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생 권태룡(크툴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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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건2
그림/삽화
건건2
작품등록일 :
2025.11.11 23:38
최근연재일 :
2025.11.1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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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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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화 : 다곤할아버지

DUMMY


"안 되겠어. 당장 내보낸다. 내보내야만 해."



수도세 34만 원 고지서를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던 나는 결국 결심했다.




지난달에도 멸치볶음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번 달 수도세는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한 달 수도세가 34만 원이라니! 옥탑방 하나에서 무슨 심해 해양 생물이라도 키우는 건가!



1년 치 월세 480만 원? 까짓거 위약금 물고 토해내면 된다. 아니, '된다고 믿고 싶었다.' 내 정신 건강이 먼저다. 멸치가 비명을 지르고 벽에서 손이 튀어나오고 김치가 종이접기처럼 말도 안 되는 각도로 접히는 집에서 사느니 차라리 내가 빚을 지고 말지. 물론 이미 4억 5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안 될 일이었다.



나는 당장 스마트폰을 꺼내 '특수 청소 전문 변호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세입자가 신(神)일 경우 퇴거 조치' 같은 건 법전에 없을 게 뻔하니까, 그냥 '세입자가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여 건물에 피해를 주는 경우'로 우겨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세입자가 냉장고 속 식자재에게 자아를 부여함' 이건 또 무슨 죄목으로 고소해야 할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때였다.


*딩-동.*


"...누구야. 치킨 안 시켰어. 오늘은 배달 기사님 올 일 없는데..."


나는 신경질적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배달 기사님이 아니었다. 설마 권태룡 씨가 나를 해치러 온 건가? 하는 망상까지 들었다.


아주 정갈한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노신사가 서 있었다. 머리는 백발이었지만 허리는 꼿꼿했다. 그의 풍채는 위엄이 있었다. 다만, 그의 정장 어깨 부분과 바짓단은... 권태룡 씨처럼 기묘하게 축축했다. 꼭 깊은 바다에서 막 걸어 나온 사람처럼. 그의 구두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검은 액체가 스며 나오는 것 같았다.


"실례합니다. 혹시 박진수 선생님 되십니까?"


그의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어딘가 '파도 소리'가 섞여 있었다. 마치 그의 성대 자체가 조그만 파도라도 일으키는 듯한 기이한 울림이었다.


"그런데요. 누구시죠? 옥탑방 때문에 오셨으면..."


'당장 방 빼라고 전해주세요! 더 이상은 못 참겠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나는 이 기회에 권태룡 씨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조목조목 따져 물으리라 다짐했다.


노신사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너무나 정중해서 오히려 불쾌할 정도였다.


"저는... '태룡이'의 보호자 격인 사람입니다. '다곤'이라고 불러 주시지요."


"아, '권태룡' 씨 보호자요! 마침 잘 오셨습니다! 당장 옥탑방 세입자분께서..."


"정말 감사합니다, 박진수 선생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곤이라는 노신사가 와락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미끈거렸다. 비린내가 확 끼쳤다. 마치 상한 생선을 만지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었다. 나는 손을 빼려 했지만, 그의 손아귀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저희 '태룡이'가... 사실 낯을 많이 가리고, 잠버릇도 고약해서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너그러이 받아주시다니... 선생님 같은 분은 정말이지 처음입니다! 이 '얕은 차원'에서는 말이죠."


"네? 너그럽...긴요..."


(내 멸치들이 집단으로 자아를 찾았고요. 수도세 34만 원 나왔는데요. 배달 기사님이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과에 실려 갈 뻔했는데요. 제가 매일 밤 옥탑방에서 들리는 '프타근' 소리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나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불평들을 속으로 삭였다. 돈만 아니었으면 당장 이 노인에게도 불평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래서 저희 '가문'에서 작은 성의를 표하기로 했습니다."


노신사가 품속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냈다. 문제는, 그 봉투가 물에 흠뻑 젖어 뚝뚝 물이 떨어지고 있다는 거였다. 봉투는 마치 방금 심해에서 건져 올린 듯, 축축한 물방울을 머금고 있었다.



"아이구, 이런. 제 불찰입니다. 너무 서두르다 보니... 심연에서 미처 물기를 털지 못했군요."



노신사가 당황하며 봉투를 털었다. 그의 팔에서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 물방울이 닿은 바닥은 검은 갯벌 펄처럼 변색되었다.



"이게... '태룡이'를 맡아주셔서 드리는 '사례금'입니다. 매달 400만 원씩... 제가 따로 챙겨드리겠습니다.



부디 저희 '귀찮은 새... 아니, 태룡이'를 잘 좀 부탁드립니다."


"...매달... 얼마요?"


내 뇌가 순간 정지했다. 4억 5천만 원의 대출. 매달 수백만 원씩 나가는 이자. 그리고 '매달 400만 원'.



"400입니다. 아유, 돈 봉투가 젖었네요. 죄송합니다. 이거 원..."



내 머릿속에서 '특수 청소 변호사'라는 단어는 물론이고, '멸치', '자아', '수도세 34만 원', '벽에서 손' 같은 모든 부정적인 단어들이 깨끗하게 삭제되었다. 4억 5천만 원의 빚이 순식간에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아닙니다! 하하하하하!"



나는 광대뼈가 승천할 듯 환하게 웃으며 그 축축한 봉투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들었다.



내 손이 젖고, 비린내가 나든 말든 아무 상관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돈 냄새가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였다.



"괜찮습니다! 물이야 닦으면 되죠! 하하하!"



나는 망설임 없이 내가 입고 있던 반팔 티셔츠 아랫단으로 흠뻑 젖은 돈 봉투를 벅벅 닦아내기 시작했다.



내 티셔츠에 검은 물이 스며들고 비린내가 배든 말든 상관없었다. 이 돈이라면 새 옷을 수십 벌도 더 살 수 있었다.




다곤 노신사가 감격한 듯 나를 바라봤다. 그의 심하게 튀어나온 눈동자가 감동으로 촉촉해지는 것 같았다.




"이... 이렇게까지... 선생님 같은 분은 정말..."




"아유, 아닙니다! 선생님!"




나는 노신사의 미끈한 손을 다시 덥석 잡았다. 이번에는 비린내조차 향기롭게 느껴졌다.




"저희 '태룡이 형님'이... 아, 아니, '권태룡 씨'가 얼마나 조용하고 얌전하신데요! 가끔 옥탑방에서 물소리 나는 건 뭐,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죠! ASMR 같고 아주 좋습니다! 그 소리 들으면서 잠도 잘 자요!"




"...저, 멸치볶음 건은 들었습니다만..."




다곤 어르신이 조심스럽게 멸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멸치요? 아! 그거요! 하하! 제가 원래 바삭한 것보다 촉촉한 걸 좋아합니다! 아주 독특한 레시피였어요! 세상에 둘도 없는! 그리고 김치! 그 종이접기처럼 기하학적으로 휘어있던 김치요! 그거! 예술입니다! 예술! 현대 미술 작품인 줄 알았습니다!"




내 뻔뻔함에 다곤 노신사의 튀어나온 눈이 감동으로 촉촉해졌다. 그 촉촉함이 습기로 변해 주변 공기가 눅눅해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저희 태룡이... 아니, '권태룡 님'!"




나는 티셔츠로 뽀송하게 닦아낸 돈 봉투를 가슴팍에 소중히 품었다. 마치 심장을 품듯.




"걱정 마시고! 저 박진수에게 맡겨만 주십시오! 제 집처럼... 아니, 제 집보다 더 편안하게 '존재'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억 5천만 원의 빚을 갚는 그날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노신사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같은 분은 정말 처음입니다..."를 연발하며 현관 밖 빗속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떠나자마자 현관 바닥에 고여 있던 갯벌 펄과 해초들이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




나는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축축한 돈 봉투를 열어 5만 원권 다발을 확인했다. 정확히 400만 원. 손이 덜덜 떨렸다. 400만 원. 내 삶의 구원.




옥탑방 천장에서 "크툴루... 프타근..." 하는 저음의 울림이 들려왔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세상에서 가장 온화하고 평화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 태룡이 형님. 오늘도 열심히 자고 있구나. 편안~하게 주무세요. 잠꼬대 많이 하셔도 괜찮아요. 이 집주인이 다 막아줄게!!"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행복한 꿈을 꾸었다. 멸치들의 절규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400만 원짜리 ASMR이었다.


작가의말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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