처음 들어보는군. 흥! 우리 라이칸족들은 태초부터 현명해서 책 따위는 보지 않는다. 뭐, 그래도 가끔 장작이나 냄비 받치는 용도로는 사용 해봤다. 잘 타고 안정적이더군.”
자신과 자신의 책에 대해 모르는 인격체가 동시에 두 명씩이나?!
율리오스 대륙 시내에 있는 음식점 중에 브루스타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가 가게에 입장하는 순간 서비스를 과하게 받거나, 가게 주인의 허리가 펴지는 일이 없을 정도로 싹싹 빌기 일쑤였다.
간혹 신경이 쇠약한 자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요리를 하다가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의 저서인 <율리오스 맛집 기행>에 실린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대륙의 모든 음식점 사장들이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 쩔쩔매는 것은 당연한 지사였다.
“그, 그럼 일단 이 두 가지 메뉴 다 주세요. 아, 그리고 매운맛은 1단계로요. 먹고 갈게요.”
주문을 받은 태용은 요리를 하러 주방으로 갔고, 알파볼트는 컵에 물을 따라 주었다. 어느덧 말하지 않아도 척척 손발이 맞는 둘이었다.
“주문하신 도시락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순식간에 브루스타의 앞에 고기경단 도시락과 고추장 닭구이 도시락이 차려졌다. 방금 완성된 따끈따끈한 요리만큼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브루스타는 오랜만에 포크를 들기도 전에 군침을 흘렸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이게 대체 뭐죠?”
“네? 그냥 평범한 도시락인데요. 혹시 뭐가 마음에 안 드세요?”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당연히 전부 알고 있죠. 전 전문가니까요.”
특별한 거 없는 조리법. 하지만 처음 맡아보는 향.
브루스타는 소스의 정체가 너무나 궁금했지만,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륙의 모든 맛집과 맛을 평정한 자칭 미식가 이미지를 결코 스스로 깰 수는 없었기에.
그는 바짝 마른입에 침을 묻히며 조심스럽게 음식을 먹었다.
앙!
“이, 이 맛은···!”
와구와구
맛을 본 브루스타는 평정심을 잃고 게걸스럽게 빠른 속도로 도시락을 비우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하루 종일 맛집을 찾아다니느라 배고파서 빵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 뒤였는데도 말이다.
‘그냥 평범한 도시락의 비주얼인데 처음 먹어보는 맛이야. 왜 이렇게 맛있지? 이 정도의 맛이라면 지금까지 내가 소개한 맛집들을 아득히 뛰어넘고도 남을 거야.’
브루스타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태용의 앞으로 가 무릎을 꿇었다.
“선생님! 왜 이제야 나타나셨습니까?!!”
“손님? 갑자기 왜 이러세요.”
“오직 선생님의 요리만이 절 재기시켜줄 수 있어요.”
태용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채 눈물을 글썽이는 브루스타가 결국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저희 가게를 브루스타 씨의 책에 맛집으로 소개하고 싶다는 거죠?”
“그것도 단독으로요! 선생님의 도시락 가게는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먹었던 음식을 다 가짜로 만들 만큼이요. 이런 기회 흔치 않습니다. 제발 응해주세요!”
태용은 한 손으로 턱을 짚은 채 잠시 고민하더니, 역시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의는 고맙지만 거절할게요.”
“예? 어째서죠?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라구요! 제 책에 실리기만 한다면 엄청나게 손님이 많이 올 거라니까요! 게다가 율리오스 대륙 최고의 요리사라는 어마어마한 명예까지 말이죠!”
“그래서 싫어요.”
“역시 당연한 선택······ 예??”
전혀 예상치 못한 말.
브루스타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손님이 많으면 바빠지잖아요. 바쁜 건 딱 질색이거든요. 또 유명해지면, 시내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알아볼 거 아니에요.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건 너무 피곤해요. 그저 지금처럼 우연히 들어오는 손님만 받으면서 놀 땐 놀고, 쉴 땐 쉬고 싶은 게 제일 좋아요. 그쵸? 알파볼트 씨?”
브루스타의 멀찍이 뒤에서 팔짱을 낀 채,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있던 알파볼트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의 맛있는 음식을 단 한명이라도 맛있게 먹어준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리고 나또한 붐비는 건 원치 않거든. 인간 녀석은 저 녀석 한 명으로도 넘쳐서 말이지.”
“알파볼트 씨··· 언젠가부터 우리라는 말이 자연스러워 진 것 같네···.”
둘의 확고한 의지를 엿본 브루스타는 어쩔 수 없이 무릎을 털고 벌떡 일어났다.
“제가 졌어요. 생각해보니, 이렇게 요리를 잘 하시는 분이 이런 구석에 계실 리가 없죠. 돈이 목적이었다면 시내에 음식점을 차리셨을 테니까요.”
태용과 알파볼트는 서로 뻘쭘하게 눈이 마주쳤지만 모르는 척 했다.
브루스타는 이런 상황을 모른 채, 자신의 커다란 가방에서 <세계 맛집 기행> 1권에서 7권까지를 꺼내 태용에게 건넸다.
“이 정도의 실력이면 이미 모든 요리에 통달하셨겠지만, 그래도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제 책 전권을 드리겠습니다. 시내에 나오시면 한 번 여기에 나오는 맛집들을 가보세요.”
“설마··· 도시락 값 안 주고 이걸로 퉁치려는 속셈인 건 아니죠?”
“아, 아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돈은 따로 드려야죠.”
그런데 가방에서 수십 개의 금화를 꺼내는 브루스타였다.
“헉! 그렇게 많이 안 줘도 돼요. 물론··· 팁이라면 사양 않고 받아야 겠지만요~”
“각 5개 씩 해서 도시락 10개만 포장 부탁드립니다.”
“······좋다 말았네. 계산은 정확한 편이시구나.”
가방 가득 포장한 도시락을 꾹꾹 눌러 담은 브루스타는, 싱글벙글 웃으며 가게 문을 나섰다. 유난히 가벼워 보이는 그의 발걸음을 뒤에서 째려보고 있는 태용이었다.
“확실해. 저 새끼, 도시락 포장하려고 나한테 책 짬 때린 거야.”
그러는 사이, 알파볼트는 <세계 맛집 기행>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다.
“흐음. 이 크기, 이 두께, 이 무게. 왜 베스트셀러인지 알겠군. 집에 있는 큰 스프 냄비를 받치기에 아주 딱이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