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경험(10화)

"뭐야? 왜 그래요 갑자기?"
의뢰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유상준의 혼란스러운 의식을 비집고 들어왔다
방금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간 기억의 파편들 전세사기로 모든 것을 잃고 절규하던 친구를 냉담하게 바라보던 의뢰인의 얼굴 ‘시끄럽다 뛰어내릴거면 빨리 뛰어내리던가’하던 그의 속마음 그리고 마침내 친구가 몸을 던졌을 때 안도하던 그의 모습은 너무나 생생하고 역겨워서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동시에 느껴진 능력의 예기치 못한 발현은 공포 그 자체였다
손을 잡지도 집중하지도 않았는데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마치 제멋대로 열려버린 수문처럼.....
"...아닙니다 제가...잠시 현기증이..."
유상준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짰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과 공포에 질려 흔들리는 눈동자는 유상준의 말을 전혀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유상준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 남자에게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다
"현기증? 허튼소리 집어치워!"
의뢰인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그는 더 이상 기억 제거를 원하는 절박한 의뢰인이 아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경계심 가득한 맹수와 같았다
그는 유상준에게 성큼 다가서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
"너 방금 뭘 본 거야? 내 기억이라도 읽은 거냐? 그런 거냐고!"
'미친...어떻게 알았지?'
유상준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저 자신의 반응이 이상해서 떠보는 것일까?
아니면 이 남자 역시 뭔가 다른 비밀을 가지고 있는 걸까?
유상준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전 그냥 몸이 안좋아서..."
"몸이 안좋아? 너 눈깔이 지금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는데?!"
의뢰인이 거칠게 유상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갑작스러운 폭력에 유상준은 숨을 헉 하고 삼켰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차가운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놔...놓으라고...!!"
유상준이 버둥거리며 저항했다
하지만 남자는 더욱 힘을 주어 유상준을 벤치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눈에는 살기마저 어른거렸다
"너 XX 정체가 뭐야? 그리고 내 기억에 대해 뭘 알아낸 거야?! 당장 불어!"
남자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유상준은 공포와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호준을 죽였던 그날 밤의 기억과 이진호의 기억을 흡수하며 느꼈던 차가운 분노 그리고 방금 흡수한 이 남자의 추악한 기억까지 모든 것이 뒤섞여 유상준의 이성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지고 있었다
"놓으라고 했잖아!"
유상준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남자를 밀쳐냈다
남자는 잠시 비틀거리다 다시 달려들었고 두 사람의 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장소는 벤치에서 벗어나 가로등 불빛도 희미한 공원 안쪽 빽빽한 나무와 덤불이 우거진 후미진 곳으로 옮겨갔다
쏟아지는 비는 두 사람의 움직임을 더욱 격렬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남자는 유상준보다 체격이 좋았고 움직임에는 거친 폭력성이 묻어났다
유상준은 필사적으로 방어했지만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듯했다
남자의 주먹이 유상준의 얼굴에 작렬했고 유상준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남자가 넘어진 유상준의 위로 올라타 주먹을 다시 치켜들었다
"얘기를 하라고!! 내 기억을 다본거냐고 XX!!"
퍽!퍽!!퍽!!!
남자의 주먹이 미친듯이 유상준의 얼굴에 꽂혔다
'미친...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죽...죽는다···!'
공포가 극한에 달한 순간 유상준의 눈에 옆에 떨어진 제법 큰 돌멩이가 들어왔다
유상준은 거의 반사적으로 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미친듯이 주먹을 꽂아내리는 남자의 머리를 향해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남자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유상준의 위로 쓰러졌다
유상준은 숨을 헐떡이며 남자를 밀쳐냈다
그리고 쓰러진 남자 위로 올라타서 미친듯이 남자의 머리에 돌로 내려쳤다
"죽어...죽어...죽어...죽어 이 쓰레기 같은 XX야!!"
남자의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와 빗물에 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성의 끈을 놓은채 미친듯이 내려치던 유상준의 눈에 남자의 피가 들어갔다
"....!"
유상준은 돌로 내려치던걸 멈추고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눈을 비비고 난 뒤 유상준은 쓰러져있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아...X됐다....."
유상준은 이성의 끈을 다시 붙잡고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숨을 멈췄다
또 다시...또 사람을 죽였다
그저 공포와 분노 속에서 벌어진 첫살인과 같이 우발적이고 끔찍한 살인이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온몸이 비에 젖어 차갑게 식어갔지만 식은땀은 멈추지 않았다
유상준은 비틀거리며 일어나는가 싶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서 다시 주저앉았다
눈앞의 시신과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번갈아 보며 공황 상태에 빠졌다
바로 그때였다
저만치 떨어진 공원 산책로 쪽에서 누군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희미한 형체가 보였다
우산을 쓴 채 천천히 다가오는 그림자...
유상준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아..안돼....!'
유상준의 머릿속에 남은 마지막 이성이 비명을 질렀다
유상즐은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고 덤불 뒤로 몸을 숨겼다
목격자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마침내 쓰러진 시신을 발견했다
"꺄아아아악!!!"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여자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더니 이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잡아야한다! 저 여자를 잡지 않으면....!'
유상준의 머릿속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유상준은 덤불 속에서 뛰쳐나와 여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한 필사적인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여자는 겁에 질려 비틀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유상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 뒤를 쫓았다
빗물 때문에 시야는 흐릿했고 발은 자꾸 미끄러졌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마침내 유상준은 여자의 뒷덜미를 거의 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따라붙었다
유상준이 손을 뻗어 여자의 팔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으악!!!"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유상준은 넘어진 여자의 팔을 놓지 않고 더욱 세게 붙잡았다
여자는 공포에 질려 울부짖으며 발버둥 쳤다
"제발...살려주세요!! 못 본 걸로 할게요! 제발!!!"
유상준은 여자의 입을 막으려 했다
그런데 여자의 팔을 움켜쥔 손목 부근에서 다시 한번 그 예기치 못한 감각이 느껴졌다
파직-!!!!
이번에는 더욱 강렬했다
유상준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여자가 방금 목격한 비에 젖어 쓰러진 피투성이인 남자 그리고 쓰러져있는 남자 위에 올라타서 돌로 내려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생생하게 흘러들어왔다
여자의 극심한 공포와 충격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또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기억을 흡수해버렸어...'
유상준은 경악하며 여자의 팔을 놓았다
능력은 이제 정말 유상준의 통제를 벗어난 것 같았다
그저 강한 신체 접촉만으로도 상대방의 기억과 감정이 여과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끔찍한 저주...
기억을 흡수당한 여자는 순간적으로 눈의 초점을 잃고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기절한 듯 그대로 쓰러졌다
기억 상실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극도의 공포와 충격 그리고 갑작스러운 기억 흡수의 여파인 듯했다
유상준은 쏟아지는 빗속에 홀로 서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두 번째 피해자의 시신이 누워 있었고 발밑에는 정신을 잃은 목격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유상준 본인의 손을 쳐다보았다
살인자의 손이자 이제는 자신의 의지마저 배신하는 통제 불능의 능력을 가진 손이였다
유상준의 손은 빗물인지 피인지 혹은 죄책감의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또다시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은 이제 자신조차 두려운 괴물이 되어 있었다
완전한 절망과 공포 속에서 유상준의 두 번째 악몽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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