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의 의대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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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숲
작품등록일 :
2025.11.09 13:03
최근연재일 :
2025.11.1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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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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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압도

DUMMY

두 번째 해부학 수업 시간이 시작되자, 강의실 곳곳에서 강의록의 양을 확인한 학생들의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두 시간 동안 배워야 할 파워포인트는 무려 220장.


첫날 야심차게 앞자리에 앉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긴 절친 박성우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게 뭐야. 췌장, 비장에 간, 담낭, 담도까지 오늘 한 번에 다 배운다고?”


“그러게, 양이 좀 많네.”


“진도 분배가 왜 이따위인거야? 상, 하지를 배울 땐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교수님이 근육 쪽에만 관심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하더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백인성 교수는 학생들의 반응 따위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빠르게 화면을 넘기며 성의 없는 목소리로 강의록을 읽기 시작했다.


앞쪽에 앉은 학생들은 필사적으로 볼펜을 움직이며 필기하기 위해 애썼지만, 우리가 위치한 뒤편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진도가 나가는 속도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한 박성우는 족보를 꺼내 공부하기 시작했고, 김영도와 최종훈 두 선배는 어제도 늦은 시간 까지 PC방에서 게임을 했다더니 어느새 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패잔병들을 뒤로 하고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백인성 교수의 목소리는 무시하고 강의록을 빠른 속도로 훑어 내려가던 나는 도감과 교과서 까지 꺼내어 해당 부분을 읽었다.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는 이틀 전 배웠던 위, 십이지장과 오늘 분량인 췌장, 비장, 간, 담낭, 담도계의 해부도가 완벽하게 자리했고, 그러고도 오히려 시간이 남아 버렸다.


집중을 끝내고 긴장이 풀린 내 시야에 가장 앞쪽 가운데 자리에 앉아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장현주와 박지은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틀 전, 하교 길을 같이 걸어가던 장현주가 평소 답지 않게 말을 많이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윤서현 너도 성형외과에 지원할 생각이 있어?”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냐. 우린 이제 겨우 본과 1학년이잖아?”


“순진한 소리 하지 마. 벌써 인기과 레지던트들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애들도 있는 거 몰라?”


“헐. 그건 좀 놀라운데.”


“담배도 피우지 않으면서 흡연 구역을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고, 특히 남자애들은 동아리 선배가 부르면 새벽에도 달려 나가서 같이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기도 하잖아.”


“그런 짓을 하기에는 너무 이른 거 아닌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무엇보다 일단 성적이 좋아야지. 그런 의미에서 서현이 너, 공부 좀 열심히 해.”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거든?”


“지난 학기에는 하마터면 유급할 뻔했잖아. 성형외과는 아무나 갈수 있는 곳이 아니야.”


아무래도 장현주는 내가 성형외과를 노린다고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머뭇거리던 그때, 옆에 서 같이 걷던 그녀의 단짝 박지은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나중에 같이 개원할 거야. 현주는 성형외과, 나는 피부과. 미용 전문으로 강남에 멋진 클리닉을 만들려고.”


“잘 어울리네. 그래도 너희 같은 뛰어난 사람들이 미용을 하다니, 좀 아쉬운걸?”


“호호, 뛰어나다니.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그래도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압도적인 1등인 장현주 만큼은 아니지만 박지은 역시 상위권. 성적뿐만 아니라 눈부신 외모로 선배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두 사람은 아마도 원하는 과가 어디든 합격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성형외과라,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 어느새 필기에 집중하던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마지막 파워포인트를 넘긴 백인성 교수는 강의를 끝내고 짧은 인사말과 함께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어휴, 죽겠다. 뭐 이렇게 많아? 이걸 사람이 다 외울 수 있는 거야?”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족보를 훑어 본 소감은 어때?”


“매년 문제가 너무 달라. 좀처럼 패턴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번 학기에는 정말 재시를 피하고 싶은데!”


“상대평가니까, 하위 10%에만 안 들면 되잖아.”


“쌍시 떴던 사람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은걸?”


우리가 티격대는 소리에 잠이 깬 김영도 선배가 입가에 흐르는 침을 스윽 닦으며 말했다.


“뭐야, 벌써 끝났어? 그럼 밥 먹으러 가자.”


“형님, 아직 3, 4교시 면역학 수업이 남았어요.”


“......이런, 배고픈데. 서현아 나 대출 좀 해줘. 가서 김밥이라도 사먹어야 겠다.”


“알겠어요. 그런데 아예 안 들어오시게요?”


“어어, 일일퀘나 깨 두려고. 오늘 저녁에는 PC방 안 가고 진짜로 자습실에서 공부할 거거든.”


김영도의 말에 옆에 앉아있던 최종훈 역시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박성우에게 대출을 부탁했다.


빠른 속도로 강의실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면역학 교과서를 꺼냈다.


* * *


점심 식사 후 또 다시 찾아 온 해부 실습 시간, 해부용 낡은 가운을 걸치고 마스크를 착용한 나는 우리 조의 카데바를 해부하고 있는 유성준과 임경영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윤서현. 오늘은 너도 좀 해 볼래?”


“그럴까?”


“맨날 우리 두 사람만 하니까 뭔가 불공평하잖아. 너도 잘 아는 것 같은데 좀 해.”


지난 학기부터 다른 조원들은 구경만 하게하고 카데바를 독차지했던 두 사람의 말에 나는 약간 어이가 없어 하면서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타난 조교 ‘박군’이 내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면서 말했다.


“학생은 이쪽.”


“......네?”


“네는 무슨. 얼른 따라 와.”


나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놀라는 조원들을 뒤로 하고 실습실 안쪽의 문으로 향했다.


연결 통로를 건너서 해부학 교실 연구실에 도착하자 느긋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백인선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한가해 보이네.’


고개를 살짝 숙여 그에게 인사를 건넨 나는 안쪽에 있는 연구용 실습실로 들어갔다.


‘여긴 사람이 아홉 명이나 있는데 살아 있는 건 나 밖에 없군.’


잠깐 섬찟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마음을 다잡은 나는 철제 덮개를 열고 이틀 전에 이어서 왼쪽 얼굴의 해부를 시작했다.


“이마는 얼추 끝냈고, 이제 눈 차례네. 구조가 복잡하니 조심해야겠다.”


눈에서 가장 중요한 근육은 Orbicularis oculi 로. orbital part, palpebral part, lacrimal part로 나뉘어져 있는 이 것은 안구 주위를 둥글게 감싸듯 위치해 있었다.


‘안면 신경 손상 시 이 근육이 마비되면 lagophthalmos(폐안불능)이 발생한다고 했었지?’


Orbicularis oculi를 이루는 세 부분 가운데 lacrimal part는 특히 Homer‘s muscle이라고 불리는데, posterior lacrimal crest를 따라 위치해 있으며 눈물 배출을 조절한다.


‘이게 마비되면 epiphora, 말 그대로 눈물이 새는 거군.’


물론 아직 안면부 해부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교과서와 도감, 연구계획서를 읽고 관련 부위에 대한 지식을 완벽하게 습득한 내게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좌측 눈 주위 근육과 눈물샘 등 기관을 완벽하게 드러낸 내가 다음 순서로 볼과 귀 쪽을 손대려는 바로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하고 있어? 열심히 해. 전상욱 교수님이 온화해 보이지만 한번 화가 나면 엄청나게 무섭다고.”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어휴, 3년 차가 되어서 뭐하는 짓이냐 이게. 내 논문도 아니고.”


뒤늦게 나타난 것은 성형외과 과장 황건희 교수의 카데바를 맡은 3년 차 레지던트 한필준이었다.


그는 투덜거리며 카데바의 머리맡에 의자를 끌어 앉아 거친 손놀림으로 해부를 시작했다.


이후 대화 같은 것은 전혀 없이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한필준은 크게 기지개를 켜더니 내게 말했다.


“어이, 학생. 담배 펴?”


“아, 저는 비흡연자입니다.”


“그래도 혼자 피면 심심하니까 같이 가자고. 말동무나 좀 하자.”


“네, 선생님.”


실습실에서 제법 먼 곳에 위치한 흡연 공간에는 다른 직종으로 보이는 사람들 대 여섯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연초와 라이터를 꺼낸 한필준은 담배에 불을 붙이려 했지만, 라이터 기름이 다 되었는지 몇 차례 실패하더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불 있어?”


“제가 담배를 안 피워서......”


“그래도 좀 가지고 다녀. 혹시 모르니까.”


결국 나이 지긋한 임상병리사 한 명에게 불을 빌린 그는 길게 한 모금을 빨았다가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서, 왜 성형외과를 지망하는데?”


“아, 그런 건 아닙니다. 저는 그냥 어쩌다보니 끌려왔어요.”


“전상욱 교수님 지인 아니었어? 나는 낙하산이구나 했지.”


나는 백인성교수의 눈에 띄어 연구에 투입된 내용을 간단히 설명했지만 그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거칠게 담뱃재를 털어냈다.


“얼른 들어가자. 후딱 끝내고 술 마시러 가야 해.”


“네 선생님.”


하지만 연구용 실습실에 도착한 순간 한필준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교수용 가운을 입은 두 사람이 해부가 한창 진행 중인 카데바를 둘러보고 있었던 것이다.


공손하게 두 손을 모은 상태로 서 있는 전상욱 교수 옆에는 큰 키에 마른 체형, 신경질적인 인상의 노교수가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 한 선생. 어디 갔다 왔나?”


“아, 여기 학생이 잠깐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나갔다 왔습니다.”


“담배 핀 건 아니지?”


“절대 아닙니다, 교수님.”


“그래, 그런 건 손을 대면 안돼. 그나저나 근육 층 박리를 아주 잘 했군. 훌륭해.”


“어......”


“이렇게 섬세하게 구조를 드러내면서도 무리 없이 조직을 당겨서 모양세를 갖춰 놓았어. 역시 3년 차가 되더니 솜씨가 아주 좋아졌군.”


“그, 그러니까 교수님.”


“반면에 저기 학생이 한 걸 보라고. 손이 너무 거칠어. 물론 학생이니 그럴 수 있지만. orbicularis oculi가 한 덩어리로 보이잖아. 이래서는 전상욱 교수가 한 번 더 손을 댈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황건희 교수가 말을 이어 갈수록 자리의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뒤늦게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 그가 전상욱을 바라보자 그는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 교수님. 저 쪽이 교수님이 연구하시는 카데바 입니다.”


“......뭐라고?”


“그러니까, 저게 한필준 선생이 해부를 했던......”


황건희 교수는 순간적인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시리도록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


“한필준 선생.”


“네, 교수님.”


“자네, 전 부터 전상욱 교수하고 같이 연구를 하고 싶어 했었던가?”


“제가요?”


“그래. 그리고 여기 우리 학생은 아주 우수하군.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내가 직접 지도해 주면 아주 좋아 질 거야. 그렇지 전상욱 교수?”


눈치 빠른 전상욱은 순간적으로 표정을 부드럽게 고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교수님. 제가 여기 한필준 선생과 이쪽 카데바에서 연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특별히 레지던트 선생을 붙여 주는 거니 논문이 완성되면 꼭 좋은 곳에 투고하게.”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한 황건희 교수가 먼저 밖으로 나가자, 전상욱 교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한필준, 잠깐 나좀 보자.”


그리고 순식간에 혼자 남겨진 나는 여전히 당황한 채로 바뀐 카데바 옆에 놓여 있는 황건희 교수의 연구 계획서를 내려다보았다.


[안면 부분 결손 환자에서 재건 방법 별 미용 및 기능 평가]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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