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거울
235는 얼마간 고민하다, 자신의 정체성이 '235'에 더 가깝단 걸 이해했다.
아무래도 당연했다.
'원립'은 약 16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235는 30년 가까이 E-B3에서 광물을 채굴하며 살아왔었다.
보내온 시간의 차이가 큰 것이었다.
그는 235의 입장에서 '원립'의 일생을 쭉 둘러보았다.
원립은 연호국이라는 나라, 해성의 평촌마을에 버려진 거지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원율'이라는 아이와 만나서 의형제를 맺고서 평촌에서 악착같이 살아왔으며, 최근에는 거지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동안 모은 돈으로 원율과 함께 작은 만두가게라도 차리려던 차였다.
하지만, 그들은 '적혈 노파'라고 불리는 마도 수선자에게 잡혀와서 제자 겸 실험체가 되었단 것 같았다.
'...수선자?'
235는 은하제국에선 없었던 개념에 눈을 찌푸렸다.
이 나라, 이 별에는 '수선자'라는 개념이 있었다.
그들은 한 손으로 도술을 부려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불렀으며, 콩을 뿌려 병사를 만들고 신비로운 술법을 익혀 장생불로한다고 하였다.
'...이게 대체 뭐지? 초상능력?'
은하제국에도 개조시술을 받거나, 특수혈통인자를 이어받아 초상능력을 쓰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아예 4등신민부터는 무조건 강화인간이라는 소문을 듣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째 원립의 기억에 있는 '마도 수선자'란 노인은 그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초상능력자들의 초상능력보다 더 괴악하고, 강하고, 다채로웠다.
235가 판단하기에, 그가 갑자기 눈을 뜬 이 세상은 서기 1500년대 은하제국의 모성 '지구'에 있었다던 어떤 나라의 문화풍이랑 비슷했다.
그 나라에 있던 신선사상이니, 도교라거니 하는 것들과 굉장히 유사한 개념들이 있는 세계였고, 그 나라를 모티브로 한 문화작품들에 나오는 개념들도 있었다.
예컨대 '무림인'이라거나, '관군'이나 '화포'같은 원시시대의 개념들도 있었다.
그리고...
원립은 이 '마도 수선자'가 백 명의 무림인.
천 명의 관군 병력, 그리고 수십 문의 화포를 맞고, 꾸역꾸역 재생하며 그들을 잡아죽였던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일로 인해, 원립의 몸에는 마도 수선자에 대한 공포가 각인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235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마도 수선자는 이해할 수 없는 괴이였다.
'도대체 수선자라는 건 뭐지...? 초상능력자들은 강하긴 해도 저 정도 능력을 사용하려면 무조건 장비의 도움이나 강화장갑, 전함 노심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마도 수선자란 자는 달랐다.
'맨몸으로 이런 규모의 능력을 펼칠 수 있다고...?'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는 문득 옆에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234'. 아니, 이 세계에서는 '원율'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인지하고 흠칫 놀랐다.
"어, 어어... 형...?"
"야! 괜찮냐고, 원립! 아까 실험당한 후부터 상태가 안 좋던데, 정신이 들어?"
"으, 으응..."
그의 '형'.
원율은 한숨을 푹 쉬며 원립에게 말했다.
"...정 못 견디겠으면 말해. 스승님께 부탁해서... 너 정도는 실험 횟수를 좀 줄이게 해줄 수 있어."
"......"
지끈!
'실험'이란 말에 235는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는 게 느껴졌다.
원립이 '방금' 받은 실험.
그것은... 거울 형태의 기묘한 법기(法器)라는 도구를 원립의 혼백 속에 강제로 밀어넣는 실험이었다.
적혈 노파가 주워온 법기라던데, 사용법을 알아내기 위해 실험해 봤단 것 같았다.
그리고, 235는 원립의 기억 속에 있는 그 '거울 법기'가, 235의 '인벤토리' 안에 있던 거울과 똑같다는 것을 알아채고 생각에 잠겼다.
'이 세상은 뭘까. 가상현실? 아니면 환각? 알파에너지에 의해 보게되는 환각인가?'
어쩌면 그는 벌써 죽었을 수도 있었고, 뇌만 뽑혀서 통 속에서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중일지도 몰랐다.
그와 같은 9등신민에겐 흔히 행해지는 실험중 하나였으니 말이었다.
그러나...
"...형."
235는.
눈 앞에 살아있는 234... 아니, 원율을 보자.
아무래도 상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서도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던 것인지, 원립의 기억 속에선 항상 원율을 향한 따스한 감정이 살아있었다.
'그래, 가상현실이면 어때. 환각이면 어때...'
죽었던 234를, 이런 형태로라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235는 이 현실이 가상현실인지 아닌지 따지지 않기로 했다.
설령 꿈을 꾸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냥 길몽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산책이라도 하면 안 될까."
그는, 오래간만에 234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자, 그에게 제안했다.
얼마간 235를 바라보던 원율은 잠시 그를 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립아. 산책 할 겸 오래간만에 평촌에 내려가서 뭐라도 사 먹자."
* * *
원립은 원율과 함께 적혈 노파의 동부(洞府)를 나와, 산 아래로 내려갔다.
"하아아..."
원립은 가슴을 펴고 걸으며 상쾌한 공기와 따스한 햇살을 느끼며 웃었다.
그는 언제나 E-B3의 채굴장에서 먼지섞인 공기를 마셔왔고, 대부분의 시간을 지하에 있었기에 햇빛은 느낄 새도 없었다.
거기에 홀리카에 접속한다고 해도, 그들 9등 신민은 제대로 된 인권이 없었기에 전기를 아낀다는 명목으로 햇빛이나 상쾌한 공기를 제대로 구현해주지도 않았다.
그런 걸 구현하려면 그들이 홀리카에서 따로 재화를 벌어서 '구매'해야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누군가 그들을 광산으로 밀어넣지도, 재화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마음껏 따스한 햇빛과 상쾌한 공기를 들이쉬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이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일까.'
은하제국에서 제대로 된 '인간'은 6등신민부터였다.
7등신민부터는 제대로 인류 취급을 받지 않고, 인권조차 오직 인권단체에 의해서만 간혹 취급되어질 뿐이기에...
많은 '준 인간' 신민들은 '인간'으로 살아보기를 소망하곤 했다.
235는 원립의 몸으로, '인간다운' 사치를 마음껏 누림에 한껏 즐거워했다.
원율은 그런 원립을 보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바깥 공기가 그리 좋은 거냐, 원립?"
"...응, 형."
"하하, 하긴... 바깥이랑 안은 또 다르긴 하지."
원율은 원립의 행태에 피식 웃었고, 원립은 곳곳에서 느껴지는 풀내음과 신기한 꽃 냄새, 물 냄새 등에 환희를 느끼며 마음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감사한 일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재화도 소비하지 않고 공짜로 누릴 수 있다니...'
설령 뇌가 적출당해 통 속에 갇히고, 가상현실에 실험체로 끌려온 것이라도 이 자연환경을 누린 것만으로 235는 만족하기로 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평촌에 내려왔다.
평촌 사람들은 원율과 원립을 보자 모두 허리를 굽씬거리며 고개를 숙였고, 235는 그 모습에 덜컥 무섭기까지 했다.
"...으음, 적응이... 안 돼."
저들은 하나같이 순수한 인간 혈통이었다.
그런데 그런 위대한 인간이, 최소 6등 신민은 될법한 '인간'들이 인간 이하 생체 인형인 자신에게 허리를 숙이는 상황에, 235는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하하, 그렇겠지. 뭐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거지 취급하던 인간들이었으니까."
원율의 목소리를 들은 평촌 사람들의 몸이 부르르 떨렸고, 원율은 피식 웃으며 소리쳤다.
"이제 됐소, 다들 생업에 종사하시오! 나랑 내 동생은 그저 거리를 구경하러 온 거요."
원율은 사람들에게 일어서라고 명령했고, 사람들은 원율의 명령에 부산하게 움직이며 그들에게서 멀찍히 떨어졌다.
"...수선자의 제자가 되었단 건 이런 거니까 뭐. 너무 어색해할 필욘 없어, 원립. 우리도 이젠 어엿한 수선자니까 이런 취급도 익숙해져야지."
원율은 원립의 등을 툭 치며 허리를 펴고 걸으라 했다.
그리고, 235는 어쩐지 원율의 눈에서 서글픈 빛을 볼 수 있었다.
"만두나 먹으러 가자! 어쨌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 꿈이었잖아."
하지만 이내 원율은 서글픈 빛을 지우고, 해맑은 얼굴로 원립과 함께 만두가게로 향했다.
뜨끈뜨끈한 증기가 만두가게에서 터져나오고 있었고, 원립은 그 가공할 증기에 질려 안으로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원율은 성큼성큼 들어가, 만두를 주문했다.
"아저씨, 만두는 얼마입니까."
"아이고 수선자 님.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하, 장씨 아저씨. 왜 그러십니까. 수선자가 됐어도 저희가 아저씨한테 하대를 하겠습니까? 예전처럼 대해 주세요."
"으, 으음... 알겠다. 험험, 뭐... 오래간만에 봤으니까 공짜로 주마. 왕만두, 고기만두, 채소만두, 찐빵이 있는데 뭘 먹을거냐."
"아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사양않고... 늘 먹던대로 찐빵이랑 채소만두요. 원립은 왕만두 주세요."
"오냐."
만두가게 주인.
장씨 아저씨는 두 사람에게 냉큼 만두를 주었다.
원립은 왕만두라는 만두를 받아들고 뜨거워서 그릇째 놓칠 뻔하다, 후후 불며 식혀서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히야, 뜨거운 거 봐라. 원립, 어때? 오래간만에 먹는 장씨 아저씨 만두인데. 어? 왜 안 먹고 있어?"
"어, 그, 그게..."
235는 어색한 표정으로 원율을 바라보다, 그릇에 담긴 왕만두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어떻게... 먹었더라...?"
"...뭐?"
235는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아니, 235뿐이 아닌 E 시리즈 전부가 대체로 그랬다.
모두가 인형 보관 캡슐에 들어가 홀리카에 접속하면, 그들이 숙면하는 사이 그들의 목에 관을 꽂아 영양액을 꽂아서 영양을 '주입'했으니까.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해 왔고, 홀리카에 접속해서도 현실에서 그렇게 계속 먹어왔으니 가상현실에서도 뭔가를 먹는단 생각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원립의 기억에는 '먹는' 방법이 있긴 했었지만 235와 원립의 기억이 혼재된 지금의 상황에서...
235는 자신이 이런 뜨거운 것을 입에 넣고 씹어서 삼킨다는 사실이 너무나 어색할 뿐이었다.
그러나, 235의 질문을 들은 원율은 잠시 뜨악한 표정을 짓다, 뭔가 짚히는 것이 있는 듯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실험으로 원신(原神)이 손상된 건가... 제길...!"
"...?"
"미안하다, 원립. 내가 지켜주지 못해서..."
원율은 서글픈 표정을 짓더니, 친절하게 235에게 '먹는 법'을 시연해 주었다.
"자, 일단 입을 크게 벌리고... 왕만두를 크게 베어물어! 이렇게!"
"어, 입을 벌리고... 이걸 입에 넣으라고? 엄청 뜨거워 보이는데?"
"괜찮아, 안 죽어! 날 믿어, 원립!"
"으음...!"
235가 보기에 이 뜨거워 보이는 덩어리를 삼키는 건 엄청난 모험이었으나, 234. 아니, 그의 형제의 말이었기에 믿기로 했다.
235는 눈을 딱 감고, 그대로 왕만두를 한 입 베어물었다.
그 순간, 235는 눈을 크게 뜨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어어...!"
235는 정신이 하늘로 치솟았다, 땅에 내려앉는 듯한 황홀감과 몸 자체가 왕만두를 강력하게 갈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허어어억...!"
동시에 원립의 몸에 각인되어있던, '먹는 법'이 그대로 235에게 새겨지며, 235는 허겁지겁 왕만두를 집어삼켰다.
"이, 이게... 이게...!"
235는 눈물을 흘렸다.
그가 듣기로, 6등신민들. 아니, 7등 신민들 중에서도 이종족들 부터는 '음식'이란 것을 '먹는다'라고 했다.
이전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고, 무슨 행위인지도 몰랐다.
파울로가 가끔 E 시리즈들 앞에서 '닭다리'라는 것을 입에 집어넣는 것을 보면서도 뭘 하는지 이해하질 못했고, 파울로는 그런 E 시리즈들을 보며 낄낄댔었다.
그리고, 왕만두를 처음 먹은 이날.
235는 '먹는다'라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 깨달으며, 눈물을 펑펑 흘리며 왕만두를 계속 집어삼켰다.
"원율 형. 기분이 이상해. 이거, 왜 이러지...?"
"하하하, 오래간만에 장 씨 아저씨 만두를 먹어서 감동받았나 보구나?"
"가, 감동...? 그래, 감동받은 거 같아."
235는 허겁지겁 만두를 입으로 가져갔고, 원율은 그런 235를 씁쓸하게 바라보며, 자신은 채소만두와 찐빵을 하나씩만 집어먹은 후, 235에게 자신의 접시를 건넸다.
"천천히 먹어. 체할라."
"고마워, 형...! 너무 감동. 그래, 감동적이야."
"그렇게 맛있냐?"
"...맛...?"
235는 '맛'이란 단어가 무엇인지를 떠올리다, 원립의 기억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고,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응, 맛있어...!"
"푸하하, 하긴. 스승님의 동부에선 수 일간 몸을 청정하게 한답시고 벽곡단만 먹었으니까... 더 먹어. 장 씨 아저씨! 추가 주문하려 하는데, 얼마에요?"
"에헤이, 말 놓으라 했으면서 우리 사이에 돈을 받을 게냐? 됐다. 먹고 싶은 만큼 더 가져가라."
235는 원율과 함께 배가 터져라 각종 만두와 찐빵을 흡입했다.
원율은 그런 원립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얼마 후 두 사람은 만두가게를 나와서 다른 가게로 향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에헤이 뭘 그러냐. 또 찾아와라!"
장 씨 아저씨는 원율, 원립 형제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원율은 아직도 왕만두의 황홀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원립에게 말했다.
"...어쩌면, 스승님의 제자가 아니라 장 씨 아저씨의 만두기술을 물려받아서 만두가게를 차리는 것도 좋았을텐데. 그렇지?"
"응, 그런 거 같아!"
"뭐 어쨌든... 이제 다른 것도 먹어볼래?"
그 말에 원립의 두 눈은 커졌고, 원율은 그런 원립과 함께 소면가게, 당과 가게, 객잔, 주루 등을 찾아 온갖 신기한 음식들을 함께 먹었다.
소면, 당과, 볶음면, 죽엽청, 여아홍, 청주 등의 술.
235는 처음 느끼는 온갖 '맛'들에 눈이 뒤집어질 지경이었고, 원율과 함께 평촌의 음식점들을 하루 종일 방문해 모든 음식을 먹어보았다.
"꺼억... 이게 살아있단 거구나..."
235는 꼬치를 뜯으며, 저녁이 되어서야 235와 함께 평촌을 나섰다.
"큭큭... 맛있었냐?"
"응, 맛있었어. 고마워 형."
235는 그의 형 원율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며 둘이서 나란히 점차 어두워져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이 어두워졌고, 원립이 발걸음을 재촉할 때였다.
그는 문득, 원율이 기묘한 손동작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귀화(鬼火)."
취지직!
그와 동시에, 원율의 손 위에서 푸른 빛의 도깨비불이 타올랐다.
"어두워서 귀화술(鬼火術)을 좀 해 봤어. 어때, 많이 늘었지?"
"...으응."
235는 그 기이한 현상에, 눈을 말똥히 뜨고 원율의 손 위에 떠오른 도깨비불을 바라보았다.
역시 이 '법술'이라 불리는 초상능력은 신기했다.
아무런 장치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순수한 몸으로만 초상능력을 발현하다니!
차라리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이었으면 이해했겠지만, 235의 눈에 그와 그의 형 원율은 분명 인간이었다.
마도 수선자란 적혈 노파도 마찬가지였고 말이었다.
"이래봬도 벌써 연기기 2성이라고! 대단하지?"
"우와..."
원립의 기억에선 원립도 잘은 몰랐으나, 수선자들에겐 수선의 '경지'란 것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특수한 호흡과 특수한 자질, 혹은 단약이라는 물건을 만들어서 먹으며 '천지영기'라는 특수 에너지를 받아들여 몸에 저장하고, 그 저장한 상태가 좋고 저장햔 양이 많으면 더 높은 '경지'에 이른다고 했다.
또한 더 높은 '경지'에 이를수록, 인간은 더욱 더 많은 법술과 강력한 신통을 부리고 장생불로하다는 게 가능한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원립의 기억에 의하면, 이러한 '수선'이라는 수행법은 아주 특수한 몇몇만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영근'이라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만이 이런 수선법을 익혀 수선자가 될 수 있었고, 영근이 없는 범인(凡人)이 수선을 행하려면 아주 특수한 영약을 먹어서 체질을 변화시키거나 극기(克己)를 통해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야만이 영근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을 제자로 거둔 '적혈 노파'는 특수한 재료들로 영근을 만드는 영약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형인 원율의 경우, 적혈 노파의 영약이 매우 잘 들어 아주 좋은 영근을 각성했다는 것 같았다.
반대로 원립의 경우는 영약이 잘 듣지 않아 반쪽짜리 영근을 각성했기에, 원율은 적혈 노파에게 이런저런 법술을 배우고 '수선공법'이라는 공법을 익히는 반면.
원립은 적혈 노파에게 매일같이 학대에 가까운 실험을 받고있었다.
때문에, 적혈 노파 밑에서 수선공법을 배우고, 천지영기를 호흡하며 느릿하게 흡수하여도 원립은 연기기 1성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반면.
원율은 어느덧 연기기 2성이 되어 제대로 법술도 쓰는 것이었다.
"넌 어때? 철법결(鐵法訣)은 제대로 수행하고 있어?"
원율은 235에게 철법결이라는 수선공법의 진도에 대해 물었고, 235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립도 마찬가지였지만, 235는 수선공법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고, 법술이라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어제 스승님의 서고에서 봤는데, 넌 금(金) 속성 영근을 각성했잖아? 그런 만큼 금 속성 법기 곁에서 수련하면 더 효과가 좋을 거래. 또 내가 근래에 영기를 운용하다가 깨달음을 얻은 게 있는데, 동부로 돌아가면 공법 운용 좀 도와줘볼게. 내가 도인(導引)해주는 대로 영기를 운용해봐."
그리고, 원율은 그런 235가 안타까웠는지 최대한 돕고자 하는 것 같았다.
235는 원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얼마간 적혈 노파의 동부로 향하는 오솔길을 걸어가며 법술, 수선공법에 대한 잡담을 나누었다.
"이제 저 고개만 넘으면 동부다. 자 그럼 어서 가서..."
그리고, 마침내 동부까지 한 고개를 남겨두었을 때.
235는 원율을 잡으며 아침부터 느꼈던 원율의 눈빛을 떠올리고 말했다.
"형, 할 말이 있어."
"음? 뭔데."
"...형."
235는 원율의 눈빛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장 235가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서 많이 봤던 눈빛이었으니까.
그 눈빛은, 죽음을 받아들인 눈빛이었다.
"혹시, 무슨 일 있어?"
"......"
원율은 그 말에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235는 원율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역시...'
이름은 달라졌지만, 눈 앞의 상대는 234와 동일한 인물 같았다.
마치 234가 기억을 잃고 환생하면 저런 모습일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하려고 할 때 눈빛이 파르르 떨리는 저 습관마저 그렇게 똑같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원율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어. 너나 잘하라고, 스승님 실험을 못 버티고 기절까지 해가지곤! 따라와, 오늘 내가 네 영기 운용을 도와줄 테니까."
"...알겠어."
235는 그렇게 말을 돌리는 원율을 따라가, 동부 내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가부좌라는 자세를 하고 수선공법의 수행을 시작했다.
적혈 노파가 그에게 익히게 한 것은 '철법결'이라는 수선공법으로, 금(金) 속성의 영기를 호흡을 통해 흡입하는 공법이었다.
"내가 찾아봤는데, 철법결은 금 속성이 많은 곳에서 운용해야 효과가 있대. 자, 여기 금 속성 비검 법기야. 이걸 쥐고 천천히 금속성 영기를 느끼면서, 내가 흘려보내는 기운을 따라 영기를 운용하는 거야."
235는 원율이 자신의 등에 손을 대고 영기를 흘려보내주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고 자신의 체내를 흐르는 기이한 에너지를 느꼈다.
'이게... 천지영기?'
그리고, 235는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이건... 알파에너지잖아!'
항상 E-B3 전체에 짙게 깔려있는 에너지였다.
은하제국에서 235를 비롯한 E 시리즈 전체가 말라죽게 하는 미확인 에너지였다!
그런데 이게 천지영기라니?
그리고 수선자는 이 알파에너지를 이용해 법술과 신통이라는 걸 부린다니?
'도대체... 이 세상은 뭐지?'
235는 이 기이한 세계에 대해 도저히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치... E-B3에 거주했지만 멸종했다던... '선주 종족' 같아.'
E-B3의 선주종족에 대해선 잘은 몰랐으나, 아주 오랜 세월 이전.
그러니까 억 단위 이상의 과거에 진즉 멸종한 종족이었으며, E-B3의 알파에너지를 자유자재로 다루던 종족이었다는 추측이 있었다.
그 정보 자체는 그렇게 중요한 비밀은 아니었기에 홀리카에도 풀려있는 정보였고, 235 역시 그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이 세계는 대체 뭘까...'
우우웅-
235는 그렇게, 원율이 도인해주는 기운을 따라 철법결을 운용하며, 철법결의 법력이 쥐꼬리만큼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율은 더 이상 235의 도인을 도와줄 필요 없다고 느낀 것인지, 235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235의 방을 나섰다.
235는 집중한 상태로 철법결을 운용하다가, 그렇게 까무룩 잠들어버렸다.
* * *
치이이이익-
추운 것 같았다.
235는 눈을 찌푸렸다.
그와 동시에, 파공성이 허공에서 터졌다.
파앙!
파지지직!
그와 동시에, 미세한 정전기같은 전기가 강제로 235의 정신을 깨웠다.
"이 쓰레기들아, 일어나라! 지진이 일어나서 폐기물 처리반들까지 싹 다 광산에서 깔려죽었댄다! 다른 처리반이 오기 전까지 우리가 임시로 며칠간 처리반 일을 맡아야 한다니, 다들 일어나란 말이야!"
"으으윽..."
235는 정신을 차리며, 자신이 홀리카 캡슐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캡슐 바깥에선 파울로가 소리를 지르며 다른 E 시리즈들을 깨우고 있었다.
235는 멍한 눈으로 주변을 보다 깨달았다.
"아..."
그랬다.
원율이니, 수선자니, 영기니 뭐니.
전부 꿈이었던 것이었다.
그냥 그가 사실상의 형이었던 234를 잃은 후, 너무 그리워서 사실적으로 꾼 꿈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
235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캡슐에서 나와 파울로를 따라 광산으로 향했다.
'재밌는 꿈이었네.'
재밌었다.
그리고... 참으로 따뜻했다.
꿈에서의 아침 햇살, 꿈에서의 왕만두, 그리고 꿈에서의 그의 형, 원율.
모두가, 사무칠 정도로 따뜻한 꿈이었다.
'234가 많이 그리웠나보구나.'
하지만 이젠 꿈에 매몰될 때가 아니었다.
'됐다. 이제 집중하자.'
파울로는 지진이 일어나서, 본래 광산 안에서의 쓰레기를 처리하거나, 죽은 9등 신민들의 시신을 처리하는 처리반들이 깔려 죽었고 그들이 임시로 처리반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었다.
"자, 다들 안전모 쓰고 들어가라! 안전모 하나도 제국의 공공기물이니, 흠집이라도 냈다간 내게 호된 벌을 받을 것이야!"
아무래도 상부에서 지침이 내려온 건지, 파울로는 평소에는 꺼내지도 않던 안전모를 꺼내 E 시리즈가 쓸 수 있게 해 주었고, 덕택에 235는 안전모를 쓰고 광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시체와 광산의 광맥 근처까지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돌덩이들을 치우기 위해 E 시리즈들이 아래로 내려갔을 때였다.
"...어?"
문득, 235는 기묘한 느낌에 눈을 부릅떴고, 파울로는 그 소리가 거슬렸는지 에너지 채찍을 휘둘렀다.
"이 쓰레기 놈이 무슨 '어'야! 어리버리하게 서 있지 말고 빨리 들어가란 말이야! 저 뒤쪽으로 가서, 무너진 돌을 이쪽으로 밀어 봐라!"
파울로는 짜증을 내며 235를 무너진 돌무더기 뒤쪽, 광맥 쪽으로 밀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광맥 근처에서 235는 방금 느꼈던 기묘한 느낌을 더욱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광산의 광맥에서 진득하게 뿜어지는 영기는, 진득한 금영기였다.
우웅, 우우우웅!
후우우우...
235는 멍한 눈으로 저도 모르게, '꿈 속'에서 한참을 연습했던 철법결을 운용했고, 이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단전 어림에서 은은한 에너지가 느껴지며, 근처의 알파에너지.
'천지영기'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어...?"
분명 '원립'의 단전에 있었던 철법결의 '법력'.
정제된 알파에너지가, 235의 단전에 묵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 작가의말
원휼이란 이름은 어감이 너무 폭력적이라 원율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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