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8년 후,
"킬리,"
베리는 마을 회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킬리를 불렀다.
"이리 오려무나,"
그 말에 꼬마 킬리는 뒤로 홱 돌아보더니 쪼르르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손에는 어제 고승에게서 산 인형을 꼭 붙들고 있다. 어찌나 맘에 들었는지 어젯밤 잘 때부터 지금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그 모습에 베리와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풀어진다. 고승이 장난감을 잘 만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아들의 마음에 쏙 들어갈 줄 누가 알았을까,
"이것 보렴, 너와 똑같은 펜던트를 하고 있구나."
이들이 본래 쉼터로 쓰이는 마을 회관에 온 이유는, 이런 작은 시골 동네에 만물상이 왔기 때문이다. 비록 값이 조금 비싸긴 했지만, 항상 다른 마을을 거쳐서 물건이 들어오는 이곳에서 직접적으로 물건을 전시 및 판매하는 서비스는 매우 희귀하다. 따라서 마을은 감사히 제안을 수락하고 이곳, 마을 회관에 임시로 가게를 차리도록 종용했다.
만물상은 기본적인 생필품도 팔았으나, 돈 주고도 보기 힘든 진기한 물건, 특히 유물을 양껏 전시해서 오가는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원년 이전의 유물은 자그마한 물건이라도 큰 값을 치러야 구매할 수 있다. 그것을 양껏 전시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안 멈추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제아무리 지갑을 닫던 이들이라도 홀린 듯이 열 수밖에 없는 설계였다.
유독 킬리와 베리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치밀하게 묘사한 작은 그림 같은 유물.
"하하핫,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에 따르면 저것은 그림이 아닌···"
만물상 주인은 어떤 형식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하였으나, 머리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시골뜨기 베리는···
‘음··· 모르겠군,’
으로 일관했으며, 킬리의 어린 머리는···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표정’
으로 일관했다.
그의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조차 매우 어려워, 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부자는 그냥 독특한 그림이구나, 라고 이해했다.
"흐으음···"
그래도 굳이 요약하자면, 그림(이 아니라고 완강히 주장하지만)은 유물로 연대는 대략 원년의 20여 년 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림 내에 적용된 여러 기술로 보아 원본은 아닌 복제품이라고 한다. 그 그림엔 행복해 보이는 청년이 두 명,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 청년이 킬리처럼 생겼고, 오른쪽 청년의 펜던트가 아기 때부터 목에 차고 있던 킬리의 것과 유사해 부자는 신기해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사실은 당시에 유행하던 디자인이었을까···"
베리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중얼거렸다. 다시 한번 눈도 감지 않고,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아무리 봐도 도저히 자신이 아는 것과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하물며 상인이 푸른백합의 인간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것도 파는 겁니까?"
베리는 만물상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예 손님, 여기 있는 모든 전시품은 전부 판매 대상입니다. 그 물건의 경우에 가격은···"
만물상은 가격에 대해서 언급할 때 그의 눈길과 손짓이 달라지는 것을 베리가 눈치챘다. 손이 미세하게 꼼지락거리면서 가격을 계산했고, 눈은 종이가 아닌 그 내면의 것을 뚫어보는 듯했다.
"대략 이 정도 됩니다."
돈을 만져본 자가 보이는 행동이었다. 베리는 돈에 목숨 거는 인간상에 다소 언짢음을 느꼈지만···
"으흠···"
수염을 쓰다듬는 척하면서 얼굴을 잠시 손으로 가렸다. 다소 행동이 늦긴 했지만, 이것으로 자신의 얼굴로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았길 소망했다.
‘생각보다 조금 비싼데···’
그래도 역시 비싸긴 하다.
"혹시 이 정도 가격은 어떻소?"
베리를 떠보는 심상으로 더 낮은 가격을 제안했다.
만물상은 반사적인 행동인 것처럼 매서운 눈빛을 쏘았으나 이내 표정과 눈을 누그러뜨리고,
"하하 손님, 이 정도 물건이면, 가격은··· 이렇게는 네고 가능합니다. 네엡."
만물상은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을 제안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가격을 내린 것 때문에 돈 없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난한 마음가짐에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그 또한 고객이었다.
여기서 마음 내키는 대로 큰소리쳤다가는 다른 고객마저 잃을 수 있다. 비록 자신의 정확한 계산에 생채기를 낸 것은 화가 나지만, 이 또한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계산에 지금까지 토를 달지 않던 수많은 고객의 만족스러운 표정이 머릿속에 아른거려 화를 누르기는 조금 벅찼다.
베리도 이것을 감지했다.
‘우악스러운 사내다.’
분명 베리가 모르는 경험을 통해 나름 합리적인 계산식까지 머리에 모두 있는 상인이다.
‘내가 보여준 가격 때문에 마음에 생채기를 낸 모양이군. 이 사람은 아마 자신의 가족도 꾸리지 않을 정도로 계산과 돈에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일 테니...’
베리는 인생 살면서 부자들만큼 결혼과 정착에 관심 없는 사람은 또 못 봤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사람이 혼자서 자수성가해서 큰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베리는 무슨 말을 할지 고민했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킬리의 부모를 찾는 단서가 될 것이라면 갖고 싶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만물상은 킬리를 한 번 쳐다보더니 갑자기 표정을 바꿨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그러고 바닥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쨔르륵, 쨔르륵
상자를 여는 데 들리는 소리가 아주 경쾌하다. 저 작동 방식으로 보건대 요즘 만든 물건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뽈깍
뚜껑이 가볍게 열리면서 내용물을 드러냈다.
‘불그스름한 아대가 한 쌍?’
손목과 손바닥만 감싸는 형태가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이다.
‘하지만 저건 거의 팔꿈치까지 감쌀 수 있는 물건인데,’
투박하긴 하지만 한눈에 봐도 평범한 물건이 아님은 알 수 있었다. 특히 목수로 일하는 베리는 안전공구에 꽤 익숙하다. 저것은 판금 갑옷인 건틀렛 같다.
"한 번 들어보시지요."
홀린 듯이 베리는 아대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봤다.
"매우 가볍군요, 거기에 꽤 튼튼하고, 솔직히 이런 아대는 난생처음 보는 군요."
난생 만져본 적 없는 재질에 베리는 감탄했다. 이 정도라면··· 방어구가 아니라 무기에 가까워 보이지만··· 어지간한 작업은 거뜬히 버틸 것 같다.
‘여기에 알알이 박혀 있는 모양은··· 주먹을 휘두르는 걸 상정하고 제작한 것일 터,’
"음···. 이건···!"
베리는 아대에 문양이 있음을 눈치챘다. 가까이에서 보자 킬리의 펜던트와 비슷하게 생겼음을 바로 간파했다. 상인은 그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구매 욕구로 받아들이고 내친김에 한 마디 덧붙였다.
"같이 나오는 물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만, 보시겠습니까?"
베리는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하면 안 된다.
"부디,"
어쩌면 거의 십 년 만에 처음으로 킬리에 대한 단서를 잡은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헛수고를 너무 많이 한 베리의 마음은 이미 아주 급했다.
만물상은 한편에 쌓아둔 상자에서 뭔가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꺼냈다.
키잉
그 물건을 가볍게 들고 올 뿐인데 공기를 가르는 기묘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정신이 쏠려 베리가 있는 곳을 다가왔다.
씨익
상인은 이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손님들의 신경이 확 쏠리면서 사람들의 구미가 당기는 냄새가 절로 났기 때문이다.
성인 남성이 겨우 잡을 법한 큰 손잡이가 있는, 무거운 철 덩어리. 분명히 손에 들고 쓰는 것으로 보이나 무슨 물건인지는 짐작할 수 없다. 꽤 많은 세공이 새겨져 있어, 재질이 독특한 조각품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나름의 미형이란 것도 있고, 경외감도 생긴다. 이것엔 뭔가 더 있다.
"손님도 어딘가 석연치 않으시죠? 제가 보증합니다만 그 물건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제가 직접 발굴 현장에서 확인도 다 했습니다. 여기 이 상자를 봐 주시겠어요?"
상인은 한 쌍의 아대와 기이한 철 덩어리를 상자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공간이 딱 맞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따로 보관했지만, 본래는 이런 식으로 하나의 묶음이라는 것을 선보였다.
이렇게 보여주면 본래 이것밖에 없는 것임을 확신할 수밖에 없다. 상인도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이 양팔을 벌리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의 의도는 지금 몰려든 손님 모두에게 말하기 위함이란 것도 있다.
"손님 제가 감히 말씀드리죠, 제 단골 중에서 앤틱 콜렉터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분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원년 이전의 유물은 모두 사가는 편이지요, 그 이름만으로도 돈이 되니까요. 특히 지금 같은 ‘알브레히트 내전’ 엔 자본 보호를 위해서 더 끌어모읍니다."
턱, 하고 만물상이 물건에 손을 얹어 주의를 다시 끌었다.
"개인적으로 아직 이것은 분류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물건은 아직 아무도 예약도 안 했으며 카탈로그에도 오르지 않았죠. 구매하시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그와 동시에 상인은 꽤 큰 값을 불렀다. 베리는 망설였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상정했던 것보다 큰돈을 주기가 망설였다. 무엇보다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위조품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확실하진 않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상인도 만만찮은 인물은 아니다. 지금 말해야 한다. 킬리의 펜던트를 알아보고 보여준 물건이다. 그는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을 했고, 이걸 정리도 없이 말했다. 그 정돈 감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제가 감히 말씀드리지만, 지금 아드님의 펜던트와 짝이 되는 유물은 이것 말곤 못 구할 겁니다. 짝이 되는 유물 자체가 매우 희귀해서 지금이 아니면 웃돈을 줘도 구할 수도 없을 겁니다."
상인은 자신의 서류철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제 이름이 적힌 보증서면, 여차할 때 훌륭한 노후 자금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우리 꼬마의 선물로도요."
만물상은 기뻐서 방방 뛰며 바지에 매달리는 킬리를 보며 말했다. 이미 킬리의 마음이 저 유물에 넘어가 버렸다.
베리는 킬리의 반응과 만물상의 말을 믿고, 물건을 사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은 아들을 처음 발견한 날이다. 곧바로 종이에 자신의 이름과 지급할 대금을 작성한다. 상인은 그 모습을 본 후에 베리와 악수했다.
베리가 무릎을 꿇고 킬리에게 유물을 주면서 말했다.
"생일 축하한단다."
상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이런, 저 정도 되는 사람이 이런 눈치 없는 짓을, 잠시만 기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상인은 자신의 짐을 뒤적거리고, 한 꾸러미를 꺼냈다.
"생일을 위한 선물이면 응당 받아야 할 물건입죠."
킬리가 꾸러미를 열었다.
"와아아아···"
달콤한 사탕 꾸러미다. 이런 시골에서 사탕은 금덩이만큼 귀해서 킬리는 깜짝 놀랐다.
"생일 축하한단다, 킬리!"
"하하하하하"
"치이··· 부러워···"
그 모습에 마을 사람들이 박수를 쳐 주면서 기뻐하고 질투했다.
"혹시, 이 유물도 파는 것이오? 나도 하나 매입하고 싶네만."
동시에 순식간에 평판이 올라간 만물상의 값비싼 물건들을 곧잘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가며 매입하려 했다. 영업용 미소를 하던 만물상은 이제 귀에 입꼬리가 걸려서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몇 시간이 지난 저녁,
홀로 가게를 정리하는 만물상만이 회관에 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석연찮다.
"···내가 왜 그런 계산을 했지"
석양에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면서 슬슬 영업을 종료하는 중이다. 그는 자신이 저 부자에게 제안한 금액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었다.
추후를 위한 투자라고, 이후에 사람들이 유물을 산 것 때문에 충분히 메꿀 수 있는 손실이지만, 지금껏 자신이 한 계산에 비해선 확실히 싼 금액인 것은 확실했다. 따지고 보면 손해를 본 샘이다.
지금까지의 장사 인생에 이 정도의 손해를 감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북 북북
그는 너무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수건으로 닦는 책상을 몇 번이나 닦았는지 기억도 못 하고 있었다.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저 부자에겐 싸게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상하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아니 왠지 빨리 처분해야겠다고 마음이 급했던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니 이 마을도 올 생각이 없었는데···"
평소 같으면 화를 냈겠지만, 자신이 저질렀다곤 믿기지도 않는 행위가 겹쳐서 일어났기에 의문만 더 커졌다. 알쏭달쏭함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골머릴 굴렸으나,
"혹시, 아직 영업하고 있나요? "
"네, 손님,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이내 손님이 한 명 더 찾아와 그를 부르면서 이 생각은 다시 수면위로 튀어 오르는 일이 없었다.
···
"그런데 이건 정말 어디 쓰는 물건인지···"
홧김에 큰돈을 준 베리는 골머리를 앓으며 식탁에 앉았지만, 킬리는 신이 나서 방방 뛰고 있었다.
‘아니, 크게 생각하지 말자. 아이의 생일엔 이런 기억쯤은 하나 있어야 한다.’
끼익 끼익
생각해보니 지금 킬리가 뛰고 있는 저 바닥의 못이 느슨해져서 기분 나쁜 소릴 낸다. 이 묘한 주파수가 베리의 뇌의 한 부분을 자극한다.
"아!"
베리는 양질의 목재와 못을 구하려고 마을 회관에 간 것이었는데 그제야 다시 떠올랐다.
"이거 참···"
자신이 뭔가에 홀린 것은 아닌지 뒷머리를 긁적이던 베리는 이내 일어났다.
이전에 마을 사람들이 메모지라는 것을 사용해서 까먹는 것 없이 사용한다고 들은 적 있다. 나이를 먹으니, 베리도 이제 이런 행위가 필요함을 느꼈다. 지금 당장 급한 것부터 해결하자.
"킬리, 잠시만 혼자 있으려무나, 잠깐 밖에 나갔다가 와야겠구나."
베리는 곧바로 일어나서 벽에 걸린 모자를 썼다. 킬리도 따라오려고 했지만, 조금 전과 같이 추가 지출이 생길 것이 갑자기 마음에 걸렸다.
"아니, 지금은 집을 지켜 주려무나. 그렇지. 방금 산 것을 갖고 놀아보거라. 나중에 아버지에게 무슨 물건인지 알려주렴."
어른의 속마음을 모르는 킬리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아버지를 배웅했다. 베리는 그 모습에 안심하고 갈 길을 서둘렀다. 좋은 못을 만물상에게서 살 계획이었는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문을 열었을지 알 수 없었으니, 그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으음···"
한편, 킬리는 식탁에 생일 선물인 상자를 올려놓고 물끄러미 쳐다봤다. 주변 여자애들이 예쁜 보석함 같은 것에 소꿉놀이 도구를 넣어 다녔던 것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세공이 잘 되어있는 이 함을 보고 있자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영차···"
다소 무거운 상자를 다시 열어본다. 만물상 아저씨가 솜씨 좋게 포장한 그림과 고승의 장난감은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아대부터 살펴봤다.
"흐그윽"
이 물건을 든 킬리에겐··· 가볍다. 아버지가 목수 일을 하면서 차는 아대와는 다르게 이건 사용자를 지키는 것보다 무언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어린 킬리에게조차 그렇게 느껴졌다.
"아대가 착용자를 보호해 주지 않으면 섭섭하긴 한데, 생긴 게 이게 뭐야."
킬리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리자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누구세요,"
뭔가 자신이 목소리 같기도 했다.
"기분 탓인가?"
킬리는 이 목소리를 금방 잊었다. 대신 아대를 착용하기로 했다.
손목에 차는 것이지만 자그마한 킬리의 팔엔 어깨까지 올려야 겨우 안 움직이게 고정할 수 있다. 그렇게 해도 헐렁해서 잘못하면 쏙 빠져버릴 것 같았다.
양어깨가 든든해지니 왠지 전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엔 무거운 기계 부품을 만졌다.
"어라,"
생긴 것에 비해서 매우 가벼웠다. 아대보다 훨씬 가볍다.
‘만물상 아저씨와 아버지는 이것을 두 손으로 무겁다는 듯이 들었는데···’
"난 다 컸는데 아직 어린애라고 놀린 거겠지!"
화가 나서 양 볼을 잔뜩 부풀린 것을 베리가 봤으면 귀엽다고 손가락으로 눌러서 바람을 뺐을 것이다.
"근데 이건··· 뭐지···"
철 같기도 하지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리저리 만지니 철 덩어리가 움직인다. 모양이 바뀌는 것 같다. 뭔가··· 그리운 느낌이 드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왠지 모르지만, 이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이건···"
킬리는 기계 부품의 밑동에 무슨 새김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자신의 펜던트와 같은 무늬다. 아대에도 있는 무늬다.
"오오, 오오오···"
눈을 반짝인 킬리는 양 아대를 한 번 어깨까지 쓱 올리고,
차랴랑
펜던트를 밖으로 뺀 후에,
처억
기계 부품을 머리 위로 들고 외쳤다.
"다섯 번째 총사, 킬리가 나가신다."
자신이 즐겨보는 책에 따르면 합이 맞는 유물을 모은 인물이 이런 식으로 외치면 번쩍이며 변신했다. 그걸 따라 외친 것이다. 이 외침과 동시에···
챠캉
위로 번쩍 든 기계 부품이 순간적으로 창으로 변신했다.
히익
깜짝 놀란 킬리는 그대로 기계 부품을 손에 놓쳤으나···
둥실,
기계 부품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었다. 그때 덜컹 소리가 들리며 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부지!"
킬리는 신이 나서 아버지에게 이 광경을 보여주며 자신이 다섯 번째 총사가 되었음을 자랑하려고 현관으로 뛰어갔다.
"우왓, 킬리 무슨 일이냐, 아니, 설명은 해주려무나."
문 앞으로 뛰어간 킬리는 곧바로 베리를 안쪽으로 이끌어서 자신이 한 것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쾅
문을 열자 곧바로 바닥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욘석아, 못만 교체하면 되는데 아래까지 부러뜨리면 안 되잖냐!"
바닥을 와지끈하고 철 덩어리가 부숴버렸다. 베리는 대형 사고에 킬리에게 설교했지만, 그의 귀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킬리는 사실을 부정하며 기계 부품을 들려고 했지만, 전혀 들 수가 없었다. 이후로도 킬리는 혼자서 조용히 시도해 봤지만, 다시 창이 되거나, 무게가 가벼워지는 일은 없었다.
곧 킬리는 어른이 되면서 이 유물에 흥미가 점차 사라지더니, 이후엔 집의 한구석에 박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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