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이
아직 아침 해도 떠오르지 못했으나, 사비 분별은 가능한 어스름한 빛이 주변을 비추는 이른 새벽 시간대에, 한 남자가 오솔길을 걷는다.
이슬에 자신의 양말이 젖는 것은 따위로 간주하는, 기분 좋아 보이는 중년 남성 베리는 술을 마시러 가는 중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단 하루밖에 없는 귀중한 휴일은 집에서 가볍게 아침 식사를, 어차피 빵과 치즈 한 조각이지만, 먹고 술을 마시는 것부터 시작한다.
개간할 것도 거의 남지 않은 이 시골 마을엔, 대체로 조용한 휴일을 보내는 것이 관습으로 굳어버렸으나, 베리를 포함한 일부 노동자들은 아직도 마을이 활기를 띠던 십여 년 전처럼 이른 휴일 아침에 술을 즐기며 뜨겁게 놀고 싶어 한다.
그 때문에 술집 점주는 일주일 중에 이날만 아침 일찍 가게를 열고, 최근엔 안줏거리 메뉴를 개발해야 하나 고심하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빵집 주인은 이것을 주의 깊게 쳐다보며 자신의 매출을 늘릴 수 있는 좋은 협력 수단으로 생각하며, 술집 주인을 만족시키기 위한 디저트용 빵을 몰래 실험 중이다.
끄흥, 하는 소릴 내며 베리는 오솔길에 얼마 안 되는 사람의 손길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며 앓는 소릴 냈다. 본인도 의식하고 말한 것은 아니기에 제법 놀란 눈치다.
"나도 나이를 먹었군."
마음 같아선 어제저녁부터 진탕 취하고 싶었던 베리지만 보기보단 몸에 성한 곳이 잘 없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또 그로 인해 이미 자신이 늙었음을 누구보다도 일찍 체감하고 있다.
"젊을 적부터 너무 무리하며 살긴 했지."
예전부터 어느 정도 인식은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이렇게 알기 쉽고 고스란히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베리는 가던 길을 가다가 갑자기 급한 볼일이라도 생긴 듯이 주춤했다. 본래 사람이 닦아 놓은 길은 아니지만,
"으응?"
터무니없이 어질러졌기 때문이다. 길목에 커다란 바위부터 자그마한 돌덩이까지 무질서하게 있어서 가는 길을 불편하게 했다.
사람이 한 것이라기엔 너무 불규칙하다.
짐승이 했다기엔··· 이 동네엔 이런 짓을 벌일만한 곰과 사자 같은 대형 동물은 살지 않는다.
혹독한 자연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알지만, 이건 그런 경우가 아니다. 몇 걸음 더 걸어가자, 그 원인이 눈에 보였다.
"사고인가?"
얼마 멀지 않은 거리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하늘에서 뭔가 떨어졌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뭔가 떨어지면서 구멍이 크고 깊게 파이며, 그 주변의 환경이 망가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럴 일은 없으니, 아마 주정뱅이가 마차를 몰다가 화려하게 처박았을 확률이 클 것이다.
"음···"
다소 특이한 일이긴 하지만, 흔치 않은 일은 아니다. 이 오솔길 주변엔 민가도 없고, 닦아놓은 길도 아니기에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후우웅
바람 소린 들리지만, 인기척은 없다. 이미 다 끝난 일이다. 앞으로 이 길은 다니기 불편해질 것이란 생각을 한 베리는 혀를 끌끌 차며 본래 갈 길을 옮기려 했으나,
꿈틀
깊게 파인 구멍 중심부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그에게 보였다. 늙은 눈동자에 비친 것은 갓난아기다.
"허억···"
깜짝 놀란 베리는 곧바로 몸을 돌리고 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다가갈수록 아기인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세상에, 이런 곳에 아기가···."
베리는 조심스럽게 아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움직일 때마다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아기를 안아 든 베리는 결국 역정을 냈다.
"바구니! 그 흔한 바구니조차 없이 아기를 노상 길바닥에 옷만 감싸서 버리다니!"
아기는 옷에 감싸인 채 버려져 있었던 것. 기분 좋은 휴일 아침에 분노가 들끓어 올랐지만 연신 참았다.
‘나에겐 기분 나쁠지라도 갓난아이에겐 아무런 죄가 없다, 저 아이에게 무슨 연이 있어서 오늘이 기분 나빠야 하겠는가, 그럴 이유는 없다.’
이런 생각을 되뇌었다.
"으음, 이런,"
다소 어중간하게 아기를 안아 든 베리는 자세를 바꿨다. 살면서 이 정도로 어린 존재와는 면식이 없었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아기가 너무 조용해서 곤히 자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맑은 눈으로 베리를 쳐다본다. 똘망똘망한 눈이 제법 사랑스럽다. 베리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는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래, 그래, 울지도 않고 착하구나. 어디, 이름이 무엇이냐?"
자기 팔이 요람이라도 된 것처럼 흔드는 베리.
‘아무리 미워서 버리는 아이라도 하다못해 이름을 적은 쪽지라도 있을 터,’
가볍게 천에 손을 넣지만, 잡히는 것이 없다. 대신에 베리는 아이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보았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세밀함에 부모가 의외로 재정이 넉넉한 집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직감한다.
팅
가볍게 쥐었을 뿐인데 금속제 펜던트가 열렸다. 겉에 비해서 안쪽은 꽤 낡았고, 긁힌 자국이 많다.
관리는 착실히 했지만, 꽤 사용한 물건이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문양 같은 것은 있지만 알아볼 수 없다.
‘새벽녘의 옅은 빛을 탓하고 싶지만, 이건 그런 종류가 아니군··· 전혀 못 알아보겠어.’
끼릭 끼릭
베리가 손으로 쥔 곳을 힘을 주자 안쪽으로 철 조각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보면 애초에 잡을 때부터 열리는 것이 당연한 구조다.
"이런 펜던트에 보통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것 하나 정돈 있는 법인데···"
하지만 없었다. 대신에 펜던트 안쪽에 칼로 뭔가를 파놓은 것은 보인다. 이것은 읽을 수 있다.
"킬리, 너 이름이 킬리인 모양이구나."
베리는 아기가 자신의 수염으로 장난치는 것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에 맞춰 아이도 자길 따라 웃는다.
"에부부부부"
"꺄르륵, 꺄륵"
아이가 환하게 웃는 걸 보니 조금 전까지 자신이 화를 치밀어 올랐던 것이 꿈인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술을 마실 날이 아닌 것 같군."
베리는 아기의 발길질에 흐트러져가는 옷을 곱게 접어, 품에 맞게 감싸고 아이의 가슴팍에 오도록 매듭을 지었다.
평소 일 버릇 때문에 다소 투박하고 단단한 매듭이 만들어졌다.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매듭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고정할 것이다.
"···일단 재력이 있는 집안은 확실하군."
지금에서야 보니 천의 박음질이 대단히 촘촘하다. 무슨 섬유를 썼는지 눈부신 흰빛을 발한다. 아니 이건 꽤 귀한 것처럼 보이는 흰 셔츠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디자인이지만, 일반 서민은 구경조차 못 해볼 물건이다.
"애석하게도··· 여기에도 따로 표시는 없군."
생긴 것만 보면 맞춤형으로 제작한 옷 같지만, 그것이 끝이다. 아기를 안아 든 베리는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심정으로 주변을 더 둘러본다.
"대체 이런 마을에 누가 이 시간에 아이를 버리는 건지 원··· 삶이 어수선해서 아기가 얼마나 귀한데···"
그런 베리의 걱정을 전혀 모르는 아이는 그의 수염을 잡고 늘어뜨리기 시작한다. 빳빳한 수염이 따갑지도 않은 모양이다.
"으음··· 이건"
베리는 구덩이 주변에서 다소 특이한 색깔의 무언가를 찾았다. 누가 먼저 뒤질 새랴 곧바로 한 손으로 잡고 번쩍 들어 올린다.
"···바지···"
허무할 정도로 어이없는 물건이 나와서 베리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데다가··· 좀··· 더럽군."
아기를 감싼 흰색 옷과 아마 같이 온 물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바지는 이미 한 번 구덩이에 구른 상태로 내동댕이쳐졌는지 상태가 좋지 않다. 베리는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 바지 하나가 아주 요물이군, 사람을 순식간에 제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 보면···"
아이를 발견한 기쁨은 어디 가고 베리의 본래 성격이 나왔다. 품에 안긴 아기는 이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볼 따름이었다.
"아기야, 조금만 거기 있거라,"
베리는 아기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렸다. 어차피 이 주변 구덩이는 고운 모래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아기가 갑자기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아기를 감싼 흰옷은 촉감도 좋으니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저 바지는 뭔가 다르다. 베리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바지의 허리 끝단을 양손으로 잡은 베리는 거세게 한 번 허공에서 털었다.
퍼엉
모래를 흩뿌리며 윤곽을 드러내는 바지를 보고 베리의 표정은 깊은 주름을 만들고, 아교를 들이부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뭐야 이거,"
베리는 바지의 생김새 때문에도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맞지만, 정확하게는 바지를 털 때 나온 모래 때문이었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산 베리는 최소한 자신의 마을에 무슨 흙이 있고, 무슨 짐승이 사는 지도 안다. 하지만, 이 바지를 털 때 나오던 모래는 전혀 이곳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애당초 모래도 아니다. 이건 어지간해선 볼 일이 없는 물질이다.
"···뼛가루,"
바지에 묻은 것은 모래도 있지만, 뼛가루가 섞여 있다. 제아무리 장의사라도, 군의관이라도··· 뼛가루를 묻히고 다니는 직업도 인간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설마"
놀란 베리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주변을 돌아보며 다른 이들이 있는지 살폈다. 그의 근육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수축해 온몸을 다부지게 했다. 베리의 옛날 버릇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아기만 있을 뿐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산짐승이 수풀 사이를 지나가는 소리도 없다. 다만 이 행동 때문에, 뼛가루는 베리의 몸에서 소용돌이를 그리며 멀어지고, 이내 뒤로 날아갔다.
"···너무 흥분했군, 이런 버릇은 이젠 전부 사라진 걸로 생각했는데···"
베리는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고개 숙여 한탄했다. 시야를 가리던 뼛가루가 사라졌다. 얼굴에서 손을 떼자, 한쪽 팔을 바닥을 향했기 때문에 무릎부터 땅에 닿은 바지의 형태를 그제서야 제대로 인식했다.
"이건 무슨 바지야,"
사람이 두 다리 넣고 입는 바지라고 하면, 그것이 맞다. 다소 특이한 것은 바지의 무릎이 두꺼운 것이다. 손을 바지 안에 넣어보니 덧댄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덧댄 거지, 거기에 허벅지에 끈은··· 벗길 순 있지만, 제법 튼튼하군."
양 허벅지엔 널따란 끈이 각각 두 개 있지만, 정확하게 그 용도를 알 순 없었다. 다만 공구를 걸어두기엔 꽤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본래 용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질긴 천으로 보아 거친 작업을 위해서 만든 것은 확실해 보인다.
튼튼한 새 바지가 생겨서 기뻐하기도 잠시, 베리에겐 사이즈가 작아서 입을 수도 없는 옷이다.
"···이것도 네 것이니, 킬리"
베리는 아기를 쳐다보며 말했지만,
"꺄르륵"
돌아오는 대답은 제법 귀여웠다. 털썩하고 주저앉은 후에 베리는 아기를 진지하게 쳐다봤다. 아기는 웃고 있지만 베리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이 아기는 대체 뭐지,"
자연스럽게 일이 진행됐지만 사실 처음부터 살면서 만나기도 힘든 기이한 일이 연속으로 터졌다. 베리는 고개를 위로 들어봤다. 아기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내려오긴 했지만, 여긴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이 깊게 패어있다.
"처음엔 단순히 마차 사고라고 생각했지만··· 마차 흔적도 없고, 그렇게 큰 구덩이를 만들만한 도구의 흔적도 보이지 않아, 그렇다는 것은··· 이 아기가 했다는 것인데···"
그렇기엔 너무 가냘픈 갓난아기다. 심지어 아기를 감싼 것은 흰색 천 옷이다. 솔직히 저 옷에 흔적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주변에 사람의 흔적도 없다.
"아기를 버렸다기보단··· 누가 찾기 힘든 곳에 피신시킨 것인가,"
피신이라고 하면 이 방식은 매우 부적절하다. 피신이란 것이 몰래 뺀다는 말인데, 베리가 서 있는 대형 구덩이 같은 걸 만들어 버리면, 이런 조그만 마을이라도 삽시간에 소문이 퍼질 것이다. 피신의 정의가 성립하지 않는다.
"아기에게 준 이 옷은··· 꽤 귀한 성인 남성의 의류지만 세상 본 적도 없는 특이한 형태, 그리고 펜던트···"
귀족의 자제라고 하기에도 묘하게 안 맞는다. 정치적으로 휘말렸다고 해도··· 안 맞는다. 들어맞지 않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뭐··· 솔직히 별로 상관없겠지. 오늘 동네 사람들 모두가 놀라겠군."
베리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서 살지만, 그렇게 이웃과 사이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 그저 새로 개발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의 주거지가 이동했을 뿐이다.
평소에 뭐든지 엄하게 처리해서 쌀쌀맞다는 평을 듣는 베리이지만, 왠지 이 아이에게만큼은 누그러져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베리가 구덩이를 기어 나오자 눈 부신 햇살이 아기의 뽀얀 피부와 베리의 밝은 표정에 비췄다. 술집의 병으로만 보던 햇살을 오랜만에 피부로 직접 맞이한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베리는 어렴풋이 자신이 킬리의 아버지가 될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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