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세계의 유일한 인간은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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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물약과
그림/삽화
궤물약과
작품등록일 :
2025.10.2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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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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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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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망망대해의 표류(2)

DUMMY


대재앙 당시, 인간들의 몸은 전부 녹아서 사라졌다.

그럼, 그들의 영혼은 어떻게 됐을까?


‘옛말처럼 구천을 떠돌게 되었지.’


오랜 세월 방황하여 마모된 영혼들은 지옥이 된 지구의 환경에 맞춰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른 차원의 생물, 일명 [크리쳐]의 형태로 말이다.


어떤 것이 인간이고, 어떤 것이 크리쳐인지, 그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시기가 오자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인간]을 갈망하게 된 거야.’


인류의 혼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집착으로.

크리쳐는 한때 존재했던 생물을 향한 끝없는 탐구심과 욕망으로.


‘그중에서도 유독 탐욕이 짙은 자는 인간 흉내를 내게 되지.’


저놈은 다행히 인간형은 아니었다.

시작부터 인간형을 만났다면, 손도 못 쓰고 당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서 상대할 수 있냐 하면···.’


나는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결론을 내렸다.


‘불가능해.’


나는 무기 하나 없는 일반인이다.

크리쳐라면, 맨손으로 나를 찢어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인 걸 알아차린 거지?’


이 세계에서 살아있는 인간은 도시 괴담이나 마찬가지다.

보통 아무리 인간 같아도 정교한 인간형 크리쳐라 여기지, 진짜 인간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없다.


그 위화감을 눈치채자, 오른쪽 손등이 따끔거렸다.

이야르와 다투면서 살짝 긁힌 것이었다.


“다, 달코옴한 냄새애···.”


놈이 없는 코를 킁킁거리며 황홀하게 말했다.

나는 그제야 놈이 피 냄새로 내 정체를 꿰뚫어 봤다는 걸 깨달았다.


‘네가 뭔 상어냐.’


한숨을 삼키며 손등을 손으로 가렸다.

이미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피 냄새를 감춰서 놈의 흥분도를 떨어뜨리고 싶었다.


“나 줘. 줘. 인간, 줘. 먹어! 전부! 전부!”


그러나 슬프게도 소용없었다.

점점 몸을 부풀리던 놈이 이내 칠흑 같은 파도가 되어 나를 덮치려고 했다.


“줘! 줘! 줘! 줘! 줘!”


나는 정말로··· 정말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튀어!’


탓-.


놈이 몸집을 키우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지금이 기회였다.

왼쪽으로 다리를 틀자마자 허벅지에 힘을 주고 속력을 가했다.


“허억, 헉···.”


뒤돌면 안 돼.

겁먹어서 속도가 느려지면 끝이야.

나는 아랫입술이 하얘질 때까지 깨물며 앞만 보고 달렸다.


‘일단 계속 도망가자. 도망가서··· 도망···.’


어디로 도망가야 하지?

아니, 어디로 도망갈 수 있지?


머릿속에서 정보가 뒤죽박죽 섞였다.

피 냄새가 나는 한, 갈 수 있는 곳은 없다.

지금 상황에서 다른 크리쳐를 만나봤자 적 2배 이벤트만 발생할 뿐이다.


‘저놈을 막기 위해 아이의 힘을 빌릴 수도 있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다.

아이가 저놈을 죽이겠다고 마음먹고 실천에 옮기는 순간, 삼독(三毒)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단 것이다.


크리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증오, 좌절, 혐오, 집착, 살의, 분노, 탐욕, 질투···.

소위 삼독이라 부르는 삿되고 악한 감정들.

크리쳐는 삼독에 지나치게 매몰될 시,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나는 아직 아이에 대해 잘 몰라. 만약 이전에 삼독에 많이 노출됐더라면? 이미 치사량 수준이라면? 그래서 이번 한 번으로 무너진다면?’


그러니까 아이에게 죽이라고 하는 건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전부 불태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다.

나는 다른 방법으로 놈을 따돌리겠다고 다짐했다.


“!”


젠장.

욕을 읊조리며 급하게 멈췄다.


고오오-···.


발밑에 놓인 낭떠러지가 내게 이리 오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저놈은 몰라도 나는 확실하게 죽을 것이다.


‘하지만 잘 이용한다면, 놈을 따돌릴 수 있겠지.’


나는 심호흡하며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콰가가가-.


“줘! 줘! 줘! 줘어-!”


바닥을 손으로 짚고, 육중한 몸을 끌어당기며 달려오는 모습은 광기 그 자체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잡아먹고야 말겠다는 집착이 느껴졌다.


‘그래도 운동을 배워두길 잘했네.’


만약 운동과 담쌓고 산 사람이었다면, 진작 놈에게 잡혔을 것이다.

예전에 길러뒀던 근력과 기초체력이 이런 식으로 빛을 발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프로 선수도 아니고··· 몸이 버티는 데엔 한계가 있어.’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탓에 다리가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며 후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바닥을 툭툭 밟아 보았다.


‘생각보다 지반이 약하군.’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실리면, 절벽 채로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그럼 저놈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테고, 나는 그 틈을 노려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절벽이 무너지는 순간, 안전하게 피할 방법만 마련해 둔다면···.’


좋아. 해보자.

나는 더 고민하지 않고,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 인간-! 이이이인간-!”


인적이 드문 곳까지 유인하길 잘했다.

누가 듣고 ‘인간?’ 하면서 이 난장판에 끼어드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으니까.


놈은 들뜬 상태였지만, 이쪽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제 몸무게가 실리면 위험할 수 있다는 걸 간파한 듯했다.


‘그렇다면, 사소한 걸 따질 수 없을 정도로 흥분시켜야지.’


나는 재빨리 무릎 꿇었다.


“사, 살려주세요···!”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는 척하며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사실 땀범벅인 상태라 놈의 보기엔 그 액체가 그 액체일 것이다.


“저는 맛이 없습니다! 저를 살려주신다면, 뭐든지 할게요! 살려주세요!”


나는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최대한 두려운 표정을 짓고, 살려만 준다면 간이고 쓸개고 전부 빼주겠다며 비굴하게 굴었다.


‘자극하는 데엔 이만한 게 없지.’


======================


▪ 명심해라. 그들은 [인간성]을 갈망한다. 인간다운 모습은 그들의 흥미를 끌 것이다.


======================


인간다운 모습이라 하면,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것이다.


살고 싶다는 본능 때문에 이성을 잃고 추하게 굴거나.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가슴 아파한다거나.

순간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가 죄책감을 느낀다거나.


‘감정 조절에 능한 크리쳐는 충동을 참을 수 있겠지만···.’


나는 슬쩍 눈꺼풀을 들어 놈을 살폈다.

검은 파도가 부들부들 떨며 제 녹아내린 얼굴을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저놈은 욕망을 견딜 수 없을 거야.’


그렇게 확신한 순간.


콰가가가-!


“!”


놈이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다 줘! 줘! 전부! 네 몸! 아아! 줘어-! 나의 것-! 나나나나나. 나나. 나아-!!!”


검은 덩어리 같은 몸에서 여러 개의 팔이 뻗어 나왔다.


쿵! 쿵!


거대한 손이 두더지 잡기를 하는 것처럼 바닥을 내리쳤다.

나는 그 손에 짓뭉개지지 않도록 적절한 시기에 맞춰 피했다.


“큭···.”


그러나 상대적으로 불편한 오른쪽 눈이 방해됐다.

최대한 놈을 살피며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내 한계가 찾아왔다.


퍽-.


“악···!”


놈의 주먹이 내 오른쪽 옆구리를 강타했다.

맞은 곳이 욱신- 쑤시면서 내 몸이 저 멀리 날아갔다.


“콜록, 콜록···!”


악, 미친, 개, 아파.

옆구리를 붙잡고 헛구역질했다.

잘못했으면 아래로 떨어질 뻔했으나, 적절한 순간 구르던 몸이 멈춰서 간신히 추락사는 면했다.


‘갈비뼈 부러진 거 아니야?’


흡, 숨을 들이켰다.

고통 때문에 눈앞이 뿌예졌다.

이 와중에도 놈이 발광하는 소리만큼은 또렷이 들렸다.


“먹자. 먹자. 먹, 자아. 먹어줘. 먹어. 줘. 져. 져어. 져···.”


말끝이 흐려지다 못해 발음마저 뭉개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에서 불쾌한 점액질이 뚝뚝 떨어졌다.

나에 대한 살의와 식욕을 참을 수 없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나는 놈이 내리친 바닥에 쩍- 금이 가 있는 것을 깨닫고 안도했다.


‘계획대로 됐어.’


나는 팔목을 톡톡 두드렸다.

아까까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안쪽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이가 깨어났다는 걸 알아차린 나는 놈에게 이죽거렸다.


“··· 그 정도로 되겠어?”


“!”


“모처럼의 인간이잖아. 그럼, 더 멋진 모습으로 잡아먹어야지.”


내 도발에 걸려든 놈이 점점 더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된 녀석은 검은 화산재로 만들어진 폭풍 같기도 했다.


우직-···.


더 커진 녀석의 덩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절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팔목을 문지르며 외쳤다.


“··· 미안해! 제발 도와주라!”


억지로 되돌린 상태이니 나에게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간절하게 부탁하고 싶었다.

만약 통하지 않는다면, 아까 저놈에게 했던 것처럼 뭐든 하겠다고 거래라도 할 생각이었다.


촤악-.


긴장되는 순간, 내 팔목을 찢고 사슬이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사슬이 뼈대를 만들고, 찢어진 피부 틈으로 나온 검푸른 액체가 그 위를 덮었다.


“얘, 그···.”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이가 내 부름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투구라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내게 잔뜩 화가 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우지직-···!

쿠르르릉-···.


“아아, 아아아아···?!”


하지만 절벽이 무너지고, 몸집을 불리던 놈이 비명을 지르자, 아이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서둘러 아이를 뒤에서 껴안았다.


“@#%#@···!”


“미안, 이것밖에 방법이 없어서···!”


아이가 팔꿈치로 내 명치를 퍽- 쳤다.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지만, 지금 놔주면 다 같이 죽을 것이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참았다.


콰르릉-.


놈이 돌무더기에 휩쓸려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다.

우리가 있는 곳도 완전히 무너지기까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와르르르-···.


몸이 공중에 붕- 떴다.

평소 번지점프는커녕 롤러코스터도 타지 않은 터라, 이 상황이 공포스러웠다.

나는 아이를 구명줄처럼 붙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휘릭-.


아이의 팔에서 여러 가닥의 사슬이 나와, 무너지지 않은 지반에 박힌 돌덩어리를 붙잡았다.


끼익-. 끽-···.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꼴이 됐지만, 추락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하아아···.”


나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터뜨리며 안도했다.

이 세계에 오자마자 생을 마감할 뻔했다는 사실에 아찔해졌다.


‘역시 오래 있을 곳이 못 돼.’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다.

이리저리 굴러서 흙투성이가 된 나와 달리, 아이는 말끔했다.

나오자마자 힘을 써서 심기가 불편해진 것 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고마워. 네 덕분에 살았어.”


만약 아이가 적절한 때에 나오지 않았다면, 내 몸뚱어리만 믿고 절벽이 무너지기 전에 전속력으로 뛰었을 것이다.

성공 확률이 현저히 낮은 방식이라, 가능하면 아이가 깰 때까지 버틸 요량이었다.


“%%#@.”


“그래, 슬슬 위로 올라가···.”


나는 말을 하다 말고 멈칫했다.

분명 아래로 떨어졌을 크리쳐의 일부가 절벽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꿀렁-. 꿀렁-.


검은 흙을 머금은 지렁이 군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 나는 계속 동태를 살폈다.


“위험···!”


경고하려는 찰나, 뭉쳐있던 덩어리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매서운 칼날이 아이의 등을 노린 순간-···


푸욱.


“··· ?!”


나는 반사적으로 아이를 껴안고 몸을 돌렸다.

왼쪽 옆구리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쿨럭···.”


뚫린 부위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다.

나는 입으로 계속 피를 토하며 내 품에 안긴 아이를 살폈다.


아이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내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괜찮··· 아···?”


나름 멋있는 척하려고 했는데 젠장, 너무 아팠다.

나는 한계를 넘은 통증과 출혈량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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