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신입 (2)
꿈
주인공이 아니다.
흐려지는 의식 속 나의 귀를 계속 맴도는 한 마디.
나의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그 한 마디는 왜인지 잊히지 않았다.
강박적으로 나의 무의식을 흔들었고, 내가 눈을 뜨는 순간까지 나를 괴롭혔다.
“정신이 좀 들어?”
밝은 베이지 색 트렌치 코트를 입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딱딱한 말투는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그대로 반영하였고, 걱정하는 듯 묻는 말조차 형식적으로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지는 여자였다.
그야말로 얼음같이 차갑고 딱딱한 어조였다.
목에 걸린 아카이브의 사원증에는 ‘알레나’라고 적혀 있었고 금방 물었던 질문의 답은 나의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혼자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알레나라고 해. 형식상 아카이브의 최고운영책임자 대행이고··· 아니야 이건 신경쓰지 말고... 사태의 엄중함을 알기 때문에 직접 왔어.”
나보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보이는 이 여자는 자신을 최고운영책임자라고 소개하였다.
“본론부터 이야기할게 ’마제스 반’은 전멸했어, 너를 제외하고 말이지.”
금방이라도 속에 있는 것들이 올라올 것 같았다.
가죽이 벗겨지고 눈이 뚫린 레티오의 얼굴이 기억났다. 레티오임을 확인한 건 얼굴이 아니었다. 진흙에 뒤덮인, 그럼에도 여전히 선명했던 주황빛 머리카락. 그 하나뿐이었다.
다른 동료들도 죽었다.
오로지 나 혼자 살아남았다.
마제스 반장의 배신으로 모두가 죽었다.
“저는 어떻게 살아남은 거죠?”
모두가 죽었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기적이었지만 동료들의 죽음과 팀의 붕괴가 살아남은 나에게 가져온 건 허무함과 죄책감이었다.
신입, 마제스 반장이 보호해주겠다는 대상, 동료들에게 배우고 더욱 나아갈 수 있는 존재.
세 가지 이유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
스펙터들을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레티오 아니 하다 못해 다른 동료들이 살아 남았다면 이 세상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죽을 것 같이 무서웠기 때문에, 죽기 싫다고 생각했지만 이성적으로 내가 살아서는 안됐다.
나는 쓸모 없었다.
“루겔이 데려왔어. 마제스 반의 신호가 끊긴 마지막 장소로 이동했더니, 바닥에 쓰러진 네가 있었다고.”
“왜 제가 살아남은 것이죠?”
주변의 모든 사물이 나를 향하는 기분이었다. 분명 알레나 또한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형식적으로 말을 하는 것일 뿐이다.
아카이브는 퀘이사를 이끌고 있지만 그 이전에 기업이다. 이익이 나는 쪽으로 움직이는 집단. 나의 생존은 손해일 것이 분명하다.
“혹시 그 질문. 단어 그대로 왜 살아남았는지 묻는 거니?”
처음으로 감정이 포함된 듯한 한숨을 내쉬며, 병상 옆에 있던 작은 의자를 꺼내 앉았다.
다리를 꼬며 옷 매무새를 다듬던 그녀는 나를 조용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그냥 나의 앞에 앉아 있었다.
분명 한대 칠 기세로 다가왔었다. 보통 상황이었다면 이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나의 뺨을 후려치고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것만 같은 감각이 돌았다.
하지만 팔 다리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가슴부근에서는 이상한 두근거림이. 아니 심장박동을 강제로 일으키고 있는 기계를 달고 있는 나였기 때문에.
한숨을 쉬는 것으로 그친 것이 분명했다.
“바렌, 이건 바렌과 알레나라는 두 사람의 대화야.”
“첫 임무였고, 너를 제외한 모든 동료들이 죽었기 때문에 정신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거, 충분히 이해 돼. 가까운 사람의 죽음만큼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은 없지···”
“그걸 알지만. 지금 네가 뱉었던 그딴 한심한 소리는 누구를 위해 한거야?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는거지?”
나를 구한 루겔을 향한 원망일까. 팀원들을 배신한 마제스를 향한 분노였을까. 아니면 정말 살아남은 자신을 한탄하는 것이었을까.
그렇게 나는 별 대책없는 비관만을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대책없이 그딴 소리나 지껄이는 사람을 싫어해서 한 말이지만, 그보다도 네가 살아 남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 그러니 한심한 표정 짓지마.”
이제와서는 잘 모르겠다. 차가운 말투로 이곳에 찾아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말만 하던 그녀는 의외로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당분간은 무리하지 마. 목숨을 건졌을 뿐이지 처음 발견한 너는 거의 시체나 다름 없었으니까.”
손가락 끝만 간신히 구부릴 수 있었다, 몸 안에서는 피가 흐르는 느낌이 적나라하게 느껴졌고 그 액체가 흘러가는 기관 곳곳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게 짚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 길래요?”
나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와버렸다. ‘의미도 없는걸 묻고 있네.’라고 하며 단번에 자르는 반응을 상상했지만. 의외로 알레나는 차분하게 나의 몸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하였고,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다.
살이 찢겨나가고, 뼈는 산산조각이 났다. 늑골의 절반 이상이 철심으로 고정되었고, 쇄골과 골반 일부는 인공뼈로 대체되었다. 심장은 거의 반쯤 으깨진 채 맥박을 멈췄고, 응급조치로 연결된 인공 심장 장치는 지금도 가슴 한복판에서 기계음과 미세한 진동을 내며 내 생명을 유지시키고 있다.
영원히 나와 함께 할 잿빛 물건이었다.
피를 제대로 돌리지 못한 탓에 간은 괴사 직전까지 갔고, 폐는 심각하게 찢어져 복합적 봉합과 재건을 거쳐 겨우 기능을 유지 중이라는 말을 들은 이후는 그녀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하얗게 질린 나의 얼굴을 보았는지 알레나가 직접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수술의 의미 이상으로 나에게 있었던 의료행위는 생명의 재창조 수준으로 나의 절반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뼈 혹은 신체기관이었다.
“특이사항은 없지만, 너는 심장의 절반 이상이 다친 상황이잖아. 그래서 특히 신경써야 할게 있어.”
특히 신경써야 할 게 특이사항이 아니면 무엇일까. 알레나에게 물을 힘이 없을 정도로, 몸에서 흐른 식은땀이 나의 모든 힘을 가져간 듯 지쳤다.
고통이 느껴지지도 내 몸 안에 다른 재질이 들어 있다는 감각도 들지 않지만 왠지 그녀의 말만으로 내 몸이 개조된 기분. 이미 개조되었기 때문에 기분이라는 단어는 빼고 다시 이야기 하겠다.
“배터리, 그 손목에 차고 있는게 충전기인데. 연결이 끊기면···”
“죽나요?”
“3시간 정도 버틸 수 있을거야. 안에서 경고음도 나와서 까먹을 일을 없겠지만 수시로 충전해주고 관리해.”
“나는 바빠서 이만 갈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마친 그녀는 조용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있었던 것이 마치 하나의 꿈이었던 것처럼 병원 안은 다시 고요해졌고 선선한 바람만 커튼을 향해 타고 들어왔다.
···
붉은 노을 빛이 커튼에 반사되어 빛나는 것이 레티오의 머리카락 같았다. 마지막에 내가 본 것, 그녀가 그녀임을 알 수 있었던 유일한 단서.
팀에 배정되면서 항상 나를 챙겨주던 두 사람, 레티오와 마제스. 하지만 배신자의 이름은 빼고서 그녀의 생각만을 하게 되었다.
세상을 구하고 싶다. 영웅이 되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이 왠지 부끄러워 내가 그들에게 말한 포부는 내가 살아가는 이 곳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지키고 싶다는 말이 모두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단순히 패기넘치는 신입의 한 마디, 혹은 퀘이사를 위한 영웅의 대서사시의 한 페이지로서 받아들였을까.
온 몸이 박살난 채 다양한 의료기술 덕분에 간신히 살아가는 내가 아직도 그 말을 지킬 수 있을까. 스스로 던진 질문의 답은 나의 모든 과거의 다짐을 잊고 살아가자는 것이었다.
두려웠다 그날의 마제스의 얼굴이, 그의 힘이.
모두의 죽은 모습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꿈꿨던 영웅의 형상은 홀로 악과 맞서 모두를 지키는 정의의 ‘전사’였다. 하지만 나는 강한 힘도, 강한 정신도 없었고 모두가 죽고 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했던 생각은 ‘고통없이 죽고 싶다’는 나약한 소리였다.
“꿈이 맞네. 아주 지독한 악몽.”
차라리 악몽이 나을 정도로 맞닥뜨린 현실은 내게 잔혹했다.
앞으로 더 살아갈 힘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깊고 어두웠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더욱 빠져들어가는 늪처럼 말이다.
똑 똑 똑
세번의 노크소리가 들렸다. 지금 나의 몸 상태나 병실 특성상 많은 사람이 오가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는 노크만 할 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 내가 듣지 못했나 싶어 그는 다시 한번 노크를 하였다.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목소리가 나오기 좋게 자세를 바로하자.
내 또래 정도의 남자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서 있었다.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들어와 과일과 다양한 음료를 냉장고에 넣으며 친근하게 굴기 시작했다.
“안녕. 내 이름은 알골이야. 동갑이니까 말 편하게 하자.”
나의 몸을 한번 훑은 후 표정은 금방 바뀌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도 아카이브 특수부대 소속이야 반가워.”
가만히 냅두면 혼자서 온갖 이야기를 다 하며 스스로 내적 친밀감을 키울 것 같은 느낌의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착한 성격이라는 것은 대충 보아도 알겠지만 이대로 냅두며 그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에는 내가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본론만 이야기 해달라는 사인을 그에게 보냈다.
“알레나가 깜빡한게 있다며 심부름을 시켜서 말이야.”
침대 옆 서랍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내 어떤 것을 적고서 빠르게 찢었다. 알골은 자신의 핸드폰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바빠서 이야기도 못했네, 직접 말하지 못한 건 이해해줘 다음주 이날 내 사무실로 찾아와’라고 전해줘 라고 전해달래.”
“메모는 침대 옆에 둘게 무사히 낫길 바라. 이야기는 다 나으면 같이 하자 안녕.”
그렇게 나의 정신없는 하루가 끝이 났다.
···
“신입이 들어왔다! 모두 기쁜 마음으로 박수!”
마제스 반장은 나를 강하게 밀치며 모두의 앞으로 떠밀었다.
등짝이 얼얼했지만 마냥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그의 소탈한 웃음이 내게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환하게 웃으며 우스꽝스러운 선글라스를 낀 레티오씨는 케이크를 들고서 내게 다가왔다.
“안녕 이야기는 들었어 우수한 성적으로 직접 지원했다며?”
레티오씨 그리고 세바스찬씨 많은 사람들이 나를 환영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세이퍼트 12회 졸업생 바렌이라고 합니다. 퀘이사를 지키기 위해 마제스 반에 지원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음만큼은 마제스 반장 이상의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하였다. 나의 용기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의 첫 동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마지막까지 서로 웃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 모든 환상은 그저 꿈으로서 내게 전해질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괴로웠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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