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포수의 진정한 가치는 볼배합에서 나온다.”
이는 배터리 코치인 김도현 코치가 입에 버릇처럼 달고 살던 말이었다.
그 정도로 포수를 전담해서 키우는 과정에서, 그는 포수의 볼배합을 가장 중요하게 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볼배합으로 평균자책점 7점대의 투수를 3점대까지 줄여내고.
약점은 조금도 안 보이는 철옹성과 같은, 타자의 허를 찔러서 카운트를 잡아내는 등.
그야 말로, 포수의 볼배합을 꽤 진지하게 연구하던 배터리 코치였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그의 손을 탄 포수들은 리그를 선두했고.
이들은 안정적인 수비력과 투수들을 휘어잡는 리드 능력으로.
각기 다른 팀의 안방을 안정적으로 지키는 등.
이 야구판에서 그의 명성은 유명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마침내 인정받게 되다니.
태어나도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등에 날개만 있었으면, 그대로 승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화목한 더그아웃의 분위기에 불을 짚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선글라스를 쓴 타격코치 방민호였다.
“에이 김 코치님, 그 너무 억빠하시는 거 아닙니까?”
“억빠라뇨?”
“아니, 오늘 경기에서 진우가 엄청난 모습을 보이고는 있는데. 그게 계속 지속될 가능성은 없지 않습니까.”
민호는 내 눈치를 흘깃 보면서, 도현의 귀에다가 대고 속삭였다.
하지만 도현은 이에 완강하게 반박했다.
“에이, 뭘 모르시나 본데. 방 코치님. 포수의 리드 능력, 이것은 한번 감을 잡으면 계속 꾸준히 보여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죠.”
김 코치는 나를 믿는다는 듯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옆에 방 코치는 여전히 나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걸까?
가만히 팔짱을 낀 채로 자리에 서서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그래도 저는 아직 점마 못 믿겠습니다.”
방 코치는 내 귀에 다고 작게나마 속삭였다.
그것도 제법 의심 섞인 시선으로 계속 지긋이 나를 쳐다보면서 말이다.
하기는 방 코치, 저 양반이 그러면 그렇지.
그런 방 코치의 말을 엿들은 이후, 나는 양손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저 양반한테 제대로 한번 보여주기로.
진정한 타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
“···망할.”
까앙, 하고 가볍게 날아오는 배팅볼을 타격하는 소리가 주위로 울려 퍼졌다.
배트 가운데에 정확하게 맞은 타구는, 나의 힘에 의해 추진력을 얻어 높게 떠올랐고.
잘만 날아가던 타구는 얼마 안 되어서 중견수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야 인마, 너 라인드라이브 안 배웠냐. 라인드라이브!”
이렇게 힘 없이 잡히는 뜬공을 보기가 무섭게.
배팅 케이지 안에서 배팅볼을 던져주던 타격 코치, 방 코치는 내게 분노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이 뜨거운 땡볕에서 계속 배트를 내휘두르고 있던, 전생의 나는 표정을 구겼다.
“아니, 방금까지는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던 도중, 나는 방 코치에게 큰 목소리로 따졌다.
전생에 진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코치에게 항의한 시점이었다.
“방금까지는 되었다고?”
“네, 되었잖습니까. 천하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데. 인간이면 실수 한번 할 수도 있죠!”
나 역시나 방 코치를 향해서 살기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방 코치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배팅 케이지에서 나와 내게 말하길.
“어이 정진우. 실수? 너는 프로가 장난이냐!”
방 코치는 배팅 케이지를 강하게 걷어차면서 말했다.
험상궃은 표정과 함께, 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니.
나는 본능적으로 입속에 고인 침을 꼴깍 삼키면서 긴장했다.
씨발, 덩치 하나는 장난없네.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면서, 내게 다가오는 방 코치를 본 나는 기겁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의 아우라에 압도되어 있었다.
그는 선수시절부터 모두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카리스마라는 게 차고 넘치던 리더이기도 했으니까.
“어이, 정진우. 올해 네 연봉이 얼마야.”
“7700만 입니다.”
“7700만원? 참 나, 너는 그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모르지?”
방 코치는 머리에 쓰고 있던 야구모자를 바닥에 벗어던지면서 말했다.
그런 거친 방 코치의 동작은 반사적으로 나를 압도했고.
당연하게도 내 뒷머리로는 식은땀이 소나기 내리듯이 떨어지고 있었다.
“야, 잘 들어라. 정진우. 네가 정녕 그 많은 돈을 받는 프로라면, 더 잘해서 너에게 그만한 연봉을 지급한 구단을 웃게 만들어줘야지.”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뭐긴 뭐냐, 더 열심히 더 성실하게 하란 말이지.”
방 코치는 살가운 눈빛으로 계속 나를 노려봤고.
그는 한 마디 더 추가적으로 거들었다.
“그리고 훈련인데 실수 한번 할 수 있다고? 웃기는 소리하지마. 훈련의 진정한 의의는 실전에서 드러내지 않을 실수를 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하는 거야.”
“···넵.”
“그러니, 절대 그런 안일한 생각은 하지 말거라. 그런 안일한 생각이 진정한 프로 야구선수의 위상을 낮추고. 결국 그저그런 선수로 기억되게 만드는 거니까.”
방 코치는 내 어깨에 고스란이 손을 올리며 말했고.
이에 내 온몸에는 소름이 끼친 나머지, 닭살이 솟구쳐 오를 정도였다.
“하나 더, 알아둬라. 내가 포수는 잘 몰라도. 타자의 진정한 가치는 꾸준함에서 나오니까.”
“넵.”
“그리고 그런 꾸준한 성적을 만드는 것은, 당연하게도 꾸준한 훈련이다. 그러니 절대 훈련에 불평불만하지 말아라.”
방 코치는 이 말만 남기고, 조용히 더그아웃 터널로 걸음을 옮겼다.
이에 나는 말문이 막힌 것처럼, 한참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최고의 포수가 되기 위해서 수비 연습은 죽어라 해댔지만.
그에 반해, 배팅 케이지에서 타격 훈련은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이때 방 코치님의 말을 마음속에 세겼어야 했다.
아니, 어쩌면 진짜 인정받는 최고의 포수가 되기 위해서라면!
타격에서도 더욱 성실히 임했어야 했다.
전생의 실수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나는 다짐했다.
지금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방 코치님에게 인정받기로 말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방금 나의 타격이 잠깐의 기적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야했다.
나는 스읍, 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주위를 살폈다.
전생에 뒤늦게나마, 타격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KBO에서 밥 먹듯이 타격왕을 따내는 타격왕, 매 시즌 가볍게 홈런 35개 이상은 까는 홈런왕, 심지어는 인간 ABS라고 불리는 출루왕까지.
나름 동료 운 하나는 뒤지게 좋았던, 당시에 나는 이들에게 팁을 전수 받았었다.
어떻게하면 그렇게 컨택을 잘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파워툴을 지닐 수 있는지.
그리고 대체 어떻게 하면 변화구와 직구를 걸러낼 수 있는지.
꽤 타격에 대해서 많은 것을 전수 받았고.
나는 당연하게도 그들의 가르침을 육체에 녹여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내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회귀를 한 지금은?
다르다, 달라도 확실하게 다르다.
아직 신체 능력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고.
철저히 관리만 한다면, 해당 기법을 바탕으로 충분히 기대한만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찬스 한 번만 제대로 걸려라······.
나는 더그아웃 난간에 양손을 올리고는, 손가락을 마구 꼼지락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팀 마운드 위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인 공을 흩뿌리는 강유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헛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심판은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삼진선언을 했다.
그러자 타석에 있던 2번 타자는 아쉽다는 것처럼,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흠··· 이대로 가다가는 나한테 찬스는 오려나?
2군 레벨에서는 압도적인 유수의 공에, 추풍낙엽같이 많은 타자들이 쓸려 나갔다.
벌써 아웃카운트는 2개나 잡혀 있는 가운데.
이번에 타석에 들어서게 되는 3번타자.
용준도 손쉽게 그의 공에 요리될 게 틀림 없었고.
나는 따분한 것처럼 입술을 삐쭉 내밀고만 있었다.
동시에 다시 포수 글러브를 끼고 투수인 권수와 캐치볼을 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러려던 순간, 한 사내가 내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어이 진우, 나 좀 도와줄 수 있냐?”
포수 글러브를 챙기러 더그아웃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제법 딱딱한 목소리의 남성이 내게 물었고.
나는 재빨리 고개를 휘익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봤는데.
그곳에는 타석에 들어서기 직전, 한창 긴장한 것처럼 아랫입술을 깨문 용준이 있었다.
“용준이형? 제가 형 도와줄 거 있습니까. 팀에서 3번이나 치는 2군 간판타자면서.”
나는 제법 당당하게 따지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야, 용준이형은 1라운드에 지명될 정도로.
당시 고교레벨에서 파워하나는 엄청난 평가를 받은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양반이 이제 나한테 자문을 구한다고?
나는 의문 가득한 눈빛을 한 채로 용준을 쳐다봤다.
한쪽으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면서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저 양반은 그냥 알아서 두기만 하면, 이 2군 레벨에서는 알아서 잘할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의문만 머릿속으로 가득해지던 찰나의 순간.
용준은 주위 눈치를 보고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야, 이 새끼야. 나 유수 점마한테. 더럽게 약한 거 알잖냐.”
“아······.”
용준의 귓속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벌리며, 탄식을 내뱉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맞다. 용준이형, 이상하리만치 유수한테 약했지?
나는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는 용준의 표정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럴만도 한 게, 용준은 느린 변화구 하나만큼은 더럽게 잘 치지만.
그에 반해서 제법 빠른 구속을 지닌 강속구에 대한 대처는 느린 면이 있는 타자였다.
하긴, 그런 결정적인 약점 하나 때문에 결국 1군 무대에서 아무것도 못한 것이니.
나는 납득이 되었다는 듯이 천천힉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윽한 눈빛으로 용준을 쳐다봤다.
“뭐가 걱정이세요. 용준이형?”
“뭐, 뻔하지. 강속구··· 저거 대체 어떻게 치는 거냐?”
용준은 장갑 낀 손으로 배트를 어루만지면서 물었다.
그러자 나는 턱으로 손을 부여잡으면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 양반 힘은 충분하니. 맞추기만 하면 그냥 가볍게 넘길 수 있을 텐데?’
나는 조금은 의심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도대체 이걸 왜 모른다는 눈빛으로 말이다.
“···용준이형, 그냥 형 알아서 하세요. 그냥 형님 알아서 평소에 하시던 대로만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음··· 그래?”
“네, 그러니까. 일단 치고 오세요.”
나는 서둘러 용준의 등을 밀면서, 그를 타석 안에 집어 넣었고.
뒤이어 상대팀 투수 유수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고는 강속구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투, 스트라이크!”
빠악, 하고 제법 억세게 포수 미트를 강타하는 공이 들어왔고.
당연하게도 용준은 힘을 줘서 배트를 휘둘러 봤지만.
타구는 빚맞거나, 허공을 가르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정타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아니, 저 용준이형. 정도나 되는 사람이 대체 왜 저런담?
나는 계속해서 의심 섞인 눈빛으로 용준을 쳐다봤다.
“파울!”
곧이어 한번 더 용준은 매섭게 배트를 내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배트는 도저히 타미잉을 맞추지 못하는 것처럼.
관중석으로 날아가는 파울 타구만 주구장창 만들어댈 뿐이었다.
그런데 용준이 계속 배트를 휘두르며, 파울 타구만 만드는 가운데.
내 시야로는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용준이 형이 언제부터 레그킥을 했지?
나는 제법 진지한 눈빛으로 용준을 쳐다봤다.
용준은 변화구가 들어오든, 강속구가 들어오든.
그냥 매 타석 전력을 다해서 배트를 휘두를 것처럼.
큰 레그킥 동작을 가져가며 무게 중심을 뒤로 낮추고 있었다.
이거··· 그냥 이렇게만 고치면 될 것 같은데?
다시금 3루쪽으로 날아가는 파울 타구가 나오고.
꽤 승부가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는 조심스럽게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정확하게는 2군 타격 코치 방 코치가 있는 방향으로.
“빌어먹을 녀석, 용준이 저 녀석은 빠른공만 주구장창 던지니까. 도저히 맥을 못 추리네.”
방 코치는 자리에 앉은 채로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그리고 고민했다.
대체 어떻게하면, 저 포텐은 확실한 용준을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저, 방 코치님?”
“어우, 깜짝아. 진우 아니더냐. 슬슬 권수 공 받아줘야되는 거 아니더냐?”
방 코치는 내가 갑작스럽게 다가가서일까?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말했다.
나는 그런 방 코치의 반응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양손에 깍지를 끼면서 물었다.
“저, 방 코치님. 혹시 용준이형 좀 불러주실 수 있겠습니까?”
“용준이를 불러달라고?”
“네, 용준이형의 망가진 타격감··· 제가 한번 살려보겠습니다.”
“네가?”
내가 꽤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자.
방 코치는 코웃음을 쳤다.
“어이 진우야. 오늘 홈런 좀 치니. 아주 네가 미쳤구나?”
“아뇨. 정말이에요. 그러니까 얼른 용준이형 불러주세요. 이대로 가다가는 헛스윙 삼진 당해요.”
나는 꽤 단호하게 용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런 꽤 포스, 내지는 주위를 압도하는 분위기에 방 코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타석에 서 있는 용준을 불러 들였다.
“타임!”
심판은 서둘러 타임을 외치며.
용준을 타석에서 내보냈고.
용준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한 채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한번 제가 용준이형 살려보겠······.”
“음, 그런 건 모르겠고. 일단 너 알아서 해보거라. 실패하면 2군에서도 주전 자리는 보장해 줄 수 없다.”
방 코치는 큰 일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듯이.
나를 크게 압박했다.
하지만 전생의 나와는 다르게, 나는 고작 이런 싸구려 압박에 굴복하지 않았다.
어쭈, 자신감이 아주 태산같으시구먼?
나는 팔짱을 낀 상태로 근엄하게 선, 방 코치를 쳐다봤고.
그런 방 코치를 향해서 눈웃음을 띄우면서 제안을 했다.
“그럼 반대로 결과를 내면 밥 한번 사주시죠?”
“밥?”
방 코치와 나, 둘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신경전이 흐르던 순간이었다.
-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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