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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3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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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1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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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지몽(胡蝶之夢)(3)

DUMMY


레일건(Rail Gun)의 기본적인 위력은 약 30 메가줄(MJ)이다.


1 메가줄의 위력은 약 1톤가량의 차량이 시속 약 150KM정도의 속도로 움직일 때의 에너지라고 한다.


즉, 레일건 한 발의 위력은 1톤가량의 차량 30여대가 전속력으로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에너지가 쇠기둥 하나에 집약된 것이었다.


치지징-


235가 준비한 버튼이 눌리며 레일건의 포신(砲身).

두 개의 평행 레일(Rail)에 순차적으로 전기가 흐른다.


양극 레일에 전류가 들어온 후, 아마추어(Armature: 레일건의 평행레일 사이에 놓이는 도체)를 통해 음극 레일로 전류가 흘러가며 전류가 순환하는 루프 회로가 완성된다.


루프 회로를 따라, 어마어마한 자기장이 생성되고 자기장 안쪽에서 발사체.

235가 준비한 탄환이 움직이기 시작하다, 점차 가속되기 시작하였다.


치지지지징!


두 개의 레일 사이로 발사체가 빠르게 가속되며 점차 초월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순간.


레일건의 발사체는 소리의 속도를 뛰어넘으며, 주변에 닿는 공기를 플라즈마화시켜버리며 마침내 포신을 떠났다.


파캉!


발사체를 레일로부터 감싸던 사보(Sabot: 대략 레일건의 탄피 같은 것)가 부숴지듯이 벗겨지며, 레일건이 허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레일건의 속도는 음속의 7배.


목표물과 발사대와의 거리, 약 1KM.


발사체가 도달하는 시간은 대략 0.4~0.5초 사이.


목표물, 적혈 노파!


'가...!'


레일건은, 235가 '가라'라는 생각 두 글자를 채 완성하기도 전, 허공을 가르고 적혈 노파에게 도달했다.


직후.


소리를 넘어선 속도로 날아간 레일건이 적혈 노파가 있는 곳에 내리꽂히고 난 후에야 파공성과 진동이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천둥과도 같은 소리가 일대를 울렸다.


* * *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호(號) 적혈(赤血).

본명(本名) 매려로 불려온 여자는,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 뭐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뭐, 뭐가, 뭐가, 뭐가...!'


방금 전.

대략, 눈 한 번 깜빡일 시간 전까지, 그녀는 탈사지법을 완성하기 위해 그녀의 새로운 육체.

원율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무언가, 뜨겁고, 단단하고, 끔찍한... 끔찍한 무언가가 순식간에 수호진법을 관통하고 그녀의 몸을 꿰뚫었다.


찰나의 순간.

자신의 새 육체이자 마도, 귀도 수사들에게 있어 천고의 영체라는 귀도선골(鬼道仙骨)만은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마화(魔火)로 원율을 감싸안아 30장 바깥으로 밀쳐냈다.


'뭐, 뭐냐, 뭐냐 이건...!'


그녀는 자신을 꿰뚫은 쇳덩이를 보며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런 법력도, 영력도, 요력도,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쇳덩이다.


그 쇳덩이 하나에, 결단기 수사의 일격조차 막아낼 수 있는 수호진법이 그대로 일점관통당하고 자신의 육신이 재생할 틈조차 없이 그대로 기화(氣化)하여 증발해버렸다.


"헉... 허어어억...!"


그녀는 남은 힘을 쥐어짜, 뜨거운 열기에 탄화(炭化)되어있는 한줌 고깃덩이에서 뇌와 얼굴, 성대와 폐를 재생하며 상황을 파악해보려 애썼다.


'결단기 수사, 결단기 수사가 나를 공격한 것인가!? 대체 왜!? 뒷배도 변변히 없는 철기문 하나 멸문시켰다고? 범인들을 좀 죽였다고? 저계 산수(散修)들의 심장을 뽑아 공법을 연공했다고?'


그녀는 언제나 신중했고, 뒷배가 좋은 이들은 건드린 적이 없었다.

강자에겐 몸을 팔고 발을 핥고 온갖 아첨을 하면서 이 자리까지 살아왔다.

호 적혈. 본명 매려는 자신이 이런 끔찍한 짓을 당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일단 살아야. 살아야 해. 그래! 어쩌면 귀도선골에 대한 풍문을 누군가 줏어들은 겐가!? 그렇구나. 어떤 마도의 고인이 귀도선골이 필요했던 게야! 도망치자. 도망쳐야 해! 귀도선골은 저기 내버려 뒀으니까 그냥 이대로 도망치면 날 더 어쩌진 않을 게야!'


공기마저 타오르는 듯한 뜨거운 열기 속.


매려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어, 어떤 고인이신줄은 모르오나. 이 적혈... 아니, 이 매려! 선배님을 위해 제 동부에 있는 모든 보물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치겠습니다! 모, 목숨만.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이 역시 대답이었다.


축기기 주제에 사실상 결단기 후기에 가까운 신식과 감각을 가진 매려의 귓가로, 아주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딸칵-


직후.


방금 매려를 직격했던 것과 같은 쇠로 된 무언가가.

이번에는 수호진법도 없이 매려에게 다시 한번 직격했다.


꽈아아아앙!!!


* * *


235가 준비한 레일건의 발사체 개수는 총 3개.


이것조차 보험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었고, 실은 하나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235는 레일건에 몸을 관통당하고, 레일건에 맞은 여파로 전신이 플라즈마로 기화한 후에도 꾸역꾸역 머리부터 시작해서 상반신을 재생시키는 적혈 노파를 보며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정신나간! 저게 대체 뭐야!? 인간이... 아니, 인간 이전에 생명체가 맞긴 한 건가!?'


저따위 재생능력은 은하제국의 인간 초상능력자를 넘어, 적성 괴수들이나 외계종족들에게서조차 보기 힘든 수준의 것이었다.


물론, 235 자신도 현재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왈칵, 왈칵...


235의 양팔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적혈 노파가 설정해둔 혈시의 '자율행동'에 따라서.


235를 붙들고 있던 혈시는 적혈 노파에게 위협이 닥치자마자 235의 양팔을 부러뜨려버리고 적혈 노파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235를 붙들던 혈시뿐이 아니었다.

적혈 노파에 의해 제련된 모든 혈시들이 적혈 노파가 있는 쪽으로 미친듯이 달려가는 중이었다.


"끄으윽... 허억... 헉...!"


235는 끔찍한 고통에 이를 악물며 눈물을 흘렸다.


비록, 지능이 떨어지는 혈시가 판단하기에 235가 '빨간색 단추를 딸칵거린 것'과 '적혈 노파가 어딘가에서 음속을 넘어 날아온 무언가에 맞아 죽어가는 것'은 딱히 인과관계가 없었기에 235를 바로 찢어죽이진 않았으나,

어쨌든 혈시가 받은 명령은 '적혈 노파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235가 수상한 짓을 하지 못하게 제압하고 그녀에게 달려갈 것'이었으니 명령을 행한 것이었다.


적혈 노파에겐 지극히 불행히도.

그리고 235에겐 지극히 다행히도!


혈시는 235의 양팔을 부러뜨린 것을 끝으로, 더 이상 그를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끄... 으으윽..."


235는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내고는 마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레일건 2발이 직격한 여파로, 직경 40미터 크기의 크레이터가 생겨났으며, 그 옆쪽에는 검붉은 마화 한덩이가 이글이글 타오르며 원율은 불타지 않게 감싸안고 보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크레이터의 중앙.


그곳에는 검은 구슬같은 것이 하나가 남아있었다.


"해, 해치웠나?"


235는 직후 자신의 발언을 후회했다.


꿈틀, 꿈틀-


"미친..."


외단(外丹).

적혈 노파의 외단이라는 것 같았다.


외단이 무엇인진 몰랐으나, 원립의 기억 속엔 적혈 노파가 어쨌든 '마도 결단기 수사나 다름없는 재생력을 가진 노괴물'이라는 것만 들어있었다.


마도 결단기 수사가 무엇을 하는 존재들인진 몰랐으나, 235가 판단하기에... 저들은 인간. 아니, 인간을 떠나 생명체조차 아닌 것 같았다.


"재생하는건가...? 진짜로...?"


레일건을 두 발을 쏘았다.


두 발 모두 명중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 늙은 요괴는 외단을 중심으로 재생하고 있었다.


'애초에, 외단이란 것도 적혈 노파와 함께 있었을 텐데 레일건을 맞고 기화하지 않았다고? 단(丹)이라는 게 대체 뭐길래?'


235는 이 세상의 기이한 초상능력들에 대해 기가 질릴때로 질렸다.


'이번에 레일건을 쏘면, 그게 마지막인데. 그게 마지막인데...!'


애초에 시뮬레이션에선 1발로 끝났었다.


과연 어떤 변수가 또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이걸 맞고도 재생하면, 더 이상 내겐 남은 게 없어...!'


235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형을... 구하지 못하게 되는 건가...'


어젯밤을 떠올렸다.

원율이 그에게 가르쳐준, 남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떠올렸다.


원율을 구하고 싶었다.

아니, 구해야만 했다.


'그럴 순... 없어...!'


235는 충혈된 눈을 들어올리며, 근처에 떨어진 발사 버튼을 향해 다가가, 혀를 내밀었다.


키에에에엑!


저 마을 아래에서, 적혈의 혈시들이 적혈 노파의 주변을 애워쌌다.

그리고 혈시들이 입을 벌리자, 혈시들의 체내에 있던 무언가가 적혈 노파에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재생하는 적혈 노파에게 달라붙는다.

붉은 무언가가 빠져나간 혈시들은 흐물거리며 그 자리에 축 늘어져 쓰러졌다.

그리고, 혈시들에게서 무언가를 받아 흡수한 적혈 노파의 외단을 중심으로, 다시금 강력한 기세가 느껴지며 적혈 노파가 빠르게 재생하는 게 보였다.


"아, 안돼!"


235는 다급한 마음에 왼손을 움직여 다시금 버튼을 눌렀다.


딸칵-


235가 20여일간 끌어모았던 발전소의 전기가 모조리 마지막 레일건을 발사하는 데에 쓰인다.


마지막 발사체가 레일건의 포신을 떠난다.


다음 순간.


꽈아아아앙!


천둥소리가 산골짜기를 울리며, 평촌 중앙에 있던 크레이터가 더욱 더 깊어졌다.


"외, 왼손이...!"


아무래도 혈시가 왼손은 제대로 부러트리고 간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왼손 쪽은 뼈에 금만 간 것 같았기에 어느정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고, 235는 고통을 뒤로하며, 미친듯이 평촌을 향해 내려갔다.


적혈 노파가, 얼마나 더 재생할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론 안 된다.

그렇다면, 적혈 노파가 재생하는 틈을 타서 원율을 데리고 도망치자.


비록 적혈 노파는 대단한 수선자였기에 얼마든지 그를 날아서 추적해 오겠지만... 원율을 데리고, 달려보자.


달릴 수 있는곳까지.


'형을 살려야 해.'


어차피 은하제국에선 한 달여뒤 폐기될 몸.

그 후에 이곳에서도 살 수 있을지 없을진 모른다.


한 달밖에 수명이 안 남은 몸!


'형을, 살릴거야!'


살리고 싶은 사람을 살리는데에, 은하제국에선 지키지 못했던 사람을 살리는 데에 온 몸을 바칠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


철퍽!


꼴사납게 달려가던 235는 발을 헛디뎌 그 자리에 넘어졌고, 그대로 산비탈로 미끄러져 굴러가기 시작했다.


부러진 팔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왔으며 어마어마한 고통이 235의 뇌리를 강타했다.


하지만, 어쨌든 고통 속에서도 235는 눈에 핏발을 붉힌 채 생각했다.


'됐어, 뛰는 것보다 빨리 내려간다! 그럼 된거야!'


* * *


화르르르-


적혈 노파의 본명신통, 적마귀염(赤魔鬼炎).


그녀가 평생토록 제련한 마화(魔火).

그것은 그녀의 정기와 원기를 가득 품고 있는 기력의 덩어리이자, 그녀의 구명신통이기도 했다.


한 번 불씨를 만들어놓으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었던 그녀의 최대의 무기이자 그녀가 익힌 귀도공법의 정화였다.


그러나 이날.


츠츠츠츳-


그녀가 자식처럼 아껴왔던 적마귀염은, 푸르게 변화하며 점차 흩어지기 시작했다.


적마귀화는 특수한 임계점을 넘을 시 청마귀화(靑魔鬼火)라는 특수한 마화로 변화했다.


이 청마귀화는 여타의 마화와는 다르게, 응축시켜서 스스로를 한 줄기 청기(淸氣)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마화(魔火)는 파사현정의 힘에 약하니, 언젠가 그녀가 자신의 결단기 천겁(天劫) 때에 떨어질 천뢰(天雷)를 대비하기 위한 신통술인 것이었다.


그러나, 결단기를 대비하려 했던 청마귀화는, 청마귀화가 감싸고 있던 원율에게서 떨어지며 흩어져 응축되어 한 줄기 청기(淸氣)로 변화해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것은 산산조각 나 있는 검은 단(丹)의 옆쪽.

새카맣게 타있는 뼛조각이었다.


산산조각 난 단(丹)에서 끈쩍한 기운이 흘러들어와 뼛조각을 감응시켰다.

뼛조각이 웅웅 울더니, 뼛조각이 품고있던 한 방울의 붉은 핏방울을 뱉어냈다.


이내, 청마귀화가 변화한 한 줄기 청기는 붉은 핏방울을 향해 달려들더니, 그대로 정순한 선천진기(先天眞氣)로 변화해 핏방울로 끊임없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핏방울이 꿈틀거리며 기포가 생기더니, 기포 안쪽에서 인간의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한참을 선천진기를 흡수하던 인간의 형상은 점차 커져갔고, 이내 한 노파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마침내, 그녀가 기포 속에서 눈을 번뜩 뜨며 기포 바깥으로 나왔다.


"커헉, 헉, 허어억...!"


나신(裸身)으로 기포를 뚫고 나온 노파는, 뜨거운 주변의 공기와 열기를 이기지 못해 유리가 되어버린 대지로부터 몸을 보호하며,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쥐꼬리만한 법력을 소모했다.


치이이익-


"이, 이 개같은... 개같은..."


그녀는 핏발이 붉어진 눈으로, 쥐꼬리만큼 남아있는 법력을 주변으로 흩뿌려 주변의 열기를 진정시켰다.

적혈 노파의 귀기와 음기가 주변으로 퍼져나가자 그녀를 관통했던 발사체가 달궜던 주변의 공기와 대지가 차갑게 식어갔다.


공기와 대지를 식히지 않으면 곧 죽어버릴 정도로, 그녀는 파멸적으로 약해진 상태였다.


"내, 내 외단... 내 마화... 내 저물도... 내 혈충... 내 혈시들..."


적혈 노파는 목이 갈라지는 소리로 자신이 잃은 것들을 하나하나 읊어보았다.


"허억... 허억... 허억...!"


경맥마저 천뢰기(天雷氣)와 화기(火氣)에 상처를 입어 치유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 하하... 선배. 어떤 선배신지 모르지만, 대체 왜... 왜 이렇게까지 하셨단 말입니까...! 선골을 원하면 가져가라고 했지 않습니까! 대체 왜! 내가, 이 적혈이, 이 매려가 뭘 그리 잘못했단 말이야!!!"


그녀는 자신이 잃은 것들을 생각하자, 억울하고 비통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냥, 달라고 했으면. 달라고 했으면 외단도. 선골도. 심지어 마화도 드릴 수 있었는데... 왜. 외단조차 쓰지 못하게. 아니, 내 저물도는 열어보지조차 않고 증발시켜버린 건 도대체 왜 그런 거란 말입니까! 왜! 내가, 내가 그동안 모아온 귀중한 귀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거늘... 대체 왜 이런 쓸모없는 도적질을 하신단 말씀입니까!"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날 농락하시겠단 건가? 뭐 좋소. 수준낮은 산수를 찾아 학대하는 것이야 뭐.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마음대로 해 보시오! 어디 이 나를 마음대로 해 보란 말이다!!!"


역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적혈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왜지."


아무도 자신을 더 농락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그 이상하고 끔찍한 공격도 더 날아오지 않는다.


세상은 이상하고 끔찍할 정도로 조용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이상하고 끔찍한 함묵 속에서.


와당탕!


거슬리는 소리가, 마을 어귀에서 들려왔다.


뚝, 뚜둑...


적혈은 소름끼치는 눈동자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만신창이가 된 원립이, 적혈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원립의 눈에는 적혈을 보며 질렸다는 듯한 감정과, 공포, 그리고 필사적인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원립을 본 순간.

적혈 노파의 머릿속에서,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떠올랐다.


3계 괘우(卦牛)의 뼛조각을 태워본 점괘!


그 점괘를 피했다 생각했다.


저런 꼬마가 뭘 한다 한들 그녀의 손아귀는 벗어날 수 없다 생각했다.


'뭔가, 내가 놓쳤던 게 있나.'


그녀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가만히 머리를 굴리는 그녀를 보며, 원립이 이를 악물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적혈 노파, 매려가 원율을 집어던졌던 곳이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그녀는 근래의 일들을 빠짐없이 복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간과한 한 가지를 떠올렸다.


"아."


혼기(魂器).


원립의 혼백에 집어넣은 거울 모양의 혼기!


나중에 그녀가 본격적으로 귀도공법을 익히면 사용하려, 원립의 혼 속에 배양시켜놓기로 했던 그 혼기가, 그녀가 놓친 무언가였다.


"그 혼기. 그것이야. 내가 놓친 건 그것밖에 없어!"


분명, 그것에 기연이 숨어져 있던 것이리라.

그 혼기를 통해 결단기 수사의 일격에 버금가는 이 끔찍한 뭔가를 날릴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녀는 마침내 인과를 이해했다.


원립이었다.


그녀가 애지중지 모아온 저물도의 보물들과 단약들.

그녀가 생명을 깎고 혈제를 지내고 범인들을 학살해서 만들어낸 혈충들.

저계 수사들을 잡아죽여 제련한 혈시들.

목숨을 건 모험을 통해 얻었던 외단.

결단기 수사의 일격에 버금갈 정도까지 키워낸 마화!


이 모든 것을 싸그리 탕진하게 해버린 원수가, 원립인 것이었다!


"워, 원립."


적혈 노파, 매려가 이를 갈며,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어느덧, 원립은 원율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왼팔로 그녀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매려가 심혼을 제압해 놓았기에 원율은 아직도 기절한 상태였다.


저 개잡놈이, 자신의 모든 걸 빼앗가려하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새 육신마저도!


"원립!"


그녀가 입가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눈을 붉게 충혈시켰다.


"원립!!!"


그녀는 자신의 혈도 곳곳을 두드리며, 선천진기를 격발시켰다.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고, 법력조차 방금 그 끔찍한 공격을 맞으며 모조리 깎여나갔기에 그녀의 육신은, 이젠 그냥 평범한 범인 노파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얼마 남지도 않는 선천진기를 격발시켜보았자 얻는 것은 평범한 노파에서 이, 삼류 무림인 수준의 근력 정도.


그조차 시간을 끌면 선천진기가 모조리 고갈되어 죽어버릴 것이었기에 한 식경정도만이 그녀가 그 정도 근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꿈틀, 꿈틀!


적혈 노파의 팔다리에 선천진기가 밀려들며 그녀의 팔다리가 일순간 근육질 남성의 것과 같이 변했다.


그녀는 그 상태로 원립에게 달려들었다.


꽈아앙!


일격!


그녀의 일격이 원립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렸다.


원립은 그대로 형편없이 날아가 저 멀리 있는 흔한 농가 안쪽으로 처박혀버렸다.


아마 턱이 부숴졌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이걸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손으로 원립의 사지를 찢어버려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왈칵!


늙은 몸으로 억지로 선천진기를 짜낸 탓인지, 힘을 한 번 쓰자 그녀의 입에선 핏줄기가 터져나왔다.


"죽여버리겠다! 원립!"


남은 시간은 한 식경(食頃: 약 30분).

그조차도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으나, 그녀는 상관 없었다.


원립이 배운 건 쇠를 조금 조물락거리는 게 끝인 철금조 하나.

그거 하나론 천하제일의 명검을 들고 있어도 그녀를 상대할 수 없었다.


특별한 무공이라도 익히고 있지 않는 한, 원립은 그녀에게 찢겨죽을 것이었다.


* * *


"...아, 아으아... 아으어..."


235는 턱이 빠개졌단 걸 느꼈다.

고통스러워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적혈 노파에 대한 공포감도 커졌다.

인간이 레일건을 3발 맞고 아직도 팔팔하게 살아서 자신을 날려버리다니!


하지만 동시에,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어이아이아아(포기하지않아)..."


법술로 찢어버려도 되는 것을, 굳이 몸을 강화시켜서 주먹으로 후려쳤다.


레일건을 맞고도 멀쩡하긴 했지만, 분명 약해졌다.

그것도, 초월적인 수준에서 그냥 평범한 인간 정도로!


'저 정도 신체능력이면...'


딱, 은하제국에 있는 E 시리즈가 건강한 시기 정도의 신체능력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하, 할 수 있을 거야... 아니, 해야만 해.'


E-235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처박힌 농가 안쪽에서 빠르게 쓸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왼팔 한쪽은 그래도 쓸만한 상태였으니, 왼팔로 뭔가 무기라도 들고 싸우면 될 수도 있었다.


'무기, 뭔가 무기를...!'


그때, 235의 눈에 농가 창고안쪽에 있는 뭔가가 보였다.


235는 잠시 망설이다, 눈빛을 굳히고 창고를 향해 달려갔다.


두두두두두두-


"원 립!!!"


적혈 노파가 머리를 산발한 채 팔다리에 근육을 드러내며 알몸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235는 필사의 기력을 쥐어짜내, 농가 창고에 있는 그것을 향해 달려가 잡고, 그에게 달려드는 적혈 노파를 향해 휘둘렀다.


후웅!


적혈 노파는 아슬아슬하게 235가 휘두른 '무기'를 피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엔 비웃음이 가득했다.


"하, 괭이?"


235가 잡은 것은, 밭을 가는 데에 쓰이는 괭이였다.


"괭이로 뭘 어쩌겠단 게냐? 네놈이 그걸 가지고 날 어찌 해볼 수 있을 것 같으냐!!!"

"......"


235는 그 말에 입을 열었다.


"에이아... 아이야...(괭이가 아니야)."

"뭐라는 거냐."


우우웅-


235는 적혈 노파가 거리를 벌린 틈을 타, 철금조로 괭이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철법결의 수행이 높아진 지금.

손에 직접 닿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자유자재로 근처에 있는 쇠의 형상을 바꿀 수 있었다.


물론 변화는 느렸기에 직접적인 공격에 써먹지는 못했지만, 무기를 이 정도로 손질하는 거라면 충분했다.


적혈 노파는 235가 바꾼 무기를 보며 다시 한 번 그를 비웃었다.


"하, 곡괭이?"


235는 왼팔로 곡괭이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거지고아 새끼가, 평생 한 번 잡아본적 없는 곡괭이를 가지고 날 어찌 해보겠단 거냐? 하, 철광산에서 한 달 정도 만져보기라도 했나보지?"


적혈 노파는 농가의 울타리를 뽑아 한 손에 쥐어 몽둥이로 만들며 235에게 다가왔다.


"한 번 휘둘러 봐라. 오늘 니놈의 뼈를 바스라뜨려 가루로 만든 다음 살을 잘근잘근 발라내어 인간 젓갈을 담글 것이야. 니놈의 혼백은 혼기에 가둬서 실컷 고문해주겠다. 오늘이 니놈의 제삿날이다!"


부웅!


적혈 노파가 235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후웅!


235의 곡괭이가, 적혈 노파의 몽둥이이 끝부분을 정확히 내리찍었고, 적혈 노파가 당황할 틈새도 없이 몽둥이를 쪼개버린 곡괭이는 그대로 다시금 들어올려져 적혈 노파의 미간을 노렸다.


촤아악!


"캬아아악!"


적혈 노파의 비명이 텅 비어버린 마을을 울렸다.


그녀의 오른뺨이 찢어졌다.


235는 욱씬거리는 왼팔을 억지로 움직이며 곡괭이를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평생을 곡괭이질만 해 왔어.'


정신을 집중하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눈 앞에 있는 것은, 광맥이다.

내리찍으면 돌이 튀어서 돌조각을 좀 피해야 하는 광맥이다!


'이길 수 있다!'


턱이 부숴진 상태에서, 235는 혼신의 힘을 다해, 평생을 휘둘러왔던 그 자세로 곡괭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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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수도계(修道界)(3) NEW +10 10시간 전 118 2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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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수도계(修道界)(1) +11 26.03.11 251 29 33쪽
11 새 술은 새 부대에. +14 26.03.10 234 31 23쪽
10 엑소더스(4) +6 26.03.10 196 28 24쪽
9 엑소더스(3) +8 26.03.06 282 30 16쪽
8 엑소더스(2) +11 26.03.06 251 30 20쪽
7 엑소더스(1) +7 26.03.04 265 28 19쪽
6 호접지몽(胡蝶之夢)(4) +8 26.03.03 281 36 24쪽
» 호접지몽(胡蝶之夢)(3) +12 26.02.12 406 37 23쪽
4 호접지몽(胡蝶之夢)(2) +17 26.02.02 510 42 51쪽
3 호접지몽(胡蝶之夢) +16 26.01.23 572 44 39쪽
2 신비로운 거울 +14 26.01.22 608 43 24쪽
1 프롤로그. E-235 +20 26.01.14 1,008 5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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