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어이! 소녹귀(GOBLIN) 하나 갈무리하는데 뭐가 그리 오래 걸리나!”
어두컴컴한 동굴.
염소수염을 한 사내가 못마땅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하하, 대협.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 그렇습니다.”
그에게 대답을 한 청년의 앞에 늘어져 있던 것은 소녹귀들의 시체. 혐오스러운 외모에 그 어떠한 연민도 들지 않았다.
청년의 대답을 들은 검수는 콧웃음을 치며 손을 내저었다.
“그건 내 알바 아니고.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보수를 줄일 수밖에 없네. 약속했던 것에 반만 주도록 하지.”
“예? 반이나 줄인다니요! 그럼 삼만 원(三萬元)도 안 주신다는 겁니까?”
“흥, 준다는 것에 고맙게 여기게.”
아직 마석을 빼내지 않은 사체를 하나 뻥 걷어찬 사내는 청년을 혼자 내버려 두고 이동했다.
“엽사(HUNTER)님! 어디 가십니까!”
“두목(BOSS) 잡으러 간다. 갔다 올 때까지 다 끝내놓도록.”
말을 마친 염소수염의 모습은 동굴 안쪽으로 사라졌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년은 인기척이 사라지자 그의 이름을 불러봤다.
“야, 태훈아. 태훈이 병신아! 갔냐?”
조금 큰 목소리로 그를 욕했음에도 아무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갔다!”
태훈이 갔음을 확신한 청년은 서둘러 소녹귀들의 사체를 뒤집었다. 멀쩡했던 앞과는 달리 뒤는 크게 갈라진 상처가 있었다.
“크크크, 고맙다. 태훈아.”
사실 청년은 태훈이 걷어찬 것을 제외한 모든 사체의 손질을 끝마쳤다. 마석(魔石)을 빼내어 제 주머니의 챙겨뒀던 청년은 알뜰살뜰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몸에서도 빼냈다.
손에 잡힌 영롱한 푸른 빛깔의 돌멩이.
이것 하나만 있으면 밥도 짓고, 자동차(CAR)도 굴러가고, 진법에도 쓰이는 아주 요긴한 물건이었다.
태훈이 오기 전에 바삐 입구로 돌아가는 청년의 이름은 최진운. 천마신교(天魔神敎)의 하급 짐꾼이다.
***
천문(GATE)에서 나온 진운은 택시(TAXI) 대신 버스(BUS)를 탔다. 향하는 곳은 암시장. 챙겨 온 마석을 팔기 위해서다.
진운은 네온사인(NEON SIGN)으로 번쩍거리는 간판들을 지나 허름한 건물 하나를 찾았다.
그와 자주 거래하는 장노인의 가게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진운은 키오스크(KIOSK) 앞으로 가 단추(BUTTON)들을 꾹꾹 눌렀다.
- 판매하려는 마석을 투입구에 넣어주세요.
주머니에서 우르르 쏟아진 마석들.
계산을 마친 기계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 소녹귀 마석 열두 개. 총 십오만 팔천 원입니다. 현금과 계좌. 돈을 받으실 방법을 선택해 주세요.
‘아쉽군···. 맹에서는 이십만 원 넘게 쳐 줄텐데···.’
기계를 때리면 돈을 더 쳐주지 않을지 고민하던 진운은 장노인의 서슬 퍼런 시선을 받고선 단추를 눌렀다.
- 계좌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요즘은 현금보다는 스마트폰(SMARTPHONE)의 무공페이(武功PAY)를 이용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귀찮게 지갑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편리했다.
은행 앱(APP)에 들어가 입금된 돈을 확인한 진운은 장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마교도인 그와 거래하는 것은 장노인 밖에 없었다.
다음에 올 땐 비타민(VITAMIN) 음료라도 사들고 와야겠다 생각한 진운은 객잔으로 향했다.
호구 하나 만난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겠다, 오늘은 사치를 부려 한우(韓牛) 버거(BURGER)를 먹을 심산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가던 진운이 걸음을 멈췄다.
“어이, 거기까지.”
갑자기 나타난 세 사내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운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그들은 흑사파의 말단들. 하급 엽사들이다. 엽사들 중에서 제일 하찮은 이들이지만, 하급 짐꾼인 진운에게는 오크(中綠鬼)보다 무서운 이들이었다.
“우리 진운이, 오늘 많이 벌었나 봐? 얼굴색이 아주 좋아?”
“아뇨, 오늘은 제대로 쪽박을 찼습니다···. 손이 왜 그렇게 느리냐면서 삼만 원도 못 받았습니다···.”
“그래······?”
양아치들 중 홀쭉한 이가 스마트폰을 들이밀며 물었다.
“그럼 이건 뭐야?”
화면에 띄어진 것은 무림넷(武林NET)에 올라온 한 게시글.
내용을 읽은 진운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태훈이 진운에게 마석을 전부 도둑맞았다며 하소연하는 글이었으니까.
동명이인이라고 발뺌하기엔 언제 찍었는지 진운의 사진도 첨부해 불가능했다.
“우리 진운이, 거짓말도 할 줄 알고. 많이 컸다?”
“그, 그게 말입니다···.”
눈을 질끈 감은 진운은 폰을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전부 드릴 테니 한 번만 봐주십쇼!”
“진작 그럴 것이지. 담부터 잘하자?”
뚱뚱한 양아치가 폰을 받기 위해 다가왔다.
건네받은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잠금이 걸려있었다.
“진운아, 이렇게 주면 어쩌자는, 끄억—”
양아치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간을 부여잡으며 꼬구라졌다. 그의 앞에는 멋지게 발차기를 날린 진운이 있었다.
“놈!”
“감히 우리 삼식이를!”
그 모습을 지켜본 양아치 둘이 스릉 쇳소리를 내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은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며 도망가는 진운의 뒤를 쫓아갔다.
“최진운! 거기서! 이 마교도 놈아!”
“병신들. 니들 같으면 서겠냐?”
“이 새끼가!”
다다다다.
골목에서 때아닌 추격전이 벌어졌다.
암시장에서 하루에 몇 번이고 볼 수 있는 풍경이었기에 행인들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금방 잡힌다는 것에 삼만 원.”
“안 잡힌다에 이만 원.”
오히려 내기를 벌였다.
“허억허억.”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달리는 진운의 몸은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불안해 보였다.
행인들을 밀쳐가며 뛰었지만, 놈들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갔다.
“오늘 이 어르신들이 아주 혼쭐을 내주마!”
“어르신은 무슨. 거기 털은 났냐?”
“이 새끼가! 오늘 제대로 미쳤구나!”
당장 빌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도발을 했다.
오늘 진운의 제사상이 차려질 판.
그를 뒤쫓는 둘은 뭘 잘못 먹었는지 오늘따라 이상한 진운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의 다 왔다!’
진운의 눈에 객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천문의 공략을 위해 신교의 엽사들이 머물고 있는 객잔. 이번 원정은 광마(狂魔)께서 친히 참가를 선언하셨다.
즉, 객잔에 광마가 있단 소리.
다른 교도들은 자신이 어떻게 되든 신경도 안 쓰겠지만, 광마는 다르다.
왜 광마가 광마겠는가.
교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가진 그는 나 같은 하급 짐꾼도 중히 여겼다.
너무 중해서 뒷감당이 조금 힘들긴 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던 불한당들을 처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객잔 안으로 뛰어든 진운이 소리쳤다.
“신교 살려! 신교 살려! 아이고 나 죽네!”
“뭐야.”
“무슨 일이야.”
‘신교’라는 단어에 신교도들의 반응이 있었다.
광마의 존재는 다른 이들도 예민하게 만들었다.
진운을 슬쩍 본 이들은 하급 짐꾼인 것을 알아보고는 관심을 끊고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갔다.
“대협들! 살려주세, 커헉—”
“잡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빼빼 마른 손에 목덜미를 잡힌 진운이 켁켁거렸다. 삐쩍 마른 양아치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진운을 노려보며 선언했다.
“오늘 아주 끝장을 보자꾸나!”
“끝장? 무슨 끝장?”
놈의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졌지만 진운에게 집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도망치려던 다른 일행은 반으로 접혀 객잔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뭐긴 뭐야, 이 마교도 놈을—”
“이 불경한 자가! 감히 신교를 마교라 폄하느냐!”
콰앙—
프라이팬(FRYING PAN) 같은 손이 내려와 양아치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풀려난 진운은 은인을 보며 감사 인사를 남겼다.
“천마천세! 만마앙복! 천마님께 영광 있으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광마 어르신!”
키가 2m를 훌쩍 넘기는 근육질 몸매의 사내. 광마는 그런 진운에게 뿌듯한 시선을 보냈다.
“요즘 신교도 치고는 정신이 똑바로 박힌 친구구만.”
“가,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겠다. 술이나 한잔 하며 천마님의 위대함에 대해 논해보지.”
“예? 아뇨, 저···”
“내뺄 필요 없네. 술은 내가 사도록 하지.”
“아니, 저기—”
허공섭물로 끌려가는 진운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원정 준비가 끝나기까지 3일. 진운은 광마와 술대작을 했다.
***
“다들 준비는 다 됐겠지?”
“옙!”
“그럼 신속하게 털고 나온다.”
“존명!”
흑의를 두른 천마신교의 엽사들이 푸른 천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지켜보던 광마는 진운의 등을 팡팡 쳤다.
“쫄지 말게. 땡중놈들이 오려면 아직 사흘은 더 있어야 하네. 싸우는 건 우리가 할 테니, 자네는 짐만 잘 챙기게.”
말을 마친 광마도 천문 안으로 들어갔다.
진운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소림사의 천문을 훔친다니! 어쩐지 돈을 많이 준다 했다···.’
소꿉친구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돈만 보고 의뢰를 수락한 것이 화근이었다. 광마가 만리추종향을 묻혀나서 이제 선택지는 없었다.
‘그래, 광마가 있는데 뭐가 두려울까. 방장이 직접 오지 않는 한 괜찮을 거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진운도 천문으로 몸을 던졌다.
그가 들어가고 텅 빈 천문 앞.
법의 두른 빡빡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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