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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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연연
작품등록일 :
2025.09.30 20:45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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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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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4. 허도를 향해

DUMMY

깊은 밤중, 산속의 찬 바람이 축축하게 뺨을 스친다.


불을 피울 도구조차 가지고 오지 못한 두 사람은 추위를 피해 바위틈에 몸을 기댔다.


사냥개와 병사들을 피해 하루종일 산을 넘어왔지만, 여전히 언제 들킬지 몰라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살인자라니···어쩌다 내 신세가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유정휘의 목소리는 쉰 기침 사이로 간신히 흘러나왔다.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었어.”


“우리? 칼을 빼들지 않았다면 사고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식량을 약탈당해도 가만히 있어야 했나? 집에서 편히 먹고자란 너희 서생과 달리, 우리는 그게 없으면 당장 배를 곯아야 한다고! 너도 결국 그놈들과 같은 편이군.”


“그렇지 않소! 법을 집행한다며 사람을 때리고, 백성의 곡식을 도둑질한다니··· 내가 배운 도리는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적막한 밤 속에서 이어진 침묵은 어둠을 더욱 깊게 만드는 듯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마윤이 먼저 일어나며 몸의 흙먼지를 털어냈다.


“법은 더 이상 나같은 사람을 보호해주지 않으니, 스스로 살 길을 찾는 수밖에 없겠군.”


“그럼···앞으로 어쩔 셈이오?”


“어쩌고 자시고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고보니, 고향이 어디라고 했더라?”


“항주. 강을 따라 나가면 바다로 이어져서 상인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이오. 꽤 아름답기도 하고.”


“나야 어차피 떠돌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이쯤에서 갈라지는게 좋겠군”


유정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마윤으로선 나름의 배려였겠지만, 지금 그 말은 아무 힘도 없었다.


“후우···그렇게 간단한 일이었다면 진작에 나갔을 겁니다. 관군들이 이 근방 마을을 전부 수색할텐데, 이곳 지리도 모르는 나보고 혼자 어디로 가라는 말입니까.”


“···..”


다시 정적이 산 속을 감돌았지만, 이번에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곳에서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도.”


“항주로 가겠다는 겁니까?”


“더는 물러설 곳도 없지 않나, 함께 가자고. 일단 이 산을 따라 가면 허도가 나올 테니, 그곳에서 한동안은 머물 수 있을거야.”


“들어본 적이 있군요. 그 옛날 조조가 수도로 삼았던 도시라고 들었습니다.”


“어디, 정말 수도로 삼을 만큼 좋은 곳인지 확인해 보자고.”


다시 반나절을 더 이동한 두 사람은 해가 하늘 높이 떠오를 때쯤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산 꼭대기에서 어렴풋이 허도의 모습이 보이긴 했으나, 여전히 거리는 멀었기에 두 사람은 점차 지쳐갔다.


“먼저 사람 사는 마을을 찾지 못하면 도중에 쓰러지겠소.”


유정휘가 중얼거렸다. 마윤도 할 말이 없었는지 대답 대신 앞만 보며 걸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새로운 산을 오르던 두 사람은 언덕 아래에 오래된 절간 하나를 발견했다.


기와는 갈라지고, 벽도 반쯤 무너져 있었지만 분명 사람이 사는 듯했다.


“폐가가 아닙니까?”


“아니, 망가지긴 했어도 잡초가 뒤덮히진 않았어. 분명 누군가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 거다.”


망가진 문의 내부 쇠붙이 하나 없는 법당, 나무로 깎은 불상 사이로 옅은 향내가 스며 있었다


두 사람이 가장 먼저 본 것은 한 노승이 회색 장삼을 걸치고 다소곳이 않아 참배를 하는 모습이었다.


“수행 중이신가 봅니다. 잠시만 기다렸다가···”


“갑자기 들어와 죄송합니다. 혹여 이곳의 주지승 되십니까?”


혹여나 불청객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유정휘와 달리, 마윤은 더 이상 예절보다는 생존이 우선이었다.


“찾는 이 드문 산골에 봄바람을 담고 찾아온 시주가 둘이나 있으니, 오늘은 큰 인연이 생기는 날인가 봅니다.”


노승이 고개를 돌리자 비록 희게 세었지만 잔잔한 눈매와,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는 초면인 사람들이 갑자기 찾아왔음에도 아무런 놀라움 없이 태연한 모습이었으나, 마윤은 노승의 얼굴에서는 묘한 슬픔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귀찮게 해서 미안합니다. 허도로 향하는 와중 식량이 떨어져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찾아왔으니, 혹시 남는 식량이 있겠습니까?”


“이미 보아 알고 있듯이 절간 살림이 넉넉치는 않지만, 그래도 멀리서 온 손을 대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네.”


노승이 헛간에서 곡식을 꺼내는 동안, 유정휘는 가지고 있던 천을 꺼내 불상을 닦거나 아궁이를 지피는 등 일을 도왔다.


“허허, 어찌 주인이 할 일을 손님이 대신 하려는가?”


“저는 얻어먹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염치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고승(高僧)의 존함을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소승은 하명도(河明道)라 하네. 법명은 현장(玄奘)이지.”


"그렇다면 이 절은 이름이 무엇이지요? 명판이 보이지 않는군요."


"다 무너져가는 절의 이름을 뭐하려 알려고 하는가? 어차피 이곳에 있는 중이라곤 나 혼자 뿐이니, 내 이름이 곧 이곳의 이름이 아니겠나?"


유정휘의 물음에, 노승은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노승이 텃밭에 나가 식사를 준비하던 그때, 절 뒤편에서 조그마한 아이가 손에 약초 한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얇고 가냘픈 몸을 가진 소녀, 얼굴과 손에 묻은 흙으로 봐서는 산에서 막 내려온 듯했다.


소녀는 절간에 들어온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 몸을 숨겼지만, 노승은 손짓을 하며 아이를 불러들였다.


“소미야, 두려워할 것 없다. 이분들은 날 찾아온 손님이니, 어서 와서 앉거라.”


소미라 불린 소녀는 쭈뼛쭈볏 걸어와 노승의 곁에 앉긴 했으나,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마윤과 유정휘를 흘겨보았다.


마윤은 빈민들이 절간에 아이를 맡기고 도망가는 것을 으레 보았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지만, 유정휘는 소미의 옷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절간에서 자랐다기엔 옷이 관리들이 입는 예복에 가까워 보이는군요.”


노승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소미를 바라볼 때면, 마윤이 아니더라도 그의 얼굴에 측은한 마음이 비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구법당 관리의 자녀라네, 최근에 큰 숙청이 일어나면서 부모를 잃었지. 도망치던 길에 식솔과 헤어지면서 자네들처럼 이 절에 들어와 함께 지내고 있다네.”


유정휘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이 절이 이렇게 부서진 것도 관리들의 소행인 것입니까?”


하명도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조정이 혼란한데 피해를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행히 이곳은 사람의 왕래가 적어 가져갈 것도 없는 터라 큰 화는 면했네.”


그날 밤, 두 사람은 절의 뒷마당에서 마른 나무껍질을 태워 몸을 녹였다.


바람에 처마 끝에 달린 종에서 스산한 소리가 울려퍼지는 사이, 유정휘는 불빛 너머 하명도와 아이를 바라보았다.


“저 아이는··· 부모를 잃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을까요.”


마윤이 낮게 답했다.


“우리가 어찌 알겠나. 아마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그날따라 하늘엔 별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불빛에 길게 늘어서 있는 와중, 유정휘의 눈에는 하원골의 아이들과, 불빛 너머의 소미가 자꾸만 번갈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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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천곡(2) 25.10.21 54 0 12쪽
9 9. 천곡(1) 25.10.18 64 0 12쪽
8 8. 허도(2) 25.10.16 73 0 12쪽
7 7. 허도(1) 25.10.15 79 0 9쪽
6 6. 소미 25.10.14 82 0 10쪽
5 5. 새로운 힘 25.10.13 95 0 11쪽
» 4. 허도를 향해 25.10.12 111 0 8쪽
3 3. 사고 25.10.12 118 1 10쪽
2 2. 불의 25.10.11 144 1 7쪽
1 1. 새벽녘 25.10.10 262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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