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복귀
짧았던 여름 방학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렸다.
우울해야 할 개강 첫날 아침이었지만,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바라보던 나는 놀랍도록 달라진 이목구비에 새삼스럽게 감탄하고 있었다.
“이야, 아무리 봐도 정말 잘생겼네. 강의실에 도착하면 다들 깜짝 놀라겠지?”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정말 유명 아이돌 그룹의 비주얼 담당 멤버가 부럽지 않을 정도.
얼마 전, 해부학 재시를 보러가던 길에 트럭에 부딪힐 뻔한 유모차를 구하다가 다쳤던 얼굴은 유모차 속 아이의 아버지인 성형외과 조교수 전상욱에 의해 몰라보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미 큰 키에 흰 피부, 작은 얼굴, 그리고 보기좋은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약간 아쉬운 눈코입 탓에 고교시절 친구들로부터 ‘팬티 모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다.
굳이 ‘모델’ 앞에 ‘팬티’라는 단어가 붙었던 이유는 목 윗부분은 구도에 잡히면 곤란하다는 뜻.
하지만 이왕 다친 김에 제대로 업그레이드 해 주겠다던 전상욱은 놀라운 솜씨를 발휘해 나를 그야말로 절세미남으로 만들어 주었다.
놀라운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사고 당시 보도블럭에 충돌하면서 어떻게 충격이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작스럽게 두뇌가 겨울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명석해 졌던 것이다.
중간, 기말 고사 두 번의 시험에서 모두 하위 10%에 속했던 나는 재시에서 만점을 기록, 재시생 역대 최초로 B0라는 놀라운 학점을 받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나는 들뜬 마음에 콧노래마저 흥얼거리며 의과대학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감탄 섞인 시선은 아직 조금 어색했지만,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 내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 인사를 건네었다.
“어, 영도 형! 재시 통과 하셨네요? 2학기를 같이 듣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누구, 누구세요?”
“에이, 왜 그러세요. 저 서현이잖아요. 윤서현.”
“그러고 보니 목소리는 익숙한데, ......얼굴이 전혀 다르잖아! 뭐야 너?”
“하하, 그때 다친 김에 이래저래 손을 좀 봤죠.”
“허, 나는 무슨 연예인이 잘못 들어온 줄 알았네.”
3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1학년 2학기를 수강하게 된 김영도는 놀라움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내 손을 덥석 잡고 흔들며 기뻐하기 시작했다.
“어휴, 어쨌든 너도 진급에 성공했구나. 쌍시 네 명 중에 우리 둘만 살아남은 거 알아? 나도 아슬아슬했다고. C0를 받아서 망정이지, D+였으면 2.0이 안되어서 또 떨어졌을거야.”
“정말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유급이 두 명이나......”
우리가 강의실 입구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놀랍도록 변해버린 내 모습을 발견한 동기들이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
“어머, 윤서현 맞아? 무슨 차은후인줄 알았어!”
“어이가 없네, 나도 성형이나 받아 볼까?”
“민혁이 너는 두상부터 이미 틀렸어. 야, 윤서현! 너 어느 병원에서 수술 받았어?”
“나도 좀 알려 줘. 우와, 피부도 좋아 졌네? 어디서 관리 받는 거야?”
순식간에 강의실 입구는 몰려든 사람들로 복잡해졌다.
모처럼 기분 좋은 주목을 받은 내가 환하게 웃으며 질문에 답해주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길 막지 말고 비켜.”
“죄송해요, 좀 지나갈게요.”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상반된 두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알 수 있었다.
모두가 힘겨워하는 본과 1학년 1학기를 4.4라는 놀라운 학점으로 수석을 차지하며 수능 전국 1등의 위엄을 떨쳤던 장현주.
그리고 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부드러운 인상의 박지은.
두 사람 모두 입학 당시부터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했지만, 그들의 이미지는 정 반대였다.
사람들이 터준 길을 앞장서서 지나가던 장현주는 내 얼굴을 슬쩍 바라봤지만 별다른 흥미가 없다는 듯 이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뒤를 따르던 박지은은 봄날의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네었다.
“와, 너 서현이 맞지? 얼굴을 크게 다쳤다더니 괜찮아져서 정말 다행이야!”
“하하, 고마워 지은아. 방학 잘 보냈지?”
“그럼. 그렇게 쳐다보니까 막 설레는데? 호호, 이제 곧 강의 시작하니까 나중에 또 이야기 하자.”
어느새 시계는 8시 28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지난 한 학기 동안 익숙했던 뒤에서 두 번째 줄 구석 자리로 향했다.
* * *
해부학, 신경해부학, 조직학, 생리학, 면역학, 생화학.
이놈들이 본과 1학년 2학기를 맞이하여 내가 상대해야 할 녀석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모두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해부학이었는데, 교수 백인성이 항상 하위 10% 학생에게 재시를 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끔씩 뿌리는 F 역시 요주의 대상.
다음 순서인 신경해부학은 재시는 없지만 가끔 F가 있어 역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외 나머지 과목들은 최소한 D0는 주는데다 재시도 없어 일단은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 김영도 선배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아니라고.’
짧았던 지난 방학동안 호기심에 공부했던 토익 시험에서 만점을 받으며 두뇌를 점검했던 나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해부학 첫 수업을 맞이했다.
“이번 시간은 위, 그리고 십이지장 까지네. 뭐야, 식도는 안 배우나?”
내 혼잣말에 대각선 뒤쪽에 앉아 있던 덩치 큰 사람이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식도는 중간고사 끝나고 흉부 들어갈 때 배울 거야.”
“아, 감사합니다. 저.......”
“윤서현 맞지? 나는 최종훈. 하위권끼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맨 뒷줄을 차지한 것은 모두 유급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눈치를 보니 그는 김영도 선배와 동기인 것 같았다.
‘저 사람도 두 학번 위였군.’
내가 처음 보는 선배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흰 머리에 각진 턱, 살집이 제법 있는 모습의 백인성 교수가 특유의 둔탁한 발음으로 두툼한 강의록을 기계처럼 성의 없이 읽기 시작하면서 2학기 첫 해부학 수업이 시작되었다.
두 시간 동안 소화해야할 파워포인트는 모두 175장.
공부 의욕이 그리 많지 않은 뒷줄 곳곳에서는 점점 고개를 쳐박고 조는 사람이 늘어났다.
지난 학기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정신없이 넘어가는 화면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은 지금 반짝이고 있었다.
‘위 벽은 mucosa, submucosa, muscularis externa, serosa로 구성되어있고, 이 가운데 muscularis externa는 inner oblique, circular, longitudinal로 되어 음식물을 잘 혼합하고 분쇄할 수 있다......’
위의 세부 구조와 그 주변을 지나는 동맥, 정맥들의 위치가 마치 손에 잡힐 것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파워포인트가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펼쳐진 위의 모습에 디테일이 추가되었다.
그렇게 내가 마른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지식을 습득하는 동안 눈 깜짝할 사이 두 시간이 끝나 버렸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오후에 실습 잘 하고 내일 보자.”
강의를 마친 백인성 교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사라졌다.
다음 해부 수업은 내일이 아니라 모레였지만, 당연하게도 그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휴, 첫날부터 정신없이 잠들어 버렸네. 서현아, 너는 필기 좀 했냐?”
“아, 필기는 안 했습니다.”
머릿속에 모든 지식이 들어가 있었기에 굳이 펜을 들 필요가 없었지만, 내 대답을 다르게 받아들인 김영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포기하면 편해. 우리는 족보나 달달 외우자고.”
이번 학기에는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야심차게 앞쪽 자리를 차지했던 절친 박성우는 허옇게 질린 표정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으아, 나도 그냥 뒤에 앉을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아직 자리가 몇 개 남았으니까 얼른 건너 와라 성우야.”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하하, 서현이 너는 어때?”
하지만 녀석은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알겠다는 듯 비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다. 강의록이 깨끗하네. 내가 괜한 걸 물었다. 미안해 친구야.”
“인마, 그게 아니라. 이 몸은 지식을 이미 머릿속에 다 집어 넣었거든?”
하지만 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굳이 그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얌전히 다음 수업인 조직학 교과서를 꺼냈다.
* * *
오전 수업이 모두 끝나고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나는 지난 한 학기 동안 익숙해졌던 해부 실습실로 향했다.
카데바 한 구에 배정된 학생은 모두 여섯 명, 우리 조의 테이블에는 건장한 젊은 남자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1학기 범위였던 상, 하지는 이미 해부가 끝나 그 구조가 세세하게 드러나 있었고 이제는 복부를 갈라 위를 노출할 차례.
1학기에는 상위권 동기들이 하는 것을 거의 구경만 했던 나지만, 오늘은 달랐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오늘 배운 지식들을 되새기며 나는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뭐야, 서현이 너도 하려고?”
우리 조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던 유성준이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어, 뭐 문제라도 있어?”
“......아니, 중요한 구조를 잘못 자르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다른 조원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모두가 다 그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굳이 마찰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얌전히 뒤로 물러났고, 유성준과 임경영 두 사람이 나서 피부를 자르고 지방을 걷어내며 위와 십이지장을 노출시키기 시작했다.
해부 실습 시간은 오후 한시 반부터 다섯 시 반 까지.
하지만 첫날이니만큼 할 일이 많아서인지 다섯 시가 넘었음에도 오늘 실습을 마무리한 조는 없었다.
죽이 잘 맞는 콤비인 유성준과 임경영이 열심히 손을 놀린 덕에 우리는 그럭저럭 시간 안에 마무리 하는 듯 했지만, 막판에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건 뭐지?”
“여기가 ampullar of vater고, 이건 common bile duct니까.....”
“pancreatic duct인가?”
“그럼 이건?”
“.....도감을 아무리 봐도 이런 구조물은 없는데?”
“그냥 장간막이나 근섬유 같은 의미없는 거 아닐까? 잘라 버리는 건 어때.”
“아냐, 아무리 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아. superior pancreaticoduodenal artery 아닐까?”
“야, 만일 혈관이라면 안에 피가 굳어 있을 테니까 이렇게 부드럽지 않을 거야.”
“그건 그렇지......”
두 사람은 가늘고 긴 관 모양의 무엇인가를 두고 생각이 갈린 듯했다.
얼른 실습을 마치고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싶었던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파헤쳐진 카데바의 복부를 슬쩍 보고 말했다.
“그거, accessory pancreatic duct네.”
“......뭐라고? 그런 건 도감에 없는데?”
“강의 시간에 배웠잖아. pancreatic buds의 ventral duct는 main pancreatic duct가 되고, dorsal duct는 거기 흡수 되지만 일부 사람에게서는 accessory pancreatic duct로 남아 있다고.”
“허, 그런 내용이 있었나?”
“나는 처음 듣는 것 같아.”
“조교님한테 물어 볼까?”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서 답을 듣고 혼란에 빠진 그들은 선뜻 내 의견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그때 갑자기 내 등 뒤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내가 좀 볼까?”
“어, 백인성 교수님?”
“알았으면 좀 비켜 보게. 어디 내가 한번 확인해 줄 테니.”
좀처럼 해부 실습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백인성 교수였지만 오늘은 학기 첫날이라서인지 학생들을 둘러보는 중인 듯했다.
그는 내가 내놓은 답이 흥미롭다는 듯 카데바의 십이지장 주변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말했다.
“accessory pancreatic duct 맞군, 아주 잘 했어. 학생 이름이?”
“윤서현이라고 합니다.”
“......윤서현?”
내가 이름을 말한 순간, 백인성 교수는 놀랍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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