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세상의 무한 전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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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협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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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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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5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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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세번째 삶

DUMMY

내 안에서 무언가가 덜컥 내려앉았다.


‘···뭐라고?’


그 단어들. ‘축기단’, ‘괴뢰’ 그건 분명 내가 현대에서 읽었던 선협물에서나 보던 용어였다.

나는 숨을 잠시 고르며 그를 응시했다.

붉은 삿갓 아래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표정을 읽기 힘들게 했다.

그 손엔 무기도 들지 않은 채, 마치 마실을 나온 듯한 여유로운 태도와 검은 도포 자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그 모습은 딱 ‘수선자(修仙者)’라는 단어와 맞아떨어졌다.


애초부터 요수(妖獸)가 등장한 마당에 이세상은 ‘무림’만 실재하는게 아니라, 수선계가 동시에 존재를 암시했었다.


‘수선자가···!.’


모든 전생 통틀어서 32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수선자를 여기서 조우할 줄이야.


나는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손에 익은 검이었지만 그에게 어디까지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너, 뭐지."


내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소름이 끊임없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다가,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 눈웃음을 지었다.


"하등계 무인(武人)치고는 감이 빠르군. 어찌, '수선인'을 처음 보는 눈빛인데?"


그말이 맞다. 모든 생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이전 생의 기억 속 수많은 선협소설은 허구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정말로 무공이 존재하고, 진기를 쌓아 무를 이룬 무림이 실재하며, 그 위에 다시 수선를 닦아 천명을 거스르는 자들, ‘수선자’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나는 잠시 어지러운 머리를 뒤로 젖혔다.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왜 지금? 왜 여기에?’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축기단’을 언급했다. 축기는 수선자들이 기초적인 경지를 돌파하기 위한 단약으로 설정되어 있는 단약이었다.

일반적인 선협 속 세계의 설정이라면 그 밑의 가장 아랫 단계의 경지가 떠오른다.


"너는 연기기(煉氣期) 수도자인가?"


내 말에 그는 웃었다.


"그걸 알고 있다면 상계(上界)무인의 제자나 연을 닿은 무인이겠지."


그가 말을 끝마치자 손끝을 튕기자, 허공에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순간, 내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검을 움켜쥐고 옆으로 튕겨 나갔다.


파앗—!


내가 방금 있던 자리, 땅이 움푹 파이며 돌가루가 흩날렸다.

분명한 기공이었다. 공간을 찢는 ‘의지의 발현’. 수련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경지

그는 분명히 수선자였다.


"오호, 그걸 피하다니."


그가 또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심장은 빨라졌지만, 머릿속은 차가웠다.


‘상계무인···’


나는 그 말을 되새김질했다.

수선자조차 무인과 구분해 부르는 단어.

그리고 그 단어 앞에 굳이 ‘상계(上界)’라는 접두를 붙인 것.


이곳은 선협 세계다.

무림이 존재하고, 수선이 존재하는 이중 세계.

그렇다면, ‘상계무인’이란


‘수선자조차 대적을 경계할 만한 무공의 끝을 본 존재를 뜻하는 게 아닐까?’


내 안에서 무언가가 번뜩였다.


그 말의 진위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저 내게 겁을 주려는 헛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 한 마디에 희망이 움텄다.


검을 다시 쥐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수십 년 전생의 기억과 이류무사의 경지, 그리고 천뢰파도심법과 천뢰검법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지금 여기서 써야 했다.


그가 손을 뻗었다.

순간, 허공에 그려진 붓끝 같은 선 하나가 나타났다.

검은 안개가 형성되어 글을 만들어냈는데 약(弱)이라는 문자가 나타났다.


붓끝 같은 손짓 하나.


그가 허공에 그린 ‘약(弱)’ 자가 완성되자, 마치 협곡내의 몰아치던 바람의 방향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나는 처음엔 그것이 단순한 기세 표현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위압이 아니었다.


내 안의 기(氣)가, 흩어지고 있었다.


“······뭐지?”


전신의 세맥을 따라 돌고 있던 천뢰파도심법의 진기가 어딘가로 빨려나가듯 사그라들고 있었다.


내공이 흩어지는 그 기묘한 감각 마치 몸 안에 갑작스레 수십 개의 작은 구멍이 생겨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약화··· 문자를 통해 기운을 끊는 수법이란 말인가?’


그는 붓 하나, 손짓 하나로 내 중심을 꿰뚫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몸이 비틀어질 정도의 어지러움 속에서 간신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올렸다.


천뢰검법(天雷劍法)

낙뢰(落雷)

일검양단(一劍兩斷)


검법으로 시전 할 수 있는 나의 최강의 절기를 펼치며, 남은 기운을 검끝에 모았다.

순간, 내 앞에 벼락이 내리꽂히듯 진기가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일검양단으로 안개가 형상화한 문자를 베어 넘기고서, 진기를 둘러싼 내 몸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하지만 붓처럼 가볍게 튕겨진 손끝에서 또 하나의 문자가 떠올랐다.


“쇠(衰)“


그것은 내 육신에 직접 박혔다.

순간, 전신의 근육에서 탈력감이 느껴지며 돌격하는 속도가 뚝 떨어졌다.


내 몸은 자연스럽게 느려졌고, 칼끝이 겨우 그의 코앞에 다다를 즈음


팟!


그의 손끝이 내 가슴팍에 닿았다.


“그만 괴뢰가 되어라. 무인.”


콰앙—!


폭발적인 기운이 내 몸을 통째로 밀쳐냈다.


나는 공중에 여러 바퀴 돌아 협곡 벽에 처박혔고, 등골을 따라 깊은 충격이 퍼졌다.

피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와 혈우가 내린것처럼 비산했다.


손에 들고 있던 검이 바닥으로 미끄러지며 ‘쩡—’ 소리를 냈다.


“···크흑···!”


숨이 막혔다. 가슴은 짓눌린 듯 답답하고, 사지가 떨렸다.


몸은 분명히 아직 움직일 수 있었지만 수도자를 죽일 정도의 위력은 나오지 못했다.

내공도, 검도, 전생의 기억도 지금은 닿지 않았다.


그는 느긋하게 걸어왔다. 여전히 붓 하나만 들고.


“설마 하등계 무인이 수선자를 이길 생각을 한거냐?.”


그는 내 앞에서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그가 지척에 왔을 때 이를 악물었다. 내 손은 여전히 검을 향하고 있었다.


“괜찮다. 쓰러져도 된다. 그 정도면 수련도 재능도, 꽤 괜찮은 축에 드니까.”


그가 웃으며 쓰러진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수선자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피가 입가에 맺혀 흐르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꺾이지 않았다.


“······내가······ 괴뢰 따위가 될 것 같냐.”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딱’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아니, 정확히는 끊어진 줄기 뒤편에서 또 다른 맥이 다시 살아나는 감각 마치 전생의 나, 두번째 삶에서 몸에 새긴 '무도(武道)'의 모든 궤적이 이 몸에 덧입혀지듯, 나의 의식 저편에서부터 기이한 진동이 밀려왔다.


『···기억해라.』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 두번째 생, 가혹하게 나를 단련 시켰던 진씨세가 가주의의 음성이었다.


『무공은 죽어야 완성된다. 진정한 검이란, 사념이 사라진 곳에서 태어나는 법이다.』


순간, 숨이 멎었다.

내 몸에 남아 있던 모든 진기가 바닥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그 빈틈을 타고 기이한 흐름이 차올랐다.


두 번째 생에서 죽음 직전까지 닦아낸 순수한 무의 경지.

그것이, 지금 세번째 생의 무학(武學)과 겹쳐졌다.


눈앞에 텍스트 글귀가 떠오른다.


[‘무도’ 수행 불러오기를 사용합니다.]


순식간에 내 전신의 세맥이 비명을 질렀다.


쾅!


무언가가 깨졌다.

내 안에서 억눌려 있던 장벽이 터졌다. 이류무사의 경지를 오래도록 유지하던 억제선이 파괴되었고, 진기가 마치 제어되지 않는 홍수처럼 전신을 휘감았다.


심장의 고동이 달라졌다.


‘···일류 무사다.’


나는 눈을 떴다.

급격하게 폭증하는 수행을 안정시켜야 했으나 그럴 여유가 없다.


지난 삶에서 무도 수행의 모든 감각이 살아났다.

황실에서 영단을 제공 받아 수년의 시간을 도약한 천뢰파도심법의 3성의 경지가 되찾아온다.

이번 생에서는 영단의 도움 없이 순수한 노력으로 달성한 1성의 수행이 합쳐서

증폭되는 내기가 물처럼 흐르며 맥을 감싸고, 손끝은 섬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뇌는 맑았고, 눈은 놀랍도록 선명했다.


천뢰파도심법 사성(四成)

천뢰검법 사성(四成)


그순간 삼뢰(三雷)라 부르는 천뢰검법의 절기를 내 손에 펼칠수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당장 검이 없지만, 괜찮다.

순식간에 손을 뻗어내자 세줄기의 벼락이 수도자의 목을 타격했다.


콰르르릉!-


손끝에서 폭발한 뇌기(雷基)는 예기를 머금고있어 암반 조차도 베어낼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수도자라하여도 그는 피륙의 인간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


수선자의 목이, 얇게 갈라졌다. 삿갓이 갈라진 방향대로 기울었다.


“··쿨럭, 방심한 네 잘못이다.”


나는 지쳤지만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툭.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붓은, 힘 없이 땅에 떨어지며 모래 위에 흐릿한 선 하나를 그렸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또 한 번 경계를 넘었다.


두번째 생의 무도가 지금 내 세번째 생에 본격적으로 각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수선자도 베일 수 있다.

인간을 벌레로 여기며 불로장생을 꿈꾸는 역천의 존재들에게 승리 한 것이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너무 지쳐 있었다. 진기는 이미 고갈되었고 뇌신(雷神) 같은 고양감도 서서히 꺼져갔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조금만······ 눈을 붙이자······’


그때였다.


「정말······ 재미있는 놈이군.」


속삭임.


내 귀 바로 옆, 살아있는 자의 온기가 느껴진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호흡의 숨결.

그리고 차가운 음성.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


앞에 있어야 할 수선자의 시신이 없었다.


그 자리에, 내가 묘사한 모습대로의 붉은삿갓과 검은 도포를 걸친 그가 다시 서 있었다.

붓은 손에 들려 있었고 그의 붓끝이 내 가슴 위에 얕게 닿아 있었다.


「이 정도 환상에 속아 넘어가다니, 역시 하등계 무인이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건··· 환상이었단 말이냐······?”


「그래. 이건 처음부터, 네게 준 작은 ‘희망’이었다.」


그가 웃었다.


「네가 발버둥치며 밑천까지 끄집어내어서 내가 아닌 ‘상상’을 벨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면 어쩌면 괴뢰로서 가치는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전신은 이제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힘이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붓이 내 가슴 한가운데, 심장 위치에 멈췄다.


나는 탄식하며 말했다.


“이게 수선자인가···”


푹.


기묘한 감촉이 가슴을 꿰뚫었다.

고통은 없었다.

너무도 깊숙이 들어왔기에 오히려 통각이 마비되는 듯한 말 그대로의 ‘끝’이다.


차갑고 서늘한 기운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붓끝이 내 심장까지 박혔고, 기혈이 뚝 끊겼다.


「간만에 재밌었다, 무인.」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검은 시야가 안개처럼 번지며 시야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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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4 다섯번째 삶 +12 25.05.12 6,650 1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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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 다섯번째 삶 +42 25.05.06 9,530 283 14쪽
29 28 다섯번째 삶 +26 25.05.05 9,677 22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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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 네번째 삶 +18 25.05.02 9,456 225 11쪽
26 25 네번째 삶 +10 25.05.01 9,695 211 12쪽
25 24 네번째 삶 +14 25.04.30 9,978 202 12쪽
24 23 네번째 삶 +13 25.04.28 10,386 222 12쪽
23 22 네번째 삶 +13 25.04.27 10,923 241 13쪽
22 21 네번째 삶 +22 25.04.26 11,244 268 12쪽
21 20 네번째 삶 +11 25.04.25 11,405 251 11쪽
20 19 네번째 삶 +18 25.04.23 11,771 276 13쪽
19 18 네번째 삶 +12 25.04.21 11,531 263 8쪽
18 17. 네번째 삶 +15 25.04.20 11,913 267 12쪽
17 16. 네번째 삶 +5 25.04.19 11,869 277 10쪽
16 15. 네번째 삶 +15 25.04.19 12,144 337 9쪽
15 14. 네번째 삶 +14 25.04.18 12,321 30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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