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죽는 건 생각보다 간단했다.
하루가 끝나고 퇴근길이었다.
고된 하루의 일과를 치유하기 위해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빗길에 미끄러진 트럭이 인도를 덮쳤고, 그 순간 내 몸이 공중으로 튕겨 날아가는걸 느꼈다.
아프지도, 화나지도, 그렇다고 삶이 후회되지도 않는 그 짧은 시간.
나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는 두 번째 삶이 찾아왔다.
****
딱딱하고 차가운 감촉이 온 몸에 맞다았다. 거기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물 떨어지는 소리. 어디 천장에서 물이 새는 건가 싶어 눈을 뜨고 확인하니.
그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만이 짙게 깔려있었다.
‘부,분명 난 차에 치여 날아갔는데.’
병원이라기엔 주변이 너무 어두웠다. 거기다 차에 치여 날라갔다기엔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오히려 온 몸에 기운이 넘치는듯 했다.
‘···설마 죽어서 저승에 왔나.’
아니. 저승이라기엔 난 지금 확실히 살아있었다. 그도 그럴게 지금도 내 심장은 열심히 뛰고 있는걸.
그럼 여긴 대체 어디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 일어서려고 한 순간.
어? 왜 몸이 가누어지지 않지? 분명 온몸에 힘은 쌩쌩하게 돌고 있는데.
이거 봐 손도 멀쩡—응? 내 손이 원래 이렇게 작았나? 어어? 발도 작은 거 같은데? 뭐야 이거? 내 몸이 왜 이래?
마치 아기의 몸인 것처럼 팔과 다리 심지어 몸통까지 모두 작아져 있었다.
아니 작아졌다기엔 진짜 아기 몸이 된 거 같은데.
아기가 된 몸이 신기해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뚜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 누구지?. 설마 귀신? 아니야 귀신이라기엔 발소리가 들리는걸. 그러면 도깨비?’
어두운 공간에 혼자 있다 보니 온갖 잡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며 정체불명의 발소리를 추측했다.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곳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와중, 어두운 공간 속에서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인간의 눈이라기엔 너무 붉고 강렬했기에 놀란 난 두 눈을 감고 그 존재가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존재의 인기척은 점점 날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또각 또각 또각
“눈을 뜨셨군요, 이계의 존재시여.”
이계의 존재? 설마 날 말하는 건가? 그보다 처음 듣는 언어인데 어떻게 알아들을 수가 있는 거지?
나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듯 눈 앞의 존재는 탐욕에 절인 눈으로 날 한번 쓱 훑어보더니 조용히 미소를 짓고는 날 들어 올려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놈의 얼굴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있어 얼핏 보기에는 살아있는 미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이 세상에 미라 같은 건 없겠지만.
거기다 이동하는 동안 슬쩍 쳐다본 그의 표정에는 붕대 너머로 드러나는 미약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자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당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멋진 장소죠.”
정체불명 남자의 품에 안겨 도착한 곳은 어두운 동굴 속 붉은 핏물로 문향이 그려져 있는 한 공터였다. 얼핏 보기에는 혈 문자 같은 걸로 보이는데. 그 혈 문자를 따라 이동하니 중심부에는 제단이 세워져 있었고 그 주위로 알 수 없는 장식물과 동물의 뼈, 눈, 장기 같은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짙은 혈향이 코를 통해 안으로 밀려 들어와 절로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런 공간에.
날 데려온 남자는 날 제단 한가운데에 내려놓고는, 두 눈을 감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주문을 읊조렸다.
그 남자의 입에서 주문이 튀어나올 때마다 주위에 씌어 있는 혈 문자에서 어두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공터 전체를 감싸 오르며 불타올랐다.
“이계의 존재여. 그대 덕분에 무사히 대악마를 이곳에 강림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이곳에 재앙이 들이닥치겠지요.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합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둡게 타오르고 있던 문자들이 일제히 꺼지더니, 날 올리고 있던 제단 바로 밑에서 검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르—
모든 걸 집어삼킬 것처럼 맹렬히 타오르는 검은 불꽃.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던 불꽃은 이내, 내 몸을 집어삼켜 버렸다.
“으아아아악!! 아아앆!!”
살이 불에 타 녹아내리는 소리. 뼈가 타면서 나는 냄새. 거기에 나의 비명이 조화되어 어두운 공터를 가득 메웠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고통. 차에 치여 죽을 때보다 더한,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잘게 썰리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향해 덮쳐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몸을 불태우고 있는 이 검은 불꽃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더욱더 활활 타오르며 나의 몸을 녹여 내리고 있었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 차라리 빨리 불타 죽고 싶어질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다가오는 와중. 귓가에 울리는 놈의 목소리.
“아아— 아름답도다. 너무 아름다워. 어서 재앙의 불꽃을 피워 이 세상에 파멸을 몰아와 주기를.”
“이 썩어빠진 세상에 지옥의 불길을 내려 모든것을 정화시켜 주기를.”
정체불명의 장소에 데려와 날 이토록 고통받게 한 장본인은 불타오르고 있는 날 보며 우수에 젖고 있는 꼴을 보니, 속에서부터 끊임없는 열망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복수라는 열망이.
‘이,이대로 끝낼 순 없어. 하다못해 놈에게 복수라도.’
화염의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끝까지 놈의 얼굴을 노려봤다. 죽어서라도 놈에게 저주하기 위해.
그렇게 영겁 같은 시간이 지난 뒤. 더는 살아있을 수 없을 만큼 몸이 타올라 숨을 거두는 마지막.
띠링!
[환생자 특전 ‘포식’이 주어집니다.]
어두워진 눈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투명한 창.
그게 뭔지도 모르지만, 본능이 소리치는 대로 특전을 발동했고.
[대상의 마지막 의지를 확인.]
[죽음을 포식합니다.]
의문의 목소리를 들은 체 짧지만, 강렬했던 두 번째 생을 마감했다.
****
어두운 공간. 질척이는 무언가가 온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이 그 어두운 공간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것이 존재했으니.
허공에 입만 둥둥 떠다니며 주변 공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어두운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보이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존재.
저게 뭔지 알지는 못하지만, 본능적으로 저것이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거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그저 입이 공간을 다 먹어 치우는 걸 한없이 바라만 보길 얼마나.
드디어 이 좆같은 공간을 다 먹어 치우는 순간이 도래했다.
과연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나도 이 공간처럼 저것에 먹히는 걸까? 아니면 공간이 사라졌으니 함께 소멸하는 걸까.
정답은 둘 다 아니었다. 바로 그 공간에서의 추방이었다.
그래, 나는 죽음으로부터 추방당한 것이었다.
“딱 따딱, 따따닥.”
(이,이게 어떻게 된···.)
다시금 정신을 차리니 보이는 건 날 불태웠던 그 가증스러운 장소. 그러나 그 의문의 사내는 없었고 장시간 방치됐는지 주변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우선 주변에 위험한 건 없는지 둘러보고는 조심히 내려가기 위해 발을 뻗는 그 순간.
“딱? 따닥!”
(어? 내 발!)
백옥같이 새하얗고 매끄러운 뼈를 볼 수 있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팔 몸 심지어 머리까지 모든 부분이 살 한 점 없이 깨끗한 뼈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중심부에는 심장을 대신하여 어두운 불꽃이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이,이게 어떻게 된···.’
순간 놀라 몸이 굳었지만 이미 죽음을 두 번이나 겪으며 단련된 멘탈로 인해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후, 그래. 이미 두 번이나 죽고 살아났는데 스켈레톤인 게 뭐가 대수냐. 아무튼 살아 움직이면 되는 거지.’
정신을 다잡고 다시금 움직이기 위해 제단 위에서 내려와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따다다.”
(으아악.)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아무래도 살이 없는 뼈라서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심지어 근육도 없어서 힘주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되고.
‘그나저나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살도 근육도 없으면 아예 못 움직이는 거 아닌가?’
지극히 상식적인 상황에 맞춰 질문을 해봤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뭐, 이제 와서 상식을 찾기도 뭐하고.
일단 움직이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우선 이 칙칙하고 어두운 동굴을 먼저 벗어나자. 그 후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를 알아보는 거야.
일단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걸. 그 미친놈을 통해 알아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고 나서는······ 날 이렇게 만든 놈에게 찾아가 복수를.
그렇게 하염없이 걷고 또 걸으며 속으로 복수를 다짐하고 있던 찰나.
동굴 끝에서 눈이 부시게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 작가의말
부족한 글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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