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신입 (4)
그림자를 따라, 햇빛을 따라 늘어선 거리를 한 없이 걸었다.
달리다가 지치면 걷고, 다시 달리고. 무의미한 반복이었다. 다만 확실한 건, 아카이브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비참한 나를 비추는 유리 건물도, 아무것도 모른 채 웃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걸었다.
겨우 한 시간이었다. 두 다리로는 도망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충분했다. 아파트 단지 뒤편 산을 올라 내려다본 풍경. 여전히 아카이브의 빌딩은 보였다.
그리고 그 맞은편, 가느다랗게 보이는 베타의 폐허. 어디로 가도 나를 착잡하는 하는 것들 투성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턱을 괴었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는 참새처럼 생긴 새 한 마리가 같이 있어주었다.
“후우.”
한 숨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아카이브에 남지 않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음 깊은 곳의 다짐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현실 앞에서, 기억 앞에서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가로막았다.
사실 마제스 반장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조금씩 나면서부터 벽은 쌓이기 시작했다.
나빴어야만 하는 남자. 진정으로 나빴고 진심으로 나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알레나에게도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못한 사실은, 남이 아닌 나 자신마저 속이기 위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진실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자를 위해 움직이고, 동료를 구하기 위해 싸우는 나의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멋진 자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살고 싶어서 빌고, 압도적 무력 앞에 무릎을 꿇은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를 향해 싸워서 패배하고 명예로운 죽음이 있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어떻게 온 거야··· 알레나의 비서?”
연거푸 내쉬던 한숨과 함께 감았던 눈을 뜨자 서서히 밝아지는 시야 속 알골의 모습이 보였다.
“비서라··· 하하 그 정도로 봐줘서 고맙네. 따까리가 아닌게 어디야?”
다소 짜증섞인 한 마디에도 알골은 능청스럽게 받아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회장님이 보낸거야? 멋대로 도망친 사람 잡아오라고?”
“그런거 아니야. 물론 시킨 사람은 알레나가 맞긴 한데. 이유는 달라.”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알골 또한 직원으로서 움직인 것일 뿐인데 괜히 나의 감정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짜증만 내는 것이.
“베타가 보이네 안 그래?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야. 어느 날부터 스펙터가 생겨서 쫓겨났지만.”
내가 뿌린 분노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마 나를 위한 배려거나 감정이 급격하게 흐른다는 것을 이해한 듯 먼 곳. 내가 두려움을 심고 온 장소를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게 주제를 바꾸었다.
“알레나는 어쩌면 베타가 저렇게 된 것이 아카이브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아. 그도 그럴게 예전에 아카이브의 연구소가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거든,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베타에서 스펙터가 날뛰기 시작했으니···”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비밀 안건인 듯 싶었지만 그는 마제스 반이었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며. 만약과 사실이 합쳐진 인과관계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일련의 사건이 아무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게 더 이상하잖아?”
“아하하 듣기 싫구나 미안해.”
꽤나 흥미롭게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몸에서 무의식적으로 방출하는 ‘베타’에 대한 거부감이 알골에게 닿은 듯 그는 머쓱하게 말을 그만두었다.
잠깐의 침묵 이후 그가 다시 꺼낸 말을 다름아닌 마제스 반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마제스 반장에 대해서 오해가 있는것 같다고 하길래. 같이 가볼 곳이 있어서 말이야.”
알레나가 말했던 녹화를 말하는 것이다. 내용은 희미하게 들어오는 나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마제스 반장에 대한 무언가였다.
“뭔가 기억난게 있는 표정이네··· 바렌.”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알레나와의 대화가 마무리 될 무렵이었던 것 같다. 마제스 반장의 기억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마제스 반장은 마지막까지 나를 지켰고 나를 위해 죽었기 때문이었다.
···
‘사이코’라는 이름을 크게 외쳤다. 마제스 반장은 죽어가는 나의 앞에서 미친 사람처럼 허공에 대고 ‘사이코’를 외쳤다.
“사이코, 당장 나와라 너와의 싸움을···”
말과 다르게 반장은 오른손을 자신의 입에 집어넣으며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몸부림치며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자, 비어있던 왼손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마제스, 스스로의 입을 찢어버렸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괴로워했다. 자신의 고통이 아닌 주어진 현실에 괴로워하며 무릎을 꿇은 채 빌기 시작했다.
“부탁하마, 제발 부탁하마 내가 졌다 ‘사이코’ 그러니 이 이상으로 누군가를 죽이지 말아다오, 바렌을 살려줄 수 없겠나.”
부정확한 발음과 격해진 감정이 더해진 탓에 불분명하게 들렸지만 그는 분명히 나를 구하기 위해 빌고 있었다.
내 이름 만큼은 또렷하게 두 귀를 때리듯 들렸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앉은 채 반장을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수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의 주변을 다니던 스펙터 한 마리 또한 언제부턴가 사라졌고 마제스 반장 또한 시체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그리고 다시 움직인 그의 모습은,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만난 마제스 반장의 눈과 같았다.
탁해진 눈빛 그리고 초점없이 나를 들여다 보는 모습. 그의 얼굴을 통해 어떤 내면도 바라볼 수 없었다.
손을 내밀어 나의 목을 잡아 조르기 시작했다.
숨이 점점 막혀오며, 턱 뒤쪽이 점점 당겼다, 귀와 눈 아래의 혈관의 맥박이 몸부림치며 뜨거워졌다. 목만 졸렸을 뿐인데 코로도 벌어진 입으로도 호흡은 불가능했고,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며 시선이 흐려졌다.
입 안에서 쇠 맛이 느껴지며 조인 목젖을 통해 기괴한 소리가 나올 때 쯤, 마제스의 손에서 힘이 빠졌고 나의 얼굴 전체에 온기가 느껴졌다.
“안된다 ‘사이코’ 네 놈 뜻대로 절대 이룰 수 없다.”
“무능한 지휘관으로서 팀원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고 죽이기까지 하였다. 단 한 사람, 신입을 빼고 말이지.”
“네놈의 작전대로라면 이대로 모두를 죽여 베타를 네놈들의 영역으로 남길 생각이었겠지만. 어림없다.”
“바렌, 듣지 못해도 상관없다. 너라면 이 베타를, 퀘이사를 멋지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잘 부탁한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마제스 반장은 단검을 꺼내 자신의 왼쪽 가슴에 박아넣었다.
···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 그것은 나를 합리화 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진 문장이었다.
마제스가 나빴다면, 그저 나는 비운의 영웅으로서 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희생하며 지켜낸 내가 도망친다면 그건 비겁한 패배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모든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을 감고 있던 것이다.
비겁하다, 나를 향해 그 어떤 말을 하여도 가장 큰 틀 ‘비겁한 변명’ 아래에서 구제해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일 뿐인데, 마제스 반장은 나를 믿었다. 나를 지켰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까지 그를 부정하며 나의 마음을 지키려고 했었다.
“알골, 혹시 너도 마제스 반장의 마지막 기록을 봤어?”
“응, 봤어. 존경했던 분이야, 물론 지금도 말이지.”
“고작 나같은 사람을 위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맞아. ‘사실’은 그가 너를 위해 목숨을 끊은거지. 하지만 ‘진실’은 단순하게 너를 위한 것도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야. 헛된 희생을 원하지 않았고 본인의 통제를 벗어나기 전에 모두를 지키는 선택을 한거야.”
“무서울거야 이해해, 나도 어렸을 때 죽을 뻔 한 적도 있고, 다양한 스펙터를 만나 싸운 적도 있어.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적도···”
소중하다는 단어의 이름을 붙이기에는 마제스 반장을 비롯한 반의 모두가 보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짧았던 과거는 나의 기억 속에서 작은 빛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알골의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이코’라는 이름을 들었어. 너도 알고 있는 사람이야? 아니 스펙터인가?”
“알려줄게. 어차피 우리가 가야 했던 곳이거든. 퀘이사 건너 ‘새틀’에 있는 아카이브 데이터센터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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