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암살자는 버려진다.
어느 때보다 그림자를 필요로 하는 세상이다.
암살.
그것이 곧 그림자와 같다.
암흑 속에 숨어 있다 단숨에 깊은 살의와 함께 상대의 숨통을 끊어내는 것.
그것이 암살자인 나, 한독검, 코드네임 블랙의 삶이다.
국가의 그림자가 되어 국가를 위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죽인다.
쓸모없고 불필요한 쓰레기를 청소하고 이 세계의 정의를 실현한다.
그런 줄 알았다.
이른 나이에 A급 헌터가 되고 하늘 높은 줄 몰랐던 난 S급의 벽 앞에 무너졌고 암살자가 되어 정의를 실현한다는 자부심에 감정을 누르고 사람을 죽여왔거늘.
생명을 빼앗은 대가가 되돌아오는 것일까.
유난히 빗소리가 날카로웠다.
눈앞에 보이는 검은 정장의 사내, 암살부대 총대장 서도훈.
그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조용히 투항해라, 한독검.”
“조용히 사라져라, 라고 들리는군.”
탕!
총소리가 울렸고 난 등 뒤에 있던 게이트로 본능적으로 몸을 던졌다.
피가 흐르는 어깨를 붙잡고 게이트 안을 달렸다.
이윽고 어느 보스급 마수와 마주쳤고 뒤로는 헌터치안관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너도 나도 여기서 끝인가보다.”
말도 안 통하는 거대한 몸집의 보스와 난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그 순간, 눈부시게 빛이 쏟아지며 시야를 덮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헉!”
침대를 박차고 몸을 일으킨 나는 가쁜 숨을 내뱉으며 눈을 깜빡였다.
사후세계인지 아니면 꿈이었던 건지.
회귀한 채 살아있었다.
* * *
헌터정보국 암살부대 2팀 팀장.
헌터정보국의 에이스.
일명‘독왕’한독검.
그가 상대 못 하는 적은 없었고 S급의 거물을 만나도 흔들림 없이 깔끔하게 일 처리를 하는 남자.
하지만 졸지에 살인범으로 몰리고 어이없게 토사구팽 당해버리고 말았다.
의심받는 암살자는 조사고 뭐고 제거되는 게 이 바닥의 원칙.
진상은 중요하지 않겠지.
그저 암살부대에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는가 안 가는가. 그게 중요하겠지.
하지만 용서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서도훈의 먼발치에서 편안히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가 범인이라는 사실.
오직 나만이 그 현장을 발견했고 나만이 알고 있다.
하지만 암살부대는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그대로 묵살했다.
10년 전으로 돌아온 19살의 나, 한독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이곳에서 난 헌터가 되기 위해 단련했었고 암살자가 되었다.
되돌아온 것이다.
가족도 없는 텅 빈 원룸.
이 공허함이 암살자로서의 삶이었고 당연한 현실이었다.
난 공허함을 뒤로 하고 시선을 돌렸다.
2020년. 4월. 달력에 표시된 날짜.
침대에서 일어나 상황을 정리했고 생각을 정리해갔지만, 회귀라는 기이한 현상은 정말 적응하기 어려웠다.
거울 속 깔끔한 피부에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는 남자.
구석에 정리된 교과서와 책가방.
그 보스 녀석은 왜 날 회귀시킨 걸까?
아니, 애초에 회귀할 줄 알기나 알았을까?
회귀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복수’
거울 속의 고요하게 가라앉아있는 눈을 보며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누구보다 국가를 위해 충성했고 선량하게 살았던 한독검, 그게 바로 나다.
자부심으로 움직였고 자부심으로 손에 피를 묻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버려지는 게 이 삶의 끝이었다면, 난 단단히 선택을 잘못한 거겠지.
바꿔야 한다.
응당 그래야 한다.
그 남자를 찾아 죽인다. 더 나아가 암살부대가 없는 세상, 그런 남자가 내게 죄를 뒤집어씌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
할 수 있는 건가.
거창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가는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아, 학교 갈 시간 ······.”
난 급히 가방을 챙겨 예전에 다니던 학교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걸었다.
이 나이에 학교에 간다는 현실이 어찌나 어색한지.
하지만 학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 헌터가 되면 더욱 능숙하게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암살부대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건 분명 허황된 꿈이다.
2020년 4월, 게이트와 마수들이 나타난지 약 1년 반.
곧 헌터정보국이 설립되는 시기다. 곧바로 암살부대 편성 계획도 진행 중일 거다.
내가 지금 당장 S급 헌터가 되어 세상을 휩쓴다 해도 암살부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머리까지 19살로 변한 건가?
복잡하게 생각을 하니 오히려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그래, 머리를 비우자. 난 그저 암살자.
명령대로 움직이는 그림자.
하지만 지금은 ······.
쿵!
학교 정문에 들어설 때쯤.
순간적으로 땅이 크게 흔들렸다.
우리나라에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내가 살았던 경기 지역에서는 더더욱.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잊고 있었다.
이 시기, 이 지역. ‘게이트’가 발생해서 이 지역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었던 과거를.
특히나 게이트 첫 발생 후, 2~3년은 혼란의 시기였으니.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등 뒤로 푸른 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눈앞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새하얗던 머릿속은 무참히 죽어 나간 사람들의 비명과 시체의 형상으로 가득 찼고 그 끝에는 나의 죽음으로 채워졌다.
복수, 좋다.
암살, 다 좋다.
애초에 내가 지금껏 피 터지게 싸웠던 이유는 결국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난 바로 앞에 있던 학생에게 외쳤다.
“학생, 커터칼 있어요?”
“예? 커, 커터칼이요?”
학생은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난 혀를 차며 다른 학생으로 고개를 돌렸다. 흠칫한 학생들이 시선을 돌리고 도망갈 채비를 하는 거 같았다.
“어이, 독검이! 피난 안 가냐? 저기 게이트 떴대!”
눈이 커졌다.
내게 인사를 건넨 남자.
박건우.
이전 생에서 죽임을 당해 내 품에서 죽어간 나의 유일한 친구다.
그 죽음에 내가 연루되어 지금 이 과거로 내가 흘러들어오게 된 게 아닌가.
녀석을 보자마자 급한 마음이 누그러졌다.
죽어가던 녀석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는 놈으로 오버랩되며 가슴이 저릿해졌다.
하지만 눈물겨운 재회의 시간은 없었다.
여긴 2020년. 건우는 살아있고 난 건우뿐만 아니라 여길 지키기로 했으니.
“야, 커터칼 있냐!”
“어? 있지. 커터칼은 왜?”
난 빨리 빨리를 외치며 손을 마구 저었다.
건우는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는 책가방을 열어 커터칼을 꺼냈다.
빠르게 낚아채고 가방을 벗어 던지며 내달렸다.
“야, 어디가!”
건우를 뒤로 보내며 뒷산으로 향했다.
2020년 4월에 발생하는 C급 게이트.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제압할 수 있는 마견들이 쏟아져 나오는 날.
기억난다. 그 당시 난 헌터가 되기 위해 몸을 단련하고 있었고 학교 체육관을 쓰고 있었고 운 좋게 창고에 숨어 다른 헌터들의 구조를 받았었다.
하지만 게이트가 생기고 헌터관리국이 생긴지 겨우 1년 반이다. 그들의 대처는 심각할 정도로 미흡했고 오합지졸의 헌터들의 지원도 시간이 지나서야 유의미해졌다.
그걸 기다려선 안 된다.
과거를 알고 미래를 아는 내가 이곳에 있는데 참사를 되풀이할 수 없는 법.
난 커터칼을 꼭 쥐고 뒷산을 올랐다.
게이트가 나타난 곳은 산 정상 바로 밑.
꽤 거리가 있었지만, 19살의 내 체력은 쓸만했다.
더 단련되어 있던 29살이어도 10년 젊은 19살이 되니 가벼움의 체감이 달랐다.
어르신들의 말씀에 공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부작.
소리에 반응하자마자 몸을 확 낮추었다.
마견들이 벌써 중턱까지 내려오다니.
기척과 감정, 호흡. 모든 걸 죽이며 나무와 나무를 오가며 이동했다. 이전보다 완벽하게 되진 않겠지만, 이 정도만 죽여도 C급 마견들에겐 통한다. 바로 풀숲 앞을 지나가는 마견도 날 바로 눈치는 못 챌 거다.
하지만,
“컹컹.”
시커먼 코를 벌름거리는 마견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예상된 움직임이다.
냄새는 아무리 풀을 옷에 문질러도 완전히 지워질 수 없다.
그래서 커터칼로 나무 수액을 채취해 미리 몸에 발라두었다.
놈을 헷갈리게 하는 시간은 2초 정도면 된다.
휙!
“컹! 컹!”
이미 놈과 나의 거리는 벌어졌기 때문에 발견해도 늦었다.
그래도 몸이 적응하고 있어.
이건 인간의 한계를 사용하는 법을 터득했기에 할 수 있는 잠입법.
하지만 마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놈들이란 걸 잊으면 안 된다.
게다가 마견은 한 마리가 아니다.
풀숲 너머로 또 다른 마견이 습격했다.
쳇.
마견과는 지금 싸울 수 없다.
지금의 난 각성한 헌터가 아니기 때문에.
사부작. 사부작.
침을 질질 흘리며 마견이 내가 다가오려 했다.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녀석도 아는 모양이다. 내가 만만치 않다는걸.
마수와의 싸움은 헌터로서의 무력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전략 전투다.
촤악!
“컹! 컹!”
난 한 움큼의 흙을 녀석에게 뿌리고 냅다 옆으로 뛰었다.
얼마 안 남았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푸른 빛은 점차 사그라지고 자리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자리를 잡는 순간 보스가 튀어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그 전에 도착해야 한다.
산길이 험해 여기저기 손으로 짚고 오르고를 반복했더니 손가락 마디마디 피가 흘렀다. 뒤로는 마견이 어느새 4마리로 늘어났다.
난 일부러 마수를 피하기 위해 시내를 바라보는 게이트의 반대 방향으로 루트를 정해 왔다.
마수는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이끌린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정직하게 왔다면 저 마견들은 4마리가 아닌 40마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곧 그 40마리도 상대해야 한다.
“헉. 헉.”
턱을 하나 넘으니 날 쫓던 마견이 달려들었다.
능숙하게 옆으로 굴러 피했고 위에 있던 나무로 몸을 숨겨 나머지 달려드는 마견의 공격도 피했다.
나무에 부딪힌 마견이 낑낑거리며 다시 일어났다.
애써 상대할 필요 없다.
녀석들의 움직임 정도는 지금이어도 다 읽힌다. C급까지는 일반인도 헌터로 각성만 하면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상대.
지금 네놈들 앞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암살 헌터다.
그렇게 온갖 수법을 쓰며 마견들을 달고 산을 올랐다. 정상 바로 밑.
약수터가 있는 공터에 게이트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주위는 수많은 마견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야이 개새끼들아!!!!!”
단전에서 끌어모은 외침.
동시에 마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지금이다!
난 달려드는 마견들의 무리 속으로 돌진했다.
정면의 마견이 나에게 아가리를 벌리며 몸을 날렸다.
퍽!
타이밍에 맞춰 마견의 허리를 가격했고 그 다음으로 달려드는 마견의 머리를 밟아 점프했다.
후웅!
한 바퀴 공중제비 후, 한 번 더. 딱 한 발자국.
“컹! 컹! 컹!”
“집으로 가자, 개자식들아.”
난 그대로 게이트로 쏙 들어갔다.
익숙한 듯 바로 착지해 내달렸다.
게이트 안도 똑같은 숲 지형이었다. 다만 다른 점은 나무들의 잎이 새까맣다는 점.
다행히 마견들이 전부 나와서 게이트 입구 쪽에는 다른 마견이 없었다.
곧 바깥에 마견들도 몰려올 것이다.
1초 단위로 움직임을 쪼개서 쓴 덕분에 타이밍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몸에 무리도 장난 없었다.
뭐, 19살이라 무리해본 거긴 한데.
지금은 몸을 걱정할 때는 아니었다.
게이트 안의 나무들을 주시하며 달렸다. 나무 밑에 자라나고 있는 보석.
마정석.
내가 커터칼을 가지고 이곳으로 달려온 이유다.
주저 없이 마정석 하나를 뽑아 커터칼로 마구 그었다.
마정석의 가루가 떨어져 나왔고 마정석을 입 위로 들어 올렸다.
헌터로 각성하는 유일한 방법.
마정석의 가루를 체내로 흡수시키는 것.
적성이 맞다면 헌터로 각성.
아니라면 중독 현상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그래서 보통은 마정석을 흡수할 용기 따윈 없을 거다.
하지만 난 안다. 단련만 한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F급 헌터는 될 수 있다. 의지가 중요한 거라고.
F급이라도 좋다. 놈들을 상대하기엔 그거면 충분하다.
가루를 삼키고 흠집난 마정석을 주머니에 챙겼다.
그리고,
꾸룩꾸룩.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외치는 듯한 고통.
혈류의 속도가 한계치를 넘나들었고 마나가 형성될 때 특유의 고통이 동반됐다.
여기저기 핏줄이 살갗을 뚫고 나오려고 꿀렁거렸다.
호흡.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했다.
마나가 느껴진다는 건 각성에 성공했다는 것.
이제 이 마나의 흐름을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도록 길을 내줘야 한다.
천천히. 차근차근.
손의 힘을 풀고 길을 내어준다.
발의 힘을 풀고 길을 내어준다.
팔, 다리, 얼굴, 심장.
마나는 피에 스며들었고 점차 나와 하나가 되어갔다.
“후우.”
깊은숨을 내쉬며 마나의 흐름을 갈무리했다. 마나는 내 온몸을 타고 질주하고 있었다.
손을 쥐락펴락했다.
“컹! 컹!”
게이트 안으로 되돌아온 마견들이 들이닥쳤고 앞장서던 마견 하나가 내게 달려들었다.
쫘악!!!
“깨갱!!!”
따귀 한 대로 마견을 날려버렸다. 마수들의 눈에는 보일 거다.
푸른 안광을 내뿜으며 살의로 가득 찬 괴물 하나를.
“각성은 D급 정도인가? 적당하군.”
주춤거리는 마견들을 보며 눈빛에 날을 세웠다.
이번엔 그림자가 아닌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얼굴로 햇빛이 비치며 길게 늘어졌던 그림자는 어느새 발 뒤쪽으로 뻗어있었다.
이번 생은 다르게 살아볼까.
- 작가의말
취미로 쓰고 있습니다.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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