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있을 이야기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물이 살아서 숨 쉴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말한다.
살인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의 살해와는 달리, 그 범위는 특정되지 않는다.
견디기 힘든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살인적인~'이 쓰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생명과 살인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두 개념은 아주 밀접한 역할을 한다.
살인을 함으로서 적자생존이 가능하다.
흔히 사람들은 살인을 범죄, 다시는 해서는 안 되는 야만의 결과라 단정한다.
하지만 살인은 '가장 효율적으로 정의를 집행하는 도구'일 수 있다.
* * *
어두운 거리가 있다.
이곳은 사람들이 좀처럼 찾지 않고, 범죄자들만 드나드는 음지다.
한 남자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숨을 몰아쉬며 달린다.
"헉헉.....씨발...."
반면, 뒤따라오는 남자는 마치 산책하듯 여유롭게 걸었다.
마치 이 골목이 막다른 길임을 미리 아는 것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마침내 막다른 길 앞에 선 남자는, 온 몸의 힘을 쥐어짜며 소리친다.
"헉.... 씨발!!! 헉.... 원하는 게 뭐야!!!!"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의 눈엔 미련이 남아 있다.
인간이란, 남을 죽이면서도 자기 생명만은 놓지 않으려 한다.
그게 바로 인간이다.
가로등에 드리운 불빛 아래, 쫓아오던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빨간 머리와, 자연스럽게 이어진 동물의 귀.
그와 깔맞춤 된 붉은 모자, 정장, 구두.
그는 중앙에 붉은 눈동자 문양이 박힌 지팡이를 짚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은 도발이었고, 모두를 향한 조소였다.
도망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가 원하는 거 뭐든 들어줄게!!! 돈? 여자? 원하는 건 뭐ㄷ....끄아아아아악!!!!!!"
남자의 오른쪽 어깨에 예식용 단검이 박혔다.
예수가 십자가에 박힌 못과도 같았다.
하지만, 남자는 부활하지 못할 것이다.
상어 이빨처럼 날선 미소를 짓는 남자가 낮게 말했다.
"쉿.... 쓰레기가 말이 많군요.... 루스 프랭클린...?"
루스 프랭클린.
뒷배가 막강한 정치인이다.
뇌물을 받고, 시민들을 괴롭히고 수탈하는 동시에, 선한 이미지를 내세워 대통령을 꿈꾼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죽는다.
다른 쓰레기들과 마찬가지로.
남자가 한껏 굳은 얼굴로 묻는다.
"루스 프랭클린, 엄청난 뒷배에, 시민들을 약탈해온 쓰레기... 본인 맞으신가요...?"
프랭클린이 반론하려던 찰나, 남자가 오른쪽 어깨에 꽂힌 단검을 비틀었다.
다시, 절규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비명은 귀를 찢을 듯했지만, 남자에게는 아름다운 연주와도 같았다.
남자는 고통스러워하는 프랭클린이 아닌, 어딘가의 청자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 세상의 선과 악은 흑과 백처럼 명확히 구분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짙은 회색이죠. 그 회색빛 세상에서 아주 작은 밝음을 찾는 것이 진정한 정의 아닐까요?"
지팡이에 대고 말을 전하던 남자.
궁금증에 휩싸인 프랭클린이 힘겹게 물었다.
"대체 누구에게···..말ㅎ....?"
궁금증도, 빛도, 남자의 단검이 전부 꺼뜨렸다.
남자가 희미하게 웃는다.
"그럼 10시 죄인들의 라디오쇼는 내일 이어집니다···.죄인들이여, 기뻐하라!!!!"
지팡이에서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자는 웃음을 거뒀다.
감정이 삭제된 인형 같았다.
덩달아 변장이 사라지고 남자의 모습은 그림자 속으로 파고든다.
이제 남자는, 평범한 검은 머리와 소심한 인상의 안경을 쓴 청년일 뿐이다.
손끝엔 아직 식지 않은 피, 주먹을 쥐며 그는 미련을 속삭인다.
"그때처럼 다시는 잃지 않고, 다시는 망설이지 않으리라...."
그를 등지고 솟은 초승달이, 조명처럼 살짝 미소 지었다.
까마귀들이 남자의 주위에서 슬프게 울부짖는다.
속죄 따윈 없는 밤.
그렇게, 남자는 또 하나의 정의를 집행했다.
- 작가의말
신작입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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