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프롤로그.
어두컴컴한 방.
위태롭게 깜빡이는 모니터의 불빛만이 방 안의 유일한 조명이었고, 이곳에서 과연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까 란 그런 의문이 자연스레 떠 올랐다.
언제 마지막으로 치운 지 모를 구석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와 그 위를 무심하게 날아다니는 파리.
반대편 이부자리의 이불은 헤지다 못해 찢어져 누렇게 변한 솜이 꿈틀거리듯 튀어나왔다.
이 곳은··· 삶의 흔적 이라기 보단 오히려 붕괴의 잔해와 더 가까웠다.
하지만, 단 하나. 단칸방 내부 광경과는 달리 매일을 정성스레 치우고 닦은 듯한 정갈한 장소.
“···”
컴퓨터 앞에 앉아 초라한 몰골로 모니터를 보던 나의 손이 키보드 옆에 놓여진 작은 액자를 향했다.
매우 환한 얼굴로 웃고 있는 여인과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딸, 그리고 멋쩍스레 웃으며 뒷머리를 긁고 있는 젊은 시절의 나.
얼마나 액자를 어루만진 것인지 나무로 된 액자의 모서리는 끝이 뭉툭해져 원래의 형체를 잃은 지 오래였다.
“나도 곧 갈게···”
떨리는 목소리로 의미심장한 혼잣말을 내뱉은 후 시선을 돌려 깜빡이는 모니터를 향했다.
그곳에는 [99회차 클리어] 란 문구와 함께 뒤로는 낡은 도트풍의 게임이 켜져 있었다.
왜인진 모른다.
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 왜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인지, 나도 모른다.
단지 시간이 필요했을 뿐.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나는 무너졌다.
그리고 해체된 자아와 집착이, 결국 이 기이한 형태로 나를 이끌었을 뿐이다.
“한번 만 더 하고.. 이제 끝이야.”
떨리는 손으로 [로비로 가기] 버튼을 누르자 검은 화면 위에 단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리라이프]
솔직히 그 시절 이름만 보고 정한 이 게임이 극악의 난이도로 인해 이렇게 오랜 대장전이 될 진 몰랐다.
게임의 내용은 간단하다.
마왕과의 전투 이후, 힘의 균형이 무너진 세계에서 모든 종족을 통합하여 대륙 전체를 하나의 국가로 만들면 되는 것이 목표.
하지만 세이브 기능도 없고 죽으면 바로 초기화. 심지어 캐릭터 종족도 랜덤, 직업도 랜덤, 능력도 랜덤이란 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번 회차에선 마왕을 무찌른 용사였지만, 다음 회차에선 농부가 될 수도 있고, 마왕측에 붙었던 배신자, 혹은 그냥 아예 범죄자로 시작할 수도 있단 말이다.
쉽게쉽게 하기 위해서라면, 좋은 캐릭터가 배정될 때 까지 새로 시작하면 그만 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인지, 그럴 수 없었다.
그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데 8년이나 걸렸지.’
[시작하기] 버튼을 누름과 동시 로딩 게이지가 떴다.
그 게이지가 차오를 때 마다 이때까진 한 적 없는 상상을 하게 됐다.
내가 죽으면··· 아내와 딸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 일까.
아니면, 8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으로 나를 반겨줄까.
아니, 그게 아니라··· 8년이나 걸렸는데, 과연 나를 반겨주긴 할까.
그렇게 잡념과 함께 로딩 게이지가 다 차오르자 모니터가 번쩍 하고 한차례 강한 빛을 내뿜다 이내 다시 돌아왔다.
오래된 모니터가 드디어 맛이 간 건가 라고 생각하며 캐릭터 배정 창을 확인한 순간.
“이게 뭐야?”
이때까지 게임을 시작할 시 간단한 캐릭터의 배경을 정리해준 창이 나온다. 직업, 나이, 성별, 종족 등···
하지만..
[이번에 플레이할 캐릭터는 ‘당신의 의지’ 입니다]
란 문구가 모니터에 떠있었고.
[플레이 하시겠습니까?]
란 없던 버튼이 그 밑에 같이 나타났다.
없던 문구와 없던 버튼.
그리고 내 손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마우스를 움직였다.
마치 내 안의 ‘나’가 아닌 누군가가 대신 누른 것 처럼.
딸깍.
마우스의 소리와 함께 게임이.. 아니, 마지막 100회차 세계가 다시 시작됐다.
* * *
···. 춥다.
분명 창문을 모두 닫았는데도, 한기가 방 전체에 내려 앉아 나를 감쌌다.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 뒤엉킨 솜털이 등을 찔러대는 불편한 이부자리.
싫지만··· 이 익숙한 불쾌함에 거부감을 느낀 지 이미 오래였다.
아니, 잠깐.
애초에 내가 언제 잠든거지? 누운 적도 없지 않나? 분명 게임 시작을 누른 것 까진 기억 하는데──
우드득!
“끄윽── ?!”
입에서 고통 섞인 헛숨이 자연스레 터져나왔다.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녹슨 톱니바퀴가 엇물려 돌 듯, 뼈마디 하나하나가 삐걱이며 비명을 질러댔다.
설마··· 게임 하다가 기절한 건가?
기절해서 몇 일 움직임 없이 누워있던 게 아닌 이상 몸이 이렇게 될리가···
찌뿌등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굳어버린 듯한 몸.
한편으로는 순간 기절한 상태에서 평생 일어나지 못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라는 짧은 생각을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쿵!!
“어?···”
무언가가 내 머리를 막았다.
정확히 막은 게 아니라── 누워있는 내 얼굴 위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생각해 보니 아무리 방이 어두워도 이렇게 까지 칠흑 같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완전한 암전.
커튼 사이로 밤이면 항상 길을 밝히는 가로등 빛이 새어 들어와야 할 터.
놀란 마음에 손 끝을 더듬었고, 다시 한번 느껴지는 촉감은 내 이불 같은 것이 아닌··· 거칠고, 부서지는 듯한 이 감촉── 모래···?
그리고 그 밑으로 느껴지는 단단한 무언가.
“나, 나무?”
당황한 내가 몸을 이리 저리 움직였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머리위, 다리와 팔 근처, 등 밑. 모든곳이 나무로 막혀 있었다.
정말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성인인 누워서 이 정도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딱 하나밖에 생각 들지 않는다.
“관..?”
덜컥..
숨이 목에 걸린듯한 기분.
기절이 아니라 죽은 거였어?
아니, 지금은 다른 생각할 시간 따위..
나는 재빨리 팔을 가슴 앞으로 모았고, 그대로 힘을 주어 나무판을 밀어 올렸다.
끼이익──
천만 다행히도 조금씩 열리는 나무 뚜껑을 따라 처음엔 모래가 얼굴 위로 쏟아졌다.
이내 위에 있는 모래가 사라지자 금이 간 나무관 사이로 한줄기의 빛이 뚫고 관 안으로 들어왔다.
나무판이 조금씩 밀려 내려감에 따라 서서히 막혀있던 세상이 열렸다.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수많은 수놓은 별들 사이에 걸려있는 어딘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거대한 보름달.
그리고 이내 바람이 불자 사방에서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주변을 메우기 시작했다.
“으으윽···”
여전히 비명을 지르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간신히 열린 틈을 통해 자리에 앉아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내 방에서는 맡을 수 없는, 그렇다고 서울 도시 내에서도 맡을 수 없는 신선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
저렇게도 밝은 보름달에 꿇리지 않는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 무슨 종류인지 모를 처음 보는 나무들과 기분 좋을 정도의 선선한 바람까지···
여긴.. 어디야?
“···저···전..”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들려오는 남성의 목소리에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
시선이 닿은 그곳에는 살면서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있었다.
검은색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 푸른색의 눈동자. 어떻게 봐도 한국인 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외모의 남자.
달빛 아래, 남성은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확장된 동공과 떨리는 입술, 언뜻 보여도 심하게 떨리고 있는 내민 팔은 마치 그리움에 사무친 몸짓에 가까웠다.
“전하···”
주륵..
어? 어째서..
그 남자를 보니, 미친 듯이 가슴 한편이 미어왔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려 내렸다.
하지만.. 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그가 어떤 기대감을 나에게 품은 지 모른다.
입을 떼기도 힘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물어야 했다.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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