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검의 신으로 살아온 자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 곳...
차가운 바람이 부는 새벽
말을 타고 달리던 한 사내는 말고삐를 잡아 세웠다.
사내는 한쪽만 남아있는 팔로 간신히 검을 쥔 채 속삭이듯 말했다.
"하... 이젠 그만 할 때가 되었나 ....."
이윽고, 사내의 상념을 방해하듯 수십, 아니 수백의 말들이 대지를 진동하며 가까워 져 왔다.
말에 탄 자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멈춰선 남자를 겹겹이 둘러 싸고 한참을 노려보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무리들의 포위가 몇갈래 갈라지더니 몇명의 사람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사형... 이렇게 다시 뵙는군요... 저 백운기 사형을 뵈옵니다."
백운기... 포위된 남자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 남자는 창술 달인으로 무림 제일 고수라는 검신을 유일한 사형으로 모시던 자였다.
그는 무림의 사대 창법인 소림,아미,양가,오가를 모두 꺾고 창의 지존에 이른 인물이자 본디 마교였던 본분을 버리고 정파 무림과 결탁하여 사형인 검신을 배신하였다.
사내.. 아니 검신은 백운기를 바라보며 살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운기야... 내 너를 다시 못보는 줄 알았다... 그래 다시보니 참으로 반갑구나."
검신은 이어서 말했다
"갈때가 되고 보니 모든 원한은 내 이미 잊었느니라... 비록 우리가 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아비 어미도 모르고 자란 나에겐 니가 유일한 혈육이 아니겠느냐... 한번 안아 보자꾸나 동생아..."
이 말에 백운기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백 장문!!!! 아니 되오!!!!"
어디선가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중년 여인이 나섰다. 여인은 칼로 검신을 겨누며 소리쳤다.
"비록 중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천하를 자기 발아래 두고 칼춤을 추던 검귀입니다. 위험하니 이대로 죽이시지요!!"
"오호! 아미파의 새로운 장문... 아니 사태라고 해야하나... 혜제사태는 돌아가신 모양이구나... 참으로 표독스런 도법을 썼는데 말야... 허허"
검신은 자신에게 칼을 겨눈 여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혼잣말로 말을 이어나갔다.
"본디 아미파는 사내던 여인이던 가리지 않았거늘 언제부터 이렇게 계집들이 사태를 이어받았는지... 허 참으로 한심하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여인은 손목에 찬 백팔염주에 불꽃이 튈 정도로 검을 회전 시키며 검신에게 달려들었다.
아미파의 새로운 사태인 지명은 검신에게 치명상을 입고 치료 중 죽은 혜제사태의 수제자로 검법에서는 아미파 역사상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정파 장문들이 모두 검신에게 한날, 한시에 목숨을 잃었을 때 혜제사태만이 유일하게 중상을 입고 살아남았는데 지명은 혜제가 여인의 몸이어서 일부러 손속에 사정을 봐 준 것이라 생각하여 아미파의 명예가 더럽혀졌다 분노했다. 하지만 혜제가 살아남은 덕에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며 무림정파중 유일하게 장문의 자리인 사태에 빠르게 오를 수 있었고 장문의 자리에서 복수의 기회가 빠르게 찾아 온 것이었다. 그리고 여인이라 은근히 무시하는 각 무림정파의 후계자 후보들이 지켜보는 이 자리가 자신을 피력 할 수 있는 자리라 생각했다.
"음... 스승처럼 도법을 쓰진 않는구나 좋은 검법이로다... 난파풍검법인가... "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오는 여인의 검법에 감탄하며 검신은 검끝을 하늘로 향하게 간신히 들어올렸다.
그러자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위력의 붉은 검기들이 여인의 머리위로 쏟아졌다.
검신에게 공격을 하던 지명사태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그녀 역시 무림에서는 최고수에 속하는 인물인지라 사선을 넘나들며 숱한 강자들과 대결을 해온 인물이다.
'이것이 천둔검법에 극치인가.. 검을 거두어 막지 않으면 내몸이 꼬챙이가 되겠구나!'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고수답게 침착히 상황을 파악했다. 즉시 돌진하는 검을 멈추고 하늘에서 날아드는 천둔검법을 막기위해 칼을 들어올렸다.
"꽈아아앙 ~~!!!!!!!!!!!!! "
엄청난 굉음의 폭발이 지명사태의 칼에서 발생했다.
그녀는 날아오는 검들의 위력이 대단함을 감지하고 한손은 검의 손잡이 다른한손은 칼등을 쥐고 첫번째 붉은 검기를 막았으나 그 충격으로 칼등을 쥔 팔의 손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으으헉!!..."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그녀의 목소리 위로 두번째 검기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부러진 손목대신 팔꿈치로 칼등을 받치며 충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날아오는 남은 여덟개의 검기중 두어번 밖에는 막지 못할 것이란걸...
'죽음의 순간이 오고보니 여자라서 무시받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이런 상념들이 참으로 부질없구나... 왜 사부님이 나에게 서둘러 사태자리를 내놓고 조용히 무공에만 정진하라 했는지 알겠구나...'
지명은 약한 생각을 하면서도 몸놀림은 무림 고수라는 자부심이 뭍어났다. 허리 팔 다리 등 힘을 쓸수 있는 모든 부분에 신경을 집중하고 두번째 충격에 대비 했다.
그러나 이런 준비를 하던 그녀는 하늘의 검들을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모든 자세를 풀어버렸다.
줄을 지어서 날아오던 붉은 검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둥근 원형 모양으로 정렬하고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사냥개 마냥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지명의 눈은 이미 공포를 넘어선 인간이 대자연을 바라보듯 경외와 감탄이 베여 있었다.
수백의 무리들도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맨 앞줄에서 지켜보던 일부 겁쟁이들은 이미 말을 뒤로 물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공포란 것은 전염되기 마련이라 선두에 많은 이들이 도망가자 뒤에서 지켜보던 수많은 이들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 엉겨붙어 말에서 떨어지고 밀치고 난리통이 벌어졌다. 거기다가 무림정파의 고수들을 일거에 척살한 검신 아니 검귀라는 명성은 공포에 더욱 기름을 부었다. 반시진도 되지않아 검신을 둘러싼 이들은 수십기만 남아있게 되었다.
싸움을 지켜보던 백운기가 입을 열었다.
"사형! 이제 그만하시지요... 그만 하시면 된 것 같습니다."
백운기는 사태에게 다가가 그녀의 검을 손으로 내리며 말리듯이 말했다.
"사태께서는 그만 검을 거두어 주십시오... 형님께서 저를 죽이려 하셨다면 여기서 저는 죽었을것입니다. 뭐 때문에 저를 유인해서 죽이시겠습니까..."
"거두고 말고 할게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경솔했습니다. 이미 제 생사 여탈은 검귀에게 달렸으니 뒤로 물러나 있겠습니다."
그녀는 검을 거두고 부러진 손목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섰다.
뒤로 물러서는 그녀에게 검신이 말했다
"니 사부가 여인이라 사정을 봐 준것이 아니다. 다른 장문들은 검의 외력을 힘으로 맞서다 절명하였고 혜제는 여인이라 부드러운 몸을 가져 외력을 그대로 통과시켜 그나마 몇일이라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내 검은 남녀노소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너의 검법은 강하지만 부드러움은 혜제에 미치지 못하니 주변의 힘을 이용하지 못하는구나... 좀더 연마하면 좋으련만..."
그의 말에 그녀는 뒤돌아 부러진 손목을 잡고 힘겹게 인사를 하고 물러섰다.
검신은 하늘에서 이글거리는 검들을 힘겹게 거둬들였다. 이미 체내에는 독이 퍼져 내공이 어지럽고 한쪽팔이 잘리었으며 심장근처 칼이 뚫고 지나간 자리로는 보라색 독의 기운이 더욱 빨리 퍼지고 있었다.
겹겹이 쓰고 있던 두건을 풀어벗자 지나간 세월들을 보여주듯 백발은 성성했고 이미 독으로 한쪽눈의 검은 눈동자는 백색으로 변해 기능을 잃은지 오래였다.
백운기는 그런 검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회한에 잠긴 듯 멈칫하다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사형... 이제 그만 쉬시지요..."
검신은 웃으며 말에서 내려 백운기를 보며 힘겹게 말했다.
"운기야.. 그런 슬픈 표정 짓지 말거라... 내 이미 너와 척을 지고 적으로 지냈거늘... 그저 이 형이 가는 길, 니가 지켜 봐 주면 고마울 따름이다..."
"으흑... 형님... 죄송합니다... 으흑흑.."
흐느끼는 백운기를 검신이 남은 한팔로 간신히 안아주며 남은 힘을 짜내 말한다.
"이제 갈때가 되서 가는 것 뿐... 후회는 없다... 그리고 내 검 혈무란... 너에게 맡기마..."
말이 끝나자마자 검신이 든 칼에서 붉은 빛이 나고 떨리기 시작한다. 그런 검을 보며 나지막히 얘기하는 검신.
"무란(舞鸞)아 난세에 그렇게 한바탕 춤을 추었으면 되었지... 무슨 미련이 그렇게 더 남았느냐... 이제 새 주인을 찾거라..."
더욱더 떨리는 무란을 땅에 꽂고 검신은 백운기에게 말했다.
"운기야... 무란이는 나를 찌르지 못하니 니가 해 다오..."
백운기는 망설였다. 어차피 끝을 보자고 왔으며, 설령 형님을 지금 죽이지 못해도 이미 산자가 아니며, 뒤에 있는 살기 등등한 정파 후계자들이 덤벼들것이니...
하지만 오랜세월을 함께한 사형의 얼굴을 보니 도저히 등뒤의 창을 꺼내기가 망설여 졌다.
그때
"백 장문께서는 무엇을 그리 망설이시오!!!! 공께서 할 수 없으면 우리가 하겠소!!!!"
백운기가 생각하던대로 정파의 후계자들이 이구동성 소리쳤다...
검신이 멸문시킨 화산파를 제외한 소림, 무당, 무림맹의 맹주들까지...
"갈 _____!!!!!!!!!!!!!!!!!!!!!!!!!!!!!!!"
검신의 외침에 말들은 펄쩍뛰고 백운기를 제외한 수십의 인원들은 귀를 부여 잡았다.
"형제끼리 얘기하는데... 어디 감히 무림 벌레들이 끼어드는 것이냐!!"
서슬퍼런 외침과 검신의 안광에 살기등등했던 무림인들은 겁에 질려 금새 꼬리를 내렸다.
검신은 말했다.
"복수란 무릇 힘있는 자들의 소유물이다. 여기서 나를 죽일 수 있는자 내동생 백운기 말고 누가 있는가"
검신의 말이 끝나자 주위에는 적막만이 흘렀다. 서슬퍼런 그의 기운에 짐승이나 벌레들도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백운기는 눈물을 흘리며 이 모든 것들이 다 부질 없는 행동이며 빨리 끝을 내어 주는 것이 형님에 대한 마지막 예우임을 깨달았다.
" 형님... 마지막 가는 길 제가 모시겠습니다. 어떻게 보내드리면 행복하게 가실 수 있겠습니까?"
검신은 운기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너의 창술은 언제나 들꽃 냄새가 나지 않았느냐... 운기 너의 제일 빠른 초식인 천화십무홍이면 내 여한이 없을 것 같구나..."
운기는 떨리는 손으로 등에 창을 빼내며 말했다.
" 사형... 언젠가 다시 태어나면 그땐 사형의 등으로 태어나 뒤만 따르겠습니다...."
천화십무홍을 출수하며 다가오는 백운기를 바라보며 검신이 미소지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 아름답구나... 운기야 그리고 온통 내주변에 들꽃이 피어있는 것 같구나... 가는 길 외롭지 않구나~~!!!"
한참 후 새들은 지저귀고 말들은 참았던 가쁜 숨을 쉬기 시작한다.
.
.
.
.
.
.
미지의 존재
" 일어났어?... 이번에는 좀 잘 한거 같은데... 많이 아쉽네... 근데 이번 생 너무 슬프다 힝..."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