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생 권태룡(크툴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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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건2
그림/삽화
건건2
작품등록일 :
2025.11.11 23:38
최근연재일 :
2025.11.1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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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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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제 2 화 : 권태룡 씨.

DUMMY

모든 일은 '당근마켓'에서 시작됐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 모든 일은 '4억 5천만 원'의 빚에서 시작됐다.



아버지가 남긴 이 다 쓰러져가는 단동 빌라는 '건물'이 아니라 '부채'였다.



1층 편의점은 3달째 월세가 밀렸고, 201호는 반년째 공실이었다.




매달 10일, 통장에서 수백만 원의 이자가 쪽쪽 빨려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이러다 내가 먼저 말라죽겠다.'




그래서 나는 옥탑방이라도 내놨다. 곰팡내가 진동하고 여름엔 찜통, 겨울엔 냉동고가 되는 이 방에 과연 사람이 올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글을 올렸다.




"옥탑방 월세 40 (보증금 500). 조용하고 깨끗하게 사실 분만."




제발... 제발 이 40만 원이라도.




그렇게 앱에 올린 지 5분 만에 '채팅 1'이 떴다. 닉네임은 '심해군주.




프로필 사진은 흐릿한 바다 사진이었다. 닉네임 한번 중2병스럽다고 생각하며 채팅창을 열었다.




[심해군주]: 방. 있나.


[나]: 네! 있습니다. 언제 보러 오시겠어요?


[심해군주]: 지금. 간다.


...채팅이 너무 간결해서 중학생 장난인가 싶었다.



"지금 간다"니. 앱으로 주소는 봤겠지만, 여길 10분 만에 온다고? 나는 '또라이 아니면 초딩이겠군' 하고 스마트폰을 뒤집어 놨다.


하지만 정확히 10분 뒤,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그날은 유독 비가 많이 왔다. 장마철도 아닌데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붓던 날이었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아니라, 마치 거대한 폭포수 아래 서 있는 것처럼 '콰아아아'하는 소음이 건물을 감싸고 있었다.



"누구...세요. 이 날씨에..."



나는 현관문을 열다 말고 숨을 멈췄다.



문 앞에는, 내 현관문(190cm 규격)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검은색 후드티와 챙이 깊은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비를 쫄딱 맞았는지, 그의 옷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떨어진다'는 표현은 틀렸다.



그는 그냥... 축축했다. 마치 물에 젖은 게 아니라, 그 자신이 '물의 근원'인 것처럼. 물방울이 그의 옷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의 옷 표면에서 '생성'되는 것 같았다. 그가 서 있는 현관 복도는 이미 한강이 되어 있었다. 차갑고 비릿한... 단순한 빗물이 아닌, 소금기를 머금은 냄새가 훅 끼쳤다.



"...저기, '당근' 보고 오셨...?"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모자 그림자 때문에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이 그의 등 뒤에서 비쳤지만, 그림자는 이상하게도 내 쪽으로 더 짙게 깔렸다.



그리고 소리.



숨소리가 이상했다. '흡-하'가 아니라, '꾸르륵... 쏴아...' 하는, 파도 소리 같기도 하고, 오래된 배수관에서 가래 끓는 소리 같기도 한 사운드.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주변의 습도가 10%씩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가 내 스마트폰을 향해 자기 폰을 들어 보였다. 화면에는 [심해군주]와의 채팅창이 띄워져 있었다.




"권태룡."




그의 목소리가 울리는 순간, 우리 집 현관 센서등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깜빡였다.



전압이 불안정할 때처럼 격렬하게 명멸했다. 그 목소리는 성대를 울려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내 두개골 안쪽, 뼈와 뇌 사이를 직접 긁어대는 듯한, 심해의 압력 같은 저음이었다.




"박진수. 맞나."




"...네... 네! 들어오시죠. 밖은 비가... 아니, 물이 많으시네요. 우산 안 쓰셨..."




나는 말을 흐렸다. 그는 우산을 들고 있지 않았다. 이 정도 폭우에 우산도 없이 10분을 걸어왔다면, 그는 이미 익사했어야 정상이다.




"나는... '젖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모이는' 것뿐."




"예?"




"방. 보지."




권태룡 씨는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나는 내 4억 5천짜리 빚도 잠시 잊을 만큼 경악스러운 광경을 목격했다.



젖은 운동화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빗물이 아니었다.





갯벌 냄새가 나는 검은 펄(Purl)과... 정체 모를 해초, 그리고 미역 줄기 두어 개였다. '꾸르륵' 소리와 함께 그것들이 내 현관 대리석 바닥에 질펀하게 쏟아졌다.





"...이쪽입니다."





나는 필사적으로 미역을 외면했다.




'그래, 40만 원이다. 1년이면 480만 원. 저건 미역이 아니라 돈이다.'





나는 그를 옥탑방으로 안내했다. 그가 젖은 발을 옮길 때마다 복도 바닥에 검은 펄과 해초가 묻어났다. '스윽... 철퍽... 스윽... 철퍽...'




옥탑방 문을 열자, 그는 방 한가운데 우뚝 섰다. 그리고는... 코를 킁킁거렸다. 곰팡내와 먼지로 가득한 방이었는데, 그는 마치 최고급 향수라도 맡은 듯했다.




"이 '고립감'... 마음에 드는군."




"아, 네. 옥탑이라 조용하죠. 채광도 좋고... 뭐, 오늘은 비가 와서..."




그가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문은... '심연'의 시선을 견딜 수 있나?"




"...네? 아... 심야... 아니, 심연이요?" 나는 그가 '맞은편 건물의 시선'을 말하는 건가 싶었다. "아! 저거 이중창이라 방음 잘 되고, 튼튼해요! 태풍 와도 끄떡없습니다! 시선... 시선도 저기 불투명 시트지 바르시면..."




권태룡 씨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후드에서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내 뺨에도 차가운 액체가 튀었다. 비린내가 진동했다.




"계약하지."




"네? 아, 벌써요? 방... 뭐 더 안 보시고요? 화장실이라든가... 수압도 보셔야..."




"무의미하다."




그는 품속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가 입은 후드티는 온통 젖어 축축했는데, 이상하게도 그가 꺼낸 누런 서류 봉투만은 방금 인쇄한 것처럼 보송보송했다.




"여기. 보증금 500. 1년 치 월세. 선불."




"....1년... 치요?"




(40만 원 x 12개월 = 480만 원. 총 980만 원.)




내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이자... 이번 달 이자... 아니, 다음 달, 다다음 달 이자까지... 내 4억 5천짜리 빚의 무게가 순간 가벼워지는 환각이 들었다.




이 축축하고 냄새나는 남자가... '캐시카우'로, 아니 '구원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권태룡 씨. 계약서에 적어야 해서 그러는데, 직업이 혹시..."





"잠잔다."




"...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주로... 잔다. '꿈'을 꾸지." 그가 덧붙였다. "가끔... '부름'에 답하고."




'프리랜서 같은 건가? 스트리머? 아니면 무슨 종교인?' 나는 대충 납득하기로 했다. 돈다발이 이렇게 두꺼운데 직업이 뭐가 중요하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계약서는 바로...!"




"필요 없다."




그가 봉투를 내 손에 쥐여줬다. 나는 돈을 받아 들고 섬칫했다.



봉투는 보송했지만, 그 안에 든 지폐 다발에서는 빳빳한 새 돈 냄새가 아니라, 짙은 갯비린내와... 아까 현관에서 맡았던 그 '오래된 공포'의 냄새가 났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썩지 않은 무언가의 냄새 같았다.




"그럼 입주는 언제... 이사는..."




"나는 '이사'하지 않는다."




그가 말했다.




"그저... '존재'할 뿐."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빗속으로 걸어 나갔다. '스윽... 철퍽...' 소리를 내며.




나는 갯벌 냄새가 나는 돈다발을 든 채, 미역과 검은 펄로 엉망이 된 현관을 망연자실하게 내려다봤다. 센서등은 여전히 미친 듯이 깜빡이고 있었다.




"...뭐, 사람이 좀 눅눅할 수도 있지."




980만 원. 나는 돈다발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비린내 너머로 4억 5천의 빚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눅눅함'이 우리 집 냉장고 속 멸치들에게 '자아'를 선물하고 "나는 왜 짠맛인가!"라는 실존주의적 절규를 토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작가의말

으 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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