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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깨어난 자와 기다린 자.
“···”
“···”
우리 둘 사이에는 어색하고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고 마치 얼음땡 놀이에서 동시에 얼음을 외친 아이들 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굳어버렸다.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남자와 왜인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아파오는 나.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째서 이토록 저미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 슬며시 옮긴 시야로 남자의 옆에 놓여진 초라한 무덤비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런 바위 하나 박아둔 것 같은 무덤비에는 돌로 긁어 새긴 듯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길을 잃고 어둠의 끝에서 빛을 목도한 자여. 아르세일의 영광 아래 의지를 관철하기를.]
언뜻 보면 수많은 의미를 내포한 것 같은 문구이지만.
‘뭐야 이게···’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갑자기 영문 모를 곳에서 눈을 떠서? 아니.
내가 누워있던 곳이 관짝 안이라? 아니.
내 앞에 있는 남자가 계속 쳐다봐서?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 역시 아니다.
이런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껴지는 현실보다 더욱 믿기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묘비에 쓰여있는 한 단어.
[아르세일]
그리고 난 무덤비에 있는 저 단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인간과 마인을 창조했다고 전해지며 두 종족이 받드는 그들의 창조신.
수 백 번을 플레이하고, 99번의 클리어 사이 지겹도록 봐왔고 들어왔던 게임 속의 신중 한 명.
‘그런데 그 신이 왜 진짜로 무덤비에 적혀있는 거냐고.’
···게임 이잖아.
분명 그저 게임 속 설정의 일부 였을 뿐이잖아.
손이 떨리고 등에선 식은땀이 맺히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내 모습이 불안정해 보였을까.
혹은 내가 이상해 보였을까.
남자는 조심히 나에게 손길을 내밀며 걱정가득한 눈을 하였지만, 내가 휙 올려보자 손을 움츠리며 재빨리 다시 가져 가고서는 고개를 떨궜다.
“마인들의 왕, 마왕 레바투스 카이렘님의 기사. 베르에르 디폰체. 이번에야 말로 전하를 지키겠습니다.”
.
.
.
타다닥··· 타닥..
난 내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베르에르를 뒤로한 채 타오르는 모닥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사실 생각에 잠겨 내가 모닥불을 보고있는지 조차도 의문이었다.
‘레바투스 카이렘···’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 앞 묘비에 써있던 아르세일 만큼이나..
레바투스 카이렘은 모든 회차에서 등장하는 필수 등장 인물 중 한 명이다.
어떤 회차에도 빠지지 않으며 이 캐릭터를 빼두면 게임 세계관이 돌아가지 않았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인물.
말 그대로 이 게임의 시작이자 초석이 된 인물이자, 이 인물이 없었다면 리라이프는 시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야..
‘프롤로그 시작하면 등장하는 캐릭터니까··· 문제는···’
하지만 영향력이 큰 만큼 좋은 방향이란 말은 절대! 절대로 아니다.
내가 관에서 나왔다는 시점부터 눈치를 챘을수도 있겠지만... 이 캐릭터의 죽음으로써 리라이프라는 게임의 시작의 봉화가 지펴진다.
짧막하게 서술하자면 마인들의 왕인 레바투스 카이렘이 시작한 전쟁으로 세상에 혼란이 퍼졌고 수많은 도시가 파괴되며 타종족들이 죽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또 여기서 흔하디 흔한 이야기지만 혼란 속에서 기적처럼 나타난 빛은 레바투스 카이렘을 죽이고, 전쟁 후 질서란 이름이 무너진 세상에서 모든 종족을 통합하는 것이 이 게임의 클리어 조건.
‘하지만 내가 그 레바투스 카이렘 이란 말이지..’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정말 이건 현실인가? 아니면 정신이 나간 걸까. 혼란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마왕의 몸으로 환생? 전생?
애초에 이게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 뭘 위해서 여기에 온 거지?
죽었다고 전해지는 전쟁의 주범인 마왕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알면 과연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가?
“후우···.”
“저, 전하..”
의도치 않게 흘려나온 한숨에 왠지 모를 맞은편에 앉은 베르에르가 어깨를 움츠렸다.
움츠리고 싶은 건 난데 말이야.
‘내가 레바투스 카이렘이고..’
“그리고 베르에르..”
“네 전하!”
어우.. 깜짝이야.
짧은 숨을 고르고서 고개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세어 나온 부름에 베르에르는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또 다시 숨을 고르고서 주변을 둘러봤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 평야 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숲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협곡은 아니다. 폭포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춥진 않지만 그렇다고 따뜻함도 느껴지지 않는 장소.
무엇보다 마왕은 인간들의 진영에서 끝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혹시 여기 검은 숲.. 인가..요?”
“네.. 네.. 그렇..습니다.”
역시나.
검은 숲. 은 대륙 중앙, 인간의 왕국인 아르셀리아 옆에 있으며 갖가지 이유로 방치되다시피 버려진 장소.
게임 설정 속에서 이곳이 방치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몬스터들의 서식지인 이 장소는 전쟁 발발 시 방벽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개발자들이 숨겨둔 이벤트가 있을까 싶은 곳이긴 했지.’
하지만 오래된 오두막 하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무덤 하나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발견 되지 않아 어느 시점부터는 거의 오지 않았던 장소.
심지어 그 당시에는 무덤비의 글자가 있다는 내용도 없을 뿐더러, 도트 그래픽의 한계로 글이 써 있었을 지라도 사실상 읽기가 불가능 했다.
‘여기 있던 이름 없는 자의 무덤이 마왕의 무덤이었다니.’
이렇게 중요한 무덤이면 왜 게임에선 무덤비를 못 읽게 만들어 뒀던 걸까.
“전하.”
“네··· 네?”
베르에르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나에게 옷 한벌을 내밀었다.
검은색 배경에 금색의 장식이 되어 있는 깔끔한 제복이었다.
이게 뭐냐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는 고개만 간단히 끄덕일 뿐이었고, 그제서야 내가 입는 옷은 세월의 풍파에 맞은 것인지 거의 누더기나 다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옷을 헐벗고 갈아 입는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고 부끄럽긴 했지만 옷을 갈아 입으니 베르에르는 소심하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전하! 역시 멋있으십니다!”
우와. 대응하기 힘들어.
사실 베르에르는 게임 내에서 만나지 못한 인물이었기에 큰 정보는 없다.
‘마인 자체가 없어졌다고 봐야 하지만.’
게임 내에서도 일어나는 마인에 관한 이벤트는 단 한번.
하지만 그 이벤트에서도 실제로 마인을 찾을 수 없었으니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설정 속의 존재들에 가까웠다.
최소한의 정보라고 하면 전쟁 기록에 정리된 주요 마인들의 리스트 정도?
‘베르에르. 마왕의 최측근이자 그를 위해서 라면 어떤 악행이든 저지를 것 같이 표현해뒀던 걸로 기억하는데.’
있지도 않는 인물이었기에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대충 이런 내용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봤을 땐 전혀 아닌 거 같지만.
그래도 옷은 이쁘네..
“흠흠.. 그래서.. 혹시 지금이 몇 년이죠?”
“922년 입니다. 정확히 마왕님이 서거···하신지 5년째 되는 해입니다···”
말 끝을 흐리며 주먹을 불끈 지는 베르에르.
중요한 건 이렇게 된다면 게임에서 의 시간 라인과는 동일하다는 점이다.
내가 여기에 소환? 됐어도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것이 다를 거라고는 생각 들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 다다를 때 까지 생각나는 수많은 루트들이 있고, 게임에 했던 지식을 사용한다면 아마 어렵진 않을 것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또 문제는 내가 마인이라는 점인가···’
전쟁의 주범이자 모든 종족의 적이라고 낙인이 찍힌 마인···
도대체 어디서 뭘 시작할 수 있을까.
“전하, 혹시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네네..”
“그···”
말을 쉽사리 꺼내기 힘들어 하는 베르에르를 보니 살짝 걱정이 됐지만.
“존댓말.. 안 하시면 안되십니까?”
응?···
“네?···”
“옛날 처럼 편하게 말하시고 베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예상치도 못한 부탁에 내가 어벙벙 하자 베르에르는 결의에 찬 듯 품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들고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감히 신하가 주군의 경어를 듣는 다는 것은 신하됨의 도리로써 있을 수 없는 법도.”
“네?..”
자연스레 튀어나온 ‘네’라는 대답에 베르는 씁쓸한 듯 웃어 보였고.
“후··· 비록.. 전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것에 슬픔을 표하지만.. 그래도 익숙해 지겠죠.”
말과 함께 자신의 귀에 칼을 가져다 대는 것.
잠시만.. 이게 무슨 상황이야?!
“어어! 잠시! 멈춰요!!”
“··· 전하. 그동안 전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쓸어 올린 머리카락 밑으로 이동한 단검은 점차 귀를 향해 다가갔고.
“전하의 목소리가 그리울 겁니다.”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이 머리카락에 닿자 하나 둘 바닥으로 떨어졌다.
“멈추라고!!”
“네.”
“···”
내 말과 함께 단검의 움직임이 멈췄다.
나는 어처구니 없는 심정으로 베르에르.. 아니.. 베르를 쳐다봤다.
내 놀란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련하다는 표정과 함께 단검을 자신의 품속에 베르.
하지만 지금의 후련한 모습과 달리 아까 귀를 자르겠다는 결심은 진짜임이 분명하지 않을까 란 생각과 함께 끔찍한 상상이 절로 떠올랐다.
‘그래도.. 정신은 확 드네.’
“베르으.으..?”
“네 전하.”
내가 말 끝을 흐리자 싱긋 웃으며 쳐다보는 베르.
무섭다 무서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어?..”
순간 내 말을 끊음과 함께 내 뺨 옆으로 하나의 은색 번쩍임이 날아갔다.
푸욱!!!
“꺠에엥!!!!!!”
“어?..”
날아감과 거의 동시에 숲을 울리는 짐승의 울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베르는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전하 움직이셔야 합니다.”
내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바로 베르는 묘비에 기대어진 검 집에서 검을 뽑아 들어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품 안에서 40cm 정도 되어 보이는 하나의 막대기를 나에게 건냈다.
깔끔하게 연마된 검은색 나무에 고풍스런 흰색과 금색 장식이 곁들어진 딱 봐도 비싸보이는 막대기였다.
이 시점에서 이걸 건낸걸로 보아···
‘지팡이?···’
자신의 몸을 최소한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했고, 아마 레바투스 카이렘은 마법 특화란 말인 것 같다···
문제는..
‘그런데 내가 이걸로 뭘 할 수 있는데?···’
“전하.”
“응··· 어.”
“옵니다.”
베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숲 어둠 속에서 금색 눈동자가 서서히 다가왔다.
그들의 으르렁거림이 낮고 길게 이어지며, 내 목덜미를 타고 차가운 땀이 흘러내렸다.
일반 늑대라고 하기에는 최소 두 배는 큰 덩치.
어둠에도 섬뜩하게 빛나는 금색의 눈과, 밤의 보호색 이란 듯 검게 자란 털.
위협적으로 보이는 수많은 이빨들.
“다크 울프..”
검은 숲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몬스터 중 하나가 눈 앞에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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