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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뤼투나읫
작품등록일 :
2025.08.16 18:02
최근연재일 :
2025.09.1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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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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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2)

DUMMY

거대한 충돌음과 함께 바윗조각이 후두둑 떨어져 나뒹굴었다. 이명이 울릴 정도의 굉음에 신음하며, 크로반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머리 위엔 여전히 거대한 바위가 떠 있는 채였다. 크로반은 졸도할 것 같은 기분으로, 하지만 어떤 의문을 느꼈다.


"...아, 안 죽었네?"


죽음의 공포로 흐려졌던 시야가 개어지자 눈 앞의 모습이 보다 선명해졌다. 바위 몽둥이를 붙잡은 바위 손. 바위 손에 붙은 바위 팔을 따라 나오는 바위 몸통...


크로반의 눈에 비친 광경은, 바위로 된 거인이 몽둥이를 공중에서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었다.


크로반은 더 혼란스러워진 채로 머리를 감싸쥐며 일어섰다. 그리고 제대로 일어선 자신이 거인의 키 절반을 겨우 넘는다는 사실에 당혹했다.


주변의 고블린들조차도 당황한 것인지 멈춰선 채 이따금씩 키르륵대고만 있었다. 뒤를 돌아본 크로반은 달아나던 경비대들조차 망연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어쩐지 우스워진 크로반은, 방금 죽을 뻔한 사람답지 않은 태도로 입을 열었다.


"어, 감사합니다?"


거인은 그 모습에 대단히 잘 어울리는, 동굴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사는 나중에 받겠소. 나는 당신네들의 황제가 보낸 사람인데, 일단 이 비왕자들부터 어떻게 해야겠군."


'당신이 사람이냐?' 고 물을 뻔한 크로반은 간신히 입을 단속하곤 자신이 아는 사람에 대한 개념을 골몰했다. 대륙의 사람. 사람이란 왕자. 대륙의 왕자는 여섯이고, 그럼 이 거인은...


"설마, 투론이십니까?"

"설마가 붙을 일인가 싶다만, 맞소. 그런데, 한가한 것 같군?"

"예?"


그제서야 크로반은 고블린들이 점점 다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릉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크로반은 일단 엎어진 토만을 들쳐업으며 투론에게 간단히 목례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고블린들이 거세게 포효하며 일제히 몰려들었다. 어찌할 줄 모르던 경비대들은 돌아서야 할 지, 칼을 뽑아야 할 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투론의 바위 주먹이 날아가 대형 변종의 안면을 강타하기 전까진.


콰앙!


치켜든 몽둥이로 어찌해 볼 새도 없이 매부리코가 납작하게 으깨진 대형 변종은 그대로 거창하게 나가떨어졌다.


그 거체가 반쯤 날아가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경비대는, 이윽고 당황이 가시며 사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시몬은 옆구리의 장검을 빼어들며 외쳤다.


"저 자를 도와라! 돌격ㅡ!"

"와아아아아아!"


비왕자들에게선 나올 수 없는 오와 열을 맞춘 정갈한 돌격. 서로를 짓밟으며 뛰쳐나가지도, 기세에 못 이겨 발광하지도 않는 정제된 적의가 고블린들에 부딪쳤다.


대형 변종이 없다면 소규모 무리는 빨랫방망이를 든 아낙들이 때려잡는 게 고블린이다. 기세를 잃은 고블린들은 거의 유린당하기 시작했다.


대로변에 녹색 살점 조각들이 도배되는 광경을 바라보던 크로반은, 아차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어 루스윈 서편의 뒷산 쪽을 바라보았다.


왜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마을에 질러진 불길이 거세어지며 뒷산을 향하고 있었다. 크로반은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안돼!"


크로반은 토만을 내려놓고는 그대로 달음박질쳤다. 다급함에 못 이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땅을 딛는 발이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크로반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시야 좌우로 검게 그슬린 집터와 한창 타고 있는 건물이 번갈아 스치며 눈앞이 끝없이 점멸하는 듯했다.


'뒷산은 안 돼. 제기랄, 제기랄!'


온 몸을 내던지는 질주 끝에, 크로반은 시뻘건 혀를 날름대며 다가오는 불길이 뒷산을 삼키기 직전에 산기슭에 닿을 수 있었다.


가을의 마른낙엽이 잔뜩 깔린 땅을 타고 뱀처럼 다가오던 불길이 불똥을 튀겼다. 크로반은 윗도리를 벗어들어 휘둘러댔다.


"젠장, 꺼져! 꺼지라고! 여기 뭐가 있는지 알기나 해!"


기슭을 타고 흐르는 실개울에 옷을 적신 크로반은 그것을 풍차처럼 돌렸지만, 그런 짓으로 불길을 잡을 수는 없었다.


미친 듯한 뜀박질과 바로 이어지는 난리법석에 크로반의 허파가 죄어 오기 시작했다. 땀이 비 오듯이 흘러 속눈썹에 맺혔다 떨어졌다. 크로반이 아예 몸으로 굴러 버릴 결심을 하던 때였다.


"거기, 소년! 비켜라ㅡ!"


외침을 들은 크로반은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달려오는 사람들을 따라 땅이 저절로 죽죽 파헤쳐지며 불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대륙 서쪽 저편의 마법사가 온 것이 아닌가 싶은 광경이었다.


"비키라니까!" 선두에 달리던 남자가 외쳤다.


엉겁결에 주춤주춤 물러선 크로반이 서 있던 자리를 따라 땅에 그림이 그려지듯 굴이 파였다. 그 굴은 구렁이처럼 굽이치며 마을을 향해 나아갔다.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연속으로 보게 되어 그저 멍청히 서 있는 크로반의 어깨를, 누군가가 살짝 건드렸다.


"허억, 허억...사핀? 허어... 왜 여깄어?"

"세상에, 땀 좀 봐... 일단 좀 앉아. 불은 잡힐 거야."

"불이, 후우. 잡힌다고, 어떻게?"

"직접 봐. 내 말 못 믿어?"


사핀의 말은 책보다도 믿음직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무어라 더 묻지는 않았지만 크로반은 여차하면 다시 튀어나갈 준비를 한 채 상황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외쳤다.


"터뜨려ㅡ!"


폭발음이 들릴 거라 생각했던 크로반의 예상과 달리 무언가 굉음이 뒤따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크로반이 그 무엇보다 반길 만한 소리가 들려왔다.


패인 굴을 따라 거품치는 격류가 쏟아져 흐르고 있었다.


"수로였어, 이게?"


사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굴이 파인 저 멀리를 가리켰다. 사핀의 손가락을 따라간 크로반은 수로가 불길을 휘감으며 흐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쨌든, 뒷산은 안전하다.


"다, 다행이다..."


긴장이 풀린 크로반은 그대로 허물어져 사핀의 품에 쓰러지듯 기대었다. 크로반의 땀으로 축축한, 동시에 차가운 몸을 받친 사핀은 놀라며 그를 제대로 눕혔다.


"크로반, 너... 뒷산의 묘 때문에...?" 사핀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뒷산의 묘. 공동묘지도 뭣도 아닌 뒷산의 깊은 산등성이 어딘가에 솟아 있는. 그리고 크로반의 누이가 묻혀 있는.


"..."


크로반은 대답하기가 껄끄러워 그냥 자는 척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의 머리맡에서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햐, 너, 멋졌어, 인간. 혼자서 불이랑 싸우려들다니, 낭만적인데, 응?"


사람 목소리보단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닌가 싶은 음성에 당황하여 고개를 돌린 크로반은, 또 다시 놀라게 되었다. 누워 있는 자신의 눈과 똑바로 마주 보고 있는 두 눈이 보였기 때문이다.


목소리처럼 고양이의 것 같은 커다랗고 둥그런 눈. 큼직한 귀와 머리카락이 없어 매끈한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 고블린에 비할 정도로 작아 뵈는 체구.


이미 대로에서 또 다른 왕자를 봤기 때문인지, 크로반은 이번에는 좀 더 빠르게 이해했다.


"난쟁이?"

"그래, 호듈라다." 둘은 같은 말이다. 국수와 면 요리처럼.


크로반의 머리맡에 서 있던 난쟁이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탁탁 털었다. 체구에 비해 대단히 억세 보이는 양 팔에서 흙덩이가 풀풀 날리며 크로반의 뺨에 후두둑 떨어졌다.


혼란스러운 표정의 크로반을 보고 살풋 웃으며, 사핀이 설명해 주었다.


"대피소에 앉아 있는데, 이 난쟁... 그러니까, 이 분이 노새를 타고 찾아와서 대뜸 마을이 위험해 보이지 않느냐고 묻는 거야. 깜짝 놀란 사람들이 불길을 잡아야 할 것 같다고 하니까 자기가 수로를 팔 테니 근처에 강이나 호수를 찾으라고 하더라구. 그래서ㅡ."

"처음엔 너희들은 안 믿었지. 이 나를 말이야! 내가 한 번 몸 푸는 정도만 보여줬더니 믿더라구. 그래서 나는 당장 수로를 파 줬지! 봐! 멋지지 않아? 호듈라의 힘이라구."


크로반은 뻐근한 온 몸을 일으켜 마을 쪽을 바라보았다. 시원하게 흘러가는 수로에 몰려든 사람들이 양동이나 물병을 들고 퍼올리며 불을 잡고 있었다.


"...대로에는 투론도 와 있던데, 일행인 건가요?" 사핀은 작게 탄성을 질렀다.

"잉? 너 왜 존대하냐? 나에 대한 존경심의 표출이라면 그래도 되지만ㅡ"

"일행인 거야?"

"카하하, 그으럼! 나도 저 사람으로 투론 처음 본 거야. 엄청나지 않아? 내 몸 만한 주먹은 볼 때마다 무섭다니까."


크로반은 그 거대한 주먹이 대형 변종을 일격에 분쇄해 버리는 장면을 떠올리며 동감했다. 그는 사핀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하곤 그녀의 손을 붙잡아 일어섰다.


"투론이 있다구? 정말?"

"시몬도 그렇고, 토만도 투론은 처음 본 눈치야. 마법사는 황실에 몇 명 있다고 듣기나 했지, 투론이라니... 이 촌동네에 무슨 일이람... 흐아악!"


무언가가 어깨에 턱 얹어지는 느낌에 소스라친 크로반은 그것이 난쟁이임을 발견하고 가슴을 쓸어만졌다.


"에헤? 이거, 왜 이리 놀라? 너희네 마을로 가자구. 나는 다리가 짧아서."

"후와, 허어... 깜짝 놀랐잖아! 노새 같은 거에도 그런 식으로 탄 거야?"

"걷어차일 뻔했지. 하지만 인간은 차도 난 못 차. 온 몸이 다 등 위에 있는데 제깟 게 무슨 재주로 날 차?"

"...통성명이나 하자. 난 크로반 헤일러. 이쪽 여자 인간은 사핀 버피."


난쟁이는 갑자기 짐짓 뻐기는 투로 크로반의 어깨 위에서 가슴을 펴곤 목을 가다듬었다.


"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싱브 '이쉬' 존레타. 싱브는 이름이고, 존레타는 가문 이름이지. 그리고 이쉬란, 호듈라의 갱도에서 정찰자라는 뜻인데..."

"나중에 자세히 듣지. 난쟁이들은 원래 그리 말이 많나?"


싱브는 그것이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사실 인간 이외의 왕자는 살면서 처음 본 크로반은 정말로 몰라서 물어본 것이었다. 어쨌든 시시한 잡소리를 하며, 일행은 지금쯤 정리되었을 듯한 대로변으로 향했다.


다행히 건물들이 완전히 못 쓰게 되기 직전에 불이 잡힌 덕에 지나는 건물들은 탄 내가 나고 성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런 대로 가망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건물들 사이로, 시몬을 비롯한 경비대와 그들 사이에서 거의 첨탑처럼 보이는 투론이 걸어오고 있었다. 주변의 일층 건물들에 크게 뒤지지 않는 키를 보며 크로반은 아연함을 느꼈다.


크로반과 사핀, 난쟁이와 경비대들. 두 일행은 어느 적당한 지점에서 멈춰선 채 어색한 침묵을 흘렸다. 크로반은 그 침묵에 못 이겨 뭐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 감사해요. 이름을 모르지만... 투론 씨. 당신 아니었으면 대피소에 틀어박힌 채 저 옆 도시로 원병 지원 파발을 부쳐야 했겠지요. 그러니까... 어, 감사합니다."


투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 팔을 내밀었다. 크로반은 그 간단한 동작이 무시무시한 거동처럼 보였다. 약간 떨리는 동작으로 손을 맞잡자, 투론은 아마도 미소로 추정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로바일이오. 보다시피 투론이지. 잘 부탁하겠소."

"...예? 어, 여기서 사는 건가요?"


크로반은 그 말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쩐지 경비병들과 시몬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두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낀 크로반은 사핀을 돌아보았다. 사핀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크로반과 아빠를 번갈아 보는 중이었다. 크로반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어, 저, 로바일. 혹시 저한테 어떤 볼 일이 있나요?"


그때, 크로반의 어깨에 앉아 있던 싱브가 자기 이마를 딱 쳤다.


"아, 맞아!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예? 크, 크로반이요."

"성은?"

"헤일러..."

"그렇다면 맞군."

"...예?"


크로반은 도무지 상황이 돌아가는 꼴을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제국 최외곽의 시골에 흘러들어 온 두 병의 인외(人外) 왕자. 그리고 그들더러 맞다는 소리를 듣는 자신...


로바일은 메고 있던 커다란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것은 눈부시게 빛났고, 광택이 지나쳐 시커멓게 보일 정도였다. 모두가 그 광채에 아연해할 때, 갑자기 토만이 흥분하며 입을 열었다.


"화! 황제의 문장!"


사람들은 또 다시 대경했다. 세 개의 뿔이 난 청동사슴의 문양. 그것은 제국의 지배자의 권위였다. 로바일은 그 문장과 함께 꺼내든 두루마리를 펼치며 말했다.


"우리는 당신네들의 황제의 의뢰를 받고 헤일러 성을 쓰는 자를 찾아왔소. 곧 깨어날, 용을 막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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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성(2) 25.08.22 10 0 13쪽
4 결성(1) 25.08.20 10 0 13쪽
» 습격(2) 25.08.20 12 0 13쪽
2 습격(1) 25.08.18 1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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