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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멸망이 눈앞에 있다. 검은색 비늘을 자랑스럽게 내미는 날개 달린 뱀, 그 아래로 오크와 엘프들에 군대가 보였다.
마지막 남은 인간들의 성, 세계의 멸망보다 인류의 멸망이 맞는 말이겠지.
“모두 들어라!”
나는 군대의 앞에 섰다. 마지막까지 나를 따르는 그들, 눈빛에 절망이 보였으나, 용기와 각오가 굳혔다.
피떡 진 갑옷과 높이든 검, 선언하자.
“마지막 전쟁이다! 승리는 장담할 수 없지만 모두! 어디서든 모든 것을 끝내고 맥주 한잔하자.”
큰 소리로 외쳤다. 그들의 포효가 성을 넘었다. 마지막 전쟁, 인류의 패배만이 기록된 전쟁의 끝이다. 손에 들린 검을 꽉 쥐고서 가장 선두에 섰다.
터지는 불기둥과 날아오는 바위, 오크들의 거친 소리와 빛나는 검정 비늘, 달렸다.
“부서라! 찢어라! 죽여라!”
“총공격!”
오크들의 외침이 들렸다. 나의 말로 모두가 달렸다. 오크의 목을 치고 엘프의 어깨를 갈랐다.
날개 달린 뱀이 뱉는 침에 동료들이 녹았다. 그럼에도 앞으로 향했다.
동료의 시신을 밟고 뛰어 뱀의 머리에 검을 박았다. 튀는 보라색 피와 노려보는 눈빛,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죽여라!”
금빛의 날개를 달고 뱀을 쪼개는 기사, 움직이는 잘린 몸뚱이, 병사들이 창으로 찔렀다.
거대한 크기에 움직임만으로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박힌 검을 빼 들었다. 화살을 피하고 마법을 잘라내며 오크들을 죽였다.
- 모두 정지.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 금빛의 비늘을 가진 날개 달린 뱀, 혓바닥을 내밀고 날개를 펄럭였다.
뱀은 나를 보았다.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내려왔다.
- 그냥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어떠한가?
뱀의 말, 뱀이 사람 말은 한다는 건 둘째치고 이게 무슨 말일까?
나는 뱀을 향해 검을 들었다.
“쓸모없는 말,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며! 검 앞에 당당할 것이다!”
- 어차피 죽을 것 왜 힘을 빼는 건가?
뱀의 혓바닥이 주변을 알짱거렸다. 혓바닥이 나를 감싸 뱀의 아가리에 들어갔다.
흐르는 침에 갑옷과 무기가 녹았고 온몸이 타들어 갔다. 녹았다.
아무런 소리 없이 죽었다.
=====
깨어났다. 정확하게는 저승이라 표현이 맞을 것이다.
구름 위, 저 아래로 보이는 전쟁터는 아비규환이다. 아직 전쟁 중인 동료들 그들의 열의와 용기가 느껴졌다.
“오셨나요? 아드리안 발렌시아”
“누구십니까?”
뒤에서 들리는 소리, 금발과 푸른 눈, 하얀색 천으로 온몸을 덮은 사내.
그가 옆에 서서 구름 아래를 내려보았다.
“어려운 상황이군요.”
“···그렇죠.”
저승이라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을까? 아래에 있는 동료들이 걱정되었다.
너무 멀어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망루가 부서지며 성벽이 무너졌다. 패배했다.
“이런, 괜찮으세요.”
오크들의 반란, 엘프들의 배반, 날개 달린 뱀을 깨운 주술사들까지 그들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네, 괜찮습니다.”
동료들이 올 것이다. 그들을 맞이하고 서로 웃고 울며 떠들며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할 거다. 그것이 전부다.
“흠. 이 세계에 인류는 안 남았군요. 당신의 아내와 아이들도 모두 죽었고 마을의 시민들도 한 명도 남지 않았네요.”
“그게 무슨 상관이냐?”
웃으면서 말하는 그, 배알이 뒤틀린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까?
누구 앞에서 말하는지도 말이다.
그는 뒤로 물러섰다.
“별 뜻은 없었습니다. 그냥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했죠.”
“말할 게 있고, 아닌 게 있다.”
검은 없다. 손을 내밀어 그의 목을 잡았다. 그대로 죽여버리고 싶지만, 그는 사과하며 용서를 구했다. 손을 풀었다.
“똑똑히 알아들어 다시는 세계를 욕하지 말 것이며 웃으며 입에 담지 말게.”
“죄송해요. 이렇게 화내실 줄은 몰랐어요.”
그를 복날 개처럼 패주고 싶었으나 참았다. 성이 무너졌다. 오크들은 맥주를 꺼내 파티했다.
엘프들은 돌아갔고 뱀들은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듯 보였다.
이제는 무너진 폐허, 비참하고 슬펐다. 그는 같이 옆에 서서 내려다봤다. 고민하는 표정이 보였다.
“시련이 너무 어려웠나?”
그의 말, 내가 그를 보자 그는 웃으면서 손뼉을 쳤다.
“제가 아무래도 너무 어렵게 만들었나 봐요. 원래는 당신이 죽으면서 용사가 각성해야 했는데, 용사가 될 재목들은 많았는데, 아무래도 용사가 탄생하지 않는 것 같죠?”
“그래서 어쩔 건데, 이미 다 죽었는데!”
그는 밝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니까! 다시 시작하죠. 당신 어차피 마지막에 있었던 기사들은 다 기억하잖아요. 그들을 용사로 만들어요.”
“뭐?”
“그러니까. 부탁드려요? 알았죠?”
그가 웃으며 손 인사했다. 어지럽고 점점 눈이 감겼다. 급속도로 올라오는 피곤과 내려앉은 눈, 잠들었다.
=====
다시 눈을 뜬 장소는 집이다. 익숙한 천장,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놓인 붉은 카펫과 이 인용 책상과 의자, 나무로 만들어진 옷장과 책장이 보였다.
내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의 방과 똑같았다.
“도련님 일어나셨어요?”
들어오는 소녀, 오랜만에 보는 얼굴, 이름도 잘 기억나질 않았으나 머릿속을 더듬었다.
“예나 이던가?”
“도련님! 드디어 제 이름을 외우셨네요.”
창문을 열며 말하는 예나, 그녀는 계속 움직였다. 따뜻한 물과 수건을 준비하고 옷을 꺼내어 놓았다.
“준비 끝나시면 부르세요.”
나간 그녀, 일어났다. 비루한 몸, 피부야 원래부터 희었으나 마르고 얄팍해 볼품없었다.
얼굴을 닦고 수건을 적셔 몸을 닦았다.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어? 준비가 벌써 끝나셨어요?”
“어, 가지.”
그녀는 안내했다. 열리는 문, 공작과 두 명의 여성이 앉았고 그 옆으로 나의 형제, 자매들이 앉았다. 나는 들어가 인사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아버지, 어머니.”
“어제와는 사뭇 다르구나.”
이 집에서 서열이 가장 낮은 건 나다. 가장 빛나는 일위는 공작, 첫 번째 부인과 두 번째 부인, 그리고 형제, 자매들의 쓸모 있는 순이다.
둘째 부인의 막내아들에 재능도 쓸모도 없는 것이 나였다. 그렇기에 학교도 못 가고 입대했지.
“어서 앉거라, 식사하자.”
공작의 말에 가장 말단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시녀들이 움직이며 식사를 내왔다.
받는 순서도 서열순, 공작부터 내려오는 순번에 가장 마지막에 받았다.
“뜨거우니 조심히 먹으렴.”
첫째 부인의 말, 따뜻하고 잔잔했으나, 향하는 것은 자신에 자식들뿐이다.
둘째 부인도 똑같이 말했으나, 따뜻함보다는 질투와 답답함이 섞였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곧은 자세로 식사했다.
“오늘은 자세가 좋네?”
바로 위에 누나, 셀레나 발렌시아,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사람 냄새가 난다.
나이 차가 많아 어렸을 때부터 챙겨줬다. 나는 웃어주고 예의 있게 식사했다.
식사가 끝나고 돌아온 방, 답답했다.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의 기싸움, 자식들의 기싸움에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공작까지, 체하지 않는 게 용했다.
“예나! 들어와!”
“네, 도련님 부르셨어요?”
들어온 예나, 나는 그녀에게 이것저것 묻고 내보냈다.
그래 오크의 반란이 일어나기 십 년 전, 지금 나이가 열 살이니 오 년 후면 입대 가능하겠군.
그래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나는 침대에 앉아 몸을 봤다. 너무 마르고 비루한 몸뚱이, 근육 하나 없고 손바닥에 굳은살도 없다. 검을 단 한 번도 안 잡았을 때다.
“어쩔까.”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연병장을 향했다.
도착한 연병장, 기사들이 훈련하는 중이고 그들의 앞에 선 인물이 보였다.
짧게 잘라 정리된 주황빛 머리칼, 갈색의 눈, 깔끔하게 자른 수염, 공작가 기사단장 데미안 카스텔.
현재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둔 소드 엑스퍼트 상급, 그에게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만, 관심이 없을 것이다.
“도련님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지나가던 기사가 물었다.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 내에서 평판이 조금이라도 오른다면 혹시 모른다.
“잠시 연병장 좀 사용하려고.”
“현재 기사단 훈련 중이라······.”
“괜찮아, 어차피 구석에 있을 거라.”
대충 대답하고 연병장을 뛰었다. 체력부터다. 근육을 키우고 검을 들려면 가장 먼저 체력부터다. 체력이 다할 때까지만 뛰어보자.
겨우 두 바퀴를 돌고 쓰러졌다. 체력도 없고 이 빌어먹게 아무것도 안 된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그래 내가 원래 아무것도 안 하고 먹고 놀기만 했지.
다시 일어났다. 부는 바람에 땀이 식어간다. 다시 달리자.
=====
아침부터 시작된 기사단 훈련, 몇 년째 소드 마스터가 되지 못한 단장의 히스테리가 섞인 훈련은 계속 힘들었다.
“빨리! 이런 게 발렌시아 공작가의 기사단인가! 더 빨리!”
어떻게 더 빨리 달리냐! 풀 세트로 입은 갑옷과 들어 맨 장비, 구보로 달리는 것이 한계였다.
흐르는 땀, 단장의 목소리는 계속 다그쳤다. 몇 번이고 움직일 때 풀린 다리에 넘어졌다.
“거기 뭐하나!”
넘어지며 코피가 흘렀다. 단장은 한숨을 푹푹 쉬며 내려와 의료소를 가라 지시했다.
“어찌 기사라는 놈이 저것 하나 못 이겨서는, 다시 시작해!”
뒤에서 들리는 단장의 소리, 의료소를 향했다.
의료소에 앉아 있는 신관, 그녀는 축복과 함께 잠시 누웠다가라 권했지만, 누워있다가 단장한테 걸리면 그 미칠 듯한 잔소리에 파묻힐 것이다.
“아닙니다.”
축복으로 코피도 멈췄으니, 연병장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 연병장 입구에 서서 단장을 보고 있는 작은 도련님, 이름이··· 뭐더라?
“도련님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그가 나를 보았다. 하얀 피부에 발렌시아를 대표하는 붉은 머리와 푸른 눈동자, 특이하고 성스럽게 생겼다는 것이 그들을 위한 말인 것 같다.
“잠시 연병장 좀 사용하려고.”
“현재 기사단 훈련 중이라······.”
“괜찮아, 어차피 구석에 있을 거라.”
그렇게 말하고 들어가 버렸다. 단장이 쏘아보는 눈빛, 빠르게 달려가 그의 앞에 섰다.
“뭐야? 도련님이 뭐라고 하든?”
“잠시 연병장 좀 사용하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훈련 중이라고 말 안 했어?”
“구석에 있는다고 하셨습니다.”
짜증 섞인 말투와 표정, 단장은 왜 막지 않았냐고 잔소리를 늘어놨다.
그러면 자기가 하든가. 난 일개 기사인데 어쩌라고!
속으로 그를 수백 번은 욕하고 죽이면서 참았다. 잔소리가 끝나 짐을 매고 연병장을 달렸다.
“어 도련님도 달리는데?”
누군가의 말에 달리고 있는 도련님을 봤다. 자세는 좋았는데, 두 바퀴쯤 돌고 나가떨어졌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달리고, 쓰러졌다가 다시 달리고 계속 반복했다.
“이상한 약이라도 먹었나?”
“그러게.”
“잠깐이겠지, 가만둬.”
훈련이 끝나고 노을 진 하늘, 계속 달리고 있는 도련님이 보였다. 단장은 그를 보다가 고생했다며 해산을 명했다.
나는 짐을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연병장 앞에 있는 건물, 샤워하고 창문을 열었다.
“빌어먹을 몸뚱이!”
연병장에서 들리는 소리, 도련님이 자신의 몸을 욕하며 달렸다. 옆 방도 창문이 열렸다.
“와, 아직도 달리네.”
“뭐, 어디 가서 심하게 욕이라도 먹었나 보지.”
옆방에서 들리는 말소리, 뭐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갑작스럽게 사람이 변하는 이유가 다 거기서 거길 테니까.
연병장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창문을 닫았다. 친한 기사들과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이 훈제 돼지고기인가? 아니면 소시지인가?”
“흠··· 모르겠지만 고기면 좋다!”
저녁 식사를 맞추기 농담 따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돌아온 방, 든든하게 채워진 배를 만지며 침대에 앉았다.
훈제된 돼지고기에 나온 스프, 든든하고 만족스러웠다. 내다본 창문 밖, 아직도 뛰고 있는 도련님과 말리는 집사가 보였다.
흠··· 왜 저러냐?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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