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전화를 끊은 강한정은 바로 이한솔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금 장잉 농이 전화를 했어.”
-.... 뭐래?
“그 국정원이 가져가 CCTV 가짜라고 거기 증거 없다고. 하- 한시름 놨어.”
-멍청한 거야? 멍청한 척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그게 가짜라면 진짜가 있다는 거잖아. 그것도 그 깡패 새끼한테.
“어. 그 배에 실려 있다고 하던데..”
이한솔은 강한정의 멍청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니까 이 멍청아! 그럼 그걸 그냥 두겠어? 그 깡패 새끼가? 그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우리 약점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됐는데!
“그럼..”
-당연하지, 당장 아니면 머지않아 우리에게 뭔가 뜯어내거나 우릴 죽이는 데 사용하겠지.
“그...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기는 멍청한 새끼야. 죽여 버리고 찾아와야지.
나름 전국구 깡패로 강단이 있는 강한정이었지만, 중국 삼합회 조직원을 죽이는 것은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삼합회가 무서운 것은 그들이 단순히 폭력조직이라서가 아니었다.
가차 없는 복수. 1을 당하면 100을 갚아 준다는 그 악랄한 복수심이 그들을 단단하게 했고, 무섭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 장잉 그놈을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알았어.”
-칼은 내가 준비할 테니까. 넌 자리만 만들어. 그놈 어디래?
“지금 배로 가고 있데.”
-배? 배가 한국에 있어?
“그런가 봐.”
-알았어. 기다려봐. 일단 확인을 해 봐야겠어.
전화를 끊고 이한솔은 밀려오는 두통에 머리를 짚었다.
뭐가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아주 단단히 꼬여있는 상황이었다.
중국 쪽과 관계를 만들기 위해 제공했던 명단이 데스노트가 되어 국정원 요원들이 대거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물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국정원이 아닌 정보사 자료로 위장하고 노트북이 해킹당한 것으로 처리하긴 했지만, 불안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로 국정원의 눈을 숨길 수는 없다는 것을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목을 국정원에서 겨누고 있을 것이 명백했다.
물론 국회의원인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명단 유출에 관여한 사항은 검찰 조사를 받고 재판에 가면 흐지부지 처리할 수 있다.
우연히 정보사 자료를 얻게 되었고, 컴퓨터에 보관하던 중에 중국 해커에게 해킹당한 것 같다는 스토리가 이미 준비 되어있었다.
즉, 직접적으로 간첩이나 첩자에게 정보를 준 것이 아니라 중국의 해커가 컴퓨터를 해킹해 간 것이기에 자기 스스로는 죄가 없다는 핑계를 준비했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있다.
자신의 명줄과 같은 국회의원직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는 것.
그런 와중에 이번 사건이 터진 것이다.
성 접대.
홍콩에서 출발해 한국을 오가는 크루즈에서 펼쳐진 마약 성 접대 사건이다.
크루즈 선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사람들 눈을 덜 탈것으로 확신했는데, 일이 꼬였다.
그 일을 주선하는 삼합회 깡패 놈이 갑자기 한국에서 국정원에 노출 되면서 부터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한솔이 여자를 검찰에 넘겼기 때문에 시작된 일인데 본인이 잘 못한 것은 단 하나도 모르는 철면피 적인 생각이었다.
그런 철면피다 보니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장잉 놈을 죽인다.
그리고 그 증거인 CCTV를 확보해야만 했다.
오로지 그것만이 자기 목줄을 쥐고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이한솔은 스마트폰을 열어 몇 번이고 돌려봤던 영상을 다시 틀었다.
병원에서 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남성.
그는 분명히 장잉이 맞았다.
생각 같아서는 국정원이고 국과수고 보내서 정밀 감정을 받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도 없었고, 괜한 오해를 사는 행동을 할 수도 없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장잉의 부하로 심어둔 자신의 정보원이었다.
과거 그가 1차장으로 있을 때 중국 쪽 작전에서 맺어둔 인연이었는데 이런 위험이 있을 때를 대비해 심어둔 인물이었다.
“어. 말해.”
-장잉이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인천항에 배로 향하고 있다고 통화했습니다.
“니가 직접 통화한 거야?”
-네. 목소리 확인했습니다. 장잉이 확실합니다.
“젠장. 알았어.”
전화를 끊고 이한솔은 다시 강한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잉 배가 인천항에 있다는 군. 일단 그걸 타야겠어.”
-나도? 같이?
“그래. 그래야 놈이 의심을 안 하지.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칼을 준비했으니까 겁먹지 말고 전화해서 말해. 세 명 탄다고.”
-그래. 알았어.
“배는 언제 출발이야?”
-오후 일거야.
“오후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오후, 저녁 7시 출발이야.
강한정과 통화를 마친 이한솔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 갈아 두었던 칼을 꺼낼 차례였다.
* * *
“VIP 실 빼놔. 세 놈 예약.”
-네.
승호는 크루즈에 타고 있는 삼합회 조직원과 연락하고 전화를 끊었다.
크루즈라고 해서 거대한 여객선은 아니었다.
고급 개인 요트를 개조해 만든 100인승 정도 되는 소형 크루즈였다.
이제 크루즈 VIP실에는 여자들을 제외하고 깡패 새끼들과 강한정, 이한솔 그리고 이한솔의 발바닥을 핥고 있는 국정원 직원이 하나 타게 될 것이다.
그 말은 여자들을 제외하고는 죄다 죽여 버려도 된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좋아. 동철이는 섭외해 둔 조태성 쪽 여자들 데리고 오고. 미연이는.. 서포터 잘하고.”
“네.”
“그래. 그럼 둘 다 인천항에서 보자.”
승호가 작전 차량에서 내리고 차는 어디론가 떠났다.
동철은 어제부터 조태성의 스마트폰을 해킹해 연락처를 따고 이번 장잉의 배에 탑승하기로 했던 여자 연예인들을 직접 데리러 가기로 했다.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기에 일정이 빨라졌다는 말 하나로 그들을 픽업하기로 한 것이다.
미연 역시 아가씨 중 하나로 배에 잠입하겠다고 했으나, 배에서 그녀가 할 일은 딱히 없었다.
동철이야 백업으로 참여한다고 하지만, 전투 훈련을 완벽하게 받은 것이 아닌 그녀는 위험했다.
일반적인 강도나 도둑놈, 치한 따위를 잡는 작전이 아니었다.
깡패 놈들이 우글우글한 곳에서 국정원 요원을 잡아 죽이는 일이다.
쉽지 않은 이번 일에 그녀가 전투 요원으로 나서는 것은 말려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일을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작전 본부에서 지령을 내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미연이었다.
그녀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집을 피우지 않고 순순히 승호의 명령에 따랐다.
각자 찢어져 맡은 역할을 위해 움직였다.
승호는 바로 인천항으로 출발했다.
미리 준비할 것이 있어서였다.
인천항 크루즈 선착장으로 가기 한참 전 컨테이너들이 잔뜩 놓인 공간 사이에 차를 대고 내린 승호는 전화를 꺼내 들었다.
어제 세팅해 둔 유심칩은 장잉의 전화기로 스마트폰을 인식했다.
승호는 고자로 변한 장잉의 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
“거의 다 와 갑니다.”
“멍청한 새끼. 설마 바로 주차장으로 갈 생각은 아니겠지?”
“네? 그.. 그럼.”
“멍청아 우리를 친 놈이 국정원이야. 국정원. 대한민국 정보기관. 우린 지금 중국의 MSS와 비슷한 놈들에게 쫓기고 있는 거라고.”
“아.. 형님. 어떻게 합니까?”
승호는 당황하는 놈의 목소리에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주차장 가기 전에 컨테이너 잔뜩 쌓아둔 곳 있어. 일단 그쪽으로 와라. 정확한 위치는 찍어서 보내줄게.”
“네, 알겠습니다.”
“빨리 와.”
“네.”
전화를 끊은 승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암월팀은 얼굴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1차장이었던 이한솔은 물론 그의 따까리 노릇을 하는 쥐새끼 역시 승호와 동철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승호의 얼굴을 알고 있는 것은 단 한 명.
중성화 수술을 당한 고자 삼합회 깡패 하나다.
놈을 잡으면 배 안에서 승호를 알아볼 수 있는 자는 한 명도 없다.
승호는 놈을 잡았을 때 수거한 핸드폰으로 놈이 이한솔의 정보원이라는 것을 파악해 둔 상태였다.
이미 이한솔에게 장잉과 통화했음을 그리고 그가 배를 향해 가고 있음을 알고 있는 승호였다.
정보의 역행.
이미 노출된 정보원이나 정보망은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정보로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 동남아 지역에 나가 있는 국정원 정보원들이 모든 것을 버려 두고 귀국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승호가 찍어준 위치로 차 한 대가 슬슬 들어왔다.
컨테이너 사이에 숨어서 차량을 바라보고 있던 승호가 뚜벅뚜벅 운전석 방향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대화가 필요한 날이 아니었다.
그리고 놈에게서 얻을 정보도 없다.
승호는 창문에 총구를 대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푸슉- 푸슉-
놈의 죽음을 확인한 승호는 다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여기 청소.”
-네.
승호는 현장 사진을 찍어 어딘가로 보냈고 다시 몸을 돌려 차량으로 돌아갔다.
그가 국내에서 살인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지저분하게 일이 커지는 것이 싫어 참아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동료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 현실에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일을 만든 인물이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승호는 그대로 차를 몰아 크루즈 선착장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동철이 카니발 한 대를 타고 도착했다.
카니발 뒷문이 열리자 얇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 다섯이 내렸다.
“왜 다섯이야?”
동철은 고개를 저었다.
분명 VIP는 셋이라고 통보했는데 다섯의 여자가 내렸다.
“원래 준비된 인원이 다섯이었나 보군. 가자.”
동철과 승호는 여자들을 이끌고 크루즈 선착장 안으로 들어갔다.
* * *
개인용 크루즈였지만, 용도에 맞게 내부는 화려했다.
2층으로 이루어진 대형 선박이었다.
철저하게 VIP 접대용으로 개조된 선박은 화려한 객실과 별도의 술을 마실 룸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수영장과 식당 역시 잘 꾸며져 있었다.
연예인 지망생인지 연예인인지 모를 여자들은 익숙하듯 배에 타자 마자 신나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나와 동철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방을 하나 배정받고 식당으로 나와서 커피와 가벼운 다과를 먹고 있었다.
“우와~ 이거 맛있는데요.”
-역시 나도 갔어야 했어.
귀에서 미연의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과거 채홍사도 벼슬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삼합회 놈들도 우릴 함부로 하지 않았다.
가볍게 짐 검사를 하긴 했지만, 우리 장비는 지금 없다.
해가 지고 작전이 시작되면 미연이 알아서 보내줄 것이다.
우린 그때까지 크루즈를 즐기면 된다.
동철과 내가 VIP를 만날 일 역시 없었다.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들이 배를 타자마자 마중 나갈 저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은 교육을 철저히 받았는지 경험이 있는지 알아서 행동을 잘하고 있었다.
이 커다란 배에 딸랑 자기들밖에 없다는 생각에 신이 난 것인지, 기왕 이렇게 된 거 신나게 즐기자는 생각인지 여간 신나 보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저 여자들은 괜찮을까요? 우리 얼굴을 다 봤는데.”
“괜찮아. 즐기고 있잖아. 강제로 끌려온 게 아니야. 그리고 평생 우리랑 볼 일 없다.”
그렇다고 어디 팔아 버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죽여 버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작전이 끝나면 어딘가로 가서 교육을 잘 받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 가면 되는 것이다.
납치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선택해서 이곳에 온 여자들이었다.
그게 돈이든 명예든 인기든 뭔지 모르겠지만, 성인은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딱히 어려운 것도 없고, 아쉬운 것도 없다.
삶에 작은 굴곡쯤은 누구나 있는 것이니.
그때 귀에서 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습니다. 작전 개시합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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