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에서 검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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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백(賢白)
작품등록일 :
2025.10.29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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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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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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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모든 일의 원흉, 범인, 시발(始發) 놈.

DUMMY


고즈넉한 이른 새벽. 창가로 흘러들어오는 햇살이 눈이 부셔 그만 잠에서 깼다.


케케묵은 곰팡이 냄새가 먼저 코를 찌르고, 차례대로 눈을 뜨니 나무로 된 낯선 천장이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누워있는 상태인 모양이다. 그냥 누워만 있는 거면 모르겠는데, 문제는 내가 지금 어디서 왜 누워있는 건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가만히 누워서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문득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그러고 보면 분명 나는 절벽에 내몰려 마명검을 휘두르지 않았던가? 내가 도대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이곳에 누워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공의 여파로 평생 동안 나를 괴롭히던 자잘한 고통들은 물론, 부상으로 인해 느껴지던 전신의 격통도 어딘가로 날아간 상태. 그러니까, 지금 나는 이상하리만치 몸이 멀쩡했다.


“이게 다 무슨···”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곧장 침상에서 일어나 잠옷으로 보이는 상의를 훌러덩 벗어 던지고 내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는지 살짝 창백한 피부에는 내가 오래전에 얻은 흉터도, 교도들에게 쫓기며 얻은 검흔도 없었다. 상처는커녕, 도리어 단 한 번도 피를 흘려보지 않은 사람의 몸처럼 생채기 하나가 없었다.


도무지 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 아무리 뛰어난 신의(神醫)라고 할지라도 사람을 낫게 할 뿐이지 원래 있던 상처를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예 새로운 몸뚱아리를 구하는 것이면 모를까···


‘어, 잠깐. 새로운 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침상에서 우당탕 일어나 골방 구석에 놓여진 탁자 위에서 작은 면경 하나를 챙겨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먼지 쌓인 면경에 나타난 모습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웬 젊은 청년의 얼굴이었다.


“대체 뭔···”


가끔 너무 당황스러우면 말문이 막히는 법인데, 지금 내가 딱 그랬다. 그야말로 모든 상황이 전부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마교와의 혈전을 치르고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낯선 골방이었고, 심지어는 난데없이 처음 보는 청년의 몸뚱아리를 가지게 된 상황.


주름 하나 없는 얼굴이 어색해서 남의 면상을 주무르듯 만져보던 와중에, 뜬금없게도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공간에서 만난 흑의 사내의 말이 떠올랐다.


‘섭리에 간섭하는 것은 나도 이번이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검마. 마귀라는 별호를 이름으로 달고 살았으니 이번에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보도록. 이것이 내 최선이다.’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보라던 의미가 바로 이것이었을까? 나는 다시금 침상으로 돌아가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내 상황을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나는 마명검의 내부로 추정되는 공간에서 어떤 사내를 만났고, 그 사내가 내게 새로운 삶을 부여했다. 섭리에 간섭한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그런 것이었을 터이다. 한마디로··· 마명검에 갇힌 혼백 중 하나였던 나를 사내가 억지로 끄집어내서 석방시킨 모양이다. 석방보다는 탈옥이라고 불러야 적절할까? 모르겠다.


그렇다면 사내의 정체가 정말로 신이었던 것일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 본능은 그렇게 추측하고 있었다.


‘최선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었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이 사태를 이해하려고 애를 써봤다. 정황상 나는 한 번 죽었고, 마명검 속 사내의 도움으로 인해서 새로운 몸으로 일종의 환생(還生)을 거쳤다. 이 터무니없는 사실이 지금 내게 들이닥친 상황의 전말이었다.


문제는 이 몸의 원래 주인이 누구인지, 나와는 무슨 관련이 있었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육체의 정체는 고사하고, 이곳이 어딘지조차 모르겠으니 그야말로 내게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나와 겨루었던··· 그러니까 삼대마인들과 교도들은 전부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놈들은 몰라도 어쩐지 마군자 이 새끼는 끝까지 살아남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지 목숨이 제일 중요한 놈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마명검을 뽑는 순간에도, 유일하게 보지 못했던 얼굴은 바로 마군자였다. 아마 앞으로 벌어질 일을 진작 눈치채고 잽싸게 도주하거나 숨지 않았을까?


‘바퀴벌레 같은 새끼.’


하여튼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궁금증은 많은데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속이 답답해지는 느낌이 드는 찰나에··· 무언가 침상에서 굴러떨어지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보니 내게는 몹시 익숙한 시커먼 장검이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


속을 답답하게 하는 요인이 하나가 추가되는 느낌이다. 도대체 저게 지금 왜 여기 있지? 그러니까··· 내가 전생에서 마교로부터 갈취한 비보이자, 천하를 뒤흔들 수도 있는 전대미문의 망령마검이 낡디낡은 골방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산 넘어 산이다.’


이쯤 되니 놀랍지도 않았다. 마명검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내가 봤던 흑의 사내가 나와 망령검을 동시에 이곳으로 보냈다는 뜻일 터. 무슨 목적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나름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저 정신 나간 귀신검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게 맞나 싶긴 하다. 마교의 고수들을 일순간에 모두 집어삼킬 정도로 위험한 마검을 그 누가 소지하고 싶겠는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나는 시선을 옮겨 창가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곳의 명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큰 동네는 아닌 모양이다. 척 보기에도 구수한 냄새 풍겨오는 것 같은 시골 깡촌의 모습이 시야에 펼쳐지고 있었다.


“···”


기왕 환생시켜 줄 거면 돈도 많고, 얼굴도 좀 미남 소리 들을 법한 놈으로 시켜주지. 왜 하필 이런 촌동네의 촌뜨기일까. 내가 지금 더운 물 찬물 가릴 때가 아니기는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쩌겠는가.


‘이번 생도 놀고 먹으면서 사는 것은 글렀구나, 젠장할···’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꿈이 저무는 순간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전생에도 부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는데, 이렇게 되면 두 번의 인생 모두 내 오랜 숙원이었던 돈지랄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전생에서 주교로 살던 순간에도 충분히 가난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분노가 솟아오르는 이유가 뭘까. 돈이 많으면 화도 안 날 텐데, 어쨌든 나는 지금 가난해서 분노하는 중이었다. 돈이 이렇게나 무섭다.


뭐가 됐든··· 온갖 상념과 궁금증이 판치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한 가지 사실만은 자명하다. 나는 새로운 삶을 부여받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을 걷게 될지는 이제 내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것이 과연 축복인지, 저주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

.

.

.

.


머리가 뜨거워지는 느낌이라 하염없이 창가를 바라보는 와중인데 방문 너머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사는 게 아니었던 것일까? 아니었나보다. 나무로 된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이십대 초중반 쯤 돼 보이는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은 낡은 무복을 입고서 두 손에는 물수건이 놓인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나를 발견하자마자 잔뜩 놀란 상태였다.


청년이 나를 보며 물었다.


“문주님?”

“···”

“문주님, 괜찮으십니까?”


들고 있던 쟁반도 떨어트린 청년이 다급히 뛰어오더니 곧장 내 안색을 이리저리 살폈다. 나는 청년과 눈을 맞추고 있는 와중에도 청년이 나를 호명하면서 부른 호칭이 영 신경 쓰였다.


‘문주(門主)?’


이 검마가 말이냐? 청년이 내게 연신 물었다.


“문주님, 괜찮으십니까? 눈빛이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어디 아프세요? 따로 뭐 머리가 아프다던가 그런···”


질문이 폭풍처럼 쇄도하자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나는 부담스럽게 다가온 청년을 손으로 살짝 밀어낸 뒤에 물었다.


“없다. 그보다···”

“예. 편히 말씀하세요.”

“내가 문주라는 게 대체 무슨 개소리냐?”

“···예?”


.

.

.

.

.


청년과의 길지 않은 담론을 나눈 끝에 나는 새로운 정보를 몇 가지 더 입수했다. 일단 나를 반긴 청년의 이름은 소금호(邵金虎)라고 한다. 금색의 호랑이라는 나름 멋진 이름인데, 일단 청년의 모습이 전혀 호랑이 같지 않아서 호랑이보다는 짭짤한 소금이 더 연상되었다.


두 번째로 내가 있는 이곳은 용명현(龍名縣)이라는 시골 동네의 검명문(劍名門)이라는 검문인데, 한때에는 잘 나갔으나 현재는 문도가 세 명 남짓일 정도로 다 쓰러져 가는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내 육신의 정체. 검명문을 파멸로 이끈 장본인, 모든 일의 원흉, 범인, 시발(始發)놈. 검명문주 독고무진(獨孤無盡)이 바로 이 몸 되시겠다.


그러니까 이 상황을 요약해보면··· 나는 전생에는 정사마 가릴 것 없이 쫓기는 몸이었고. 새롭게 환생한 지금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돈 없는 문주가 된 셈이다. 어찌 됐든 둘 다 쫓기는 삶이다. 새삼스럽게 나를 환생시킨 흑의 사내가 미워지는 것은 왜일까.


하여튼 내가 환생하기 전에 독고무진이란 사내는 평소에도 몸이 허약했고, 성치 않았으며, 최근에는 한번 쓰러진 뒤에 며칠 동안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소금호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놀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얼추 아귀가 들어맞는다. 독고무진은 모종의 이유로 쓰러졌고, 사경을 헤매는 동안 내가 그의 몸으로 환생한 것이라면··· 모든 의문점이 단숨에 해결된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내가 환생하지 않았더라면 독고무진은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보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지금 독고무진의 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전생에 검마라 불리던 사내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마신교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채로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한다. 내가 죽은 뒤로 환생하기까지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교가 아무런 타격 없이 활동 중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교도들과 마인이 사라진 것이지 교주가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생각이지만, 마교를 꺾기 위해서는 교주를 먼저 죽여야만 한다. 교주가 사라진 마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교주가 건재하다는 조건 하에 마교는 어떻게 해도 꺾을 수 없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천마교의 본질이다.


이렇게 되면 내 삶의 방향은 정해졌다. 어찌 됐든 새로운 삶을 부여받았으니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교주를 죽인다. 그것이 내가 가슴에 품은 결심이다.


“···이번 생에도 나는 교주의 적이다.”


나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이었는데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소금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예.”

“생각 정리 다 했으니 들어와라.”


잠시 생각을 정리하겠다며 금호를 내보냈던 상태. 이윽고 문이 다시 열리더니 엽차를 들고 등장한 금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 기억 나는 게 하나도 없으십니까?”

“···”


사실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몇몇개의 기억을 잃었다는 거짓말을 해놓은 상태이다. 전생에 마교의 주교였고, 지금 새로운 몸으로 환생했다고 하면 그 누가 믿어주겠는가. 가끔 거짓 같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 거짓으로 둘러대야 할 때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때였다.


나는 엽차를 받아든 뒤에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래. 너 이름이 아까···”

“금호요. 소금호.”

“오냐, 소금아.”

“아니···”

“조용히 하고, 뭣 하나만 묻자. 궁금한 게 있어서.”

“···”


어느새 짭짤한 이름이 된 소금호가 나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뭐가 궁금하십니까.”


나는 사내 치고 몹시 고운 손을 쥐락펴락 하며 머릿속에 떠오른 궁금증을 질문했다.


“보아하니 나는 체질 자체가 허약한 유형 같은데, 어쩌다 검문의 문주가 되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아.”


순간적으로 소금호의 얼굴이 살짝 굳더니 묘하게 슬픈 기색이 감돌았다. 소금호가 내게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시나 보군요.”

“사연이 있나?”


잠시 머뭇거리던 소금호가 마지못해 말을 이어나갔다.


“예, 실은··· 검명문은 초대 문주. 그러니까 문주님의 아버님께서 만드신 검문입니다. 그분이 살아계실 때만 해도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무관이었고, 검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이들도 많았지요. 그런데···”

“그런데.”

“···어느 날 초대 문주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모든 상황이 나빠졌지요. 졸지에 문파를 떠맡으시게 된 문주님은 주변 문파나 무관들의 압박을 못 견디셔서 침상에 눕는 일이 많아지셨고···예. 그러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독고무진은 본래 무인의 뜻이 없었는데 일이 꼬여서 문주가 되었었나 보다. 그러면 몸 상태가 이렇게 개판인 것도, 문파 꼬라지가 개판인 것도 전부 설명이 된다. 독고무진은 애초에 무인의 뜻이 없는 허약한 사내였고, 그런 사내가 문주를 맡고 있는 문파는 언제 사라져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터.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일단 몸 상태고 지랄이고, 내 마음가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턱을 괸 채로 소금호에게 물었다.


“가장 집요하게 우리를 괴롭히던 문파나 무관이 어디더냐?”


금호가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말을 머뭇거렸다.


“그게···”

“괜찮으니까 말해.”

“검협문(劍俠門)과 정검문(正劍門)이 특히···”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인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다. 다녀오마.”

“어디를요?”

“우리 괴롭힌 염병할 새끼들.”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금호가 애써 뜯어말리고 있었으나 나는 물러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일단 내 오랜 생각은 그렇다. 무공은 애초에 지랄하려고 익히는 것이다. 교주 같은 놈들은 선량한 약자에게 지랄하기 위해서 무공을 익히고,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교주 같은 새끼에게 지랄 발광을 떨기 위해 무공을 익혔다. 그저 그뿐이다.


검마의 적을 때려잡기 위해서는 먼저 독고무진의 적부터 때려눕혀야 한다. 전생이나 지금이나 돌고 돌아 나는··· 오늘도 내 적에게 지랄하기 위해서 검을 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침상 옆에 떨어진 마명검의 몸통을 붙잡았다. 역시 마검은 마검인 것일까. 다시 붙잡아도 손에 휘감기는 불순한 기운이 온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것 같았다.


금호가 황당하다는 어조로 내게 물었다.


“그건 또 뭡니까? 천으로 똘똘 감긴 검?···”

“보면 몰라? 검이잖아.”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잖습니까. 처음 보는 검인데요.”


나는 마명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아버지 유품이야. 이제 쓸 데가 온 것 같다.”

“···”


유품이라는 말엔 금호도 어쩔 도리 없이 입을 다물었다. 물론 당연히 거짓말이다. 애초에 나는 부모 없는 고아로 자라왔다. 부모가 주는 행복이 어떤지, 부모를 잃는 느낌은 또 어떤지, 죽은 아비의 유품을 받는 슬픔은 얼마나 거대한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강호에서 살아감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자고로 강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만만한 수준의 병신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체로 쓸데없는 서열 나누기를 좋아하는 흑도가 그러하고, 자존심 강한 백도에서는 만만하게 보이면 무시를 당하며, 비정하기 짝이 없는 마도에서 병신들은 살아남는 것조차 어렵다. 전생에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정사마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의 멸시의 대상이었고, 결국에는 나를 둘러싼 마교도들에게 온갖 환멸과 병신 취급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적어도 마지막 순간에서는 모두가 나를 두려워하다가 다함께 저세상 갔다는 것이 내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어쨌든··· 마도의 적이 되기로 마음먹었으니 이번 생도 멀쩡하게 살기는 글렀다. 이번에도 나는 여지없이 강호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병신 취급 당하며 무시받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시작점이 노예였던 전생과 달리 이번에는 첫 단추부터 잘 끼우기 위해서··· 나는 마명검을 어깨에 둘러멨다.


“다녀온다.”


제법 당당한 인사였으나 금호는 더 이상 나를 말리지 않았다. 어지간한 수준의 만류는 내게 택도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줄곧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전생에는 대부분의 교도들이 나를 대하기 어려워했고, 심지어 나는 교주의 말조차 마음에 안 들면 따르지 않았다. 성격이 이렇게 지랄 맞으니 교 내에서도 내가 제일가는 미치광이였던 것이리라.


이번 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은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이번 생에도 누군가의 말을 잘 들을 생각이 없다. 심지어 이제는 누군가의 밑에서 굴욕적으로 복종할 필요도 없다.


나는 오직··· 먼 미래에서 교주의 뺨따귀를 후려치기 위해 현생으로서의 첫걸음을 바깥으로 내디뎠다.


“언젠가··· 너에게 닿기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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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날개가 묶인 새 25.12.07 132 1 23쪽
27 잿빛을 걸어가는 느낌 25.12.06 152 3 25쪽
26 오른손에는 마검, 왼손에는 명검. 25.12.06 163 3 26쪽
25 웃으면 된 것이다. 25.12.04 162 4 28쪽
24 춥다. 졸리다. 배고프다. 25.12.03 171 1 22쪽
23 내가 곧 검의 마귀이기 때문에 25.12.02 186 3 27쪽
22 살수를 죽이는 살수. 25.12.01 181 3 19쪽
21 슬기로운 흑도 생활. 25.11.29 193 5 17쪽
20 뱀 새끼, 어서오고. 25.11.28 199 7 24쪽
19 명탐정(名探偵) 독고무진. 25.11.27 215 6 26쪽
18 몹시도 수상한 초대. 25.11.26 224 5 25쪽
17 척안(隻眼)의 살수. 25.11.24 251 6 23쪽
16 강철의 철방 주인. +3 25.11.22 258 7 26쪽
15 문주가 병신이면 문파가 망한다. +3 25.11.21 269 8 17쪽
14 무엇이 그토록 괴로웠던 것일까? +1 25.11.20 281 10 24쪽
13 무소유의 미덕을 품은채로. +4 25.11.18 280 10 18쪽
12 독고검문(獨孤劍門). 줄여서 독고문(獨孤門). +3 25.11.17 307 9 19쪽
11 도대체 누구 편이십니까? +1 25.11.16 316 12 18쪽
10 악인들의 적이다. +2 25.11.10 328 10 16쪽
9 많이 먹어. +1 25.11.08 353 11 17쪽
8 천하 검객의 무공. +2 25.11.06 376 11 19쪽
7 야생 곰의 출현. +3 25.11.05 373 13 16쪽
6 나는 최강이다. +1 25.11.04 396 13 16쪽
5 과실주는 하염없이 달았다. +2 25.11.03 471 12 15쪽
4 검명문은 천하제일 검문이다. +1 25.11.02 471 14 19쪽
3 반가워, 나는 전생 검마라고 해. +1 25.10.31 503 12 15쪽
» 모든 일의 원흉, 범인, 시발(始發) 놈. +5 25.10.30 627 13 17쪽
1 검마(劍魔)가 된다. +1 25.10.29 868 9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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