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의 의대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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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숲
작품등록일 :
2025.11.09 13:03
최근연재일 :
2025.11.1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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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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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감각

DUMMY

갑작스럽게 황건희 교수의 연구 과제에 참여하게 된 지도 어느새 2주가 지났다.


그 동안 나는 매일 저녁 식사 후 해부학교실 연구실을 찾아가 연구용 카데바의 안면 해부에 집중했다.


교과서와 도면, 그리고 바뀐 연구 계획서를 완전히 습득한데다 지난 사고 이후 눈과 뇌, 손의 협업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게 변한 나는 2주 라는 짧은 시간에 카데바의 얼굴 근육을 완벽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된 황건희 교수는 크게 흡족해 하며 나를 성형외과 회식 자리에 데려갔다.


“자, 자네가 여기 앉으라고. 사양 말고 어서.”


“제가 이 자리에 말씀이십니까?”


“그럼, 그럼. 박 선생 자네는 어디 가나? 여기서 고기 구워야지?”


“......네, 교수님.”


나는 황건희 교수의 강권에 할 수 없이 그와 같은 테이블,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치프 레지던트가 고기를 굽는 불편한 상황 속에서 나는 그가 연신 권하는 양주를 마셨다.


“한우는 역시 양주하고 마셔야 해, 그렇지 않나?”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양주병을 들고 자신의 잔을 채우는 황건희 교수에게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전상욱 교수가 만면에 미소를 띄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연구는 잘 되어 가나? 피어싱 어쩌고 하던......”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필준 선생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덕분에 다음 주 금요일 쯤에는 실험을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허허허, 너무 느린데? 우리는 벌써 해부가 다 끝났어. 여기 윤서현 학생 실력이 아주 대단하거든.”


그 말에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던 전상욱은 순식간에 웃음기를 되찾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게 다 교수님의 뛰어난 지도 덕분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도 국제 학술지에 투고하실 계획이시지요?”


“당연하지! 국내 학술지는 하등 쓸모가 없어. IF(impact factor)에 상관없이 일단 외국 것인게 중요해.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맞습니다, 교수님.”


혼자 신이 나서 연신 술잔을 비웠던 황건희 교수는 결국 1차 자리가 끝나기도 전에 크게 취해버렸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 난 그는 구석에서 혼자 갈비탕을 먹고 있던 제약회사 직원을 손짓으로 불러서 말했다.


“이봐, 다른 사람들은 카드 줘서 2차 보내고. 나는, 알지?”


“물론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물 좋은 곳을 준비해 뒀습니다, 교수님.”


뭔지 모를 대화를 잠시 주고받은 황건희 교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 그럼. 다들 내일 일에 지장 없게 적당히 마시고 들어가게. 나는 이만 먼저 갈 테니까.”


“안녕히 가십시오, 교수님.”


갑작스럽게 그가 자리를 뜨자 나는 약간 어색해진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론 전상욱 교수가 있기는 했지만, 나머지 사람들과는 안면이 없었기에 불편한 기분을 감추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와는 다르게 회식 자리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황건희 교수의 모습이 가게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두 번째 서열인 최형규 교수가 한결 편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 피곤한 사람은 먼저 들어가고. 고기 덜 먹은 사람? 거기 아직 남았어? 그럼 30분만 더 먹고 2차는 호프집으로 가자.”


제법 취한 것 같은 전상욱 교수는 술 대신 제로 콜라를 주문해서 마시며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너, 해부를 아주 섬세하게 잘 하던데? 무슨 미술 같은 거라도 배웠던 거야?”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


“열심히 한다고 다 되면 누구나 명의 하지. 곰손은 아무리 해도 늘지 않거든. 한필준 선생처럼 말이야.”


“아.....”


“그나저나 우리 성형외과 의국 분위기가 좀 이상하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황건희 교수님은 여기 한국대병원 뿐만 아니라 성형외과 학회에서도 힘이 아주 대단하셔.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학회장을 지내셨을 정도거든. 더 이상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네, 교수님.”


“그래도 다들 대체로 좋은 사람이니까, 나중에라도 성형외과에 더 관심이 생기면 언제든 말 해.”


“감사합니다만, 아직은 무슨 과를 할지 딱히 정하지 않았어요.”


“그래, 그래. 그래야 본과 1학년답지.”


전상욱 교수는 1차 자리가 끝나자 내게 귀가해서 쉴 것을 권했다.


나는 그의 마음씀씀이에 감사하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나중에 좀 덜 바빠지면 논문이라도 하나 같이 쓰자고. 1저자는 네가 하고, 교신 저자를 내가 하는 거야. 좋지?”


“감사합니다.”


“일만 시키지는 않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편할 때 연락 해.”


아무래도 그는 내가 몹시 마음에 들었는지 어깨에 손 까지 올리며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리에 있던 레지던트들로부터 호기심이 잔뜩 섞인 시선을 받으며 나는 자취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다음날 저녁, 드디어 황건희 교수에게서 해방된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자습실로 향했다.


그런데 자리에서 세면도구를 꺼내들고 화장실로 가려던 나를 해부학 실습 같은 조 유성준이 불러 세웠다.


“야, 윤서현!”


“왜?”


“너 어제 성형외과 회식 자리에 갔었다면서?”


“네가 그건 어떻게 알았냐?”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 데, 다 알지. 성형외과 지망하지 않는 다더니, 회식 자리까지 따라 가냐?”


“그야 오라고 하니까 갔지, 나도 별로 가고 싶지 않았어.”


“허, 어쨌든 인맥 쌓는 것도 좋지만 성적이 나쁘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 정도는 알아 둬.”


아무래도 유성준 이 녀석은 오해를 단단히 한 모양이었다.


일일이 변명하기도 귀찮은 일이었기에 나는 적당히 대답하고 양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한창 이를 닦고 있을 때 뒤에서 김영도 선배가 나타나서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오늘은 성형외과 안 갔네?”


“성형외과가 아니라 해부학 교실입니다.”


“그게 그거지. 안 바쁘면 시간 좀 내 줘.”


“.......무슨 일이신데요?”


“종훈이가 여자 친구 만나러 가서 파티가 한 명이 비거든. 같이 ‘배틀 서바이버’ 하러 가자.”


“형님, 이제 PC방 끊고 공부하기로 하셨잖아요!”


“흐흐, 그랬었지. 딱 한 시간만 하고 오자고. 오늘 일일 퀘스트 특전으로 ‘불타는 모자’를 준대.”


“......”


내가 어이없음과 한심함이 섞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김영도는 다급하게 내 손을 잡아 끌며 말했다.


“내가 아이스티 큰 걸로 쏠게. 이번에 새로 뚫은 곳인데, 알바도 아주 예뻐.”


“어휴, 그러면 딱 한 시간 만입니다. 그러고 와서 같이 공부하자고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가자! 전우야!”


나는 결국 신이 나서 앞장 서는 김영도 선배의 뒤를 따라 의대 건물 밖으로 향했다.


* * *


다음날 오후는 조직학 실습이었다.


전날 늦은 시간 까지 PC방에서 시간을 보냈던 김영도는 오전 수업 시간 동안 충분한 수면을 취해서인지 힘이 넘쳐 보였다.


“오늘도 갈 거지?”


“에이, 형님. 저는 이제 공부 할 겁니다. 형님도 그러다가 또 유급 하시면 어떻게 해요?”


“우리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말자. 통계적으로 1학년 1학기에 비해 1학년 2학기는 유급하는 비율이 현격하게 낮아지거든?”


“......그야 2학기를 듣는 건 한번 걸러진 사람들이니까 그러죠.”


“그, 그런가. 어쨌든 어제 알바생, 엄청 예뻤지?”


“뭐, 그렇긴 하더라고요.”


“너만 서비스 음료를 주던데. 아무래도 관심이 있는 거 아닐까?”


“연애는 생각 없습니다.”


“그냥 공부만 하기는 네 얼굴이 너무 아깝지 않냐? 학창시절에 연애도 하고 그러는 거지.”


“사실 형님이 그 알바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고요?”


“흠, 흠. 너하고 같이 가면 대화를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김영도의 은근한 제안에 피식 웃으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 오후는 조직학 실습.


조별로 배정된 샘플 슬라이드 상자를 가운데 두고, 각자 현미경 하나씩을 차지한 채 앉은 학생들은 집중해서 표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배율을 1,000배로 맞춰서 관찰한 뒤 그것을 실습 노트에 그려서 제출하는 것 까지가 오늘의 일정으로, 모두가 미리 준비한 색연필이나 볼펜 등을 꺼냈다.


오전 강의 시간에 배웠던 비뇨기계 조직들이 오늘의 범위.


한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벌써 25년째 조직학을 가르치고 있는 푸근한 인상의 김자경 교수는 학생들에게 오늘 유의해서 확인해야 할 구조물들을 간단하게 알려주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사실 마음속은 전혀 평온하지 않은 상태였다.


‘큰일이네. 정부 과제 입찰이 이틀 남았는데. 이번에도 떨어지면 올해 연구 업적을 어떻게 채우지?’


의과대학에 오래 있었지만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 탓에 다른 교수들과의 교류와는 거리가 멀었 던 그녀는 매년 할당된 연구 업적에 힘겨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처럼 병리학 교실과 연계하여 제법 큰 규모의 정부 과제에 연구 계획서를 제출하기로 결정했었다.


야심차게 일을 추진하며 최근 며칠 동안 밤을 새며 열심히 준비했던 그녀는, 아무리 봐도 뭔가 임팩트 없이 밋밋해 보이는 계획서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뭔가 한 번에 심사 위원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것이 필요해.’


현미경을 관찰하거나, 노트에 조직 구조들을 그려 넣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실습실 구석에 앉아 고민하던 김자경 교수는 기분 전환도 할 겸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다들 고만고만하네. 쓸데없이 비싼 색연필을 쓴다고 점수를 잘 줄 생각은 없는데.’


비뇨기계 조직을 묘사한 학생들의 그림은 모두 비슷비슷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모두가 거의 같은 슬라이드를 보고 그리기 때문에 눈에 띄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정말 실사에 가깝게 잘 그리는 사람이 있었고, 반면 대충 성의 없이 그리고 딴 짓을 하는 학생들도 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지난 25년 동안 조직학을 가르쳐 온 김자경 교수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유 있게 걷던 그녀는 한 학생의 그림 앞에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 *


“야, 윤서현, 너는 색연필 없니?”


“깜빡 잊고 안 가져 왔어.”


“어휴, 한심하기는. 내 거 빌려줄까?”


“아냐, 괜찮아. 그냥 샤프로 그리면 되니까.”


“조직학 실습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무슨 소리, 도구가 중요한 게 아니거든.”


색연필을 안 가져왔다는 말에 장현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녀석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현미경에 보이는 조직을 그리기 시작했다.


‘단지 보이는 그대로 그리면 재미가 없지. 좀 다이나믹하게 묘사해 볼까?’


신장에서 여과 기능을 담당하는 사구체를 관찰하던 나는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샤프를 집어 들었다.


중앙의 사구체 모세혈관 덩어리와 그 둘레의 밝은 공간과 가장 바깥쪽을 얇게 둘러싼 편평 세포들.


Bowman‘s capsule을 구성하는 parietal layer, visceral layer.


3층으로 구성된 여과 장벽 (Fenestrated endothelium, lamina rara interna, slit diaphram)


활발하게 물질을 교환하는 podocyte와 vascular pole.


각종 cytokine을 분비하는 mesangial cell의 모습 까지.


단 한 자루의 샤프만으로 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아 비뇨기계의 조직 구조를 멋지게 묘사해냈다.


그런데 다섯 장의 종이를 가득 채우며 막 신장 부분을 끝냈을 무렵, 나는 누군가가 내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교, 교수님?”


“아니, 그냥 하던 거 계속 해요. 그런데 학생 이름이 뭐죠?”


“윤서현이라고 합니다.”


“윤서현 학생, 실습 끝나고 잠깐 나 좀 볼까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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