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2년의 이야기 (1)
새틀과 퀘이사의 경계, 퀘이사 내 땅값이 비싸기 때문이었나, 생각보다 많은 전력을 끌어오기 힘들어서였나. 대충 들었던 이유를 생각하다 말았다.
‘중립구역’ ‘와이’라는 명칭으로 퀘이사와 새틀 모두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이 장소.
퀘이사의 건물 양식과 새틀의 건물 양식을 모두 담아서 잠깐 걸었을 뿐인데 새로운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이 아카이브 본사의 모습과 비슷하게 생긴 건물은 분명 알골이 말한 ‘데이터센터’ 일 것이다.
“그 기계를 가동하는데 많은 전기가 필요해서 데이터센터에 같이 있어.”
알골은 양해를 구하며 내게 사과를 하였다.
사이코에 대한 궁금증, 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에 앞서. 알골은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음··· 학교에서 스펙터에 관한 것들은 배웠잖아?”
미지의 생명체, 우리가 알 수 없었기에 ‘유령’의 명칭인 스펙터로 그들을 통칭하였다.
발생시기는 약 10년 전. 베타를 시작으로 발생했지만, 과거의 기록에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베타에서 발생했다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던 그들이 베타에서 처음, 아니 다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직접 본 것은 베타 작전에서 처음 마주했고, 그들의 잔혹함까지 경험했기 때문에, 속 안이 울렁거리며 무엇인가 올라올 것만 같았지만 간신히 버텨내며 알골의 말에 집중하였다.
“계속 알아가는 중이지만, 한 가지 발견이 있었어.”
“스펙터라는 녀석들은 별과 비슷한 특이점이 있다는 것.”
별과 닮은 그들, 핵을 태우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스펙터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먼지와 질량 덩어리의 무엇인가에서 형체를 갖추고 스스로 빛을 내는 별로서 진화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 속, 태초부터 가지고 있던 질량의 영향으로 진화의 분기점을 가지는 그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맹수와 같이 위험한 존재인 줄 알았지만 알골의 말에 의해 그 실상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인간과 닮았어, 우리도 중요한 핵이 있잖아.”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는 뇌도 한 번 가리키고 말을 이어갔다.
“학교에서 다뤘던 녀석들은 거의 다 원시 별의 형태라고 봐도 돼. 아니 그 이하 그냥 ‘먼지’정도겠지, 이 말을 반대로 하면.”
“원시 별을 지나, 거성이 되는 개체도 있다는 거지?”
“정확해. 얼마나 더 진화를 거듭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도 분명 죽음이라는 개념이 통한다는 것을 미루어보면··· 초신성 폭발같은 현상 이후 죽음을 맞이하겠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진화를 거듭한 스펙터는 연구가 채 되지 않았어, 그걸 연구하던 실험실이 사라지기도 했고··· 그들의 특징으로는 인간과 같은 지능의 유무, 또 대화가 된다는 점이야.”
사이코에 대한 실마리가 조금 밝혀지게 되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스펙터의 진화 형태.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고 한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능력을 가진 스펙터라는 사실을 알골은 내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것은, 너에게도 사이코가 잠식되지 않았나 확인하는 것, 그게 알레나의 부탁이었어. 아프지 않으니까 조금만 참아.”
데이터 센터 3층의 텅 빈 방 안 MRI같은 기기만 한 대 있었고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그 기계에 누웠다.
···
“한 번만 더.”
근육이 제멋대로 움찔거렸고 심장은 터질듯 뛰고 있었다.
태어난 지점이 다르다, 모든 신체적 조건이 ‘군인’을 하기 위해 태어난 마제스 반장의 체력훈련은 정신만으로 따라가는 것은 벅찼다.
작은 플라스틱 검을 쥐고서 달려드는 로봇 병사들을 때려눕히는 것도 이제는 정말 한계였다.
“수고했다 바렌.”
흡족한 얼굴로 그는 나의 등짝을 후려쳤다. 앞으로 고꾸라져 일어날 힘도 없을 때 쯤, 그는 나를 칭찬하며 일으켰다.
“아주 훌륭해. 레티오도 세바스찬도 다른 동료들도, 첫 시도에서 너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너는 다르구나. 아주 훌륭해.”
기초적인 군사훈련때 배운 모든것을 쏟아내 보았다. 일단 로봇 자체의 움직임도 조금 엉성했고, 내가 절대로 죽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 자신있게 동작을 취했고 쓰러트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래, 그래 조금 쉬었다 다음 훈련을 진행하자.”
인정받았다는 기분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혈관 사이 에너지를 공급하여 온 몸에 차갑게 식는 기분과 함께 체력이 돌아오는 듯 했다.
“바로 가도 괜찮습니다.”
“그런가. 바로 시작하마.”
트레이닝 룸의 불이 꺼졌다. 발 밑에서 기분 나쁜 끈적함이 질기게 나를 타고 올라왔다.
어둠은 오래가지 않고 금방 밝아진 방 안은, 트레이닝 룸이 아닌 하수도였다.
나의 바지를 타고 역류하는 붉은 액체는 레티오의 얼굴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다정하게 웃던 마제스 반장은 그 날처럼 찢어진 입을 하고 웃고 있었다.
어느새 빼앗긴 단검은 시시하다며 버리고, 마제스 반장은 오른 주먹에 온 힘을 실어 나의 복부를 관통했다.
···
“일어나! 괜찮아 바렌?”
지독한 꿈이었다, 사이코의 생김새는 모르지만 마제스에게 잠식된 모습 자체는 또렷하게 기억했기 때문에 꿈 속에서는 그 모습이 형상화하였다.
공복이 지속되었을 때 복부에서 느껴지는 공허함 같은 감각이 온 몸을 감돌았다.
엄청 아프겠다는 생각과 다르게 직접 느끼지 못한 감각을 뇌에서 대충 치환하여 나에게 제공한 것이었을까.
식은 땀이 흐르며 진이 빠진 사람처럼 한 동안 넋을 놓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행히 스펙터의 반응은 없어.”
마제스 반장과 다르게 사이코의 힘이 내게 닿지는 않은 모양이다.
며칠간의 악몽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나의 기억이 만들어낸 공포심이었다.
차라리 사이코에게 잠식당했다는 말을 들었다면 조금 편했을까, 스스로의 나약함이 드러난 기분이라 숨고 싶을 뿐이었다.
“고생했어, 움직일 수 있겠어? 도와줄까?”
“아냐 괜찮아.”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식은땀을 식혔다. 이 마저도 에너지 소모가 과다했을까 몸 중앙에서는
“근처에서 밥 먹고 가자. 내가 사줄게.”
“나도 돈이 있···”
없다. 알레나의 말을 뿌리치고, 도망쳤던. 아카이브에서 나가더라도 챙겨주겠다고 말한 그녀였음에도 나는 그 서류조차 챙기지 않고 그녀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이 와중에도 큰 돈을 놓쳤다는 생각이 드니, 하루는 고사하고 몇 시간 내로 심경이 바뀌어버리는 내 자신이 참 못났다.
“그렇네, 어쩌면 나보다 더 부자겠구나. 알아서 입금 됐을걸?”
무의식적으로 알골의 말을 듣고 열어본 핸드폰 그리고
“이야. 이건 뭐 평생 놀아도 되겠는데?”
그 화면 사이로 보인 숫자의 규모는 알골의 말대로였다. 늘어선 0이 각각 집, 차, 밥, 옷 하나하나로 바뀌며 풍족한 삶을 나타내고 있었다.
단순하게 숫자로만 구성된, 5라는 숫자 뒤로 0의 나열이 나의 안락한 미래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나저나 수고했어. 얼마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너는 퀘이사를 위해 열심히 움직였고 그건 아주 작은 감사의 표시일 거야. 너의 행동이 앞으로 더욱 큰 미래로 번지길 바라며···”
이제야 두 번째인 사람과의 동행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 지 몰랐다. 둘은 묵묵하게 걷기만 했고 그 침묵 속 나는 알골이 했던 말이 다시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스펙터의 출현은 베타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스펙터는 베타 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스펙터는 베타를 벗어난 곳에는 없다.
세 가지 명제 중 첫째와 둘째는 관찰된 사실이다. 단어만 달랐을 뿐, 결국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세 번째는 베타에서만 발견 됐을 뿐, 귀납적 추론에 기대는 약한 논증이었다.
지금까지 없었다는 것이, 진짜로 없다는 것이 아닌 ‘검은 백조’.
사방팔방 펼친 나의 논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알골의 근처 하수구에서 검은 줄기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알골을 휘감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수도 입구에 다다른 순간, 심장은 미쳐 날뛰었고 목 뒤는 땀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더 앞선 건 알골에 대한 걱정이었다.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지난 날의 겁쟁이 같았던 모습은 없었고 순수하게 사람을 구하겠다는 의지만 나를 가득 채웠다.
강한 빛이 일렁이는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스펙터의 시체와 피투성이가 된 알골이 서 있었다.
날카로운 검에 베인 것처럼 반토막이 난 스펙터는 금방 한 줌의 재처럼 바뀌어 분해되었다.
“알골 괜찮아?”
안전하다고 믿은 장소에서 일어난 공격, 아무 상처 없이 스펙터를 물리친 알골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찌됐든 스펙터 또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은 분명 가능하다. 아무 무기 없이 맨손으로 죽이는 것 또한 가능은 하다.
가능하다고 해서, 인간이 사자나 호랑이를 상대로 이기는 것이 쉽지 않듯.
웬만해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괜찮아. 역시 여기도 나타나기 시작했어.”
알골은 나의 표정을 읽었지만 나의 의문을 해소시킬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전과 달라진 분위기로 자신의 한 손을 어루만질 뿐.
“이 곳은 베타와 생각보다 가까워, 거기서 생긴 스펙터들이 여기까지 올 수도 있다는 말이야.”
“아니아니 그게 아니야, 몸은 괜찮아?”
알골의 허리를 휘감은 무언가가 재빠르게 낚아채 그대로 끌고 내려간 터라 아무렇지 않다는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살짝 뻐근한 정도야 괜찮아. 그보다도 나를 구하기 위해 내려온거야?”
축축하게 신발을 적시고 있는 물의 흐름이 느껴지자 다시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운 이 곳에서 울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과 겹쳐지며 대답할 힘조차 없게 나는 약해졌다.
강렬한 불빛, 일단 하수구로 내려가기로 했을 때 안에서 흘러나온 빛과 유사했다.
자신의 손바닥을 밝히며 빛을 발산하였다.
“너야말로 괜찮아?”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터질 듯 뛰며, 들이키는 공기 속에서는 쇠 맛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
“그래 정신을 차렸구나. 퇴원한지 며칠 안돼서 다시 입원한 기분은 어때?”
“많이 용감했지만. 무모했어. 용기와 만용은 구분해야지 안그래?”
“알골?”
“한달만에 눈을 떠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한달?”
양 손 어디에도 링거액이 꽂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알골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기 쉬웠다.
“하하 뭐야 눈치 빠르네. 남는 병실 하나 빌려서 잠시 쉬고 있었어. 건강상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길래.”
“시간은 얼마나 됐어?”
“세 시간쯤?”
“아냐아냐, 내가 묻고 싶었던 건 이런게 아니야 알골 대답해줘.”
“너는 괜찮은거야? 다친 곳은 없고?”
“대단해 여전히 나를 걱정하고 있잖아. 어때 누나, 합격이야?”
알골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내가 누워있던 침대의 정 반대편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이 웬 남자의 얼굴이라 크게 신경쓰지 못했는데 다른 곳에는 그의 누나 또한 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도 같이 고개를 돌리자 마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알레나였다.
“알레나님?”
“재빠르게 나간 것 치고는 멀리 못갔네.”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을까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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