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의 의대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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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숲
작품등록일 :
2025.11.09 13:03
최근연재일 :
2025.11.1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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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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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3. 경쟁

DUMMY

잠시 관찰하듯 나를 바라보던 백인성 교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지난 재시에서 만점을 받았던 그 학생이었군. 학기 중에는 공부를 안 했던 건가? 그 정도 실력이면 애초에 재시를 볼 이유가 없었을텐데.”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됐네. 기본적으로 다들 우수한 사람들이니, 뭔가 사정이 있었을 수는 있지. 그건 그렇고 잠깐 나 좀 보세.”


말을 마친 그가 실습실 안쪽 벽에 있는, 조교들만이 종종 드나드는 문을 향해 걸어가자 나는 약간 당황하면서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잠시 걸어가니 그곳은 해부학 교실의 연구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거기서 가장 큰 방인 자신의 사무실로 나를 안내한 백인성 교수가 내게 자리를 권하자 조교 한명이 순식간에 커피 두 잔을 가져와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해부학 교실의 왕이라더니, 분위기가 대단하네.’


해부학과 관련된 각종 표본이 흩어져 있는 낯선 공간을 신기하다는 듯 둘러보던 내게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백인성 교수가 평소와는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스크를 벗고 보니 아주 잘생겼군.”


“감사합니다.”


“자네에게 아주 좋은 제안을 하나 하겠네. 혹시 성형외과에 관심이 있나?”


“......네?”


예상하지 못했던 물음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릴 생각이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당연히 자네도 관심이 있겠지. 사실 우리 해부학 교실과 성형외과는 종종 연구나 과제를 함께 진행한다네. 우리가 관리하는 카데바를 활용해서 말이야.”


“그렇겠네요.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기 어려운 실험 같은 것도 있겠고.”


“말을 잘 통하는 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안면부 근육을 디테일하게 해부할 사람이 한명 필요해. 한창 바쁜데 대학원생 한 놈이 갑자기 그만둬 버렸거든.”


그는 이번이 성형외과 교수에게 점수를 딸 아주 좋은 기회라면서 내게 해부학 실습 시간과 방과 후를 이용하여 카데바 한 구의 안면 해부를 할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얼굴은 아직 안 배웠는데요.”


“그런 건 도감을 보고 잘 따라 하면 충분해. 모르는 건 조교들한테 물어 보고. 알겠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일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니까.”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보니, 백인성 교수가 처한 상황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카데바와 인력을 제공하여 성형외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등 여러 임상 과들과 협업, 논문에 이름을 올려 연구 업적을 쌓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원생 한명의 갑작스러운 사직 때문에 인력 운용에 차질이 생겨버리자 그는 공동연구자 가운데 가장 연차가 낮은 조교수 한명의 보조 인력으로 적당한 학생을 하나 데려온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말에 내가 썩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을 망설이자 백인성 교수는 준비했던 당근을 내밀었다.


“이번 학기 자네 실습 점수는 만점을 주겠네.”


“......”


“그리고 해부학 학점도 한 단계 올려 주지. 길게 생각해 보라고. 본과 1학년이 성형외과 교수와 안면을 틀 만한 기회는 결코 흔하지 않아.”


단언하는 듯한 그의 말에 나는 얼마 전 인연을 쌓았던 성형외과 전상욱 교수를 잠시 떠올렸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어이, 박군! 이 학생 데려가서 7번 스터디 설명해 줘라!”


분명 인기척이 전혀 없었음에도 순식간에 그림자처럼 모습을 드러낸 박군이라는 대학원생은 나를 연구실 안쪽에 위치한 또 다른 실습실로 안내했다.


철로 만든 덮개가 덮혀 있는 여덟 개의 테이블 가운데 뒤편에 있는 한 곳으로 다가간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을 들어 올렸다.


“이, 이건......?”


“뭐야, 카데바 처음 봐?”


그곳에는 학생 실습에 쓰이는 것과는 전혀 상태가 다른 시신이 누워 있었다.


사망한 지 오래 된 노인이 아닌, 방부 처리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젊은 여성.


박군은 내 반응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도감 한 권을 가져와서 펼쳐놓고 짧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니까, 특히 입 주위나 눈 쪽 근육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 근육이 여러 겹인 곳은 잘 박리해서 분리하고. 알았지?”


“......네.”


“자, 이건 연구 계획서야. 읽어봐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가지고 있으라고. 모르는거 있으면 알아서 찾아 봐, 인터넷에 다 있어.”


자신의 볼일을 다 마쳤다는 듯 박군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잠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던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연구 계획서를 집어 들었다.


“어디 보자, ‘각 부위의 피어싱과 그 하중에 따른 표정 근육의 움직임 변화에 대한 연구.’라, 생각보다 재미있는 주제네.”


“그렇게 봐 주면 고맙지. 그런데 서현이 네가 왜 여기 있냐?”


나는 갑작스럽게 등 뒤에서 들려온 귀에 익은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전상욱 교수님?”


“어, 그거 내가 준비하고 있는 논문 주제야. 그런데 백인성 교수님은 아주 유능한 학생을 붙여 준다더니 그게 너였어?”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너를 못 믿는 건 아닌데, 지난 학기에 해부학 재시 뜨지 않았었니?”


“그래도 재시는 나름 잘 봤습니다.”


“뭐, 겨우 부탁해서 카데바를 배정받은 입장이라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일단 왼쪽 얼굴부터 시작하자.”


“원래 한쪽을 먼저 다 해부하고 나머지를 하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야. 왼쪽을 망치면서 연습 좀 하라고. 연구는 오른쪽으로 하면 되니까.”


“아......”


“그러니까 부담 주려는 건 아니라는 거지. 편하게 하라고.”


전상욱 교수는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쳐주었다.


그가 이번 연구의 목적과 안면부 해부 요령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이, 큰 키에 험상궂은 얼굴을 한 사람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실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이, 한 선생. 고생이 많네.”


“......안녕하십니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전상욱에게 인사를 건넨 그는 나를 흘깃 바라보고는 물었다.


“이쪽이 그 학생인가요?”


“어, 본과 1학년 윤서현이야.”


얼핏 봐도 불만이 상당해 보이는 거구의 남자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나는 3년차 한필준이다. 어휴, 내가 1학년하고 나란히 앉아서 이 짓을 하다니.....”


“황건희 과장님 지시니까 어쩔 수 없지. 힘내라. 내가 다 안쓰럽네.”


그의 말에 의하면 성형외과 과장인 황건희 교수는 해부학 교실의 인력 운용에 차질이 생기자 자신의 연구에 레지던트를 동원하기로 결정했다.


1, 2년차는 병원 일로 몹시 바빴기에 그나마 일이 적은 3년차 가운데 한 명을 골라 이곳으로 내려 보냈던 것.


본과 1학년 학생에게 레지던트 3년차는 까마득하게 높이 있는 존재였지만 이런 이유로 나는 갑작스럽게 그와 나란히 앉아 안면부 해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너 도와 줄 여유 없으니까, 알아서 잘 해.”


“알겠습니다, 선생님.”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책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고 해부를 시작하는 그와 달리 나는 연구계획서와 교과서, 도감을 꼼꼼히 읽어 보며 머릿속에 안면부 구조를 그려넣기 시작했다.


* * *


오후 실습 시간이 끝나면 본과 1학년들은 대부분 학생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자습실로 이동해서 공부한다.


하지만 해부학 교실에서 컵라면을 얻어먹으며 연구 과제를 준비했던 나는 저녁 9시가 넘어서야 겨우 자습실로 향할 수 있었다.


복도에 있는 자판기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힘없이 걸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반갑게 말을 걸어왔다.


“어이, 윤서현! 너 어디 갔었냐?”


“해부학 교실요.”


“거긴 왜?”


“몰라요, 백인성 교수님이 갑자기 뭔가 이상한 걸 시키던데요.”


내게 말을 걸었던 것은 3번째 시도 만에 겨우 1학년 1학기를 통과했던 김영도 선배였다.


얼핏 봐도 공부를 하다가 나온 것 같지는 않은 그들의 모습에 나는 웃으며 물었다.


“형님들은 어디 다녀오셨어요?”


“응? 우리 방금 전까지 자습실에서 공부하다가 나왔는데?”


“에이,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들떠 있으신데. PC방 다녀오셨죠?”


“......어떻게 알았어?”


”다들 기분 좋게 웃고 계시는 걸 보니 오늘 전적은 괜찮으셨나봅니다.“


“......하하, 우리 팀이 1등을 두 번이나 했어.”


김영도, 최종훈을 비롯한 강의실 뒷자리에서 낯이 익은 네 명은 사실 ‘배틀 서바이버’라는 인기 게임을 즐기다 왔다면서 웃었다.


“영도 형, 우리 2학기에는 같이 공부 열심히 하기로 했잖아요.”


“에이, 초반부터 너무 달리면 지쳐. 다음 주 부터는 게임 끊고 공부만 할 거야.”


“이번 주에는 노시겠다는 거죠?”


“......그렇게 들렸나? 하하하!”


웃으며 게임 내용을 복기하기 시작하는 그들을 뒤로 하고 나는 콜라 한 캔을 뽑아서 자습실 안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귀가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나는 안쪽 구석에 있는 지정석에 앉아 오늘 오전에 배웠던 해부학과 생리학을 복습하기 시작했다.


‘이게 이렇게 쉬웠나?’


강의록을 쉼 없이 한 번에 쭉 읽어내린 나는 과거의 시험 문제들을 모아 놓은 ‘족보’를 집어 들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쉽게 풀리는 문제들.


암기가 거의 전부인 해부학뿐만 아니라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는 생리학 까지 순식간에 마무리 한 나는 책을 덮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뭐야? 이제 겨우 한 시간 지났네.’


시계가 열 시를 가리키자 반 정도 되는 사람들이 짐을 챙기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빨리 오늘의 복습을 끝낸 나 역시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윤서현. 오자마자 가는 거야?”


내가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것은 대각선으로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던 지난 학기 1등 장현주였다.


“오늘 배운 건 다 봤어.”


“너무 대충 보네. 그러다가 또 재시 뜬다.”


“......이번에는 괜찮을 걸?”


“뭐야,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쨌든 이제 집에 갈 거지?”


같은 골목에 있는 건물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지난 학기에도 장현주, 박지은과 나는 종종 같이 하교하고는 했었다.


의과대학에서 걸어 나와서 한국대병원 앞 사거리에 도착한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보행 신호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어이,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아, 교수님. 퇴근이 늦으시네요.”


“교수 중에서는 제일 막내니까. 어쩔 수 없지.”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 것은 성형외과 전상욱 교수였다.


“그나저나 나 때문에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거 아닌가? 좀 미안한걸.”


“괜찮습니다. 예습도 되고, 나름대로 재미있는걸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지. 이런, 버스 왔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멀리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먼저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현주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방금 그거, 성형외과 전상욱 교수님 아니야?”


“맞아.”


“네가 성형외과 교수님을 어떻게 알아?”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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