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에드릭 레온발트

“허억, 헉,”
벌써 얼마를 달려온지 모르겠다.
몸은 이미 한계를 넘은지 오래. 후들거리는 다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불안하게 휘청거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쉴 수는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리 된 거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그는 생각했다.
“크아악!”
쿠웅-
저 멀리서 온갖 비명소리와 함께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들려왔다.
“더 빨리 달리셔야 합니다! 이 속도로는 곧 따라잡힐 겁니다!”
그를 보호하듯 앞장서서 달리던 사내가 말했다.
붉은 로브를 뒤집어 쓴 사내의 팔에서는 로브의 색깔보다 진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허억, 헉, 먼저 가게나,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나는 어차피 자네들에게 짐일 뿐이야.”
사내가 보호하던 남자, 에드릭 레온발트는 자신의 앞에서 달려가던 사내에게 말했다.
그러자 에드릭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순 없습니다. 레온발트님께서 살아계셔야 마법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약한 소리를 내뱉은 그에게 어림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하는 여성.
사내와는 달리 짙은 푸른색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녀 역시 군데군데 피가 묻어있다는 점은 같았다.
“아니, 허억, 오히려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자네들이 살아남는 게 더 도움이 될 걸세. 내가 나서서 시간을 끌 테니, 그동안 자네들은 최대한 멀리 도망가.”
이내 마음을 굳힌 듯, 서서히 멈춰서며 단호하게 말하는 에드릭.
“그럴 수는···!”
“그게 맞네. 나는 늙은 데다 마력도 다루지 못해서 얼마 안 가 따라잡힐걸세. 차라리 자네들이라도 성공적으로 도망치는 게 나아.”
“···”
침묵하는 두 사람. 사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마법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천재라고 여겨지는 그들의 스승은 타고나길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체질 때문에 신체능력은 그냥 노쇠한 일반인과 다름없었다.
그의 나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희끗하게 샌 머리칼과 수염은 더 이상 예전의 그것처럼 잘 정돈되어 있지도, 윤기 나게 빛나지도 않았다.
오랜 도망자 생활로 인해 머리칼은 푸석푸석하고 온 몸에는 여기저기 흙먼지가 묻어있는 더러운 상태. 누군가 그를 본다면 마법의 역사를 뒤바꾼 세기의 천재보다는 그냥 거지 노인네라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로 그의 몰골은 처참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땅만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에게 노인은 말했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게. 악착같이 살아남아 마법의 명맥을 이어야 해. 이대로 세상에서 마법이 사라지기에는 우리가 이룬 것들이 너무 아깝지 않나. 아마 내 이름값이 있으니 그들도 나를 쉽사리 처단하지는 못하겠지. 내 걱정은 말고 자네들은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 스승의 마지막 부탁이네.”
“···알겠습니다.”
“···명을 받듭니다.”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뒤를 돌아 달리는 두 사람. 그러다 갑자기 멈춘 채 뒤를 돌아보곤-
“스승님을 모실 수 있어서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부디··· 보중하십시오.”
“···부족한 스승을 따라주어 고마웠네. 꼭 살아남게.”
“예.”
말을 마치고 달려가는 두 사람. 그와 함께 달릴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들이 가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두 사람과 헤어진 길목에 앉아있던 그는 로브 안쪽 주머니에서 흙먼지가 묻은 궐련을 꺼내 물었다.
“딱 좋군. 마지막인가. 가기 전 마지막으로 이거 한 대 정도는 허락해 주겠나?”
이내 그들이 왔던 길목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다수의 인형(人形). 그들은 빛나는 풀 플레이트 갑옷으로 무장한 채, 한 손에는 방패,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갑옷의 가슴팍과 방패에는 그들의 소속을 상징하는 커다란 십(十)자 문양이 당당하게 박혀있었다.
“···그러시오.”
그들 중 망토를 두른 자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혼자만 망토를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 이들을 이끄는 대장인 것 같았다.
“기사단장 이신가? 고맙네, 언젠가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거든 그 대사. 클클.”
“···”
에드릭은 지체 없이 품안에서 조그마한 장치를 꺼내 궐련에 불을 붙였다.
“후-.”
호흡과 함께 뿜어지는 뿌연 연기.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졌다가 흩어지는 연기를 가만히 보다 그가 입을 열었다.
“내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나?”
“말해보시오.”
대답하는 기사를 가만히 바라본 채, 그는 이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뱉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겐가?”
“···”
잠시 동안의 짧은 침묵. 이내 입을 연 기사는 에드릭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을 뱉었다.
“우리는 그분의 종.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은 전부 그분의 뜻이니.”
“······”
조금 전 보다 길어진 침묵. 에드릭은 무언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궐련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신, 신이라···. 덧없구나···.”
흩어지는 연기를 보며 중얼거리는 에드릭.
“부, 불경한!”
“이단자 주제에 그분을 입에 담지 마라!”
그의 한 마디에 시끄러워지는 주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그는 궐련을 비벼 껐다.
“그만!”
“···”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주위. 호통 한 번에 모두를 조용히 만든 기사는 에드릭에게 한 걸음 다가오며 말했다.
“남기고 싶은 말은 없소?”
“친절하군. 내가 말하면 후대에 전달이라도 해줄 텐가?”
“···전해도 좋을 말이라면.”
잠시 고민하고 대답하는 기사.
“클클클, 그런 말이라면 없다네. 난 자네 같은 족속들을 싫어하거든. 자네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그분도 마찬가지지.”
“이런 불경한!! 당장 그 사특한 입을 찢어버리겠다!”
“단장, 이제 그만 처단하시지요!!”
“저런 이단자 따위에게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들로서는 상상하는 것만으로 죄악이 될 수 있을법한 말. 이를 들은 주위의 반응을 보곤 에드릭은 생각했다.
‘어찌도 저리 맹목적일 수 있을까.’
이내 그들을 이끄는 기사는 그의 검을 뽑아들며 말했다.
“에드릭 레온발트. 마법사들의 나라 아카디아의 대마법사이자,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미천한 재능임에도 불구, 타고난 천재성과 노력으로 마법의 역사를 뒤바꾼 입지전적의 인물. 당신의 죽음이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데 필요한 거름이 되기를.”
이내 말을 마친 그는, 들고 있던 빛나는 검을 휘둘러 에드릭의 심장 어림을 관통했다.
푸욱-
죽어가는 상황에서 에드릭은 자신을 찌른 기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쿨럭-, 내 신에게 꼭 물어보지. 과연 자네들이 자랑스러운지.”
아카디아의 대마법사이자,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몸으로 마법의 역사를 뒤바꿨다는 평가를 듣는 에드릭 레온발트. 그렇게 그는 그 위대한 기록을 후대 어디에도 남기지 못한 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
사방이 어두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속에 계속해서 가라앉는 기분이다.
그 바다는 푸르다기 보다는 검은 것에 가까웠으며, 그 깊이는 끝이 보이지 않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게 죽음···인건가···? 생각보다 별 거 없구나.’
보이는 것은 그저 새카만 어둠 뿐. 에드릭은 스스로의 몸을 통제할 수도, 의식을 놓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가라앉는 와중에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보잘 것 없는 평민으로 태어나, 우연히 마법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불행히도 자신에게는 마력을 다루는 재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마력을 다룰 수 없는 몸. 이는 노력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학자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엔 자신에게 재능을 주지 않은 세상에 대한 오기였다. 본인이 직접 마력을 다룰 수 없다면, 마력과 마법에 대한 공부를 통해 마력을 다루는 이들보다 이에 정통해지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공부였다.
다행히 세상은 공평했는지 그는 마력과 마법을 연구하는 부분에 있어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이가 할 수 있는 연구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그는 연구를 하며 알게 된 몇몇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 샌가 그는 마력과 마법에 대한 이해도의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와 교류했던 마법사들은 어느 날 그를 찾아와 함께 마법을 위한 나라를 세우지 않겠냐는 꿈과 같은 제안을 했고, 그렇게 아카디아가 건국되었다. 아카디아를 기다리는 것은 밝은 미래일 것만 같았던 날들의 반복이었다.
주변 왕국들과 아리아교가 손을 잡고 신의 이름을 내세운 전쟁을 일으키기 전 까진.
그 이후는 여느 마법사와 같았다. 힘을 합쳐 저항했고, 패배했으며, 도망쳤고, 잡혀서 죽임을 당했다. 그들의 신인 아리아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만한 마법사들을 보다 못한 신이 그들에게 벌을 내린다는 명목으로.
‘신이 있다면 물어봐야 할 것들이 산더민데, 아쉽게도 신이란 작자는 없나보구만.’
그럼 그렇지 싶었다. 신이라는 작자가 정말로 존재했더라면 그 수많은 마법사들을 억울하게 죽음으로 몰진 않았을 테니.
‘녀석들은 살아 남았을라나···.’
마지막에 헤어진 두 제자가 생각났다. 패배한 직후 도망치는 과정에서 제 한 몸 챙기려 흩어진 다른 제자 놈들과는 다르게 끝까지 자신의 주변을 지켰던 이들. 그렇기에 마지막에 떠나보내는 과정에서도 미련 없이 목숨을 던져 미끼역할을 자처할 수 있었으리라.
‘부디 살아 남거라.’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고 마지막 염원을 빈 그는 자신을 끌어당기는 깊고 검은 바닷속에 몸을 맡긴 채, 그대로 떨어질 뿐······.
쿵-!
쿵?
드디어 끝에 닿았나? 그렇다면 이젠 정말 끝이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끄아악!”
아프다. 무지하게 아프다.
머리에 격통이 느껴진다. 머리가 부서지는 기분.
심장에 칼이 박혔을 때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으리라.
“설마 나 살았나?”
에드릭은 본능적으로 격통이 느껴지는 머리에 손을 가져다댔다.
“어쭈? 막아?”
갑자기 들려온 어린 목소리. 누가 들어도 기분이 언짢음을 알 수 있는 짜증이 서려있는 목소리에 눈을 뜨자 낯선 얼굴이 보인다.
“얘봐라? 손 안내려?”
“귀족 꼬맹이?”
귀족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한껏 과시하듯 화려한 복장과 잘 먹어서 통통하게 오른 살집. 좋게 말하면 풍채가 좋았고, 나쁘게 말하면 뚱뚱했다.
“허? 네가 아주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좋아, 오늘 내가 그 소원 이뤄주마.”
심술이 가득 들어찬 얼굴에 점점 노기가 서리더니 이내 들고 있던 몽둥이를 바로잡는다.
“네가 날 살린 것이더냐? 살 수 있는 상처가 아닐 터인데···.”
에드릭은 소년이 자신을 살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심장이 관통당한 자신이 이렇게 살아있을 수 없을 테니까. 무슨 마법인지는 몰라도 대단한 재능이다.
“이곳은 너 같은 어린아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얼른 도망치자꾸나.”
정신을 차린 에드릭은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곤 눈앞의 아이에게 말했다.
“허···?”
그러자 몽둥이를 고쳐 잡던 눈앞의 아이는 해괴망측한 말을 들은 것 마냥 벙찐 얼굴로 자신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이의 반응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에드릭.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 그는 이내 자신이 칼에 찔렸던 장소와 지금 있는 장소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긴 어디인 것이냐?”
“···어”
이내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아이를 보며 겁을 집어먹었나보다 생각한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이에게 손을 뻗-.
‘어?’
낮다.
‘분명히 일어났는데?’
평소에 보던 시야와 다르게 지금의 시야는 한참 낮았다. 앞의 귀족으로 보이는 꼬맹이와 눈높이가 비슷할 정도로.
‘뭐지?’
이젠 도통 뭐가 뭔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른 에드릭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주름이 없이 탱글한 피부, 작은 손과 발, 짧은 팔다리. 보이는 것으로 도출해 본 결과.
‘아이?’
젊어졌다. 나이가 들어 지천명을 넘겨 환갑을 바라보던 그의 낡은 몸뚱어리는 10살짜리 어린아이의 몸과 같이 탱글탱글하고 활력이 넘치는 몸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만-
‘옷이 남루하고, 손과 발에 나있는 자잘한 흉터. 거지거나 그에 준하는 존재인가.’
타고난 판단력과 머리로 자신의 몸을 보며 상황을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사이 떨림을 멈춘 아이는
“···어.”
“어?”
아이의 말에 에드릭이 멍청한 소리를 내뱉으며 반사적으로 아이를 보았다.
“죽으라고, 이 새끼야!!”
쿠우우웅-
그렇게 겨우 눈을 뜬 에드릭은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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