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1)

“이제 곧 도착합니다.”
산불을 정리한 직후.
나는 정우진과 합류해서 충청도로 향했다.
마침 거리도 멀지 않아 짧은 거리를 이동한 우리는 적당한 곳에서 하루를 묵고 또 다시 움직였다.
“그 사이에 잘도 그런 걸 만들었네.”
도착한 곳은 속리산 인근.
그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
어쩐지 복잡한 기분이 들어 입을 떼기 힘들었다.
“한참 여론이 복잡한 지금이 적기입니다.”
“그래요.”
시선을 돌리려고 던진 정우진의 말에 대충 답했다.
산불을 진압하고 나니 나에 대한 여론이 더욱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정의를 구현하는 영웅이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살인마냐.
일반 대중은 물론, 정치인이나 연예인, 기업들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냈다.
“···어떻게 보면 내 책임이기도 하잖아요?”
“예?”
썬팅이 짙게 된 세단 뒷좌석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다 심드렁하게 말했다.
“박동곤 중장. 그 양반을 거기까지 몰아세운 건 어쨌든 내가 원인이기도 하니까.”
이번 산불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그런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죽고 싶은 자살 희망자이며, 쓰레기들을 보면 못 참는 분조장이지만, 그래도 사회인으로서 책임감은 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예, 그러시군요. 아주 잘하셨습니다.”
얼핏 비꼬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으나 정우진은 진심 어린 눈빛을 룸미러 너머로 눈빛을 보냈다.
“이제 다 왔습니다.”
그의 차량이 길인 듯 아닌 듯 애매한 곳으로 조용히 들어가더니 이윽고 지하로 이어진 터널로 들어갔다.
“연구소 도착입니다.”
터널 끝 아주 커다란 철문을 앞에 두고 그가 말했다.
**
“반갑습니다. 연구소장 김태성입니다.”
머리가 희끗한 초로의 남성이 악수를 건넸다.
그의 뒤로도 여러 사람이 나를 맞이하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최태혁입니다.”
이런 정상적인 인사가 아주 오랜만인 듯 느껴져 어색했다.
인사를 마친 나는 앞장선 그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들으셨겠지만 이곳은 세계 대지진 이후 정부에서 비밀리에 준비한 연구시설입니다. 당연히 그 주제는 마나홀과 마나, 그리고 각성자에 대한 연구지요.”
우리나라에서 마나홀은 관측되지 않았으나, 지진계가 있으니 어디가 진원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그날 분명 속리산 인근에서 지진이 났음을 파악하고 근방을 이 잡듯이 뒤졌다.
물론 결과는 허탕이었고 어떻게든 단서를 잡으려다 보니 자연스레 이곳에 연구실이 들어선 것이었다.
“사실상 연구소라고는 하지만 데이터도 없는 겉 포장뿐입니다. 지금까지는요.”
김태성의 눈이 나를 보며 빛나는 게 느껴졌다.
“각성자 능력 테스트를 위해 오늘 방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정우진의 추천이었다.
세계적으로 게이트 사태로 정신이 없고, 한국도 정세도 산불로 눈이 돌아간 지금이 기회라고.
지금 내 능력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해 놓으면 차후에 분명 도움 될 것이라 정우진은 생각한 것이었다.
“따라오시죠.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곳 연구소를 한번 둘러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예? 꼭 그럴 필요가···.”
무슨 관광 온 것도 아니고 내가 시설을 봐둘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내 한 마디에 뒤를 따르던 흰 가운을 입은 무리가 실망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 그러면 한번 볼까요?”
“그, 그럼 먼저 이계 분석실은 어떻습니까?”
“이계 분석실?”
한 남성의 말에 나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그러자 질문을 받은 남성은 안경을 중지로 들썩이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네, 네. 마, 맞습니다. 이계 분석실. 마나홀은 지금까지 지구상··· 아니, 우리 우주에서는 관측된 적 없는 에너지 파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려져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그 현상이 발견된 적이 없기 때, 때문인데요. 그런 만큼 이 마나라는 에너지 자체가 다, 다른 차원의 우주에서 온 것이 유력하, 하다는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그, 그래서 이계 분석실은 마, 마나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와 분석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보고된 적 없는 새로운 물질들을 보, 보관하는 부서인데···. 지금 최, 최태혁씨에게 이계 분석실을 소개시켜드리려는 이, 이유는···.”
“그만, 그만! 내가 설명하겠네.”
“아, 아아···. 소, 소장님···.”
남자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김태성 연구소장이 말을 뺏었다.
그는 눈에 띄게 시무룩했지만 얌전히 한발 물러났다.
“설명은 대충 들으신 대로입니다. 긴말 필요 없고 바로 가보시죠.”
김태성을 따라간 구역.
그곳은 조금 투박하지만 내가 상상하던 모습의 연구소가 눈앞에 있었다.
“이쪽입니다. 저희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은 여기 있습니다.”
김태성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투명한 유리 박스가 커다랗게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낯설지 않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이놈들은···. 태백의 괴물들이잖습니까?”
“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시신이지요.”
그랬다. 태백 게이트 사건 때 질리도록 상대한 푸르죽죽한 괴물들.
그것들의 시신이 해체되어 표본화되어 있었다.
“이건 뭐, 거의 에일리언 연구손데···.”
어딘가 많이 보던 장면에 비위가 상했다.
그때는 나도 신나서 때려죽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놈들의 피비린내가 달콤하고 그런 건 아니었다.
“이곳에 저를 왜 데려오신 겁니까?”
그다지 더 보고 싶지 않은데.
“이들이야말로 마나가 이계에 닿아 있다는 명백한 증거지요. 최태혁씨께서 활약해주신 덕분에 처음으로 저희에게 그럴듯한 표본이 들어왔으니 감사의 인사도 드릴 겸.”
“아, 그렇습니까.”
으, 외계인이고 뭐고 알아서 해라.
죽은 외계인은 착한 외계인. 나쁜 놈이 아닌 놈은 더 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등을 돌렸다. 그런데 그런 나를 김태성 소장이 다시 붙잡았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아니요.”
“이들이 어떻게 그 어마어마한 폭격을 견딜 수 있었을까요?”
이 양반이···. 안 궁금하다니까.
아까 그 남자를 뭐라 할 때는 언제고···.
알고 보니 똑같은 사람들 천지구만.
“이 개체들에게 임의로 ‘머맨’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귀하게 들어온 표본을 조심스럽게 해부했지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뭐가 말입니까?”
“포격에도 버티던 이들의 피부를 저희가 어떻게 자르고 가를 수 있었을까요?”
그렇긴 하지. 만약 살아있을 때 그대로라면 웬만한 장비로는 흠집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저희가 분석해 본 결과. 이들의 신체 구조는 저희가 알고 있던 지식으로는 쉽게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현상은 정리할 수 있었지요. 얼핏 우리 같은 포유동물과 어류 사이의 모습을 갖춘 이들은 외골격 위에 다시 피부가 있는 신기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갑오징어 같이요. 그리고 그 강도는 바다 거북이의 등껍질 위에 상어의 가죽을 덧댄 정도랄까. 가히 굉장한 내구성이지요. 그렇지만···.”
그래. 이상하겠지.
거북이의 등껍질에 상어의 가죽?
아마 그 정도라면 지구의 맹수 중에서 그것을 뚫을 송곳니를 가진 놈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상식선이지요. 지구의 생물과는 다르지만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것. 그렇다면 그들을 상식 밖의 존재로 만든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생각할 것도 없죠. 마나 아닙니까?”
내가 즉답하자 김태성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최태혁씨께서 이 머맨들과 전투하던 상황의 드론 영상을 보았습니다. 맹목적으로 최태혁씨께 달려들더군요. 마치 처음부터 당신이 목적이었다는 듯이. 그들은 과연 무엇을 노린 것일까요? 아마 최태혁씨 또한 마나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김태성 소장은 각성자들의 기이한 능력도 역시나 마나가 직접적 원인일 것이라 추론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그건 사실이다. 이 머맨이라는 것들은 실제로 마나로 육체를 강화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간단한 사실조차 이들은 연구와 추론을 통해서 알아내야만 했던 것일까.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나는 그 외에도 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한 가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놈들이 내가 마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달려들었다고?
아니. 아니다. 외국에는 이미 사례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마나홀 탈취.
놈들의 목적은 게이트를 넘어 마나홀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이 머맨들은 처음부터 내 가슴을 열어 마나홀을 끄집어내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말이었다.
···졸지에 외계인에게 목숨이 노려지게 생겼군. 태백 사건으로 끝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최태혁씨 이쪽으로 와서 잠깐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상념에 빠져 있던 나를 김태성 소장이 불러 깨웠다.
“뭡니까?”
퍼뜩 정신을 차린 내가 부른 곳으로 가보니, 그곳엔 머맨의 가죽을 A4용지 크기만큼 잘라놓은 것이 있었다.
“혹시 마나를 이 가죽에 불어넣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아까의 가설의 확인입니다. 보십시오.”
깡! 깡!
그는 망치와 끌을 가져오더니 가죽에 대고 두어 번 두들겼다.
“자, 이 정도면 지구 생물에 비해 질기긴 하지만 자국이 남지요? 그런데 만약 마나가 이들의 가죽을 강하게 만든다는 가설이 맞다면···.”
“좋습니다. 해보죠.”
뒷말을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나는 가죽에 손을 짚고 몸속에서 기운을 끌어모아 마나를 불어넣었다.
“해보세요.”
깡! 깡! 깡!
“역시! 역시 그랬어!”
놀랍게도 내가 마나를 불어넣은 것만으로 가죽이 망치로 두들긴 끌을 튕겨냈다.
이건 머맨들의 살아생전 강도와 비슷하다. 직접 붙어봤기 때문에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굉장하군요! 죽은 시신의 조각이라도 마나를 불어넣어 기능을 되찾다니. 흠···. 잠깐만. 그렇다면 각성자들의 강함도 이론적으로···. 만약 비각성자의 몸에 마나를···.”
김태성 소장은 턱을 괴고 혼잣말을 시작했다.
주위를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 어. 그, 그러면 머맨의 가죽이나 골격을 사, 사용하면 각성자 전용 장비를 마,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주임!”
아까 전, 장황하게 말을 뱉어놓았던 남자. 이 주임이 다시 이야기에 끼어들며 아이디어를 냈다.
그 말을 들은 김태성 소장은 잠깐 생각해보더니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이렇게 된 거 최태혁씨께 맞는 맞춤 슈트라도 만들어드리는 게 좋겠군요! 기념이지 않습니까. 첫 연구소 방문. 그리고 앞으로 고된 일도 많으실 테고요. 물론 저희들의 연구도 진척되고 말입니다. 하하!”
김태성은 아주 기쁜지 양손을 펼치고 활짝 웃었다.
흐음. 전용 장비라.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나갈 때마다 옷이 넝마가 되어 불편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마나를 불어넣어서 강도를 유지할 수 있는 옷이 있다면 꽤 편하긴 하겠군. 가죽이니 신축성도 있을 테고.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쫄쫄이로는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쫄쫄이 위에 팬티 입는 슈퍼맨 패션은 사양이니까.
“예, 좋습니다. 물론 잘 만들어 드려야지요! 다행히 재료도 넉넉하고 말입니다. 아,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던 무기도 있는데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그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나서 나를 이곳저곳 끌고 다녔다.
마나가 있어야 연구가 될 텐데 각성자들이 하나도 없으니 오죽 답답했었을까. 어떻게 보면 딱한 생각도 들었다.
끌려다니면서 물어보니 그들은 원래 충분히 과학자라 불릴 만한 연구자들이었다.
말만 하면 알만한 유명한 곳 연구직 출신들도 많았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쉽게 말하면 해외로 스카웃 될 만한 ‘천재’에 가까운 인재는 거의 없고, 한국에서 애매한 대우를 받는 수재들뿐. 그래도 외국에 나갔으면 한몫들은 챙겼을 텐데.
“한국이 그렇죠, 뭐. 기술직, 연구직, 순수 과학 이공계는 한계가 명확하지 않습니까. 대우가 좀···. 하하. 그래도 이 나라에서 났으니 정을 붙이는 건데···. 아, 그래도 진짜 이번에 최태혁씨 아니었으면 저희도 외국으로 나갈 뻔했습니다. 그마저도 저희는 각성자가 아니라 해외 연구도 힘들었겠지만요.”
생전 처음 접한 마나라는 것을 연구하라고 정부에서 데려다 놓긴 했는데 곧바로 실직에 가까운 한직이 되어버렸으니 마음이 오죽했을까.
연구소를 둘러보니 없는 곳간에서 어지간히 노력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그래도 이제 최태혁씨가 계시니 저희도 할 일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방문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함박웃음을 짓는 소장과 연구원들.
“저 때문에 일이 생겨요···?”
“예, 물론이지요!”
나는 어쩐지 그 말이 제대로 인지가 되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테스트를 하러 가보실까요? 이쪽이 진짜 본방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정말 기대됩니다.”
“뭐가 말입니까?”
김태성은 지금까지보다 더욱 신이 나는 표정으로 내 질문에 답했다.
“저희 연구진들은 최태혁씨가 지금까지 발표된 각성자들을 제치고 역대급 기록을 보여주실 거라 예측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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