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고서(古書)
나는 평범하게 태어났지만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부터 한 번 본 내용은 절대 까먹지 않았다.
4살의 나이에 대륙 공용어를 떼고 나서, 대륙의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었다.
우연히 대륙 신문에서 본 기사에 나오는 작은 마을의 지명까지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걸 천재라고 하나.
나도 처음엔 몰랐지만, 부모님은 알고 계셨나보다.
부모님의 권유로 마법 학교의 초등부 시험을 치러 갔을 때쯤 10분만에 풀어버린 문제들을 남들은 몇 시간씩 골머리 썩히는 모습을 보며 느꼈다.
'나는 다르다.'
어렸을때부터 책에서 읽던 하늘을 날며 여러가지 화려한 마법들로 세상을 구하는 마법사를 동경해왔던 나는 뛰어난 머리로 남들과 다른 출발선상에 올랐다고 확신했다.
마력 측정 전까지 말이다.
8살에 어린 나이로 입학 필기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한 나는 마지막 절차인 마력 측정을 하기 위해 단상에 섰다.
"182번 지원자 카론 데이즈. 앞에 마력 측정기에 오른손을 10초정도 올려주세요."
감독관의 말에 따라 오른손을 투명한 구에 올렸다.
지이잉
마력 측정기가 빛나며 오른손에 미묘한 감각이 돌았다.
'마나 베슬까지 최상급으로 나오면 좋을텐데.'
마나 베슬. 마력으로 치환한 마나를 보관하는 저장소라고 보면 된다. 마력 측정기는 저장소의 크기를 측정하는 기구였다. 마력 측정기의 측정 결과가 입학 성적에는 영향을 주진 않지만, 뛰어난 마법사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기에 마나량 측정 결과가 사실 앞으로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봐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것은 측정기를 통해, 인간의 배꼽 부분에 있는 마나의 그릇인 마나 베슬의 크기를 확인함으로서 알 수 있다.
마나 베슬은 크기에 따라 최하급부터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까지 나뉘어져 있었는데, 최하급과 하급은 작은 공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고, 이는 하위계 마법을 사용하기엔 충분하지만, 중위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소모되는 마력을 공급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일반인의 수십배에 해당하는 마력을 보유할 수 있는 중급과 상급의 베슬은 이름좀 날린다하는 마법사부터 고명한 마법사들이 주로 보유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최상급의 베슬. 수용가능한 마력의 한계를 모를만큼 방대한 크기의 그릇. 세간에는 몸 전체가 그릇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드물게 나타났다. 대륙 역사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최상급 베슬의 보유자들은 모두 시대를 풍미하는 대마법사로 이름을 남겼다.
'상급 정도만 나와도 대마법사로서는 충분하다고 알려져 있었지.'
최상급이 나오면 좋겠지만 그 정도로 양심이 없진 않았다. 적당히 높게만 나오면 스스로의 뛰어난 두뇌를 바탕으로 단숨에 저 위로 비상하리라 마음먹은 카론이었다.
번쩍
마력 측정기에서 짙은 회색 빛이 얕게 퍼져나왔다.
'응? 등급이 높으면 나타나는 빛이 다채롭다고 했는데.'
사전정보에 의하면, 마력 측정기에서 측정한 그릇의 크기가 넓고 견고할수록 여러가지 색이 혼합된 빛이 나타난다고 했다.
"검사 결과는.... 최하급이네요. 182번 지원자 카론 데이즈."
"네?"
카론은 잘못들었나 싶어서 감독관을 쳐다보았다.
"..."
진짜냐고 묻는 카론의 얼굴에 감독관이 안쓰러운 눈빛을 보였다.
"182번 지원자. 안타깝지만 마력 측정기의 오류는 없습니다. 게다가 상위 등급도 아닌 최하급의 베슬은 한 줌 크기도 안되기에 오류가 날 확률도 극히 희박하구요."
"저.. 그럼 입학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제가 필기 시험은 수석이라서요."
감독관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합격은 하겠지만야.. 최하급 마력량으로는 3위계가 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지원자의 재능을 반영한 최대치입니다."
위계.
마법사의 등급을 나누는 수치였다.
최하위인 1위계부터 8위계까지가 인간이 도달가능하다는 영역이라고 전해진다.
그중 3위계 마법사는 검을 다루는 기사로 비유하자면 정식 기사이다.
일반인 기준이라면 평범한 삶을 살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수준이었지만, 카론의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선 턱없이 모잘랐다.
"분명! 오류가 있을거에요. 다시 측정해보겠어요!"
믿을 수 없다며 억지를 부리다시피하며 다시 마력 측정기에 손을 올린 카론에게 돌아온 결과는 똑같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마력 측정기의 잿빛이 마른 하늘에 갑자기 생긴 먹구름처럼 카론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
카론은 집에 돌아와 방문을 닫고 며칠간 두문불출했다.
부모님은 필기 시험을 훌륭하게 마친 아들이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지만 그 이유를 어림잡아 알 수 있었다.
슬픔에 잠긴 카론을 위로하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삶의 의지를 거의 포기하다시피한 카론을 일으켜 세우긴 역부족이었다.
"언제까지 방에서 그러고만 있을거야?"
참다 못한 카론의 엄마인 줄리아가 굳게 닫힌 방문 앞에서서 외쳤다.
"..."
벌써 3일째 아무것도 먹지 않고 죽은듯이 방안에만 갖혀 있는 카론이 걱정되는 줄리아였다.
"아들. 너무 상심하지마렴.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순 없어도 뛰어난 학자가 될순있잖니. 너는 똑똑하니까 엄마 말이 무슨 뜻인지 알거야. 이렇게 단념하기엔 너무 어리고 네 재능이 아깝지 않니?"
말을 마친 줄리아는 잠시 자리에 서있다가 한숨을 푹 쉬고는 집을 나갔다.
그녀가 저녁거리를 사기위해 집을 나서자,
끼이익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던 카론의 방문이 열렸다.
****
집을 나선 카론은 근처 가게에서 간식거리를 산 다음 빠르게 해치우며 어디론가 향했다.
"그래. 내가 가장 잘하는 걸 하자."
며칠간 방에 틀어박혀서 낙담했었지만 어머니의 말을 듣고 조금은 생각을 고쳐먹은 카론이었다.
자신이 좋아하고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카론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이곳 로멜린의 국립 도서관이었다.
대륙에서 손꼽히는 크기의 도서관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외형에 처음으로 놀라고 하늘에 닿을것만 같은 책장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에 두번 놀라곤 한다.
카론은 익숙하다는 듯이 도서관 중심을 지났다.
늦은 오후시간이다보니 도서관 안에는 공부하는 학생들, 원하는 책을 찾기위해 분주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도서관 사서와 눈이 마주친 카론은 가볍게 눈인사를 한 뒤, 가장 안쪽 고서가 쌓여있는 장소로 향했다.
도서관 안쪽에는 오래된 책들을 따로 모아두는 책장들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마이너한 분야이기도하고 알 수 없는 고어들로 적혀있는 보존 상태 또한 천차만별인 것들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오래된 책 냄새와 도서관 내에서도 인적이 드물어 고요한 분위기의 이곳은 카론의 안식처였다.
이곳에만 오면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해야하나.
6살의 어린 나이에 카론은 이곳에서 책을 읽어왔다.
카론에게는 책을 읽는 것이 그 어떤 놀이보다 재미있었다.
안식처이자 놀이터가 된 도서관의 구석. 이곳에서 6살의 어린 나이에 시작된 독서는 얇은 책부터 시작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꺼운 책으로 변해갔다.
많은 분야의 책들을 읽은 카론은 10살이 된 올해부터 주변 책장에 관심이 생겼다.
고어로 적힌 책들은 기존의 대륙 공용어로 적힌 책들과 궤를 달리했다.
보존 상태부터 들쭉날쭉했고 태어나서 처음보는 언어 자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서들이 대부분이었다.
도서관의 분류과정에서도 이렇다 할 가치가 없는 책들이었기에 그렇다고 처리하기도 애매해서 한곳에 몰아둔 그런 장소였다.
카론은 이런 고서들을 분석하며 하루에 한 장 읽을까 말까하는 느린 속도였지만, 한 권 한 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마법 학교 시험을 준비하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지만 당분간은 아마 다시 고서들을 번역하는 재미로 살 것이다.
툭 툭
다쓰러져가는 책장에 다가가 고른 책의 먼지를 털자, 지금은 없어진 대략 200년전 대륙 남부의 작은 왕국에서 사용하던 언어로 적힌 책의 제목이 카론의 눈에 보였다.
<시온 왕국의 역사(하)>
운이 좋았다. 제멋대로 꽂혀있는 제목조차 쉽사리 알 수 없는 고어들로 적힌 책들 중에서 저번에 읽은 <시온 왕국의 역사(상)>의 후편을 고를 수 있는 것은 행운이었다.
시온 왕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 책은 조금 뻔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중간 중간에 영웅들의 활약과 관련된 내용들을 볼 수 있어서 카론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용사와 영웅은 어린 나이의 카론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평소처럼 책을 빼내 자리로 돌아가 읽으려던 카론의 눈에 책을 뽑은 공간 뒤로 무언가 빛나는 것이 들어왔다.
'마지막 책장 뒤에는 벽이 가로막고 있을텐데?'
카론은 갸우뚱거리며 책이 꽂혀있던 안을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책장 뒤에는 벽과 이어진 작은 공간이 하나 있었고 그곳에는 은은한 붉은색을 띄는 둥그런 보석이 빛나고 있었다.
보석 아래에는 꽤 두꺼운 책이 있었는데 고서같지는 않아보이는 것이 먼지나 세월의 흔적이란 것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게 왜 여기 있는거지?'
보석과 책을 집어들어 꺼낸 카론은 생각했다.
도서관 제일 구석에 있는 고서들로 가득찬 책장들 중 맨 마지막 책장에 그것도 책 뒤에 숨겨진 공간이라니.
어린 나이지만 두뇌회전이 뛰어난 카론은 의심했다.
'흔히 말하는 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인위적이다.'
자고로 기연이라고 함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않는 오지 혹은 죽기 직전에 만난 전대의 기인을 우연치 않게 발견해서 그 유산을 받는등 조건이 붙는다.
바로, '인적이 드문 곳에서 우연히' 라는 조건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곳은 ...'
이곳은 대륙에서 유명한 도서관이지만 결국엔 도서관. 책을 빌리거나 읽기위해서 올 뿐 생각해보면 이곳을 왕래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게다가, 이런 고서들로 가득찬 책장이라면 더더욱.
또한, 최근에서야 고서에 흥미를 가져 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책장 뒤의 공간을 발견한 것이었다.
카론이 상정한 기연의 두 가지 조건에 걸맞았다.
아니, 그건 그저 끼워맞추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며칠전에 있었던 마법학교 시험에서 측정했던 마나 베슬의 충격적인 결과로 인해 좌절한 카론에게 때 마침 나타난 저 붉은 보석과 책은 하늘에서 내려준 동앗줄만 같았다.
'그렇지만, 겉만 번지르르하고 저주받은 물건이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설치해둔 함정일 가능성도 있다.'
10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의심을 하는 카론이었다.
남들이라면 좋다고 덥썩 물었겠지만 카론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좋아. 일단은 집에 돌아가자.'
며칠 두고보기로 결정을 내리며 당장 책의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꾹 누르며 원래 있던 장소에 보석과 책을 감추고 다른 고서를 끼워넣어 처음 그 상태를 만든 카론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했지만 이미 들뜬 기분을 대변하듯이 집으로 향하는 카론의 걸음은 집에서 나올때와 달리 너무나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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