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엘프의 배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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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한줄
작품등록일 :
2025.11.10 15:21
최근연재일 :
2025.11.1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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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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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침략

DUMMY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다.

어머니는 이미 잠들었고, 아버지는 경계 근무를 나간 듯 보이지 않았다.

창밖으로 낯익은 그림자가 비쳤다.


“에리온.”


속삭임이었다.

문틈 사이로 세나리데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뒤엔 라엔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나오라니까. 한 판만 더 하자.”


“이 시간에?”


“그러니까 더 재밌지.”


라엔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미쳤냐. 들키면 다같이 혼난다.”


“조용히 하면 돼. 내가 빛 낼게.”


세나리데가 손을 들었다.

손끝에 작은 빛이 맺히더니, 부드럽게 퍼졌다.

달빛보다 희고, 반딧불보다 따뜻한 빛이었다.

마치 숲이 그녀의 숨결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봤지? 어제 연습했어.”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속삭였다.

라엔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마나를 다룬 거야?”


“쉿.”


세나리데가 입술을 가볍게 가리며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몰래 숲 속으로 나섰다.

달빛조차 나무 사이에 갇혀 희미했다.


“이번엔 너가 술래야.”


세나리데가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멀리 가진 않을게, 약속.”


“열까지 센다.”


나는 나무에 손을 얹었다.


“하나, 둘, 셋···”


그들이 숨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감고 열을 셌다.


“아홉··· 열.”


눈을 뜨자, 숲은 고요했다.

나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바람 소리, 이파리의 흔들림, 먼 곳의 풀벌레 소리···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주변을 살폈다.

금세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세나리데가 가만히 서 있었다.

옆엔 라엔도 있었다.

둘 다 숨어 있지 않았다.


“잡았다!”


그렇게 말하며 다가갔을 때,

그녀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시선을 따라 앞을 보았다.

멀리 무언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세나리데가 작게 중얼거렸다.


“왜··· 저기서 불이 나지?”


마을 방향이었다.

라엔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누가 불을 피운 거야?”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우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바람결 사이로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딱, 딱

숲의 끝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자였다.


“에리온···”


세나리데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저거, 인간 맞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붉은 빛 사이로 그들이 걸어왔다.

불을 들고, 나무 사이를 가르며,

마치 숲의 어둠을 쫓아내듯.

그들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혔다.


“도망쳐야 해.”


라엔이 우리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불빛에 비친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게 멈췄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던 어떤 엘프의 얼굴도 아니었다.

손에는 쇠붙이들이 들려 있었다.

인간들이었다.

우리는 다급히 마을을 향해 뛰었다.

불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숲이 타오르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집 쪽에서 연기가 솟구쳤다.

불길이 나무를 타고 번지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기어올랐다.


“엄마!”


대답은 없었다.

대신 다른 소리들이 들렸다.


‘펑.’

불덩이가 공중에서 터지며 빛의 조각이 쏟아졌다.

불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려왔다.

바람이 붉게 물들었다.

마을은 불타고 있었다.

곳곳에서 감시단의 활이 번쩍였다.

나무 위에서, 엘프들이 불길 속으로 뛰어내렸다.

불꽃 너머로 철의 울림이 들렸다.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불을 들고, 쇠붙이를 휘둘렀다.

감시단의 화살이 스쳤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집 쪽으로 달려갔다.

집은 이미 절반쯤 무너져 있었다.

불길 사이로 무언가가 흔들렸다.


“엄마!”


대답 대신,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쪽에서 불길이 터졌다.

무너진 천장 아래,

어머니의 팔이 보였다.

반쯤 잿빛이 된 손이,

내 쪽으로 뻗어 있었다.


“엄마—!”


불길이 폭발하며 나무벽이 무너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바람이 일고, 뜨거운 파편이 얼굴을 스쳤다.


“에리온!”


낮고 거친 목소리.

아버지였다.

그는 불길 속에서 나왔다.

제복은 찢겨 있었고, 활 대신 짧은 검을 쥐고 있었다.


“어서 도망쳐라!”


“아버지, 엄마가—”


“지금 당장!”


아버지가 몸을 돌렸다.

인간 둘이 달려들었고, 금속음이 번쩍였다.

불빛 속에서 아버지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나는 그대로 굳었다.

눈앞에서 모든 게 느리게 무너져내렸다.

누군가는 불길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는 아이를 안은 채 뒤로 넘어졌다.

피가 공중에 흩어지고, 그 붉은 방울이 내 시야에서 천천히 흩어졌다.

그때 누군가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세나리데였다.


“에리온! 이쪽으로 와!”


그녀의 얼굴은 재로 뒤덮여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나를 끌었다.

뒤쪽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라엔이었다.


“저기 인간들이야! 무기 들고 있어!”


불빛 속에서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숲의 바깥,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했던 그쪽에서 그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전신에 쇳빛 갑옷, 손에는 불을 토하는 막대기.

빛들이 터지고, 나무가 쪼개졌다.


“달려!”


라엔이 외쳤다.

세나리데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우리는 불길 사이로 몸을 던졌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눈물이 말라붙고, 코끝이 타들어갔다.

뒤에서 고함이 들렸다.

낯선 언어였다.


“ᚷᚹᚨᚱ···! ᚾᚩᛗᚨ!”


인간의 목소리.

그들이 외치자,

빛이 또 터졌다.

하얀 섬광이 숲을 찢고,

마나의 흐름이 폭발했다.

불꽃이 나무줄기를 타며 하늘로 솟구쳤다.


“이쪽이야!”


라엔이 앞에서 손짓했다.

연기 사이로 그의 실루엣이 흔들렸다.


‘쾅—!’

다시 폭발과 함께 흙이 튀었다.

나무 껍질이 갈라지고, 불길이 옆으로 퍼졌다.

불길 사이로 그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짧고 규칙적인 구령.

마치 사냥이었다.


“이쪽으로!”


라엔이 앞장섰다.

우리는 불타는 나무 사이를 비틀거리며 달렸다.

연기가 눈을 찔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속이 깎이는 기분이었다.

세나리데가 손을 뻗었다.

나뭇잎이 흔들리며 길을 열었다.


“계속 뛰어!”


땅이 진흙처럼 끈적거렸고, 불에 탄 나뭇가지가 다리를 붙잡았다.

인간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일정하고 무겁고, 절대 멈추지 않았다.

그때 금속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챙!’

번쩍이는 파편 하나가 날아와, 세나리데의 어깨를 꿰뚫었다.


“꺅—!”


그녀의 몸이 비틀리며 앞으로 쓰러졌다.

피가 불에 달궈진 잎 위로 튀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바로 그때 또 다른 폭발음이 뒤를 때렸다.

뒤에서는 인간들이 외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ᚷᚹᚨᚱ···! ᚾᚩᛗᚨ!”


세나리데가 바닥에 손을 짚었다.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괜찮아, 가···”


나는 그대로 달려가 그녀를 붙잡았다.


“괜찮아?!”


“가···”


세나리데가 고개를 젓는다.


“놔··· 나 때문에 다 죽어···”


“입 다물어.”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그녀를 등에 업었다.

몸이 눌렸다.

피와 흙이 뒤섞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숨을 몰아쉬며 다시 달렸다.

발밑의 진흙이 더욱 끈적하게 달라붙었고,

불길이 옆구리를 스치며 치솟았다.

뒤에서 인간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ᚷᚹᚨᚱ! ᚾᚩᛗᚨ!”


쇠 부딪히는 소리, 땅을 차는 군화,

그 모든 게 내 등을 향해 몰려왔다.

세나리데의 손이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손끝이 떨렸다.


“미안해··· 에리온···”


“입 다물라니까!”


내 발이 미끄러졌다.

무너진 나무줄기를 밟고 몸이 기울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숨이 목을 찔렀고, 폐가 타는 것 같았다.

눈앞이 흔들렸다.

그러나 달렸다.

숲의 그림자가, 불빛의 잔해가, 모든 게 뒤섞인 채 지나갔다.

멀리서, 쇳소리가 또 울렸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그 속에서 세나리데를 더 단단히 붙잡았다.


“안 돼, 속도가 너무 느려!”


라엔이 옆에서 외쳤다.

그의 숨이 거칠게 끊겼다.


“이러다 다 잡힌다!”


“조금만 더 가면—”


숨이 턱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타올랐고, 등 위의 세나리데가 점점 무거워졌다.

뒤에서 쇳소리와 고함이 이어졌다.


“안 되겠어.”


“뭐?”


“흩어지자! 내가 반대쪽으로 갈게!

너희는 그냥 계속 뛰어!”


“라엔, 안 돼—!”


“가!”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았다.

몸을 돌려, 인간들이 쫓아오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라엔!! 안 돼!”


내가 외쳤다.

그는 잠깐 뒤돌아봤다.

잠시 그의 얼굴이 스쳤다.

그 짧은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달려나갔다.

쇳소리와 고함이 뒤섞인 어둠 속으로.


“라엔!!!”


세나리데의 목소리가 떨렸다.


“돌아가야 해··· 라엔이—”


“조용히 해.”


나는 이를 악물고 속도를 더 높였다.


“멈추면 우리도 죽어.”


뒤에서는 여전히 발소리와 고함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몇 걸음, 몇십 걸음이 지나자

그 소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길도, 외침도, 쇳소리도.

남은 건 내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나는 멈춰서서 세나리데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녀는 얼굴이 새하얬다.


“라엔···

나 때문이야.”


목소리가 끊어질 듯 낮게 흔들렸다.


“내가 다쳐서··· 나 때문에 라엔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숨이 거칠게 섞여 나왔다.


“라엔은 빠르잖아. 숲길도 잘 알고.

분명 살아서 도망쳤을 거야.”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불빛의 잔열이 반사되었다.


“그럴까···?”


“그래. 분명히.”


그녀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다치지만 않았어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다시 말을 잘랐다.


“아니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때였다.

멀리서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낙엽이 짓밟히는 소리.

점점 가까워진다.

숨이 멎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횃불이었다.


“숨어!”


내가 세나리데를 끌어당겼다.

우리는 무너진 나무뿌리 아래로 몸을 밀어 넣었다.

세나리데의 입을 틀어막으며 속삭였다.


“조용히 해. 소리 내면 안 돼.”


그녀의 눈이 떨렸다.

불빛이 우리 위를 스쳤다.

인간들 몇 명이 지나갔다.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잠시, 그들이 멀어지는 듯했다.

발소리도, 쇠의 마찰음도 희미해졌다.

나는 조심스레 손을 내려, 세나리데의 어깨를 감쌌다.

그녀의 숨이 조금씩 고르다 싶었다.


“됐어··· 이제—”

그 순간이었다.

세나리데가 몸을 조금 움직였다.

발끝이 낙엽 더미를 건드렸다.


‘딱.’

마른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숨이 멎었다.

쇳소리가 한순간에 방향을 틀었다.


“······!”


세나리데가 나를 바라봤다.

그 눈에 공포가 가득했다.

눈동자가 흔들렸고, 입술이 떨렸다.

그녀의 얼굴을 따라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괜찮아.'


소리는 없었다.

그저 입 모양만이 조용히 움직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생각하지도 않고 뛰쳐나왔다.

그녀를 뒤로 하며 뛰었다.


“여기 있다!”


낯선 외침이 뒤에서 터졌다.


“ᚷᚩᚱᛊ! ᚩᚱᛊ!”


곧이어 발소리와 쇳소리가 뒤섞였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땅을 차는 무겁고 빠른 발걸음.

그들이 쫓아온다.

심장이 폭발할 듯 뛰었다.

나는 몸을 돌려 달렸다.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발이 흙을 딛는 느낌조차 사라졌다.

단지 앞으로, 더 멀리,

세나리데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괜찮아. 나만 잡히면 돼. 나만—’


숨이 헐떡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때, 등 뒤에서 무언가가 내 몸을 휘감았다.

갑자기 몸이 뒤로 젖혀지며 땅에 내리꽂혔다.


“윽!”


숨이 터졌다.

등이 바닥에 닿았다.

눈앞이 번쩍였다.

철로 된 무언가가 내 목을 눌렀다.

숨이 막혔다.


“ᛗᚩᚱᛊ ᚩᚾᚱ··· ᚠᚱᛟᛗ.”


낯선 음성이 울렸다.

단어 하나하나가 거칠었다.

무슨 뜻인지 몰랐다.

몸이 떨렸다.

손을 움직이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세··· 나리···”


이름이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꽝!’

귀가 울렸다.

빛이 눈앞을 덮쳤다.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소리도, 열도, 고통도.

남은 건 어둠뿐이었다.




작가의말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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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화. 단절 25.11.14 0 0 12쪽
7 6화. 입단 시험 25.11.13 2 0 14쪽
6 5화. 훈련 25.11.13 4 0 14쪽
5 4화. 거래 25.11.12 12 0 13쪽
4 3화. 탈출 25.11.11 12 0 12쪽
» 2. 침략 25.11.10 12 0 12쪽
2 1. 숨바꼭질 25.11.10 15 0 12쪽
1 0. 프롤로그 25.11.10 16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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