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생 권태룡(크툴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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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건2
그림/삽화
건건2
작품등록일 :
2025.11.11 23:38
최근연재일 :
2025.11.1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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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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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화 : 어째서 우리 집 멸치볶음이 비명을 지르는가

DUMMY

월세 40만 원에 방을 내놓았을 때, 나는 분명 '조용하고 깔끔하게 사실 분'을 원했다.



내 낡아빠진 빌라 옥탑방은 이 동네에서 가장 싸구려였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니 최소한의 염치는 지킬 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미래가 4억 5천만 원의 대출 이자와 싸우는 평범한 빌라 주인장일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내 앞에 나타난 '권태룡' 씨는... 조용하긴 했다. 너무 조용해서 옥탑방에 기생충처럼 붙어살며 잠만 자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이 내 기준치를 가볍게 초월했다. 그는 어딘가 축축했다.



키는 멀대같이 컸고, 얼굴은 늘 검은 후드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월세를 '선불'로 냈는데, 그가 내민 빳빳한 지폐에서는 기묘한 갯비린내와... 뭐랄까, '아주 오래된 공포' 같은 냄새가 났다.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한 냄새였다.





그래도 돈은 돈이다. 40만 원, 그것도 1년 치 선불이라니.





벼랑 끝에 몰린 내게 480만 원은 가뭄의 단비였다. 나는 그를 3층 옥탑방에 들였다.




"월세만 꼬박꼬박 내면 됐지. 사람이 좀 눅눅할 수도 있지.




"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문제는 일주일 뒤, 냉장고에서 터졌다.




"저기요, 권태룡 씨."




나는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막 캔맥주를 따려다 멈칫했다.





냉장고 문을 열자, 익숙한 엄마표 반찬통들 사이로... 정체불명의 것이 끼어 있었다.





그것은 투명한 락앤락 통에 담겨 있었다. 짙은 녹색의... 젤리? 푸딩? 문제는 그 젤리 한가운데에, 섬뜩할 정도로 완벽한 '눈알'이 하나 박혀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거였다




. 그 눈알은 마치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 깊이를 알 수 없는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냉장고 공용 규칙 못 보셨어요? 반찬통에 이름 쓰시라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권태룡 씨가 옥탑방에서 스르륵 내려왔다.





그는 내 옆에 우뚝 섰다. 190cm가 넘는 장신에서 느껴지는 위압감과 습기.




온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은 아니었지만, 마치 그의 존재 자체가 공기 중의 습기를 응축시키는 듯한 느낌이었다.





"박진수 군."


그의 목소리는 평범한 성대의 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두개골 안쪽에서 직접 울리는 듯한, 심해의 압력 같은 저음이었다.




내 고막을 거치지 않고 뇌에 직접 와 닿는 듯한 기분 나쁜 울림이었다.




"그것은 '이름'으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다."




"아니, 그래도 포스트잇이라도 붙여놔야 다른 사람이 모르고 먹... 아니, 먹을 리는 없겠지만..."




나는 '그것', 즉 눈알 박힌 젤리를 가리켰다.



솔직히 저걸 간식으로 먹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러웠다.




"이... 이건 또 뭐예요. 저번에 가져오신 '꿈틀대는 어묵'도 제가 겨우 참았는데.




솔직히 그거 그냥 버렸습니다. 살아있는 어묵은 좀 아니잖아요?"




권태룡 씨는 내 말은 무시한 채 젤리를 내려다봤다.




"그것은 나의 '간식'이다. '쇼고스'의 응축된 형상이지. 시원하게 먹어야... 식감이 좋다."




꿈틀.




권태룡 씨의 말이 끝나자, 젤리 속 눈알이 불쾌하게 한번 깜빡였다.




그리고 젤리 전체가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나는 비위가 상해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젠 냉장고를 열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냉장고 안쪽을 살폈다. 엄마가 정성껏 싸준 반찬들을 확인하는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비닐 랩으로 덮인 멸치볶음 통이었다.





왠지 모르게 통에서 불안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제 멸치볶음! 이거 왜 이래요!"




내가 집어 든 반찬통. 엄마가 정성껏 볶아준, 바삭해야 할 멸치들이... 이상했다. 놈들은 끈적한 암녹색 점액에 뒤덮여 있었고,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마치 끓는 물속의 생물처럼 파닥거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권태룡 씨가 내 어깨 너머로 반찬통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후드 그림자 속에서 언뜻 검은 촉수 같은 것이 보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애써 착각이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아. 미안하군. 나의 '간식'에서 흘러나온 '정수'가... 저 건어물들에게 '자아'를 부여한 모양이다."




"...네?"




나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아'? 멸치에게?




"들어보라, 필멸자여. 저들의 환희에 찬 비명을."




권태룡 씨가 손가락을 튕기자, 내 귓가에 막혀 있던 필터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오직 그 멸치들의 소리만이 내 뇌를 직접 때려박는 듯했다.




"끼이이익! 나는 존재한다! 나는 왜 짠맛인가! 고추장! 고추장이 나를 짓누른다! 아아, 위대하신 눈이여! 우리를 이 마른 지옥에서 구원하소서!"




멸치 수백 마리가 합창하는 영혼의 절규가 내 뇌를 강타했다.




그것은 끔찍한 불협화음이었다. 살면서 이런 공포를 느낀 적이 없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반찬통을 떨어뜨릴 뻔했다.




"당장! 당장 이거 어떻게 좀 해봐요! 빨리!"




나는 패닉 상태에 빠져 권태룡 씨의 팔을 흔들었다.




그의 팔은 차가웠고, 미끈거렸다.





"어떻게 하길 원하나? 저들의 짧은 깨달음을 다시 '무(無)'로 돌려줄까? 아니면... '더 큰 존재'의 일부분이 되게 해줄까?"





"...아니! 그냥! 그냥! 원래대로 돌려놔! 아니면! 분리수거! 아니, 음식물 쓰레기!"





권태룡 씨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후드 그림자 속에서 촉수 같은 것이 언뜻 보인 것 같기도 했다. 이제는 착각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도 힘들었다.





"이상하군. '존재'를 갈망하는 것이 너희 필멸자들의 본성 아니었나? 저들은 지금 생의 환희를 느끼고 있다."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요! 그리고 저거, 엄연히 '음식물 쓰레기'라고요! 음식물 쓰레기 봉투 사야 한단 말이에요!"




나는 결국 폭발했다. 내 대출 이자와 밀린 월세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는데, 멸치들의 실존주의적 절규는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월세 선불로 낸 건 고마운데! 냉장고는 쓰지 마세요! 저번엔 김치가 무슨 종이접기처럼 말도 안 되는 각도로 접혀 있더니! 오늘은 멸치가 단체로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있잖아요! 이건 범죄라고요! 음식물 학대!"




권태룡 씨는 잠시 침묵했다. 냉장고의 '웅'하는 소리와, 바닥에 떨어진 멸치 한 마리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짜다..."라고 속삭이는 소리만이 거실을 채웠다. 그 속삭임은 뇌를 좀먹는 듯했다.




"알겠다. 박진수 군."




그가 순순히 물러섰다. 내 말이 통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나의 '간식'은... 차원 저편에 따로 보관하도록 하지."




그는 '눈알 젤리' 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거실 벽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분명 도배한 지 얼마 안 된 깨끗한 실크 벽지였는데, 그의 손이 닿자 공간이 수면처럼 일그러졌다. 물결이 일렁이듯 벽이 뒤틀렸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벽 너머의 검은 심연 속으로 반찬통을 밀어 넣었다.



...첨벙.




벽 너머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됐나?"




"...네. 그리고 저 멸치들도..."


권태룡 씨는 한숨(이라기엔 너무 깊고 축축한 소리였다. 마치 해저 동굴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 같았다)을 내쉬더니, 절규하는 멸치볶음 통을 집어 들었다.




"이성을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는... 불행한 법이지."




그는 멸치볶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펄떡거리는 멸치들이 그의 후드 아래 검은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아아악! 어둠! 진정한 공포! 아아, 이것이 구원인가!"




멸치들의 마지막 단말마가 내 뇌 속에서 메아리쳤다. 절규는 짧게 끝났다.




"....맛은... 있네요."




권태룡 씨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후드 아래에서 만족스러운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날 밤, 캔맥주 대신 소주를 땄다.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 축축한 양반을... 어떻게 하면 계약 기간 전에 합법적으로 내보낼 수 있을지.




'하숙생이 보관한 식재료가 자아를 가짐' 이게 퇴거 사유가 될까? 아니면 '벽을 뚫고 차원 저편에 물건을 보관함'은?



아, 4억 5천만 원의 이자... 내 통장은 비명을 지르고, 내 멸치볶음은 환희에 찬 절규를 한다.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저 축축한 양반을... 어떻게 하면 계약 기간 전에 합법적으로 내보낼 수 있을지. '하숙생이 보관한 식재료가 자아를 가짐' 이게 퇴거 사유가 될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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