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34년 가을.
오장원 진중의 밤은 고요했다.
촉한의 승상 제갈량은 깊은 병색을 숨기지 못한 채 침상에서 일어났다.
숨은 거칠었고, 시야는 흐려졌으며, 천막 위로 보이는 하늘의 천문은 흐트러져 있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군.”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막사 중앙에 칠성의 도를 그렸다.
마흔아홉 개의 등불이 일곱 줄로 곧게 놓였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불꽃은 떨리고 있었다.
제갈량은 향을 꽂고 천천히 절을 올렸다.
“하늘이시여··· 한실 부흥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부디 저에게 십 년의 세월을 더···”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지난 세월 동안 마음을 갉아먹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 “승상! 내 아우 복수는 언제 하오!”
— “무도 모르는놈이 나에게 명령을 해?”
— “닥쳐! 술이나 더 가져와라니까!”
제갈량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내가 전생에 뭘 잘못했길래···
유비 그 덕 편집증 말년 뒤치다꺼리하다
이딴 짓까지 하게 되냐···”
.
.
.
.
.
칠성등은 엿새 동안 꺼지지 않았다.
그 불빛은 그의 마지막 희망처럼 흔들렸다.
“···거의 다왔구만···?”
희미한 안도가 그의 얼굴에 어려가던 바로 그날 밤이었다.
쾅—!
막사 문이 터지듯 열렸다.
“승상!! 큰일입니다! 위나라 군이!”
급하게 뛰어든 위연은 그대로 발끝이 미끄러지듯,
마지막 줄의 주등 하나를 툭 건드렸다.
불꽃은 훅 꺼졌고,
연기 한 줄기가 비웃듯이 피어올랐다.
위연은 얼어붙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승··· 승상···! 죄송···!”
제갈량은 한참이나 위연을 바라보다,
숨을 깊게 내쉬었다.
“하늘이 억까가 너무심한데?”
“예···?”
제갈량은 더는 힘도 남지 않은 듯 손을 내저었다.
“됐다. 이미 끝났··· 어.”
그는 꺼진 등불을 바라보았다.
그 작고 검은 심지 하나가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 고요했다.
그러다 제갈량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일어났다.
체념도 아니고, 희망도 아닌···
그저 마지막에 밟아보는 벼랑 끝의 도박 같은 표정.
“···이렇게 된 바엔··· 도박이라도 해봐야겠지?.”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늘이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여는 수밖에!.”
제갈량은 꺼진 칠성등 위에 손을 얹으며 중얼거렸다.
“누군지는 모르겠다. 어느 시대의 누구인지도 모르겠지.
허나··· 이 술법을 다시 시도할 미친놈이··· 분명 나오긴 나온다.”
그의 손끝에서 희미한 기운이 번졌다.
불도, 연기도 아닌··· 마치 혼의 잔향 같은 흔들림.
“이건 하늘에 대한 내 마지막 발악이 되겠지.”
그는 미소인지 고통인지 모를 표정을 잠시 짓고 말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 혹은 내가 해야 했던 것···
그걸 이어받을 놈이··· 언젠가···”
그날 밤, 꺼진 칠성등 아래에 스며든 제갈량의 마지막 한 수.
하늘도 막지 못한 그 미련한 집착이
천 년 뒤 강호의 흐름을 꺾고,
무림 전체를 요동치게 할 폭풍의 씨앗이 되리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새벽,
모산의 산문은 유난히 고요했다.
그 고요를 찢은 것은
철의 울림이었다.
처벅.
처벅.
푸른 무복과 청룡 깃발.
무림맹 청룡단.
그리고 선두에서,
모산파의 산문을 내려다보는 남자 하후철.
그는 대도를 툭툭 털며 말했다.
“시작한다.”
그 한마디로 모산은 지옥이 되었다.
모산파 제자들이 놀라 뛰어나오자
청룡단은 아무 감정도 없이
도와 검을 ‘정리하듯’ 휘둘렀다.
피가 안개에 섞여 흩어졌다.
비명은 짧았고, 죽음은 빨랐다.
하후철은 산문 앞에서 말없이 전개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이미 결과가 정해진 사냥’을 보는 눈이었다.
“멈!춰!라!”
불탄 전각 뒤에서
장문인 황학선자 현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다수의 제자들이 피를흘리며 쓰러져있었다.
현오는 이 처참한 광경을 보자
입술이 떨렸다.
“하후철···! 감히 무슨 연유로!”
하후철은 코웃음을 쳤다.
“연유?
왜 내가 죽을놈에게 입을놀리는 수고를 해야하지?”
그는 대도를 천천히 뽑았다.
그 사소한 움직임만으로
공기의 결이 뒤틀렸다.
현오는 떨리는 손으로 검을 뽑았다.
휘잉
검끝에 안개가 흐르는 듯한,
매우 가볍고 흐릿한 기운이 맺혔다.
“상청검법인가?”
하후철이 비웃었다.
“그 일류에도 들지않는 검법··· 무력하잖나.”
현오의 눈이 번뜩였다.
“무력하더라도
이 아이들을 지키는 데 쓰이기엔 충분하다.”
그리고
촤악!!
현오의 검이 안개 사이에서
실선(細線)처럼 그어졌다.
청룡단 둘이 목을 잡은 채 쓰러졌다.
목이 베인 것이 아니라,
경동맥만 정확히 끊긴 얇은 상처였다.
그만큼 위력은 약했으나
정교함만큼은 살아 있었다.
하후철이 미묘하게 미간을 좁혔다.
“흐흐··· 깔끔한 일격이군.
그래도 결과는 매한가지지 .”
하후철이 천천히 도를 들어올렷다.
그 자세는
과장된 기세도, 궤도도 없었다.
그저 몸을 비스듬히 틀고
손목을 살짝 낮춘 단순한 자세.
“내 천호도식(天狐刀式)에 죽는걸 영광으로 알고가.”
현오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도를
아래에서 위로 ‘툭’ 하고 올렸다.
딱 그뿐이었는데.
짱—!
현오의 상청검이
비명을 지르듯 튀어 올랐다.
검날이 뒤틀리고, 손잡이가 멀리 튕겨나갔다.
하후철은
그 반동으로 빙글돌며 현오의 팔뚝을 베어냈다.
하후철은 검을 튕겨 올린 그대로
옆으로 한 번 더 가볍게 그었다.
슥
현오의 어깨에서부터 옆구리까지
얇고 길게 베어진 선이 생겼다.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이게··· 격차다.”
하후철이 말했다.
현오는 무너지는 몸을 겨우 붙잡고
하후철을 노려보았다.
“제발···
아이들만은···”
하후철이 피식 웃었다.
“살려는주지.
사지근맥은 끊어놓겠지만.”
상부에서는 하후철에게 모산의 멸문을 명했지만,
어린제자들은 사지근맥만을 자르라 했었다.
현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절망이 스며들었다.
하후철은 조용히 도를 그의 목에 올렸다.
“본보기로는···
2대제자까지면 충분하니까.”
슥—
목이 베어졌다.
머리는 안개 위로 조용히 떨어졌다.
하후철은 피 묻은 도를 툭 털고 말했다.
“그러게 친구를 잘 뒀어야지.”
청룡단은 남은 아이들을 찾아
근맥을 하나씩 끊어 나갔다.
툭.
툭.
툭.
울음.
비명.
뼈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
하후철은 붉은 안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리해라.”
그 말로
모산은 사라졌다.
승룡이 모산을 오른 것은 혈사가 있은 지 이틀 뒤였다.
태상장로인 그는 10여년의 외유를 끝으로
삶의 마지막을 사문에서 맞으려 오랜외유를 끝내고 돌아왔다.
멀리서 모산파 산문이 아스라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산문이 가까워지는 순간—
그 불길함은 곧 확신으로 변했다.
산문 앞에 도착한 승룡은 숨이 턱 막혔다.
타다 남은 흔적만 남은 현판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고,
산문 안에는 쓰러져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곧장 달려들어 쓰러진 아이들의 맥을 짚었다.
그러나,
맥이 잡히지 않았다.
승룡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몸을 던지듯 건물 잔해 속으로 파고들었다.
타다 남은 재를 걷어내고,
부러진 기둥을 밀어젖히며,
어깨에 목재 파편이 파고들어 피가 흐르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살려야 한다. 반드시 살려야 한다.’
승룡은 광증에 가까운 절박함으로 제자들을 끌어안았다.
조금이라도 맥이 잡히는 아이가 있으면 들쳐 업었고,
황색 도포 자락은 피와 흙에 젖어 무겁게 늘어졌다.
하나를 눕히고, 또 하나를 끌어내며,
숨이 끊어진 아이들의 틈 사이에서
그는 계속 손을 뻗었다.
광인이 춤추듯,
절망이 승룡을 움직였다.
피웅덩이에 쓰러진 한 제자의 맥을 짚었다.
‘살려야 한다.’
그는 다시 잔해 사이로 파고들었다.
‘한 명만 더.’
입으로 도포를 찢어 아이의 다리를 감싸며
그는 또 중얼거렸다.
‘한 명만이라도 더··· 제발···’
그때,
손끝에 희미하지만 분명한 맥이 닿았다.
승룡은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아이를 일으켜 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은자배의 대제자, 은조였다.
“ㅌ···태··· 사··· 조··· 님···”
피거품이 맺힌 입술로
은조가 그를 불렀다.
승룡의 목이 떨렸다.
“은조야··· 내가 왔다. 이 태사조가 왔다.”
“보고 싶었어요··· 태사조님···”
귀여웠던 아이의 모습이,
이아이가 입문하던날의 기억이 겹쳐 보였다.
얼마나 이뻐했던가..
그런 아이의 입가에 피가 고여 있었다.
승룡은 은조의 입술을 덮은 피를 닦으며
미친 듯 말했다.
“괜찮다. 이제 괜찮다. 내가 왔으니.”
“죄송··· 해요··· 태사조님···
장문인을··· 지키지··· 못···”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은조의 고개가 그의 팔에서 천천히 미끄러졌다.
작은 몸이 한 번 떨리고
그대로 멈췄다.
승룡의 시간이 멈췄다.
승룡은 은조의 뺨에 손을 얹으려 했지만
그 손이 도달하기까지
몇 해가 걸리는 것만 같았다.
손끝이 닿았을 때
따스한 한기가,
마지막 체온이 그의 손바닥에 흘러들었다.
그는 그저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무너진 도관의 잔해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얼굴을 때리는 찬 기운조차
승룡은 느끼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붉게 젖은 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동자에 불꽃 같은 기운이 일렁였다.
승룡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핏자국으로 얼룩진 손으로
시신을 뒤집고,
맥을 짚고,
다시 확인하고,
또 반복했다.
하루가 지났는지, 이틀이 지났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살릴 수 있는 아이를 찾아 헤맸고,
숨이 붙은 아이들은 모두 의약당으로 옮겼다.
의약당 안에는 다섯 명의 아이가 누워 있었다.
은강, 은백, 은재, 은호, 은연.
일흔 명에 가까웠던 모산파에서
살아남은 이는 고작 그 다섯이었다.
다섯이라도 살릴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른다
불과 몇 시진 전,
한 아이가 또 숨을 거뒀다.
승룡은 울 기력도 없었다.
봉두난발한 모습으로
아이들 곁을 며칠이고 뜬눈으로 지켰다.
약을 달여 먹이고,
피를 닦아내고,
맥을 짚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가장 먼저 은강이 눈을 떴다.
“태··· 사조님···?”
쉰 목소리가 들리자
승룡은 고개를 들었다.
눈 밑이 깊게 팬 얼굴로
그는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은강아. 괜찮다. 이제 아무 말 하지 말고 쉬거라.”
은강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태사조··· 사형들은···”
승룡은 그의 손을 가만히 눌렀다.
“지금은 다 잊어라. 살아야 한다.
조금 더 자거라.”
그는 은강의 혼혈을 가볍게 짚어주었다.
은강이 스르르 눈을 감자
승룡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살아주어 고맙구나.”
밖에서는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무너진 도관의 잔해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슬며시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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