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235
E-235.
그것이 그의 식별번호였다.
칵, 칵!
오늘도 그는 유해물질자원행성 E-B3에서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서기 224026년.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출발한 '인류'라는 종족은 어느덧 우주 전체로 뻗어나가 수많은 은하계 전체를 아우르는 은하제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22만년이라는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인류는 우주의 모든 것을 이해하진 못했고, 약점이 많은 종족이었다.
여러 외계의 적성종족과 괴수들.
외계생물들, 기현상들과 맞서싸우며.
혹은 자기들끼리 전쟁을 일으키며 쇠락과 발전을 거듭한 끝에 그들은 수많은 '제도'와 '기술'을 통해 인류라는 종족의 약점을 보완했다.
그리고, 그 제도 중에는 신분제 역시 포함이었다.
은하제국의 신민들은 상위계급인 1, 2등신민.
중위계급인 3, 4등신민.
하위계급인 5, 6등신민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그 아래.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는 7, 8등신민과.
그런 8등신민들보다도 더 아래인 명백한 '부품'으로 취급되는 '인조인간'.
'9등신민'들 역시 존재했다.
9등신민의 역할은 다양했다.
인조인간인 그들은 비상 상황시 중하위 계급의 '식량'으로 사용되거나,
신약 개발 시 인체실험이 필요할 때.
혹은 외계 적성종족과의 전쟁에서 '고기방패'로 쓸 때 등 인간형의 무언가를 소모해야만 할 때에 쓰이곤 하는 유용한 부품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E-235가 속한 E 시리즈 인조인간들의 역할은 '유해물질자원행성투입채굴용인간형생체노동자원'.
줄여서 말하자면, '광부 인형'이었다.
칵, 칵!
"어이, 시간 다 됐다! 나와!"
7등신민 파울로가 9등신민들.
인조인간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촤악, 촤악!
날카로운 에너지채찍이 허공을 가르는 충격파가 광산 안에서 울렸다.
외계 적성종족이었던 파울로는 도마뱀 형태의 외계종족으로, 은하제국에게 패배하고 노예가 된 노예종족이었다.
통칭 '렙틸리언'이라고 불리는 도마뱀 인간들로, 그들은 하나같이 인류에 대한 열등감과 증오에 찌들어 있었고 대다수가 7등신민으로서 제대로 된 인간 취급을 못 받는 것에 대한 울분을 8, 9등신민들에게 주로 풀고는 했다.
E-235는 오늘도 텅 빈 눈으로 곡괭이를 잡고 광산 바깥으로 나가며 비쩍 마른 자신의 팔다리를 바라보았다.
E-B3이라는 미확인 에너지로 가득 찬 행성에서, 특수한 광물을 채굴하는 역할을 맡은 그들은 매일같이 이 미확인 에너지에 침식되어 죽어가고 있었다.
미확인 에너지 A-02. 통칭 '알파'라고 불리는 이 에너지에 닿은 자동화시스템은 하나같이 이상현상과 심각한 오류를 만들어냈기에, 그와 같은 E 시리즈.
광부 인형들을 양산해내서 생체 인형들의 노동력으로 자원을 채굴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언제 죽어도 그만이었기에 가장 싸고 편리한 자원인 셈이었으니, E-235 역시 자신이 이렇게 끌려와서 노동하고 있는 이유 자체는 납득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졌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제 곧 그도 죽을 것 같단 것이었다.
'한 달이면 나도 죽을려나.'
알파에너지가 그의 몸을 침식중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곧 죽을 터였다.
은하제국에선 9등 신민이 수명이 다 되어가면 연명치료를 하기 보다는, 인조인간을 단백질 단위로 분해버리고 그 재료로 새 인조인간을 만드는 방식을 채택하기에 딱히 희망도 없었다.
그리고, E-235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뭔가가 탁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 허무하다. 이게 내 인생의 끝인가.'
235는 다른 인조인간들과 함께 오늘 채굴한 자원들을 광차에 싣고 파울로와 함께 광산을 나가기 시작했다.
시한부 인생이라 생각하자, 235는 평소와는 다른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E 시리즈의 인조인간들 역시 그와 똑같이 생겼다.
비쩍 마른 몸에, 머리카락은 한 톨도 나지 않은 생체단말기.
그들의 눈에는 아무런 빛이 없었고, 그저 오늘 하루의 할당량을 끝내고 '홀리카'에 접속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 역시 홀리카에 접속할 시간만을 기다리며 텅 빈 눈으로 이들과 똑같이 살아있었으리라.
곧 죽는다고 생각하자, 모든 게 달라보였다.
흐리멍텅한 동료들도, 그들을 괴롭히던 파울로도, 그들이 끌고 나가는 광차도, 채광동굴도, 그리고 흔들리는 천장도...
'흔들리는 천장?'
천장이 흔들린다는 걸 그가 막 알아채기 무섭게, 천장이 무너져내렸다.
다행히 앞서가던 파울로와 빨리 알아차린 235.
그리고 앞쪽에 있던 E 시리즈들은 멀쩡했으나 미처 피하지 못한 E 시리즈 동료들은 쏟아져내리는 천장에 깔려서 그대로 죽어버렸다.
"이봐, 다들 정신차려!"
235는, 문득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그들을 보자 가슴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서글픈 마음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죽지 말라고! 다들, 제발!"
아무리 희망없이 살아갈지라도 동료였다.
그가 곧 죽으면 그를 기억해줄 동료들이었다.
평소라면, 자신의 에너지를 아끼기에도 바빴을 235는 오늘만큼은 왜인지 서글픈 마음을 참지 못하고 깔려죽은 동료들을 파내기 위해 곡괭이로 흙을 파냈다.
파울로는 그런 235를 보며 마구 소리를 질렀다.
"야! 야이 쓰레기야! 누가 네 마음대로 곡괭이를 쓰랬어! 나머지 쓰레기들은 곧 다른 팀에서 와서 치울 거라고! 야, 당장 안 그만둬! 제국의 공공기물을 파손하지 말라고!"
촤악, 촤악!
파울로는 일말의 자비심도 없이 235의 등을 에너지채찍으로 때렸고, 235는 강렬한 고통을 느끼며 곡괭이를 떨어뜨렸다.
"아아악..."
그는 그 자리에 쓰러져, 막 곡괭이로 파낸 동료.
E-234의 상반신을 잔해더미에서 끌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E 시리즈는 모두 그저 생산기계에서 생산되는 생체인형일 뿐이지만, 234는 235와 같은 생산기계에서 생산되었고, 마침 같은 행성으로 배정받았기에 둘 사이에는 항상 묘한 유대감이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광산에서도, 홀리카에서도 항상 서로를 챙겨주곤 하는 편이었었다.
하지만 235와 별 다를 바 없이 연약하던 234는 그대로 죽어버린 상태였다.
"234..."
235는 서글픈 눈빛으로 그를 빼내려다, 문득 잔해에 섞여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팔각형의 무언가였다.
팔각형의 무언가의 뒤쪽 잔해에서는 커다란 상자 같은 것과 여러 부장품 같아보이는 것들이 있었는데, 저 상자에서 굴러떨어진 모양이었다.
'이, 이것들 때문에 234가...'
235는 떨리는 손으로 234를 깔아뭉갠 팔각형의 얇은 판조각을 잡았다.
그 순간, 파울로가 더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뛰었다.
"뭐야, 젠장! 유물이라고? 또 유물이 나왔어!? 빌어먹을, 채굴이 또 한동안 중단되겠구나! 빌어먹을, 그거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마! 야이 쓰레기야, 당장 손에서 놓으라고!"
파울로는 235를 더욱 거세게 채찍을 때렸고, 235는 결국 형제와 같은 234를 죽게 만든 부장품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제 자리에 돌려놓아야 했다.
'죽음이란, 도대체 뭘까...'
235는 234의 죽음을 애도하지도 못하는 자신에 대해 서글픔을 느끼며 판조각을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스르르...
235는 어째 그 팔각형의 판조각에서 뭔가 이상한 것이 흘러나와 자신의 몸에 스며드는 환각을 보았다.
"...?"
하지만 다시 보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팔각형 조각을 내려놓고, 투덜거리는 파울로에게 몇 대를 더 얻어맞은 후 지상으로 나왔다.
* * *
E-235를 비롯한 E 시리즈들은 모두 지상으로 나와 이상이 생겼는지 검사를 받은 후, E-B3에 설치된 E 시리즈 관리소로 돌아갔다.
"빨리빨리 들어가, 쓰레기놈들아. 쓸모없는 쓰레기놈들. 개같은 유물 때문에 채굴도 중단되게 생겨서 짜증나는데 내 시간도 또 뺏어가는 거냐!"
E-B3에서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었다.
미확인 에너지를 사용하던 E-B3의 선주 종족의 유물로 추정되었고, 제국법상 이런 유물이 나올 시엔 채굴이나 공사 등의 행위를 금하고 있었다.
덕분에 235를 비롯한 E 시리즈는 몇 달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E 시리즈 관리소의 캡슐 안에서 홀리카에 접속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형제들이 죽은 건 서글픈 일이었지만, 235에겐 나름 좋은 소식이기도 했다.
캡슐 안에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수명이 줄어들 일은 없었으니 말이었다.
235는 캡슐에 들어가, 전뇌장치에 머리를 뉘이며 눈을 감고 '홀리카'에 접속했다.
* * *
지이잉-
E-235가 다시 눈을 뜬 곳은, 낡은 아파트 단지의 방구석이었다.
"후우..."
'홀리카' 안쪽이었다.
어째서 부품 취급되는 인조인간인 그들이, 9등 '신민'으로 불리는가.
그것은 그들이 '홀리카'라는 가상현실에 접속해서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6, 7등 신민으로 승급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역시 감정과 생각이 있었고, 홀리카에서 자신들의 감정과 생각 등을 통해 뭔가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인조인간이라도 제국의 '인류'의 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물론 대부분의 인조인간들.
9등 신민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무슨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는지조차 몰랐고, 그저 홀리카를 차가운 현실의 도피처로 삼을 뿐이었다.
홀리카에선 그들의 육체는 추위와 연약함에 시달리지도, 죽을 위기에 시달리지도 않고 NPC들로부터 '인간 같은'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제국의 인권단체들은 홀리카에 대해 이렇게 비판하기도 했다.
홀리카는 9등 신민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9등 신민들에게 투여하는 마약일 뿐이라고.
물론 235 역시 그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이었다.
"상점창."
띠링!
235의 앞에 홀리카에서 몇 가지 물품들을 구할 수 있는 상점창이 떠올랐다.
"검색, 조화."
235는 상점창을 뒤져 하얀 조화를 찾아 구매했다.
오늘 죽은 234 역시 홀리카에 집이 있었다.
물론 오늘 사망자로 등록됐을 테니 집이 사라지고, 무덤이 남았을 터였다.
235는 234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조화를 구매한 후, 인벤토리를 켰다.
"...응?"
문득, 235는 자신의 인벤토리에 이상한 게 들어있는 걸 확인했다.
"뭐지 이건?"
팔각형의 무언가였다.
235가 인벤토리에 손을 넣어 그것을 꺼내보자, 그는 이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이건...!"
오늘 그가 만졌던 E-B3 선주 종족의 유물이었다.
234를 죽게한 원흉이기도 했다.
"도대체 이게 왜 여기 있지...? 내가 미친 건가?"
235는 이 팔각형 판조각을 바라보며 혼란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이라도 신고를 해야할까?
유물을 만졌더니 가상현실 인벤토리에 유물과 똑같이 생긴 아이템이 들어있었다고?
'에이, 됐다.'
235는 한숨을 쉬었다.
그가 신고할 필요도 없었다.
E 시리즈는 홀리카 내에서 24시간 감시받고 있었고, 아마 그가 신고할 필요도 없이 곧 그를 감시하는 중인 감시관이 홀리카 내로 아바타를 보내 아이템을 회수하고, 그의 홀리카 접속을 끊은 후 다시 한 번 정밀검사를 시킬 터였다.
그는 신고를 하는 것보단 검사관이 오기 전에 234에게 빨리 조화를 바치고 오자고 생각했다.
235는 234에게 배정된 홀리카 내부 무덤으로 갔다.
자그마한 공동묘지 내부 무덤이었다.
이왕 마약성 가상현실이라면 조금 더 좋은 대우를 해 줘도 되는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으나 어쩔 순 없었다.
"...잘 가, 형."
235는 1초 먼저 태어난 234에게 작별의 인사를 전하며 조화를 그의 무덤에 놓았다.
"...나도 곧... 따라갈게."
몇 달간 채굴이 중지되어 시간을 벌었지만, 결국 채굴은 다시 시작될 테고.
235도 곧 죽을 터였다.
235는 몇 달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천천히 홀리카 내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
235는 왜 아직도 검사관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지 의아했다.
"뭐지, 버그아이템이 추가됐는데 왜 아무도 안 찾아오는건지..."
그는 의아해하며 팔각형 조각을 들어보았다.
잔뜩 녹이 슬어있는 그것을 보며, 그는 팔각형 조각이 뭔지 알아내보기로 했다.
"상점창."
띠링!
그는 상점창에서 '녹 제거 아이템'을 꺼내 팔각형 조각의 녹을 녹여보고, 표면에 붙어있던 진흙을 떼어내 보았다.
이내 그는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아, 거울이구나."
팔각형 조각은 팔각형 거울이었다.
팔각형의 테두리 안에, 동그란 원형 유리거울이 잠들어있었다.
얼마간 그는 슬픈 얼굴로 유리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특이한 일이 생기긴 했지만, 어쨌든 자신 역시 이 거울이 죽인 234처럼 곧 죽을 것이다.
죽음.
235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홀리카 내부 숙소의 침대에 누워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형... 보고싶어."
홀리카에서 구현된 235의 아바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간 234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 235는, 그대로 거울을 손에 쥐고 잠에 들었다.
* * *
"...나... 립..."
"......"
"...일어나, 원립!!!"
"...헉!"
235는 화들짝 눈을 떴다.
누군가 자신을 깨우고 있었다.
'검사관인가? 왜 이리 늦었... 어?'
235는 문득, 자신의 몸을 만져보았다.
이상했다.
홀리카 특유의 불쾌한 가상현실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분명 현실의 몸이었다.
'아, 그렇구나. 검사관이 날 캡슐에서 빼냈구나. 정밀검사를 하려는 거겠...'
그러나, 문득 235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어?"
그의 형제.
234가, 눈 앞에 있었다.
어려진 상태로.
"어?"
235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도 이상한 상태였다.
훨씬 생기있고 숨쉬기도 편했다.
거기에 털 하나 없었던 그의 머리엔 검은 머리카락이 돋아나 있었다.
몸 역시 말라비틀어진 몸이 아닌, 탱탱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몸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그리고 그때.
'234'가 버럭 화를 내며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야! 이 개새끼야! 죽은 줄 알고 놀랐잖아... 진짜... 죽은 줄 알았다고... 원립."
원립?
그건 또 무슨 단어란 말인가?
그와 동시에 235의 머리에 갑자기 수많은 '기억'들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이, 이건...!"
그는 눈을 부릅떴다.
"아...!"
그는 235가 아니었다.
평촌에서 16년을 살아온 평촌 토박이 소년 '원립'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잡아먹는 마도 수선자에게 그의 형 '원율'과 함께 잡혀온 상태였다.
"...아...?"
235는, 자신이 평촌의 원립인지, E-B3의 E-235인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혼란스러운 눈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 작가의말
비정기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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