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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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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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정토
작품등록일 :
2025.03.27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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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2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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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에투스력 776년.


경쾌하게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

이제 소년의 티를 갓 벗어난 남자와 기골이 장대한 남자가 서로 검을 들고 맞부딪히고 있었다.

속도와 완력에서 청년의 검기는 충분히 뛰어난 수준이었다.

하지만 실력있는 자가 본다면 둘의 격차는 명백했다.

정교한 정석 그 자체의 검술로 오차없이 공격해 들어가는 청년의 검격은 거한에 의해 도중에 차단당해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한 수 접어주고 있던 남자는 청년의 호흡이 조금 흐트러지며 검의 궤적이 살짝 벗어나는 순간, 그 빈 틈을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청년의 허리께로 파고들었고 이내 청년은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후우, 도저히 못 당해내겠네요."


손을 잡아 일으켜주는 거한.

하타이 변경백의 아침은 항상 이런 풍경으로 시작한다.

스무 살의 청년, 알렌 하타이에게 있어 이 일상은 이미 10년 이상 꾸준히 이어온 일과였다.

변경백의 영식이라는 자리는 멀지 않은 미래에 직접 전장을 달려야 한다.

다시 말해 위험을 항상 감수하고 있는 입장이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항상 기술을 갈고 닦지 않는다면 전장에서의 목숨은 그 누구도 보장해주지 못할 것이기에 이 단련은 필수적인 시간이었다.


"지금 도련님께 부족한 것은 실전 경험입니다. 진검을 들고 실전과 같은 경험을 한다 해도 전장이 주는 고양감이나 위압감은 그 자리에 서지 않는 이상 느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쟁이 나길 바라는 사람은 없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씀이십니다. 허나 원하지 않아도 언젠가 전쟁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상대가 다른 전장에서 경험을 쌓고 왔다고 한들 정정당당하게 도련님이 경험을 쌓는 것을 기다리지는 않을테지요."


거한은 거기까지 말하고 저택쪽을 올려다 보았다.

저택 2층에는 이 쪽을 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이런, 아무래도 오늘 아침 연습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변경백께서 기다리고 계신 모양입니다."

"오늘 대련도 유익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테이할."



...



매년 하타이 변경백에 몰아치는 겨울 바람은 매서운 칼날과 같았다.

아스발트 제국 서북부 분지에 위치해있는 탓에 북부로부터 몰아오는 강한 겨울 바람이 항상 이 땅에서 머무르기에 다른 하타이 변경백의 겨울은 몹시 춥다.

방금까지 대련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과 수 분만에 몸이 식는 것은 가감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는 이 서릿발같은 동장군 때문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알렌이 아버지의 방에 들어서자 평소와 같은 평범한 아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님을 그의 표정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버지?"

"네게 할 이야기가 있다, 알렌. 중요한 이야기니 꼭 들어다오."


체념에 가까운 표정.

느껴지는 감정은 불안감과 미안함이었다.


"이 하타이 저택에는 봉인된 지하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아스발트 제국 내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가 와도 열리지 않는 봉인이 되어 있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 문은 이 쪽에서 열게 되어있지 않다. 안에서 이 쪽을 향해서 열게 되어있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열리지 않는 봉인을 한 것은 문 저편에서다. 그리고 어떤 이유가 있어서 이 쪽으로 넘어와야 할 때까지 닫아둔 것이지. 그리고 어제 그 문이 열렸다."


알렌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저 한숨을 내뱉을 뿐,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변경백의 자리에 오르면 세 가지의 비밀 서약을 하게 된다."

"...그걸 제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그래. 내가 변경백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앞으로 7일. 에투스력 776년의 마지막 날까지다. 그리고 그 이후의 변경백으로 지명받은 것은 당연히 너다, 알렌."


담담하게 변경백의 계승을 알리는 아버지.

그의 아버지는 올해로 마흔 넷이었다.

실무에서 은퇴할 나이는 아니다.

오히려 경험이 쌓이고, 원숙해지는 나이가 아닌가.

비밀 서약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는 이에 대해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잘 모르겠지만... 오롯이 제게 주어진 역할이라면 반드시 수행해 보이겠습니다."

"그래. 그래야 내 아들이지."


이야기가 끝나고 방에 돌아가서도 알렌은 일련의 상황을 제대로 정리할 수 없었다.

일반적인 귀족들이라 함은, 자식에게 승계하고 싶어도 황제의 허가가 떨어진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하타이 변경백은 완전히 그 구조를 무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이상했지만, 그 진실은 오래지 않아 손이 닿는 거리로 들어올 터였기에 지금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생각 속에서 지운 알렌은 복잡한 머리 속을 오로지 테이할과의 대련에서 이길 방법을 떠올리는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긴 시간도,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아무리 지워보려 해도 자꾸 떠오르는 이질적인 상황에 대한 고민은 그 동안 알렌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었다.

새벽녘에 소스라쳐 깨어나기도 하고, 테이할과의 대련에서 큰 실수를 해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급기야 어제는 하루에 그 자신이 애용하던 찻잔을 두 번이나 떨어뜨려 깨버리고 말았다.

그가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택 내의 사용인들이나 기사들은 물론이고 알렌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참견하지 않았다.

아니, 참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지도 몰랐다.

저택 내의 분위기는 어떻게든 알렌을 진정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한껏 쏠려 있었다.

새 당주가 될 사람에게 새로운 부담을 주고 싶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자정에 맞춰 알렌과 그의 아버지는 봉인된 지하의 문 앞에 섰다.

놀랍게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문은 돌이 끌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문이 완전히 열리고, 그 앞에는 두 명의 가면을 쓴 메이드가 서 있었다.


"레블리아 변경백, 그리고 알렌 님. 안으로 드시지요."


약간 낮은 목소리의 메이드의 안내에 따라 알렌과 그의 아버지는 문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세계를 넘어선 것 같은 분위기.

내부의 풍경을 본 알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타이 변경백의 저택 구조를 그대로 빼다박은 모습.

그리고 그들이 들어온 문은 저택 부지로 들어오는 문의 위치와 일치했다.

유일하게 다른 것은 바깥쪽 너머로 하늘이 보여야 할 외벽들은 아주 높은 돔의 형태로 구성되어 중앙의 발광체로부터 이 안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공간이 마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렌이 깨닫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으로 향했고, 원래의 저택이라면 변경백의 집무실이 있어야 할 방 앞에 도착했다.


"레블리아 변경백께서 먼저 안으로 들어오시라는 명입니다. 알렌 님은 잠시 대기를 위해 다른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레블리아는 메이드 한 명과 함께 방 안으로 향했다.

그 안쪽을 살짝 들여다본 알렌의 눈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옥좌(玉座)와, 그곳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알렌 님은 이쪽으로."


다른 메이드의 인도를 따라 이동한 방은 자신의 방과 같은 위치였다.

알렌은 어딘지 모르게 흥분해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받아든 차를 마셔도 가라앉지 않는 심장박동은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대체 여기는 어디이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님"

"...렌님."

"알렌님."


잠시 혼이 빠져있기라도 했던 모양일까.

졸거나 잠들지 않았음에도 바로 옆에서 메이드가 몇 번이나 부르는 것에 알렌이 응답한 것은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당황한 나머지 벌떡 일어난 알렌은 멋쩍었는지 살짝 미소지었다..


"미안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아닙니다. 알렌님, 이제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아까의 방 앞에 선 알렌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 위험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결연하게 받아들인다.

마음을 정하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이전에 스쳐지나가며 살짝 본 모습 그대로, 옥좌 위에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있었다.


"이리로 오도록."


목소리만으로 판단한다면 알렌보다 몇 살 정도나 많은 정도일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나이로는 볼 수 없는 관록(貫祿)이 분위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랏빛 벨벳이 깔려있어 이를 따라 적당히 나아간 알렌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힐끗 옆을 보니 아버지를 안내했던 메이드는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지만, 아버지의 어디에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눈치를 보는 사이 위에서는 나긋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름은?"

"알렌. 알렌 하타이입니다."


고분고분하게 대답한다.

정체를 모르는 자를 상대로 함부로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자살행위다.

그녀가 적대적인지 우호적인지도 알지 못하는 이상 이쪽은 정직하게 부딪히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아마도 이 질문의 의도는 아버지의 서약에 대한 확인일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이 한 번의 언질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알렌이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에 여성은 옥좌에서 일어나 그가 있는 곳으로 걸어내려왔다.

당황한 알렌의 턱을 살짝 붙잡은 그녀는 그의 고개를 돌려 자신과 눈을 맞췄다.

그의 시야에 비친 여성은 약간 창백해 보였으며, 아름다운 십대 소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알렌, 변경백을 이을 준비는 되어 있느냐?"

"...그렇습니다."

"변경백의 서약은 세 가지 뿐이다. 하나는 나의 호출에 응할 것. 둘은 반드시 서른 전에 아이를 가질 것. 셋은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비밀로 할 것."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왼손에는 푸른 마법이 떠올랐다.

처음 보지만, 아주 유명하기에 알렌도 잘 알고 있는 마법이었다.

기아스(Geis). 절대적인 서약의 마법.

사용자와 대상이 동의해야만 발동하는 대신, 절대로 어길 수 없는 강력한 서약이자 제약이다.

이 자리에서 기아스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변경백을 잇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나, 알렌 하타이는 이 서약을 영혼에 걸고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흐응. 나, 힐드 하토르는 이 서약에 따라 알렌 하타이를 하타이 변경백으로 임명하고, 그에 따른 책무와 권리를 이양할 것을 맹세한다."


그녀의 이름.

힐드 하토르라는 이름 - 알렌은 그 이름을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름은 무언가 내면을 휩쓸고 지나가는 소용돌이가 느껴지는 그런 힘이 있었다.


"에이시아, 그걸 가져와."


힐드의 말에 멀찍이 떨어져있던 메이드가 옆 방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알렌에게서 등을 돌리고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이드가 돌아왔고, 힐드가 무언가를 받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무겁구나. 아가, 일어서렴."


허리를 펴고 일어선 알렌의 눈 앞에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대검을 한 손으로 들고 살짝 휘둘러보는 힐드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녀의 신장보다 머리 두 개 만큼은 크지 않은가.


"이 검은 네게 후계자가 생길때까지 네게 맡겨두는 무기란다. 레블리아가 젊었던 시절에 대검을 사용했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아버지도 이 검을..."

"그런 셈이지. 네 아버지 뿐만 아니라, 네 할애비도 이 검을 사용했었단다."


순간적으로 힐드의 나이에 대한 의문이 스쳐지나갔다.

대체 그녀는 누구인가.

그리고 몇 년이나 이 안에서 살아왔는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으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은 그녀가 『휴먼종』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돌아가 보거라. 그리고 서약대로 내가 부르면 만나러 오렴."

"...말씀 받들겠습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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