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나 깡두식이야!
W 웨딩홀 1층 뷔페.
웨딩홀 1층 뷔페는, 라운지층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줄줄이 들어와 자리를 메웠다.
오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머릿수.
짧게 깎은 머리, 양복 소매 사이로 스치는 문신 자락, 말 한마디 없이 오가는 시선들만으로도 공간이 묵직해졌다.
접시 부딪히는 소리와 젓가락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섞이는 사이, 그들의 목젖이 요란하게 오르내렸다.
“소고기 미디엄 레어 남았냐?”
“야, 회 먼저 먹고 고기로 마무리하는 게 국룰이야.”
중간 보스로 보이는 사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양복 단추를 하나 풀고, 넥타이를 반 뼘 느슨하게 매만진 뒤 잔을 툭 들었다.
“오늘은 회장님 영애의 경사다. 1층은 우리가 빌렸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쓸고 지나가자, 여기저기서 숟가락이 잠시 멈췄다.
“마음껏 먹어. 대신 라운지 근처 얼씬대지 마. 알지?”
대충 듣던 놈들 몇이 투덜댔다.
“영애가 뭐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이버에 물어봐.”
“여기 와이파이 비번 몰라.”
“그럼 조용히 씹어.”
짧은 웃음이 테이블 사이를 스쳤다.
그때, 중간 보스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예, 김상무입니다··· 네.”
짧고 굳은 대답. 전화를 끊은 그의 눈빛이 차갑게 바뀌었다.
“머리 길고, 문신 없는 호리호리한 놈. 내 옆으로.”
세 사람이 바로 일어났다.
“아니, 노란 머리 너는 빠져. 너, 그리고 너, 너.”
그는 고개를 돌려 멀찍이 앉아 있던 몇 놈에게 턱짓했다. 검은 양복의 주름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그들은 접시를 조용히 내려놓고, 걸음소리마저 삼킨 채 김상무 쪽으로 향했다. 넥타이를 다시 조여 매는 손동작이 하나같이 닮아 있었다.
“회장님 호출이다. 조용히 따라와.”
“네, 상무님.”
두툼한 카펫 위로 발소리가 흡수됐다. 1층 뷔페에는 다시 아무 일 없던 듯, 접시 부딪히는 소리만 남았다.
**
옥상 라운지 뷔페.
바다를 등진 유리 벽 너머로, 겨울 햇살이 부서지듯 굴절되어 들어왔다. 옥상 라운지 뷔페는 아래층의 소란과는 달리, 지나치게 평화로웠다.
하얀 접시 위의 연어는 윤기가 돌았고, 스테이크는 정중앙에 핑크빛을 품은 채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두식아, 여기 너무 좋다.”
돼지는 접시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포크를 깔짝거리며 웃었다.
“매일 이런 일만 하면 좋겠다. 돈 받고 밥 먹고, 바다 보고.”
“그럼 저녁까지 미리 먹어둬.”
두식이 건조하게 대꾸했다.
“식비 아끼자.”
돼지가 눈을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일은··· 언제 시작할 거야?”
“바로 지금.”
두식이 물컵을 천천히 내려놓는 순간, 라운지의 공기가 가늘게 갈라졌다.
그 뒤편에서 기척이 일었다. 검은 그림자 다섯이 소리 없이 일렬로 섰다.
양복의 어깨선, 구두의 앞코, 손가락의 각도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식사, 어떠셨습니까.”
옆에 선 남자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테이블 끝에 놓인 숟가락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숟가락이 두식의 허리 뒤쪽에 탁— 닿았다.
남자는 아주 부드러운 톤으로 말했다.
“여기서 시끄럽게 하면, 이 칼이 네 배를 뚫고 나올 거야. 보기 싫으면, 조용히 따라와.”
두식은 고개를 아주 천천히 끄덕였다. 돼지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 다리가 카펫 위를 미끄러지며, 거의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밀려났다.
**
웨딩홀 뒤편.
상무가 앞장서 멈추더니, 아까 쥐고 있던 숟가락을 두식의 눈앞에 흔들었다.
“칼인 줄 알았지?”
상무가 피식 웃었다. 두식의 입가에도 아주 미세한 웃음이 스쳤다. 돼지의 표정만 살짝 일그러졌다.
“사채라고?”
상무가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켰다. 불꽃이 번쩍, 담뱃잎이 타올랐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기웃거려?”
두식이 시선을 들었다.
“여기 부산이지. 난 돈만 받아가면 돼. 소란 피울 생각은 없어.”
“소란?”
상무는 담배를 깊게 빨았다가, 매끈한 연기를 옆으로 뿜었다.
“그럼—어디 한번 마음껏 피워봐.”
그가 담배를 털며 뒤쪽을 턱짓했다. 검은 양복 다섯이 반원으로 파고들었다.
“병신 만들지는 말고.”
상무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살짝 손만 봐줘. 얼굴만 조져놔.”
“네.”
다섯의 대답이 하나의 소리처럼 떨어졌다.
처음 달려든 건 체구 작은 놈이었다.
앞차기로 파고들자, 두식의 눈이 아주 짧게 가늘어졌다. 발끝이 반 뼘 물러났다가— 허리가 당겨졌다.
뒤차기.
발등이 반달을 그리며 턱을 정확히 쳤다.
퍽.
작은 놈이 공중에서 얼굴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오.”
상무의 눈이 반짝였다. 담배 연기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두 번째가 달려들었다. 두식은 상대의 오른손이 들어오는 순간, 왼손으로 소매를 걸고 몸을 비틀었다.
엎어치기.
등뼈가 바닥에 쾅 하고 붙었다. 먼지가 몽글몽글 깨어났다.
상무의 눈빛이 더 커졌다.
세 번째가 측면에서 파고들자, 돼지가 몸을 던졌다.
“야—아!”
허리를 낮추며 어깨로 밀고 들어가, 두 놈을 한 번에 벽으로 박았다. 둔탁한 충돌음이 겹쳐 터졌다.
세 명이 달라붙었지만, 돼지는 밀리지 않았다. 발목이 바닥을 찍고, 허리가 굴착기처럼 밀고, 팔은 봉처럼 휘둘렀다.
두식의 호흡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한 놈이 주먹을 휘두르고, 또 한 놈이 다리를 노렸다.
두식은 상체를 반 뼘 숙이며 주먹을 흘리고, 무릎으로 정강이를 찍었다. 다리가 휘청, 눈이 흔들렸다.
그 틈에 두식의 왼손이 턱선에 정확히 꽂혔다.
퍽.
상무가 박수를 세 번 쳤다. 그는 담배를 바닥에 눌러 끄더니, 양복 상의를 조용히 벗었다.
어깨선이 들썩였다. 팔꿈치를 굽혔다 펴며 관절 소리가 뚝 하고 울렸다.
“오랜만에 몸 좀 풀자.”
입꼬리가 아주 얕게 올라갔다. 싸움꾼의 미소였다.
두식도 고개를 끄덕였다. 숨이 한 번 들이켜지고, 한 번 짧게 나갔다.
갈비뼈 아래의 근육들이 일제히 조여졌다.
“나—”
두식이 낮게 말했다.
“···깡두식이야.”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두식의 오른주먹이 찌르듯 뻗었다.
상무가 반 뼘 틀어 피했다. 순간 거리가 좁혀졌다. 상무의 주먹이 번개처럼 두식의 명치로 파고들었다.
퍽.
숨이 꺼졌다. 두식의 등 뒤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허—억.”
무릎이 꺾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왼손으로 벽을 짚었다. 시야 속 상무의 윤곽이 두 겹으로 흔들렸다.
“끝났어?”
상무가 담담히 물었다. 두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몸을 다시 세웠다. 복근이 살짝 떨렸다.
“재밌네.”
상무가 웃었다. 그때, 뒤쪽에서 덩치 큰 놈 다섯이 더 들어왔다.
“대기하라니까 왜 들어와.”
상무가 짧게 내뱉었다.
두식의 볼 옆으로 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는 손등으로 입가의 피를 훔쳤다. 입천장이 피맛으로 가득 찼다.
“그럼, 두식 씨.”
상무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한 판 더.”
돼지가 뒤에서 낮게 외쳤다.
“두식아—!”
두식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입술만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괜찮아.”
상무의 발목이 먼저 움직였다. 두식의 앞꿈치가 동시에 들렸다.
그 순간— 왼쪽 훅을 두식이 턱 밑으로 흘리고, 오른팔로 상무의 팔꿈치를 끊어내며 몸을 비틀었다.
상무의 무릎이 틈을 파고들었다. 명치 아래, 또 한 번 정확한 타격.
두식의 시야가 하얗게 번쩍였다. 그 때 덩치 큰 놈 하나가 달려들어 두식의 양팔을 뒤로 꺾었다.
뼈가 우두둑 하고 소리를 냈다. 두식의 이가 딱 하고 부딪쳤다.
“얼굴만.”
상무가 다시 말했다. 어딘가 실린 감정이 조금 달랐다.
흥미와, 경계의 한가운데.
그리고—
주먹 하나가 공기를 찢으며 날아왔다.
(다음 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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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제6화 붉은 명함”
처음부터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두식은, 단 한 번도 무릎 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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