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을 얻는 또 다른 방법

불 꺼진 방에 가만히 누워 녀석의 흐느낌을 듣다 어느정도 진정된 듯 했을때 입을 열었다.
“이제 좀···”
“느허어어어업!”
내가 입을 열자마자 녀석은 기겁을 했다.
슬쩍 돌아보자 돌아 누워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어.”
“어, 으아! 죄, 죄송합니다!”
“그래. 이제 좀 진정이 됐냐?”
“...네.”
“왜 그러고 있었냐?”
내 물음에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기다렸다.
머리가 어느정도 정리되면 말을 하든 하지 않든 할테니까.
이런 걸로 재촉하는 것도 별로 하고 싶진 않았고.
방의 천장을 바라보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녀석이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슨배임. 제가 왜 프로에서 통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십니다.”
잠시 고민했다.
녀석을 보면서 항상 생각했던 건 공이 좋다는 거였다.
묵직한 포심과 각이 큰 슬라이더, 체인지업 대신 구사하는 오프스피드볼 성 커브 같은 공들은 매우 위력적이었으니까.
그럼에도 프로에 와서 공략 당하는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습관 같은 것이 읽히고 있는 거라면 매우 곤란한데 말이지.
“저··· 슨배임?”
녀석은 조바심이 나는지 나를 불렀다.
일단은 차근차근 납득부터 시켜야 할 듯 하다.
“네 볼은 위력적이야.”
“네?”
“프로에서 안 통할 수준은 아니라는 거지.”
“그렇습니꺼···”
녀석은 조금 실망한 듯 했다.
당연하겠지.
모두 녀석에게 이렇게 말을 했을테니까.
내 말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말로 던진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 그런데도 안 통한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는게 맞겠지.”
“...네?”
“난 네 투구폼이 읽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슨배임!”
“무슨 말이긴. 공을 던지기 전부터 네가 뭘 던질지 광고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지.”
“어···”
슬쩍 돌아본 녀석의 표정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한 표정.
그러다 뭔가 해법을 발견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조금씩 눈에 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꺼?”
“말했잖아. 네 볼은 프로에서 통할 수준이라는 거. 그런데도 얻어맞고 있으면 다른 방향에서의 접근이 필요한거야. 그리고 난 네 투구폼이 읽히고 있다고 보고 있는 거고.”
“어, 어떤 것이···”
“나야 모르지. 내가 이 팀에 온지 얼마나 됐다고.”
“울브즈에서는 혹시 알고 있었습니꺼?”
“알아도 내가 관심 가질 건 아니잖아. 내가 너랑 타석에서 맞대결 할 것도 아닌데.”
“아···”
녀석은 조금 시무룩해졌다.
“그러니까.”
“...네?”
“내일부터 한번 봐주마.”
“그, 그래도 되겠습니꺼?
“일단 문제가 뭔지부터 찾아보자고.”
“감사합니다 슨배임!”
“아직 일러.”
“아닙니더! 도움을 주려 노력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더!”
조금 흥분한 듯이 눈을 빛내는 조형수.
다행히 기분이 나아진 듯 하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야겠지.
“그래.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 울고 있었는데?”
“아···”
녀석의 표정이 다시금 안 좋아졌다.
잠시 침묵하던 녀석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내가 깜빡 잠이 들뻔한 그때였다.
“주 코치님이 2군으로 내려가라고 합니더. 이번 시리즈 끝나고예.”
“그래?”
2군이라···
2군이란 말이지.
뭐 나쁘진 않겠네.
이유도 알 것 같고.
“그거 좋네.”
“네? 슨배임 너무 합니더. 자기 일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닙니꺼.”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치는 조형수.
역시 이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만.
“너 이대로 1군에서 계속 던져봤자 성적 안 나올거 같으니까 2군가서 정비하고 오라는 거잖아.”
“그래도 말임더···”
“겸사겸사 멘탈도 좀 챙기고.”
“아···!”
말을 하다보니 예전 한용민 선배님이 해던 말이 떠올랐다.
‘내려놔야 보이는 것도 있다고 하셨던가?’
나한테 적용되는 말인지는 깨닫지 못했는데 지금 이 녀석을 보니 선배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2군에 내려가서 차분히 추슬러. 그래야 보이는 것도 있을테니까.”
“뭐가 말입니꺼?”
“공 던지기 전의 습관 같은 거.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어떻게 하면 안 들킬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잖아.”
녀석은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십니꺼?”
말로는 전달이 잘 안되는구나.
한용민 선배님이 날 가르칠때 왜 그렇게 답답해 했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래. 그러니까 일단 자자. 나머지는 내일 일어나서 고민하자고.”
“알겠십니더! 안녕히 주무십쇼!”
“오냐.”
그 말을 끝으로 수마에 몸을 맡겼다.
*****
늦게 잔 만큼 아침 늦게 일어났다.
그리고 루틴을 따라 운동을 하고 조형수 녀석과 투구 폼을 찍어가며 이리저리 비교했다.
보통 이런건 전력분석실에서 해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마린즈 전력분석실은 제대로 작동을 안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둘이서 머리를 맞대며 투구 폼을 고민한 결과는 잘 모르겠음 으로 나왔다.
하긴 그렇게 쉬우면 아직까지 모를 리도 없겠지.
일단 최대한 알아보고 부족한 건 2군에 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드래곤즈 파크로 이동.
구장 적응 훈련과 몸풀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구장으로 오기 전에 몸도 어느정도 푼 상태.
게다가 곧 2군으로 내려갈 조형수도, 오늘 하늘이 두쪽나도 등판이 없을 나도 컨디션은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래서 우리는 아까 하던 투구 폼을 다시 점검했다.
그런데···
“스탑! 움직이지 마!”
다시 투구 폼에 들어가려는 조형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투구 폼에 들어가려던 녀석이 움찔하며 멈췄다.
“하아···”
이제 알겠다.
뭐가 문제였는지.
“왜, 왜그러심까 슨배임!”
“찾았다.”
“네?”
“네 버릇.”
여전히 어리둥절하고 있는 녀석.
모르고 지나치면 모를만큼 아주 미세한 버릇이었다.
그런것 보다 상대 타자들은 어떻게 이런걸 찾아냈는지 신기할 정도다.
“뭐, 뭡니까 슨배임!”
여전히 투구 자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녀석.
촬영하던 폰을 삼각대에서 분리하고 저장했다.
그런 다음 녀석에게 이리 오라고 한 다음 자리에 가서 앉았다.
“자, 잘 봐.”
“넵!”
“이게 패스트볼 던질때의 네 투구 폼이야.”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생되는 화면에 집중했다.
공을 받아들고 글러브 안에서 그립을 잡는 모습이 비쳤다.
그리고 스탑.
다른 영상을 재생했다.
“이게 네가 슬라이더를 던질때.”
이번에도 아까처럼 그립을 잡는 모습까지만 보여주고 재생을 멈췄다.
“슨배임?”
“있어봐.”
그리고 다음은 커브.
녀석은 영상을 다보고도 모르겠다는 듯이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아직 모르겠지?”
“네.”
“자 그럼 이번엔 유니폼에 적힌 마린즈 스펠링의 R자에 집중해서 봐봐.”
“R입니꺼?”
“그래.”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고 난 이번에도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순으로 녀석의 투구 준비단계를 보여줬다.
“모르겠는데예.”
“힌트를 하나 더 주자면 네가 들고 있는 글러브 끝부분도 같이 봐봐.”
“글러브 끝은 와예?”
“이건 보면 알 걸?”
다시 영상을 재생해줬다.
녀석은 집중해서 영상을 봤다.
그러더니 머리를 망치에 한대 맞은 것 처럼 크게 끄덕였다.
“아! 아아아···”
이제야 알아차린 모양이네.
“봤냐?”
“몰랐십니더.”
녀석은 패스트볼 영상을 잠시 바라보다 슬라이더로 넘겼다.
패스트볼에서는 준비단계에서 R자 끝부분을 글러브가 덮고 있었지만 슬라이더는 R자가 다 보이는 지점에 글러브가 있었고 커브는 R자가 끝나고도 약간 틈이 남았다.
패스트볼 글러브 위치에서 커브 글러브 위치까지 길이로 따지자면 약 5cm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변화였다.
유니폼에 박힌 스펠링이 조금만 더 작았다면 아무도 몰랐을 것 같은데 하필 마린즈로 와서는···
뭐, 그것도 이 녀석의 운명이란 거겠지만.
“와··· 타자들은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예.”
“그 사람들도 필사적일테니까.”
“그라믄 이거 커브 던지는 척 하면서 패스트볼 던지면 타자들을 속일수도 있는거 아닐까예?”
“너 이거 의식적으로 할 수 있냐?”
“어···”
조형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투구자세를 잡았다.
“어떻십니꺼?”
“역으로 속이지는 못 할 거 같고 네가 약점을 알아챘다는건 알겠다.”
“네?”
녀석은 글러브를 내려다봤다.
“아, 쉽지않네예.”
글러브는 R자의 끝을 많이 덮었다.
“그냥 고쳐. 2군 내려가서 준비자세만 어떻게든 고치면 될 것 같다.”
녀석은 뒤통수를 몇번 긁적이다 바보같이 웃었다.
그리곤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감사합니더 슨배임!”
“뭘.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리냐.”
“이 은혜 잊지 않겠십니더!”
“그래그래. 팀의 에이스가 되어 날 한국시리즈로 데려가 다오.”
“걱정마십쇼! 그건 제 꿈이기도 하니까예.”
그렇게 오늘의 훈련은 끝났다.
*****
드래곤즈와의 시리즈 2차전은 나의 등판이 없을거라 감독님이 이미 못을 박았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덕아웃에 앉아 야구를 관람했다.
그리고 결과는 7:6으로 아쉬운 패배.
7회말 2사 1, 3루에서는 감독님과 투수코치님의 시선이 흘끗흘끗 나를 향했다.
고민이 깊은 모양 이었다.
그래도 3일동안 연투, 거기에 이틀은 멀티이닝을 소화했다.
나도 내 몸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 하루 쯤 쉬어가는 것이 좋겠지.
예전 한용민 선배님이 인생은 길다고 했던 말도 있고 하니까.
그래서 조용히 외면했다.
감독님도 코치님도 나에게 투구를 강요하진 않았다.
울브즈에서는 가! 하면 올라갔었는데.
팀 분위기는 확실히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어쨌든 그렇게 이어진 드래곤즈와의 시리즈 3차전.
이번에는 내가 등판할 기회조차 없었다.
마린즈의 5선발이자 고등학교때부터 친분이 있던 이용국이 1회부터 완전히 무너져 버렸으니까.
1회에만 3점을 내주고 4회에 또 4점을 내주며 경기에 마침표를 찍어버렸다.
타선은 상대 3선발인 최현식 선배의 호투에 막혀 6회까지 1점으로 꽁꽁 묶였고.
경기는 9:1로 대패.
덕분에 이틀동안 푹 쉬었다.
그래서일까 부산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조용했다.
시리즈 1차전을 이기고 나서는 그렇게나 시끌시끌 했는데 말이지.
그래도 이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침울하기만 한 건 아니었으니까.
패배를 곱씹으며 승리를 끌어오려는 느낌이 모든 선수들의 눈에 서려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모두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만 없는 느낌.
약간 소외감이 드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 앉은 정기철이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세진아.”
역시 할 말이 있었던 건가?
굳이 내 옆에 앉는 것을 보니 그럴거라 생각은 했는데 갑자기 무게를 잡으니까 좀 징그럽네..
일단 내용이 뭔지는 모르겠으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왜?”
“너 소문 들었냐?”
“뭔 소문?”
녀석은 날 힐끗 보고는 남들에게 안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약 한다는 소문.”
흠···
올 것이 왔군.
“아니. 안 하는데?”
“진짜 아닌거지?”
“당연하지. 하면 나락 가는데 굳이 그런 걸 왜 해?”
하지만 녀석의 표정에 서린 의심의 기운은 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하아··· 네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로 알겠다만 요즘 KBO에 푸쉬가 많이 들어온다네.”
“누가 그래?”
“홍창민.”
홍창민? 홍창민··· 홍창민···
아!
“고등학교때 백업 내야수였던 그 녀석?”
“그래. KBO들어 갔잖냐.”
“하긴 그 녀석 공부 잘했지.”
“공부로 들어간건가? 모르겠네.”
“아무튼 나 때문에?”
“아마도?”
하긴 그럴만도 한가?
내가 생각해도 정상의 범주는 벗어난 성장세니까.
어린 선수도 아니고 20대 중반을 넘어서는 선수가 이 정도의 폭풍 성장을 하는 것은 확실히 의심스러울 만하다.
그렇다해도 별로 거리낄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만간 도핑테스트 할거란 소문이 돈다.”
“좋네. 언제쯤?”
“좋다고?”
“나야 거리낄게 없으니까.”
그제서야 녀석의 얼굴에서 사라지는 의심의 빛.
“확실히 안 하긴 했나보네. 테스트가 언제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말 나온걸 봐선 조만간 할 거 같긴 한데.”
“흠, 그래. 기대되네.”
“뭐가?”
“지금 야구판에 약쟁이가 얼마나 있을지 말이야.”
그 말에 녀석은 피식 웃었다.
“그러게.”
이 대화 이후 정기철은 곧 코를 골며 잠에 들었다.
주변은 조용했다.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쉬며 시야 한구석에서 깜박이는 반투명 창을 바라봤다.
이게 갑자기 왜 깜빡이는지 모르겠네.
스탯을 쌓은 것도 아닌데.
아까부터 깜빡이는게 너무 신경쓰였지만 정기철이 말을 걸어 확인하기 힘들었다.
녀석과 대화를 하다가 이상한 손짓을 하면 미친 놈 취급 받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조용해질때까지 일단 참았다.
그리고 녀석이 잠든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간일 것 같다.
손을 움직여 반 투명창을 열었다.
[축하합니다! 팀 동료를 성공적으로 교정하셨습니다. 이에 특전 선택권을 지급합니다.]
[더 많은 동료들의 성장을 이끌어내 보세요!]
하?
이렇게도 특전을 준다고?
-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은세상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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