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타 던전(3)

연구소에서 머맨의 시신을 살핀 후 문득 떠오른 의문이 있었다.
‘이놈들도 자기네 세계에선 각성자가 아닐까?’
마나를 주입하면 살아생전처럼 강해지는 가죽과 뼈.
그것은 이 괴물들도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는 우리와 같은 생명체라는 것.
그렇다면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그러니까 반대로 우리가 쳐들어가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죠. 여러 모로 생각해도 그게 정답입니다. 주지사님.”
나는 조지아 주지사 라이언 켈럽에게 그렇게 말했다.
**
애틀란타의 안보와 조지아의 마나홀을 탈취하려는 벌레로부터 혁혁한 공을 세운 검은 머리 외국인.
그런 내가 요청할 것이 있다는 말에 주지사가 직접 달려왔다.
“주지사님은 못 보셨겠지만 다른 각성자들의 말을 들으셨잖습니까.”
“크흠···.”
나의 다그침에 라이언 주지사가 신음을 흘렸다.
그는 놀랍게도 몇 명의 호위를 대동하고 게이트가 있는 전쟁터 현장에 바로 나타났다. 아무래도 종전이 되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강단 있는 인물이군 싶었다.
그런 그를 위해서 우리는 그와 함께 게이트 앞으로 향했다.
“맙소사.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그때 게이트를 살피던 중, 여섯 계통 중 감지 능력이 뛰어난 헌터가 경악했다. 그러자 라이언 주지사는 그 외침을 듣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제대로 설명해보게.”
“주지사님···. 이 구멍 안에서 괴물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착각하는 거 아닌가? PTSD처럼 무언가 잘못 본 건···.”
“아니요. 맞을 겁니다. 저도 보이지는 않아도 느껴지거든요.”
“자네는?”
“한국에서 온 최태혁이라고 합니다.”
“아! 자네가 바로!”
생각해보면 정부에 타국의 각성자를 직접 요청한 것이 바로 이 주지사 양반이었다. 군대를 파견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각성자를 직접 원했던 것을 보면 그는 이 사태를 맞이한 사고가 꽤 유연한 편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
“하지만 자국 수호는 몰라도 외계로 공격을 나서는 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오.”
다시 돌아와 현재. 라이언 주지사는 나의 제안에 깊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최선의 방어는 바로 공격이란 걸 아시지 않습니까.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원인을 뽑아야죠.”
“듣자하니 초이, 당신은 게이트를 강제로 닫아서 해결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식으로 게이트를 닫으면 되는 일 아니오? 굳이 쳐들아갈 필요없이.”
역시 주지사쯤 되면 말 한마디에 휘둘리거나 할 짬바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내 호들갑에도 침착을 잃지 않고 생각한 바를 찔러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속내를 드러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저들이 지구의 마나홀을 노리고 쳐들어온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도 그들의 마나홀을 뺏어올 수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 게이트를 어떻게 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통로가 일방통행일지 아닐지는 모르는 바가 아닌가?
먼저 선빵 친 놈들은 저것들이니 깽값을 좀 받아야 속이 후련할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아직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도도 안 해봤으니까요. 만약에 문제가 생긴다면 제가 전에 했던 것처럼 게이트를 닫으면 될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다른 주나 나라는 벌써 게이트 너머 탐험을 비밀리에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주지사를 살살 꼬드기자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초이. 그대를 원군으로 요청한 것은 나이고, 당신은 그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의 지도자로서 저도 판단을 내려야겠지요.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건 뭡니까?”
주지사는 바로 핵심을 요구했다. 물리적인 힘은 나에 비할 게 못 되지만 역시 이런 협상 쪽은 이 사람의 전장인가. 그러나 나도 호락호락하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이번 스톤 마운틴에서 처리한 벌레놈들의 부산물을 주십시오. 그리고 게이트로 넘어간 후에 얻어올 물건에 대해서도.”
“얼마나?”
“깔끔하게 절반.”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정우진의 지시대로 대충 해결하고 가려고 했을 뿐.
그러나 막상 와보니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공통된 적을 상대로 단합하는 수 백명의 각성자들. 느껴지는 동료애.
그런 모습을 보니 문득 없는 살림으로 아등바등하고 있는 속리산 연구소의 연구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머맨들의 가죽이나 두들기고 있을 텐데 단단한 벌레 갑피도 가져가면 또 좋아하지 않을까.
“그건 불가하오. 미국 땅에서 난 것은 미국의 것이지. 그대가 함부로 들고 갈 수 없소. 어차피 초이 당신이 받을 정당한 보수는 한국을 통해 전해질 거 아니오?”
그러나 내 계획에 조지아 주지사가 딱 잘라 거절을 하고 나섰다.
거기에 발끈한 나는 다소 공격적인 어투가 되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땅에서 난 건 아니죠. 거기에 제가 없었으면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협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 거 같습니까?”
“그건 또 모르지. 우리 조지아 각성자만으로 처리할 수 있었을지. 솔직히 초이 당신이 오자마자 상황이 종료된 건 맞지만 우리 쪽 병력이 거의 다 정리한 것에 당신이 약간 조력한 거 아니오?”
칫···.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 이건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혀를 차고 있자 주지사가 표정을 바꿔 다시 말했다.
“좋아요. 그래도 은인에 대한 감사를 이런 식으로 넘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 5%. 5% 정도는 드리도록 하지.”
“5%? 너무 적어요. ···20%는 주십시오.”
“까짓 거 그렇게 합시다. 그럼. 20%! 물건이니 딱 떨어지게 나누는 건 힘들더라도 정당하게 느낄 수 있도록 분배에 힘 쓰도록 하지.”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웃음에 어쩐지 본능적인 긴장이 몰려왔다.
“대신 나도 한 가지 제안이 있소.”
역시.
“···뭡니까?”
나도 모르게 경계하는 눈빛을 했는지 주지사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쁜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오. 다른 게 아니라 우리나라로 이민을 오는 건 어떻소? 기회의 땅 미국. 특히 내가 있는 조지아로 온다면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죠. 저쪽 나라 축구 선수 따위의 연수익은 우습게 넘을 겁니다. 어때요? 아, 그래. 포카콜라 회장과 얘기해 전속 모델로 추천하는 것도 좋겠군. 원래부터 UFO 출신 선수잖습니까? 그러면 더 못할 것도 없지.”
미친···. 포카콜라 모델? 그것도 본토의 땅에서?
그래도 나도 꼴에 UFO 선수를 뛰며 본 거 들은 게 있는 사람이다.
지금 그가 말하는 대우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왔다. 세상에 미국은 이렇게 각성자 취급이 좋나.
“제가 한국에서 어떤 짓을 저지른지 알고 하는 말씀이십니까?”
“오브 콜스! 하지만 그렇게 무슨 상관입니까. 오히려 캐릭터 만들기 좋군요. 악을 용서치 않는 정의의 화신! 마치 슈퍼맨 같군요.”
“···.”
아니다. 어쩌면 우리나라를 빼고 모든 나라들이 각성자를 포섭하는 것에 혈안인 건 아닐까?
고민이 됐다. 그의 얼굴을 보니 어디까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소연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뭐라고 했을까? ‘잘됐네, 오빠! 미국물 몇 번 먹더니 완전 미국 사람 되겠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출세하자!’라고 당차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생각하니 장인어른과 처제인 지우도 생각났다. 정우진이 24시간 보안 감시를 하고 있댔지. 한국에 가면 한 번 얼굴을 뵈어야겠다. 그들과 함께 새 나라에서 사는 것도 좋을지도 몰라. 어차피 아픈 기억밖에 없는 나라가 아닌가, 한국은?
그런 상상 회로를 돌리다가 질끈 눈을 감았다. 세상 빛도 보지 못한 우리 아가. 억울하게 죽은 우리 가족들. 천국에 있을 내 짝지 소연이.
산 사람은 살아진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묻어야 할 게 너무 많은 것 같았다.
“초이? 우는 겁니까?”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안은 다음에 다시 상의하는 걸로 하죠. 저는 아무래도 한국에서 할 일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
감은 눈을 뜨고 눈물을 훔쳤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내 갑작스런 눈물에 당황하던 라이언. 그는 곧 표정을 고치고 미소지었다.
“좋습니다. 약속한 20%는 그대로 드리는 걸로 하죠. 미리 선 계약금 걸어두는 셈 치죠. 이번 토벌과 게이트 탐사에 있을 부산물의 20%. 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렇게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군요.”
길게 입씨름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여차하면 좀 더 강압적으로 나갈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예. 아직 그것들의 가치가 얼마나 될지도 모르니까요. 생각보다 높은 금액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별거 아닐 수도 있고!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조지아의 주지사는 어쩐지 통 큰 사업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자, 모두 준비됐지?”
퀵이 내 옆에서 뒤의 일행들을 보며 확인했다.
그러자 백 여명의 각성자들이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자, 저거넛.”
“그래.”
나는 게이트에 손을 대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태백에서는 강제로 구멍을 닫았지만, 이번에는 뚫고 나간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 게이트 너머에는 분명 새로운 세상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후우우···! 흐아압!”
무거운 바위를 밀 듯 힘을 주었다. 아무래도 10m 밖에 되지 않았던 태백 게이트의 열 배라 그런지 더 강한 힘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끄아앗!”
마치 수백 겹의 비닐 랩으로 싸인 구멍을 통과하는 느낌. 강한 저항력을 느끼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열린다! 우리도 가자!”
“와아아!”
게이트에 반응이 오기 시작하자 각성자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 달라붙어 마나를 불어넣었다.
혹시나 싶어 비각성자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거기에 전원이 모두 특별한 능력이 있는 상급 각성자.
이 정도 인원이라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대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밀어!”
“하나! 둘! 하나! 둘!”
마치 단체 장애물 밀기 같은 스포츠를 하는 것만 같았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된다. 저 멀리에선 벌레들의 마나도 느껴진다. 저놈들을 처리하고 놈들의 행성에서 마나홀이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습득해오면 엄청난 이익이 발생하겠지.
“으리야앗!!”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힘껏 마나를 끌어올렸다.
“미친! 뭐야, 저 마나량은!”
“홀리···. 같은 S급 맞아?”
“왓 더···. 싸울 때 보인 게 전력이 아니었군, 브로.”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죽을 맛이었다.
“힘 빼지 마! 이 머더 뻐커들아! 똥 지릴 거 같으니까 밀라고!”
“어, 어어! 알겠어!”
“야, 다같이 밀어! 하나! 둘!”
이 새끼들이 어디서 뺑끼를 쳐? 놀라는 척하면서 쉬지 말라고.
“잘 밀린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보자!”
“좋았어! 이번엔 우리가 벌레 새끼들 조지러 간다!”
“오우우우!!”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함성을 질렀다.
이런 기세라면 아까와 같은 전투를 몇 번이고 더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한 번 무찌른 적이니 노련미도 더 생길 것.
문제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지지직···. 찌익!
순간 우리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던 게이트의 장막이 단번에 찢어지는 느낌이 들며 우리를 쑥 잡아당긴 것이었다.
“어? 어어?!”
“어어어!!!”
나를 포함한 모두는 지지대가 갑자기 사라져 고꾸라지듯 게이트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보게 된 풍경은.
“맙소사···. 여기가 어디야.”
“지구···? 어, 아닌데? 이게 뭐야?!”
마치 핵전쟁으로 인류가 망해버린 후, 수 만 년이 지난 것 같은 모습의 열대 우림 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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