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갈색눈의 눈이 크게 떠졌고, 숨죽이며 갈색눈을 지켜보던 푸른 벌이 소리쳤다.
“갈색눈! 뭐야? 뭘 먹은 거야?”
갈색눈이 입을 다시면서 소리쳤다.
“몰라, 그런데 엄청 맛있어! 굉장히 신기한 맛이야~! 짭짤하면서 눅진하고 고소해!”
“정말?”
“갈색눈, 진짜야?”
멀찍이서 지켜보던 연못 개구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급하게 혁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차렷 자세로 고개를 젖히고 입을 쩍 벌렸다.
“아~!”
푸른 벌이 서둘러 그의 뒤로 섰다.
혁이 여전히 멀리서 눈치를 보는 은발 청년에게도 이리 오라고 손짓하며 소리쳤다.
“얀마! 넌 나이도 어린놈이, 형이 오라면 냉큼 와야지!”
그제야 은발 청년이 슬쩍 대열에 합류했다.
혁이 씩 웃으며 연못 개구리의 입속으로 햄 조각을 떨어뜨렸다.
“다음~!”
연못 개구리가 혀를 몇 번 놀리더니 탄성을 지르며 자리를 비켰고, 이번에는 푸른 벌이 입을 벌리고 섰다.
“아 진짜···, 패려고 할 때는 언제고··· 이 근육 누님은 진짜 뻔뻔하네···”
혁이 한 조각을 입안으로 넣어줬다.
“다음~!”
푸른벌이 입을 벌린 채 눈만 꿈벅이며 요지부동이다.
“누님, 줬잖아요?”
푸른벌은 고개를 젖히고, 여전히 눈만 꿈벅였다.
“더 달라고? 와~! 개뻔뻔 하네..”
혁이 웃으며 푸른벌의 입속으로 작은 조각을 하나 더 넣어줬다.
푸른벌은 그제야 자리를 옮겨, 혁이 넣어준 햄 두 덩어리를 손바닥에 뱉어내고는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다시 입에 넣었다.
“짭짤하면서 엄청 부드럽고 고소해. 이게 뭘까?”
푸른 벌이 몇 번이나 입맛을 다시며 혁과 동료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더 먹고 싶어 하는 눈치다.
혁이 갈색눈 패거리에게 빈 캔을 들어 보이며, 구시렁거렸다.
“자, 다 먹었으면 이제 안녕~. 더 줄 것도 없어요. 오늘 저녁인데··· 뭐, 아직 이것저것 남았으니까..”
혁이 빈 캔을 가방에 넣는데, 푸른 벌이 연못 두꺼비의 망태에 들어있던 블루베리를 한 움큼 집어 혁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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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친구야!
호감 / + 30
신뢰 /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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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이것 봐라.’
상태창의 나타났고, 혁은 어떤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와! 근육 누님, 고마워요! 안 그래도 목이 말랐는데. 양심은 있구만.”
혁이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블루베리를 입에 털어 넣었다.
푸른벌이 건네준 블루베리의 맛은 새콤 달콤한 것이 아주 훌륭했다.
* * *
갈색눈 패거리가 구석으로 가더니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갈색눈, 저 친구 데리고 가자! 어차피 끌고 가려고 했잖아. 나쁜 친구 같진 않아.”
푸른벌의 의견에 갈색눈이 대꾸가 없다. 푸른 벌이 은발 청년을 돌아봤다.
“야, 하늘다람쥐. 네 생각은 어때?”
“좋아, 생긴게 맘에 들어.”
“뭐라고?”
“생긴게 맘에 든다고. 잘 생겼잖아?”
“별..”
연못 두꺼비는 햄 맛에 정신을 잃은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야, 연못 두꺼비! 넌 어때?”
“응? 뭐가?”
“저 덩치 말이야, 마을로 데려가는 게 어떻냐고.”
“난 찬성이야. 저 맛있는 걸 어떻게 만드는지, 방법을 알고 싶어.”
그들은 몇 차례 이방인을 겪었지만, 혁처럼 이질적인 존재는 처음이었다.
섬에는 얼마 전부터 '카미카'를 외치는 낯선 옷차림의 이방인들이 파도에 쓸려 오곤 했다.
대부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곤 했으나, 간혹 살아남은 자들은 섬사람들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푸른 수염과 동료들은 얼마 전에도 카미카 두 놈을 힘겹게 처치했다.
그들은 섬 주민보다 몸집은 작았지만, 대나무로 엮은 원주민들의 갑주를 손쉽게 부술 만큼 위협적인 무기를 능숙하게 휘둘렀다.
그들의 갑옷과 무기, 그 외 소지품들은 섬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히 이질적인 물건들이었다.
갈색눈은 그와의 조우에서 '카미카'와 같은 불길한 침입자로 여겼지만, 그의 아량과 친절함에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방인을 무작정 마을로 데리고 갈 수도, 그렇다고 그가 섬을 떠돌아다니게 둘 수도 없었다.
“그럼, 일단 생쥐 나무까지 저 녀석을 데리고 가자. 거기라면 마을과 한 참 거리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리고 내가 붉은 사슴을 만나, 얘기를 해볼게. 무작정 저 녀석을 마을로 데려갈 순 없어.”
푸른벌이 그녀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갈색눈 네 말이 맞아. 그렇게 하자.”
혁은 갈색눈 무리가 자리를 뜨길 기다렸다.
여기서 에너지바를 꺼내면 다시 나눠먹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안 가고 뭐 하는 거야? 내가 자리를 뜨는 게 빠를까..?’
혁은 높은 봉우리로 방향을 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높은 곳에서 둘러보는 게 지형지세를 파악하기가 빠를 것 같았다.
“모두들, 안녕~!”
혁이 발걸음을 옮기는데, 갈색눈이 혁의 뒤에서 소리쳤다.
“이봐, 이방인.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을래?”
혁이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뭐라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갈색눈이 혁에게 손짓을 하고는 손가락으로 자신들을 가리키고 다시, 저만치 먼 곳을 가리켰다.
“아···, 함께 가자고?”
그들의 뒤를 쫓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곳의 실체를 가늠할 때까지 외톨이로 남아야 하는 걸까..
갈색 눈의 여인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혁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생존할 수 있을까?'
혁은 자신이 없었다. 이곳은 캠핑장이 아니었다.
게다가 식량도 길어야 며칠을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자신을 공격한 원주민 무리를 무작정 따라가기도 내키지 않았다.
'어쩐다...'
* * *
‘퍽! 퍽!’
일곱 마리의 고블린은 묵직한 무쇠 도끼로 사슴의 뒷다리를 잘라낸 후, 킬킬거리며 허겁지겁 고기를 뜯어먹었다.
대략 일 년 전부터 출몰하기 시작한 고블린들은, 이제는 빈번하게 마을 주민들 앞에 나타났다.
놈들과 몇 차례 겨뤄보기도 했지만, 그들의 전투 실력은 원주민들을 훨씬 앞서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머릿수도 밀리는 상황이라, 푸른 수염 무리는 갈대숲에 몸을 숨긴 채 고블린 무리가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갈대숲에 몸을 숨긴 흰나비가 뻣뻣하게 굳은 다리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자세를 고쳐 잡았다.
‘뽀각.’
작은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졌다.
“끄? 끄끄!”
고블린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푸른 수염 무리가 숨어든 갈대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오는 애꾸 고블린 손에는 묵직한 돌도끼가 들려 있었다.
“끼.. 끼..”
애꾸 고블린이 갈대숲 바로 앞까지 접근해 코를 벌름거리며 고개를 까닥였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고블린의 날카로운 시선이 갈대숲을 헤집듯 훑어 내려왔고, 놈과 푸른 수염의 시선이 마주쳤다.
“젠장~!”
푸른 수염이 꿇어앉은 자세 그대로 애꾸 고블린의 목을 노리고 도끼를 휘둘렀다.
“퍽!”
고블린은 재빠르게 몸을 틀어 도끼를 피했고, 푸른 수염의 도끼날은 허망하게 허공을 가르고 흙바닥 깊숙이 파고들었다.
“다들, 어서 협곡으로 뛰어!”
무리는 필사적으로 들판을 향해 질주했고, 사슴 고기를 우물거리던 고블린들이 빠른 속도로 그들을 쫓았다.
“끼끼, 끼!”
푸른 수염 무리는 들판으로 이어지는 협곡 안으로 들어섰다.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 협곡 입구에서 두 손을 맞잡고 소리쳤다.
“벽이여!”
순간 유리같이 투명한 벽이 협곡의 입구를 막았다.
“붉은 사슴! 어서 가자!”
푸른 수염이 소리쳤다.
어느새 달려온 선두의 고블린이 투명한 벽에 ‘쾅’ 소리를 내며 부닥쳐 바닥을 뒹굴었다.
고블린 무리가 돌도끼로 방어벽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쾅! 쾅!”
붉은 사슴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오래 버티지 못할거야!”
그녀의 말을 기다린 듯 투명벽이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악!”
가장 앞서 달리던 은발 여인이 돌부리에 차여 중심을 잃고 풀바닥에 곤두박질쳤다.
“흰나비!”
붉은 사슴이 흰나비를 일으켜 세우는 찰나, 어디선가 날아온 돌도끼가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붉은 사슴이 손등으로 이마에서 땀과 섞여 흘러내라는 핏물을 닦아냈다.
쉴 새 없이 달려와 숨은 턱밑까지 차올랐고, 놈들은 이미 코 앞까지 다가왔다.
‘이대로라면 전멸이다.’
붉은 사슴이 소리쳤다.
“흰나비, 어서 가서 파랑새에게 도움을 청해! 푸른 수염, 벌새! 좌우를 맡아!”
“흰나비, 어서 달려!”
망설이던 흰나비가 생쥐 나무의 파랑새를 향해 달렸다.
푸른 수염과 벌새는 재빨리 등에 메고 있던 대나무로 엮은 방패를 단단히 거머쥐었다.
그들은 공격 자세를 취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끼끼”
일곱 마리의 고블린들이 창과 도끼를 휘두르며 접근해 왔다. 외날검을 가진 놈도 있었다.
놈들은 작달막한 체구와는 달리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애꾸 고블린이 앞으로 나서며 벌새의 옆구리를 향해 돌도끼를 휘둘렀다.
벌새는 왼손의 대나무 방패로 날아오는 돌도끼를 쳐내고, 동시에 몽둥이를 휘둘러 고블린의 어깨를 노렸지만, 고블린은 재빠르게 몸을 틀어 피하며 벌새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찼다.
“욱!”
벌새는 뒤로 힘없이 쓰러졌고, 그를 뛰어넘은 고블린 하나가 쏜살같이 흰나비를 뒤쫓았다.
“이런!”
푸른 수염이 배불뚝이 고블린의 외날도를 방패로 막으며 소리쳤다.
“벌새! 어서 일어나!”
* * * * * *
갈색눈의 무심한 표정이 오히려 혁에게 신뢰를 주었다.
만약 그녀가 느끼한 웃음이라도 지었다면, 혁은 그들을 따라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봐, 조심하라고.”
갈색눈이 오솔길 주변의 검은 웅덩이를 가리키면서 주의를 줬다.
“이건 냄새도 고약하고, 끈끈해. 밟지 마.”
혁이 길을 멈추고 웅덩이의 검은 액체를 나뭇가지로 휘저어 보았다.
“이게 뭐길래 그러는 거야..? 뭔 말인지 알아들을.. 응?!”
검은 액체의 고약한 냄새는 그에게 익숙한 아스팔트의 냄새였다.
“와~, 이 동네 만수르 산유국이구만! 부러운데..”
무리를 따라 숲 길을 걸어가는데, '휘~' 하는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휘파람 소리를 따라 시선을 던지니, 울창한 숲 속 거대한 나무 위에 뿔소라 껍데기를 허리에 두른 금발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갈색눈 무리처럼, 그녀 역시 짐승 가죽으로 가슴과 주요 부위만을 가리고 있었다.
일행은 나뭇가지 위 여인에게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파수꾼인가?"
갈색눈이 혁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걸음을 멈췄다. 기다리라는 의미 같았다.
“그래, 알았어.”
혁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아, 씻고 싶다..”
“하늘다람쥐는 나랑 같이 가자.”
갈색눈이 하늘다람쥐와 함께 숲으로 사라졌고, 연못 개구리와 푸른벌도 바닥에 앉았다.
푸른벌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혁의 빙벽화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와, 도대체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걸까? 부드러우면서 엄청 단단해.”
“그러게, 이 덩치 녀석은 신기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니까..”
혁이 푸른 벌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혁!”
다시 자신을 가리키며,
“혁!”
이러기를 몇 번 반복했지만, 둘 다 무슨 행동인지 이해를 못 했다.
“헉? 훡?”
“아니, 혁!”
그제야 혁이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는 것을 눈치챈 푸른 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이름이 ‘폭풍’이라고? 멋진 이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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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성공!
지력 + 10
호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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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내 이름은 혁이야.”
이번에는 푸른 벌이 혁과 같은 방식으로 이름을 말했다.
“푸른벌! 푸른벌!”
“우키푸리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멋진 이름이야! 하하”
푸른 벌은 혁이 단번에 제 이름을 알아듣자 기특한 듯,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툭 쳤다.
“폭풍, 이 자식. 내 이름을 귀신같이 알아듣네. 기특한데.”
연못 두꺼비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는데, 숲의 정령처럼 나무 위에 머물던 여인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무 아래로 내려오면서 자기 소개가 끊겼다.
훤칠한 키에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조각처럼 뚜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했는데, 혁 보다는 서너살 어려 보였다.
그녀의 뛰어난 외모에 급 겸손해진 혁의 허리가 90도로 접히며 배꼽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그녀의 콧대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곧고 높았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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