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
역한 죽음의 냄새가 코끝을 베었다. 서하담은 묵묵히 견디며 말을 몰았다. 늙고 볼품없는 조랑말 오추의 등에는 노인이 실려있었다.
노인은 잔꾀가 많았다. 강호를 뒤흔들 고수는 아니었다. 그래도 전장에서 잔뼈가 굵었고 제법 운도 따랐다. 그 나이까지 강호에서 살아남았으니.
하지만 마지막에 줄을 잘못 섰다. 그는 전쟁에서 졌고 쫓기듯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도주가 시작된 날에 노인은 살아 있었다. 배에 깊은 상처를 안고도 흡족해했다. 이제는 검을 꺾고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들과 여생을 보내겠다 했다.
이튿날 가을비가 뼛속까지 스며들 만큼 퍼부었고, 그다음 날엔 차가운 삭풍이 몰아쳤다. 채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숨이 끊겼다. 이제는 시신만이 말등에서 덜컹거렸다.
둘의 인연은 길되 얕았다. 같은 전장을 밟았으니 전우라 부를 수는 있겠지만, 낭인 사이에 전우애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필요에 의해 검법을 사고판, 그뿐인 사이였다.
그럼에도 서하담이 노인을 운구하는 까닭은 구명절초 때문이었다. 구명절초(救命絕招). 목숨을 구하는 비장의 한 수.
노인은 마지막 전장에서 구명절초를 펼쳤다. 검광이 번뜩이고 사람이 무너졌다. 한낱 낭인의 일초식에 당문의 고수가 쓰러졌으니 놀랄 일이었다. 물론 명예는 패잔병의 몫이 아니었다.
노인은 죽음의 문턱에서 청했다. 시신을 고향에 묻어달라고. 대가로 구명절초를 주겠노라고.
그렇게 돌아갈 곳 없는 고아의 발길은 남의 고향으로 향했다.
저 멀리 항주(杭州)가 보였다. 성문 앞엔 검문 줄이 길게 늘어섰다. 짐수레와 인파가 몸을 맞댔다. 시큼한 땀내와 말의 진한 냄새, 거친 강남 사투리까지 한데 엉겨 공기가 들끓었다.
서하담은 흐름에 몸을 실었다. 밀물이 밀려오듯 한 걸음씩 밀려갔다. 고개를 들자 이미 그의 차례였다.
“호패.”
때가 탄 손이 불쑥 나왔다. 그 위로 동전 몇 닢이 얹혔다. 국법은 예전 같지 않았다. 강호인은 호패 없이 떠돌았고, 군역도 세금도 비껴갔다.
턱수염이 수더분하게 자란 털보 포졸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무언가 마뜩잖은 기색이었다.
괜히 서하담 허리춤의 검을 훑고, 말등의 거적도 뒤적이다가 끝내 코를 움켜쥐었다.
“이건 뭐지?”
“시체요.”
“시체?”
포졸이 손을 홱 떼고 바지에 문질렀다. 손목의 염주를 굴리며 툴툴댔다.
“재수 없게. 시체는 뭣하게? 가족이야?”
“남이요. 가족에게 가는 길이지.”
그가 신경질적으로 동전을 쥔 손을 내저었다.
“하여튼 성내엔 못 들여. 국법이 그래, 국법이.”
“생전 소원이었소. 이곳이 고향이지.”
“흥! 세상에 사연 없는 무덤도 있나?”
서하담은 이런 수작에 익숙했다. 국법 타령은 더 내라는 뜻. 오추의 고삐를 고쳐 잡고 안장에서 은자를 꺼냈다. 노인의 돈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손바닥이 슬쩍 벌어졌다.
“해 지기 전에 묻고 나가리다.”
“으흠, 다시 생각해 보니 사정이 너무 딱한 것도 같고.”
은빛까지 게걸스럽게 삼키고서야 비로소 분위기가 풀렸다. 포졸이 소매 끝을 찢어 고삐에 매어 주며 일렀다.
“표식이다. 누가 막거든 털보가 보냈다고 해라. 일 보고 나면 묘지로 곧장 가. 사고 치지 말고. 알겠나?”
“알겠소.”
“통과!”
항주의 거리는 운하가 바둑판처럼 얽혀 있었다. 흐르는 물빛이 벽돌을 문지르며 번들거렸다.
서하담은 물길을 따라 한가로이 거닐었다. 길은 들어두었으나 이미 희미했다. 다행히 늙은 말이 알아서 길을 이끌었다.
물길 끝, 노인이 말하던 집이 있었다. 변두리 허름한 초가. 마당에 마르고 여윈 아이 하나가 흙장난을 치고 있었다. 손바닥이며 무릎이며 흙먼지가 누렇게 번졌다.
“꼬마야, 여기가 장 노인의 집이냐.”
“그게 누군데요?”
아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올려다봤다. 서하담은 말문이 막혀 뒤통수를 긁었다. 몇 해를 전장에서 함께 굴렀으면서도, 이름 석 자조차 묻지 않았구나.
“무슨 일이죠?”
그때 방에서 누군가 나왔다. 나이는 열여덟아홉쯤. 소녀와 여인의 경계에 선 얼굴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뺨에 옅은 주근깨가 비쳤고, 커다란 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지혜로워 보이면서도 슬픔이 느껴졌다.
“장 노인 부탁으로 왔소.”
여인은 어미 닭이 병아리를 보호하듯 소년을 뒤로 숨겼다. 그러더니 잔뜩 경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요? 그분은 돌아가신 지 오래예요. 당장 나가주세요. 안 그러면 포졸을 부르겠어요.”
서하담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등에서 노인을 천천히 내렸다. 검붉은 피가 말라붙은 거적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확인해 보시오. 아니라면 떠나리다.”
그녀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치마폭 뒤의 소년을 돌아보았다.
“장윤서, 방에 들어가 있어.”
“왜? 나도 볼 거야. 설마··· 저거 할아버지야?”
“어서.”
엄한 목소리에 소년은 투덜거리며 문턱을 넘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호기심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노인을 감싼 거적이 걷혔다. 눅은 시취가 훅 올라왔다. 여인이 짧게 숨을 삼켰다.
“네, 맞아요. 많이 여위셨지만 그분이 확실해요.”
노을빛이 마당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노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서하담이 나직이 말했다.
“깨끗한 천과 물이나 가져다주시오.”
여인은 주저하며 장의사를 부르겠다 했지만, 서하담이 손을 저었다. 그는 홀로 노인의 육신을 닦고 수의를 입혔다.
이런 일은 익숙했다. 죽음은 늘 그의 곁에 있었다.
동네 사람 몇이 모여 조촐한 장례를 치렀다. 노인의 애검을 함께 묻었다. 아직 쓸 만했지만 외로운 주인 곁을 지키는 편이 더 쓸모라 여겼다.
삽날이 흙을 퍼 올리는 메마른 소리가 번졌다. 지전이 타오르며 씁쓸한 탄내가 바람에 흩어졌다.
밤이 깊자 조문객이 흩어졌다. 고인을 위한 추모는 거기까지였다. 있는 자들이야 주자가례니 뭐니 하며 예법을 들먹였겠지만, 당장 내일 끼니가 걱정인 이들에겐 삼일장도 사치였다.
하얀 상복의 여인과 그녀 무릎에 기대 잠든 소년만 남았다. 여인은 몇 번이고 고마움을 말했다.
서하담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거래를 이행했을 뿐이었다. 노인이 원한 건 고향 땅에 묻히는 것. 이제 그도 받을 것을 받을 차례였다.
“노인과 나는 거래를 했소.”
마침내 올 게 왔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힘겹게 입술을 뗐다.
“보다시피 사정이 이래서··· 돈은 얼마 없어요. 죄송해요. 할아버지께서 얼마를 약속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돈은 관심 없소.”
서하담이 낮게 말했다.
“그보다 그가 무언가 남기지 않았소?”
여인의 표정이 약간 누그러지면서 고개가 갸웃했다.
“글쎄요. 할아버님 짐은 한데 모아 두었어요. 따라오세요.”
집 뒤편에 작은 창고가 있었다. 크고 작은 잡동사니로 켜켜이 쌓여 숨이 막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횃불이라도 가져다드릴까요?”
여인이 딱딱하게 물었다. 서하담은 묵묵히 내부를 훑어보곤 고개를 저었다. 이 밤중엔 무리였다.
“날이 밝으면 다시 오겠소.”
“정확히 언제쯤이죠? 낮에는 일을 나가서요. 차라리···.”
“내일 일찍 오겠소.”
거절은 받지 않겠다는 듯 단호히 말을 자른 서하담이 먼저 돌아섰다.
“잠깐만요.”
뒤에서 목소리가 매달렸다. 돌아보니 여인은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다.
“하나만 약속해 주세요.”
“무엇을.”
“창고에 있는 물건은 다 가져가도 좋아요. 대신 말을 바꾸지 마세요. 나중에 돈으로 달라느니, 다른 요구는 하지 말아 달라는 뜻이에요.”
서하담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지. 노인이 분명 내게 약속했소. 이곳에 가면 약속한 물건을 받게 될 거라고. 물건이 창고에 없으면, 그땐 집안을 샅샅이 뒤질 거요.”
말을 멈추고 여인을 잠시 바라보았다. 커다란 눈동자 속에서 용기와 두려움이 맞부딪치는 게 보였다. 더 몰아붙이면 일이 귀찮아질지도 모른다.
“대신 내가 물건을 찾지 못하더라도 다른 대가를 요구하진 않겠소. 약속하지. 그거면 되겠소?”
“···좋아요.”
둘은 말없이 마당으로 돌아왔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자고 가란 말은 없었다. 서하담도 기대하지 않았다.
버릇처럼 오추의 고삐를 잡았다가, 이 늙은 고집쟁이도 원래는 노인의 것임이 떠올랐다. 안장에 매어 둔 짐을 정리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받으시오. 노인의 것이니까.”
비수 몇 자루,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고약과 정체 모를 약초. 그리고 묵직한 가죽 주머니 하나. 전리품이다. 쓰러진 당문 고수에게서 노인이 거둔 것이다.
여인은 마지못해 주머니의 끈을 풀었다. 큰 기대는 없어 보였다. 그저 용무를 마친 불청객이 어서 사라지기만을 바라는 눈치였다.
달그락, 낮은 쇳소리가 났다. 가죽에 밴 기름 냄새와 함께 은자의 찬 기운이 새어 나왔다. 여인의 입술 사이로 놀란 숨이 새었다.
“이걸 제게 주시는 거예요?”
“내 것이 아니니까.”
그녀는 이 남루한 사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조부를 모시고 먼 길을 왔고, 장례까지 묵묵히 거들었다.
그런데도 돈을 탐하지 않는다. 강호인이면 으레 강도 아니면 협잡꾼이 아니던가.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감사합니다.”
서하담이 물끄러미 물었다.
“노인의 돈은 늘 집으로 갔지. 그런데 왜 이리 사정이 안 좋소?”
여인의 뺨이 부끄러움으로 발갛게 물들었다.
“전 고아에요.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안 돼 부모님이 역병으로 돌아가셨죠. 그래서 할아버지가 우리 남매를 고생해 키우셨어요. 제가 좀 크자 그분은 밖으로 돈을 벌러 나가셨고요. 그런데 작년부터 연락이 끊겼어요. 돈도요. 그래서··· 이미 돌아가신 줄 알았죠.”
서하담은 새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턱을 긁었다.
“중간에 손이 끼었군.”
“네?”
대답 대신 대문을 나섰다. 무슨 일인지 대강 짐작이 갔다. 참견할 일은 아니었다. 그는 떠날 사람이었다.
몇 걸음 못 가 담장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딱딱한 벽이 등을 밀어냈다. 이만한 도시에 이 한 몸 뉠 객잔이 없겠냐마는 걸음이 더 나가지 않았다.
싸늘한 가을밤의 공기는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악취를 풍기던 노인도, 손이 많이 가는 성가신 늙은 말도 곁에 없었다. 홀가분해야 마땅했으나, 어쩐지 가슴이 휑했다.
“가을도 끝났구나.”
바야흐로 겨울이 오고 있었다. 올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 같았다.
품속의 검을 꼭 끌어안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이 낡은 검 한 자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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