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분풀이는 잊지 말고.
3, 분풀이는 잊지 말고.
광무맹 외단 백검단에는 작전지침서가 존재했다.
백검단 산하 청기대 2조는 바위에 매달린 채 동혈 안으로 암기를 던졌다.
슉슉슉슉슉!
그 사이 청기대 1조가 넝쿨에 의지한 채 바위를 박찼고, 반동을 활용해 동굴 내부로 진입했다. 가장 먼저 진입한 이가 벽 쪽에 붙은 후 화섭자를 켰다.
화르륵!
시야가 확보되는 순간 세 명의 무인은 한 덩어리가 되어 진입했다. 그들은 어둑어둑한 동굴 구석을 확인하는 순간 검을 쥐었다.
“저게 뭐야?”
“피 냄새다. 동물은 아닌데?”
안목이 좋은 자가 재빨리 검을 뽑으며 외쳤다.
“홍전대주잖아.”
“죽었어?”
조장의 물음에 장이생을 확인한 자가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폭우와 광풍 속에서 악귀처럼 날뛰던 모습이 뇌리에 선했다.
“그래, 저 새끼는 숨이 붙어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조장, 저쪽.”
조장은 조원이 가리킨 곳을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참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동굴 바닥에 보이는 철제상자는 흑금곽이 분명했다.
찰나간 큰 공을 세워 거액의 포상금을 받고, 승차하여 아리따운 기녀들과 어우러지는 미래가 뇌리를 스쳐 갔다.
“멈춰.”
그렇기에 바깥쪽에 신호를 보내려는 수하를 만류했다.
네 명의 무인은 눈빛을 교환했고, 이내 탐욕이라는 공통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일단 홍전대주부터 처리하자.”
하나 그들은 점혈이라도 당한 것처럼 멈춰야 했다.
“놈이 움직이는데.”
장이생은 발작을 하듯 꿈틀거렸다.
“아.”
흐느적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광경은 생강시를 방불케 했다. 무골호인처럼 흔들거리며 자세를 바로 하더니 천천히 몸을 돌렸다.
“불러. 지원 불러.”
조원 중 한 명이 다급하게 동굴 밖으로 명적을 쐈다.
삐이이익-
그 사이 장이생은 자신의 몸을 확인하며 탄성을 흘렸다.
“이게 재생이라는 건가.”
누더기 같은 상의를 벗었다.
신입 시절부터 누적됐던 수많은 흉터와 도주 중 생긴 상처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마치 처음부터 다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눈으로 봐도 믿기 어려웠다.
하나 유혼산 전체의 생기를 흡수해서 만들어진 영역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듯했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아.”
꽈드득-
주먹을 말아쥐는 순간 묘한 느낌이 전해졌다.
살짝 쥐었음에도 전력을 쏟아부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감각은 더 예민해졌고, 몸뚱이는 더 가벼웠다.
아무래도 전능체술의 입문 과정을 거치면서 어딘가 모르게 달라졌다.
“사기꾼이 아닐지도.”
그때 청기대 조장이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히더니 인중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동시에 조원들도 좌우로 흩어지더니 절초를 펼쳤다.
조장의 검이 얼굴 지척에 이르렀다.
하나 장이생은 움직이지 않았다.
영역에 들기 전보다 검을 휘두를 때 생성되는 바람의 결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영대, 인중, 거궐, 회음.’
영대혈을 노리는 검이 가장 빠르다.
장이생은 반보 옆으로 비켜섰다.
인중과 거궐, 회음을 노리던 검 끝이 장이생의 위치를 따라 변화했다.
여기까지는 예전과 같았다.
당시에는 몸이 따라주지 않아 피해를 최소화하며 반격을 노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지.”
장이생은 적의 검 끝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냈고, 상대의 지척에 이르러 가볍게 일격을 꽂아 넣었다.
퍼퍼퍽!
공격 순위와 위치를 예측할 수 있게 되니 이보다 싸움이 쉬울 수 없다. 그야말로 맞으면서 때렸던 상대를 그냥 때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장이생은 동굴 벽까지 날아가 비명과 함께 튕겨 나온 무인들을 보며 폭소를 터트렸다.
“손맛이 달라졌어.”
반면 청기대 조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홍전대주 장이생의 악명이야 익히 알려진 바였다.
하나 지금의 모습은 개싸움이 아니라 명가의 후예가 하수를 상대하는 것처럼 여유롭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군.”
“사람이 다른 게 아니라 시간이 다른 거야.”
장이생은 히죽 웃으며 혼절한 청기대 무인을 조장에게 집어 던졌다.
쉬이익!
조장은 수하를 받는 대신 비켜섰다.
장이생은 동굴 밖으로 날아간 무인을 보며 혀를 찼다.
“동료를 버려?”
“닥쳐라!”
조장은 황급히 외쳤다.
그리고 청기대 무인들을 호출했다.
“홍전대주가 깨어났다. 멀쩡해! 흑금곽도 있다!”
장이생은 쓰러진 무인의 발을 잡고, 다시 한 번 냅다 집어던졌다.
“얘 아직 안 죽었어!”
하나 조장은 자신의 안전을 우선시했다.
그가 수하가 동굴 밖으로 날아갔지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동굴의 입구 쪽으로 넝쿨이 줄줄이 늘어진 것으로 보아 동료들이 곧 들이닥칠 터였다
“진입한다!”
청기대주의 목소리다.
조장은 청기대 무인들의 진입을 위해 한쪽으로 비켜섰다. 한데 그사이 마지막 수하가 종잇장처럼 펄럭거리며 쇄도했다.
“쳇!”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비켰다.
한데 그사이를 장이생이 파고들었다.
그는 청기대 무인을 집어던지자마자 달려들었고, 조장의 지척에 이르자 몸을 띄웠다.
콰직!
장이생의 무릎이 조장의 가슴을 쪼개버렸다.
그는 조장의 몸이 낫처럼 꺾인 채 절벽 아래로 튕겨 나간 것을 보며 혀를 찼다.
“마지막에 받았으면 오히려 내가 실망할 뻔했다.”
이쯤 되면 광무맹은 장로원주가 음모를 꾸미지 않았어도 이미 타락한 게 아닐까 싶다.
슉슉슉슉슉!
암기가 날아들었다.
청기대 무인들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번에는 수색이 아니라 척살을 목표로 했기에 동시에 동굴 입구를 막아섰다.
“진짜 장이생이잖아.”
“2조, 수거! 나머지 쳐라!”
네 명의 무인이 흑금곽 쪽으로 이동했다.
나머지 무인들은 소지한 암기를 모조리 흩뿌렸다.
동굴 내부에는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다.
그렇기에 저들의 표정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또 올게.”
장이생은 그 말을 남기고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암기가 지척에 이르렀을 때 뒤로 몸을 띄웠다.
솨아아아아아-
이제는 명확하게 느껴졌다.
현생과 영역의 경계를 인지하는 순간 힘껏 손뼉을 치며 외쳤다.
“차시.”
*
“으아아아악!”
광무맹의 신입 시절 적진에 침투했다고 사로잡힌 적이 있다. 그때 사파의 괴인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고문을 하며 신문했다.
정신이 붕괴되고, 육체가 파괴되는 줄 알았다.
한데 전능체술의 입문 과정은 그때를 오히려 추억하게 했다.
“지독하다. 지독해!”
장이생은 끝없이 이어지는 공세에 혀를 내둘렀다.
사방팔방에서 바늘이 쇄도하며 요혈을 노렸고, 괴이한 것이 피부를 통해 스며들려고 했다. 일부러 요혈이 아닌 생살을 내줬고, 괴이한 것이 달라붙는 순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거리를 뒀다.
파파파파파파팟!
형형색색 번뜩이는 빛줄기도 이제는 익숙했다.
처음에는 눈알이 타버릴 것만 같았지만, 찰나의 순간 색을 구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끝!”
놀랍게도 공세가 멈췄다.
장이생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수련이 끝나는 순간까지 파악하는 게 가능해졌다.
처음이야 지옥 같았지만, 이제야 수련을 하는 듯했다.
심지어 감옥처럼 좁은 공간도 나름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할 만큼 익숙해졌다.
“오늘은 뭘 먹을까?”
식사를 고민하는 사이 허공에서 알림이 들려왔다.
《자극을 통한 각인 단계가 종료되었습니다.》
《1차 영기 주입이 시작됩니다.》
장이생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해도 고통은 고통이다.
1단계 통과를 알리는 녹등의 외침만큼 반가운 것이 어디 있으랴. 심지어 영기라면 유혼산 일대에서 빨아들인 대자연의 기운이 아닌가.
“내공이 공짜라니!”
장이생은 환호하던 중 눈을 부릅 떴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감각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확장됐다. 눈썹의 움직임이 느껴졌고, 코와 입을 통해 시작된 들숨이 폐를 거쳐 날숨으로 마무리된다. 그 과정에서 혈류의 흐름과 장기의 활동이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솨아아아아아아-
“보인다.”
영역 안에 존재하는 기운이 바람에 실려 전신을 휘감았고, 호흡할 때마다 모공을 통해 스며들었다. 그 순간 기경팔맥을 비롯한 주요 혈도의 위치와 움직임을 보았고, 각 혈도를 가득 채웠던 기운은 이내 전신세맥으로 흩어졌다.
“아.”
내공을 쌓을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자연의 기운은 원래 형태로 돌아가려고 하니 들숨을 통해 흡수한 순간 모든 구멍을 막아야 했다.
한데 전능체술은 달랐다.
장이생의 몸조차 자연의 일부분인 것처럼 제멋대로 들락날락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꾸준하게 전신세맥으로 퍼져나가 자리를 잡았다.
“이제야 알겠다. 애초에 전능체술에 입문한 이상 단전은 필요하지 않았어.”
그동안 거금을 주고 추궁과혈도 받고, 좋은 장소까지 찾아다니며 수련을 했다. 하나 그러한 과정이 헛수고가 되었음에도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시면 모든 것이 마무리 될 겁니다.”
장이생은 녹등의 기분 좋은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시 들었다.
*
“시간 잽니다!”
녹등은 기분 좋은 목소리가 왜 이렇게 얄미울까.
장이생은 울화가 치밀었지만, 녹등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방을 향해 내뻗는 일권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살얼음 위를 걷듯 천천히 앞발을 내뻗었다.
이 작은 동작은 숫자 백을 헤아리는 동안 이뤄졌다.
골반과 허리를 비틀며 양 어깨가 서로 반대편을 향했고, 주먹을 들어올려 전방을 겨눴다.
이 과정은 숫자 천을 헤아리는 동안 이뤄졌다.
“후우.”
이제 주먹을 끝까지 내뻗으면 육신의 조율이라는 단계가 마무리된다.
자! 이제 절반 왔다.
피가 거칠게 휘돌고,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파악하며 몸뚱이에 담긴 내력을 서서히 밀어 넣었다.
이 과정만으로도 다시 숫자 천을 헤아렸다.
이제 바람을 가르며 주먹을 내뻗으려던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이이이-
탈락을 알리는 경고음과 함께 하나의 그림이 생성됐다.
장이생이 정권을 찌르는 자세가 마치 실사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팔과 어깨를 비롯한 곳곳에 붉은색이 반짝이며 틀렸음을 알려줬다.
《상완삼두근의 압축율이 허용치를 벗어났습니다.》
《주두와 주근이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약력이 기준치 이상으로 입력되었습니다.》
《허리와 어깨, 팔의 각도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조율 단계가 재시작됩니다.》
장이생은 맥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빌어먹을!”
자신이 취했던 자세를 그대로 따라하는게 이토록 어려울 줄 누가 알았으랴. 아닌 말로 강호의 고수에게 시켰을 때 할 수 있는 존재가 몇이나 될까.
“이건 광무맹주도 못해.”
그때 녹등이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따스한 한 마디를 건넸다.
“그래도 반 각이나 버티셨어요.”
“닥쳐!”
장이생은 차를 냉수처럼 들이켰다.
어차피 혼백으로 머무는 세상이 아닌가.
차갑다고 여기면 냉수가 된다.
“주먹질 한 번에 이각 동안 하는 게 말이 돼?”
녹등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영역 자체가 전생자의 기억으로 이뤄지지 않던가.
결국 전생의 자신이 해냈으니 현생의 자신 또한 해내야 마땅했다.
“할 수 있다니까요.”
녹등의 여유로운 목소리에 또다시 울화가 치밀었다.
이쯤 되면 일부러 저런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비켜봐.”
“또 분풀이하러 가시게요?”
장이생은 대답 대신 주먹을 쥐락펴락한 후 손뼉을 쳤다.
딱 세 놈만 절벽에서 던져버리면 기분이 풀릴 듯했다.
짝!
공간이 열리며 동굴 내부가 나타났다.
자신의 몸뚱이는 등을 보인 채 허공에 떠 있었고, 동굴 입구 쪽에는 십여 명의 무인들이 암기를 던지던 자세로 굳어 있었다.
“아.”
장이생은 몸뚱이의 어깨 너머를 살핀 후 미간을 좁혔다.
우모침과 학질려, 십자표를 비롯한 수백 개의 암기가 쇄도하는 중이다.
짝!
장이생은 손뼉을 쳐서 공간을 닫은 후 애꿎은 녹등을 향해 소리쳤다.
“뭐?”
“예?”
“시간 재야지. 훈련 안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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